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유고래를 따라 재팬그라운드로! by 迪倫

공중을 지배하는 자의 아들 - 양키포경선의 등장의 마지막에 언급한 도대체 무어가 향유고래를 특별하게 한 것인지 이제 얘기를 이어갑니다.

1720 년 이전에 고래를 잡는다고 하면 바스크족이든 네덜란드 잉글랜드든 고래라면 특정의 종류 고래만을 잡고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북미대륙의 뉴잉글랜드 연안은 참고래(Right whales)를, 스피츠베르겐과 그린란드 해역에는 북극고래(bowhead whale)나 혹등고래(humpback whale )를 주로 잡았습니다. 이들은 전부 수염고래류입니다.

수염고래류 중에 덩치가 큰 고래를 주 타겟으로 하는 것은 몇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일단 고래 중에 이빨고래류에 비해 상대적으로 느린 편입니다. 둘째 작살에 맞아 죽어도 잘 가라않지않고 뜨는 종류입니다. 게다가 상대적으로 해안 가까이가 주 서식지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붙러버(blubber)라고 하는 '돈이 되는' 피하지방층이 대단히 두럽게 형성되어 있습니다.

뉴임글랜드 양키 포경선도 처음에는 연안의 참고래에서 시작하였습니다. 그러다 모든 포경업의 숙제에 부딪히고 맙니다. 바로 연안에 고래가 없어지는 것이죠. 결국 멀리 나가지 않으면 안되는 현상은 이미 수없이 반복되고 있었던 인간과 고래의 도돌이표 비극이었습니다. 그런데 아무래도 후발주자인 양키들은 이미 포경강호들이 포진한 북극해로 올라가지 않고(못하고가 정확한 실상이겠지요) 아메리카 해안을 따라 남으로 내려갔다 서해안으로 을라오면서 태평양으로 진출합니다. 1720년의 향유고래를 잡았다는 소식이 무색하게 그나마도 그렇게 포경강호들에 비해 대단히 산업적으로 의미가 있는 규모는 아니었다고 합니다, 게다가 미국 독립전쟁과 나폴레옹 전쟁의 와중에는 그나마도 실질적으로 해군력이 약하던 신생국가 미국은 해양 활동을 거의 전면 중단했었구요.

그런데 독립전쟁 후 미국이라는 국가가 국가로서 자리를 잡기 시작하자 이렇게 양키 포경선이 블루오션 영역을 슬금슬금 늘려갑니다. 그 중의 하나가 바로 향유고래 포경입니다. 이미 1740년경부터 양키 포경선들은 거의 전적으로 향유고래에 몰입하기 시작했었던 중입니다. 그러다 국제 사정이 달라져서 포경에 본격적으로 나갈 수 있게 되자 다른 나라들이 미처 끼어들기도 어렵게 향유고래 사냥에 폭주하기 시작합니다.

1770년부터 1775년의 5년간 매사추세츠, 뉴욕, 코네티컷과 로드아일랜드 지역에서 생산한 "향유고래 기름"은 연간 45,000 배럴이었다고 합니다. 같은 시기 일반고래 기름의 생산은 연간 8,500 배럴 정도였다고 하니 어느 정도 향유고래에 몰입한 것인지를 알 수 있습니다. 19세기로 접어들자 양키 포경선은 그냥 향유고래만으로 다른 모든 나라들을 이겨버린 셈입니다.

그런데 향유고래란게 왜 다른 고래와 다른 것일까요?

우선 향유고래는 처음에 설명했던 돌고래, 범고래와 같은 계통의 이빨고래의 한 종입니다. 실은 줄베른의 유명한 SF 소설 해저 2 만리에도 한 챕터가 향유고래에 할당되어 있는데, 그게 평화를 사랑하는 수염고래떼를 공격하는 포악한 고래의 이미지입니다. 유럽의 오래된 해양전설 중에 크라켄이라는 바다 대형 문어 혹은 오징어가 서로 몸을 칭칭 감고 싸우는 놈이 바로 향유고래입니다.


이빨고래인 향유고래는 수염고래와 신체구조가 상당히 다롭니다. 예를 들어 수영고래는 대단히 낮은 저주파의 노래틀 부르는데 반해, 이빨고래는 고주파의 클릭 사운드를 냅니다. 보통 돌고래 소리라고 하는 끼익 같은 소리는 이빨고래만 낼 수 있는 소리입니다. (처음에 설명한 것처럼 돌고래가 이빨고래의 대표적 종입니다.) 자, 고래의 노래들을 직접 들어봅시다!
링크는 혹등고래의 소리 파일로 연결됩니다.

링크는 향유고래의 소리 파일입니다.


수염고래의 저주파 소리는 어떻게 만드는지 아직 확실히 모른다고 합니다만, 이빨고래의 고주파 소리는 발성기관에 대해 완전히는 아니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는 밝혀져 있습니다. 이빨고래들의 머리 속에는 두개골 위나 앞에 멜론(혹은 정크)과 스퍼마세티라는 기관이 있습니다. 이 기관 사이에 인간의 비강과 같은 계통이지만 성대같은 역할을 하는 기관이 위치하고 있습니다. 멜론(정크)과 스퍼마세티는 공기처럼 빈 공간이 아니라 안에 유동성 물질이 재워져있습니다. 이 기관들은 후두 성대 기관에서 만들어낸 소리를 조절하고 또 한편 특정 방향에 맞줘 쏘아보내고 돌아오는 소리를 캣치해서 메아리로 방향을 잡는 에코로케이션 기능을 수행합니다.


이게 왜에? 하시는 분들이 있으실 걸로 짐작합니다. 돌고래에 비교해서 이 스퍼마세티라는 대형 기관이 향유고래의 머리에 특히 발달되어 자리잡고 있어서 향유고래는