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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세기 좋아하는 시조 한수

西學, 北學, 그리고 倭學 (4)老歌齋 김수장(1690~1770)이 영조 38년 1762년 편찬한 《해동가요》(海東歌謠)에 내가 좋아하는 시조 한 수가 있습니다.폰트가 지원이 안되는 관계로 현대 표기로 옮겨 씁니다.書房(서방)님 病(병) 들여 두고 쓸 것 업셔鐘樓(종루) 져좨 달뢔 파라 봬 솨고 감 솨고 榴子(유자) 솨고 石榴(석류) 솻다 아촤촤촤 이저...

18세기 동아시아 크로스보더 파티장 - 왜관 그리고 데지마 (上)

18세기 동아시아는 보통 쇄국의 시대로 간주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실은 들여다보면 나름대로 이래 저래 교류도 지속적으로 일어나고 있었다고 할까요...그중에 각 국에는 다른 나라의 사람들이 장기적으로 거주하는 곳들이 제한적이나마 형성되어있었습니다. 유명하기로는 물론 일본 나가사키의 VOC 상관 데지마(出島)이겠지만, 쓰시마번 소속의 일본인들의 부산 왜관도...

조선의 니우암스테르담이라고 부르고 싶습니다만 - 완결

19세기의 부산 - 조선의 니우암스테르담??에서 글이 길어져서 뒤로 미뤘던 후편입니다.여기서 대략 생각을 마무리 해봅니다. 기존의 거의 대부분의 왜관을 중심으로 한 조일관계의 서술은 상당히 부정적인 기조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이 영향 자체를 다룬 연구도 사실 그리 많지 않습니다. 최근에 들어서야 왜관 자체가 알려지기는 하고 있지만 여전히 그런일이 있었다...

승가기(勝歌妓) 혹은 스기야키(すぎやき)에 관해서

지난번 글 "19세기의 부산 - 조선의 니우암스테르담??" 의 말미에 요즘 알려진 조선 후기의 스끼야끼에 대해 할말이 좀 있다고 적었는데, 얘기가 좀 길어질 것 같아, 아예 별도 포스팅으로 올립니다. 먼저 지난번 이학규의 금관죽지사에 나온 승가기(勝歌妓)라는 표현을 봐주십시오. 지난번 포스팅에서 자세히 설명을 하지 않고 넘어가서 이 단어에만 맞춰서 다시...

19세기의 부산 - 조선의 니우암스테르담??

부산말의 애증 - 아무래도 일본어란게....에서 이어집니다.자, 이제 시간을 달려서 근대 개항 이전의 동래부 소속 부산포와 인근의 김해로 가봅시다. 며칠 전의 이역죽지사가 19세기 개항전 조선 권력 핵심의 소위 경화사족이 알고 있던 (중국경유의) 세계와 타자에 대한 인식이라면, 여기 그 반대편에 있던 어느 불우한 사나이의 (상당히 제대로 이해되지 못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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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루쿠루 풍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