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르웨이의 森 - 연재 재개! by 迪倫

에도의 森, 에도의 입(口) 의 마지막 장면에서 19세기 후반 태평양 서쪽에서 거의 멸종하는게 아닌가 할 정도로 몰렸던 향유고래들이 신에너지원 석유의 상용화를 축하하는 연회장 장면을 소개해드렸습니다.

**원 출전은 1861년 베니티페어 잡지의 삽화입니다. 펜실베니아의 상업적 석유 생산은 1859년 처음 시작되어 1891년 피크 생산량을 보인 다음 텍사스나 캘리포니아로 바톤을 넘깁니다. 물론 중동 석유는 기본적으로 이후의 이야기입니다.

그동안 17세기 이후 증가해온 상업적 포경업으로 인해 아, 고래의 수난이 그렇지 광물성 자원으로 대체되면서 마침내 끝이 보인 것이구나 하고 혹여 생각하실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아래의 그래프를 한번 보시기 바랍니다.


이 그래프는 갬벌의 1999년 포경관련 논문의 데이터를 재구성한 것인데, 양키 포경선이 등장하던 1860년부터 2000년대까지 "공식적"으로 보고된 포경개체수를 도표화한 것입니다. 왼쪽의 y축의 숫자는 단위가 천입니다. 그러니까 1900년대 이전에는 비공식적 포경개체수를 감안하더라도 몇천 마리 단위였는데, 20세기로 넘어가는 순간 만, 2만, 3만, 무려 연간 7만 마리까지 폭주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나마 20세기 후반 80년대 즈음부터 급속히 줄어든 것은 실은 국제적인 포경업에 대한 금지 여론과 뒤이은 협약이 시작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러고보니 닝겐들이 서로 죽이느라 여념이 없었던 1차 2차 세계대전 동안 고래는 숨을 돌릴 수 있었군요.

아니, 석유가 나왔잖아요? 그런데 왜 이렇게 그 이후에 정작 스케일 자체가 다른 '학살'의 규모로 증가한 것일까요?

물론 미국의 양키 포경선들은 거의 1870년대까지는 산업의 소멸단계까지 쇠퇴하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과학기술의 발전이란 자원을 보다 다양하게 추출하여 활용할 수 있다는 얘기이기도 하지요.

19세기 후반 서양은 본격 자본주의적 소비사회로 전환되어 이전의 고급품에 대한 저렴한 공장제 대체재에 대한 요구가 국가적으로나 개인적으로나 엄청나게 증가합니다. 이는 국민국가가 대규모 군대를 유지하는데에도 필수적인 베이스이기도 했습니다. 프랑스에서 먼저 국가에서 군인들에게 대량으로 보급할 버터의 대체재를 개발합니다. 경화유라고 하는 화학적 제품인 이 상품은 불포화산 지방산이 많은 액상유에 수소를 반응시켜 고체화시켜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소의 우지를 사용하다 이후 점차 값이 싸고 대량으로 확보할 수 있는 어유나 고래기름이 경화유의 원료로 사용되게 되었습니다.

아, 버터의 대체재는 바로 마가린입니다. 1869년 발명되어 군용 보급품으로 일반 가정용으로 산업화된 바로 그 '버터가 아니지만 버터와 맛이 같아요' 제품입니다.

그러니까 고래기름이 산업연료로 가치가 없어지는 그 타이밍에 산업원료로서의 가치가 새로 대두된 것이라고 할까요.
경화유는 실은 마가린뿐 아니라 비누의 제법에도 적용되었습니다. 대량 산업사회에 고래처럼 막잡아다 쓸 수 있는데 버릴데가 없는 걸 그냥 살려둘리가 없지 않겠습니까. (경화유에 대해서 이전 청어 시리즈의 "어유와 상인들(클릭)"을 연결해서 읽어보시면 괜찮을 것 같습니다)

게다가 원래 고래고기에 대한 수요는 그렇게 많지않았던 서구세계도 1차 대전과 2차 대전을 지나면서 동물성 육류에 대한 수요가 역시 증가하자 전시동안의 잠시이긴 하지만 고래고기를 식용으로 직접 소비하거나 아니면 육류 생산을 위한 사료원료로 고래고기가 사용되기 시작합니다. 고래의 산업적 수요가 전혀 줄어들지 않고 오히려 더 많이 창출되었다고 할까요.


그런데 미국도 손뗏다면서, 네덜란드, 잉글랜드같은 전통적인 포경국가들도 대부분 이때는 시장에서 나갔는데 말입니다.

처음 이 연재의 시작에는 북국 이야기로 시작을 했었습니다. 그 중 노르웨이라는 나라는 유럽 역사에 딱히 바이킹 이후에 별로 존재감 없는 못사는 나라였었습니다. 기술이나 자본이 부족하니 그저 포경도 전통적으로 연안 바다에서 약간 원주민적 포경업을 하는 정도였습니다. 그러니까 19세기 후반까지 말입니다.

그러다, 1860년대 포경붐이 서양세계를 휩쓸고 있을때 노르웨이에서 혁신적인 장비들을 선보이면서 국제 포경업에 명함을 내밀기 시작합니다. 바로 폭약이 장치된 작살과 증기기관 동력의 포경선입니다. 여기 스벤드 포인(Svend Foyn, 1809-1894)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노르웨이에 있는 박물관에 설치된 스벤드 포인씨와 그의 발명품 작살포의 모습이라고 합니다.

실제 포경업은 근세이래 크게 모습이 바뀌지않은 상태로 지속되었지만 19세기에는 이런 저런 좀더 효율적인 방법들이 시도되기는 했었습니다. 대표적으로 대포로 작살을 쏘아보내는 방법이 등장했지만, 포인이야말로 현대 포경의 아버지라고 할 정도의 획기적인 업그레이드를 소개합니다.

1863년 포인은 세계 최초로 증기기관 동력의 포경선을 건조합니다. 이전에는 증기선은 해체작업을 하는 모선이고 고래를 뒤쫓는 작은 배가 동력선이지는 않았습니다. 일단 기동성이 확보되니 더 작고 빠른 고래류를 뒤쫓을 수 있게됩니다.

그런 다음 1870년에 폭약이 장치된 작살포를 선보입니다. 이전에 등장한 개량안들을 종합하여 작살의 머리부분에 폭약을 장치하여 캐논포로 고래에 발사하면 고래 몸 속에서 작살이 터지면서 우산처럼 살대가 펴져 고래를 죽이는 방식입니다.


이 작살포를 다시 증기동력선의 선수에 장치하면 현대 포경선의 모습이 완성됩니다.

그리고, 고래의 수난은 이제 기하급수적인 만단위 레벨로 증가하게되었던 것입니다.

이리하여 노르웨이는 20세기로 들어오면서 세계 대양의 포경업을 장악하게 됩니다. 1930년대 그리고 이제 어디든지 가서 어떤 종류든지 잡울 수 있게 된 노르웨이는 남극 연안의 바다로 진출하는 극지포경에 진출하게 됩니다. 가장 피크였던 1930년 1931년 시즌동안 노르웨이는 25,269 마리를 남극해에서 잡아 전세계 남극해 포경의 60%를 차지합니다. 조금 더 시간을 길게 놓고 본다면 2차 대전이 끝난 1946년부터 1986년 모라토리엄이 시행되기 시작할 때까지 40년 동안 35만 마리 이상을 노르웨이 단독으로 잡았습니다. 그야말로 단독 선두였습니다.
노르웨이의 원양 포경은 1960년대 중반에 들어 주춤하면서 본국의 바다로 철수합니다. 그리고, 그동안 알이 잘아서 잡지않던 소형 고래류에 집중합니다.

아래 그림은 국제포경협회 IWC에서 관리하는 대형고래류의 모습입니다. 평균적인 사이즈를 비교해 볼 수 있는데, 이 시리즈의 처음 부분에 등장하던 대형고래들은 이미 거의 절멸 상태로 들어갔고, 스벤드 포인과 노르웨이의 혁신으로 진행된 소위 "현대 포경업"의 최후의 주 타겟은 밍크고래입니다. 80년대 모라토리엄 이전에는 매년 2000 마리 정도의 밍크고래를 노르웨이에서 잡았습니다. 연재가 잠시 휴재되었던 기간 동안 지난 6월 30일부로 재개된 일본의 상업 포경도 그 첫번째 포경 수확이 밍크고래 2마리였습니다.


고래의 수난은 실은 석유가 상용화되던 시점에 그야말로 어마무시하게 확장되어버렸다고 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리고 보면 첫머리의 향유고래들의 축하 파티는 그때는 미처 몰랐지만 사실 그나마의 호시절의 마지막 보내는 비극적인 이별의 파티가 되었다고 해야할 것만 같습니다.

그런데 1905년 러일전쟁의 전운이 감돌던 동해 바다에 노르웨이 포경업의 양대 제자들이 다시 맞붙습니다. 다음편은 이야기를 다시 가까운 한반도로 옮겨서 "동해러일포경전"으로 이어지겠습니다.

**그동안 거의 블로그를 중단하는 수준까지 갔다고 할 정도로 오프라인이 바빴습니다. 물론 컴퓨터 앞에 앉지도 못할 정도로 20시간씩 일한다든가 한 것은 아니지만 여유가 좀 없을 정도로 많은 일들을 처리하고 있었습니다. 블로그의 앞날은 지금 모르겠지만 일단 얘기하던 것은 마무리하는게 좋을 것 같아 오랫만에 돌아왔습니다. 그새 재미있었던 부분은 다 휘발되고 말았구나 싶습니다.

그래도 안부 물어주시고 좋은 말씀 남겨주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그동안의 댓글들에는 천천히 말씀 드리겠습니다.

**참고자료와 출전은 대략 이러합니다:
"NORWEGIAN USE OF WHALES: PAST, PRESENT AND FUTURE TRENDS", Economics for the Environment Consultancy Ltd (eftec), 2011
"Whaling: Past, Present, and Future", Lisa T. Ballance, 2012
"The International Whaling Commission and the Elusive Great White Whale of Preservationism", GERRY J. NAGTZAAM, 2009
"Commercial Whaling in Newfoundland and Labrador to 1900" (https://www.heritage.nf.ca/articles/environment/whaling-in-the-19th-century.php)
"HOW MODERN NORWAY CLINGS TO ITS WHALING PAST", (https://awionline.org/sites/default/files/uploads/documents/AWI-ML-NorwayReport-2016.pdf)
"The International Whaling Commission and the contemporary whaling debate", Gambell, R. 1999. . pp. 179-198 in J.R. Twiss Jr. and R.R. Reeves (eds.)
https://www.atlasobscura.com/articles/what-is-margarine-made-of 등등이고 이미지의 출전들은 대부분 위키 또는 관련 참고자료들에서 가져왔습니다.

**오늘의 제목은 이전 이야기에서 일본어 '銛'자와 발음이 서로 같아 화한삼재도회를 통해 조선에서도 森라고 알려졌었던 포경 작살과 노르웨이의 숲 소설을 갖다붙여 만들었습니다. 물론 숲이 아니라 바다의 이야기였습니다만.



덧글

  • 함부르거 2019/08/13 09:31 # 답글

    오랫만에 연재하시니 너무 반갑습니다. 지금 한국은 무더위가 한창입니다. 더운 여름 몸 조심하세요~
  • 迪倫 2019/09/17 11:33 #

    답이 너무 늦었습니다. 그새 추석도 지나고 가을이 한창입니다. 덕분에 여름 잘 보냈습니다. 감사합니다. 함부르거님.
  • naya et noiyes 2019/08/13 11:45 # 삭제 답글

    돌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
    수압파쇄법으로 셰일가스/타이트 오일의 경제성이 대폭 증가한 것 처럼, 적합한 도구/방법의 개발이 포경 시장의 판도를 크게 변화시켰네요.
  • 迪倫 2019/09/17 11:37 #

    안녕하세요. 제가 요즘 블로그를 너무 소흘히 해서 답도 너무 늦어 죄송합니다. 예, 포경은 어떤 의미로 '이노베이션'이 수천년간 이어지던 산업을 완전히 바꿔버린 케이스에 해당하는 것 같습니다. 결국 오일 산업도 이런 이노베이션을 통해 수율을 최대화하는 과정을 계속해왔는데, 포경업이 직면한 고래의 종자체의 위기처럼 오일산업 역시 언젠가는 한정된 자원량의 문제에 귀착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아무튼 반겨주셔서 감사합니다.
  • 밥과술 2019/08/13 13:23 # 답글

    반갑습니다!! 읽기전에 덧글부터 답니다. 읽고나서 또 달겠습니다
  • 迪倫 2019/09/17 11:37 #

    감사합니다!!
  • 빛의제일 2019/08/13 20:59 # 답글

    우와 다음 주 개학을 맞이하여 심란했는데, 迪倫님 오시니 포스트 읽고 힘내겠습니다.
    저도 읽고나서 덧글 다시 달겠습니다.
  • 迪倫 2019/09/17 11:37 #

    감사합니다!, 그런데 답글도 너무 늦어 죄송합니다.
  • 남중생 2019/08/13 21:28 # 답글

    석유가 발견되었다고 고래의 수난이 끝난게 아니었군요ㅠㅠ
    플라스틱이 발명되었다고 해서 코끼리의 수난이 끝나지 않은 것처럼 말이죠...
  • 迪倫 2019/09/17 11:39 #

    남중생님, 블로그를 제가 거의 문닫고 있는 동안 이래저래 소개를 많이 해주셨던 것 봤습니다. 감사드립니다.
    그렇죠. 결국 인간이 근본적인 생각을 바꿔야하는게 아닌가 싶어 이번 시리즈의 마지막에 이 문제를 다뤄보려고 원래 계획은 했는데, 앞이 안보이는군요. ㅠㅠ.
    너무 늦게 답글을 달아 미안합니다.
  • 빛의제일 2019/08/13 23:29 # 답글

    다시 포스트 올려주셔서 고맙습니다. 그에 걸맞게 영양가 있는 덧글을 달고 싶지만, 저의 머릿속에 떠오른 것은...
    마이리더에서 처음 제목만 보고, 아니 그 소설에 고래잡이가 나왔나, 노르웨이 사람들은 숲에서 고래를 잡았나 혼자서 엉뚱생각이 산으로 가다가 이게 아닌가벼, 정신차리고 포스트 읽었습니다.
    '재미있었던 부분이 휘발되고 말았구나' 라고 말씀하셨지만, 저는 다음 포스트의 재미를 미리 느끼고 있습니다.

    작년에 소풍으로 학생들과, 서천에 있는 국립해양생물자원관에 갔습니다. 전시동 마지막에 고래 뼈 모형이 있고, 긴수염고래는 벽화로 있어 긴수염고래 그림 꼬리에서 머리까지 학생들과 왔다갔다 했습니다.
    올 가을 소풍은 다른 곳으로 예정되어 있는데, 학생은 바뀌었으니, 국립해양생물자원관 또 가서 고래님들을 공들여 봐야 하나 싶습니다.
  • 迪倫 2019/09/17 11:41 #

    그래도 그나마 재미있던 부분은 모두 휘발되고 말았습니다 ㅠㅠ

    그새 가을이 되어버렸는데, 학생들과 고래를 한번 만나보는 기회를 꼭 가져보시면 좋겠습니다. 잊지않고 글을 읽고 대화 놔눠주셔서 늘 감사드립니다!
  • 역사관심 2019/08/14 08:39 # 답글

    오오, 이제사 다시 글쓰심을 알게 되었습니다. 반갑습니다.
  • 迪倫 2019/09/17 11:42 #

    그런데 답이 너무 늦었습니다. 이어지는 글들 꼭 조만간 계속 올리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역사관심 2019/09/17 23:56 #

    괜찮습니다. 생업이 더 중요한건 당연하지요! 언제든 글 올리시면 환영입니다. ^^
  • 밥과술 2019/08/26 12:14 # 답글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최근의 상황을 아무래도 고래편에서 보게되어 동정을 하게 됩니다. 일본에서는 고래가 먹어치우는 해상생물( 어류, 연체동물 등)이 너무 많아 생태계 균형이 깨지므로 적당히 포획을 해야한다는 이론도 있는 것 같습니다. 암만 봐도 고래를 잡기위한 주장인 것 같기도 합니다만... 최근 웹페이지를 들어가보니 고래고기 상품은 백그람에 1500엔, 그러니까 한근에 9천엔, 한국돈 10만원 가까이 가네요. 고래고기 베이컨은 백그람에 1800엔이나 하니 이보다도 더 비쌉니다. 소고기가 없어서 대신 먹는 육류가 아니라 미식가를 위한 고급 육류가 된 것 같습니다. 고래고기 사시미(육회)를 너무 좋아한다는 일본사람을 만난 기억도 납니다. 저는 고래고기를 먹지 않아서 그런지 고래는 잡지 않고 놔두는 쪽이 올바른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오랜만에 올려주신글 감사합니다~
  • 迪倫 2019/09/17 11:47 #

    재미있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인간이 고래편에서도 생각을 해보기 시작한 것이 실은 상당히 최근이더군요. 일본측의 논리는 실은 고래를 잡겠다고 결론을 내려둔 다음 거기에 맞춘 자료라고 해석되는 것들이 좀 많았습니다. 차라리 우리는 꼭 먹어야겠다고 주장하는게 더 나은게 아닌가 싶었습니다. 실은 포경 금지 협약으로 인해 고래고기가 더 귀한 음식이 되고 그래서 더 크레이빙해져버린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저는 처음에 언급했듯이 고래고기를 먹고 자랐고 그 맛을 기억하지만, 이제는 먹지 않아도 괜찮은게 아니라 안먹는게 좋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블로그를 그만두겠다는 것은 아닌데 올해 여러가지 일이 너무 여유가 없어 이렇게 답글마저도 늦어져서 죄송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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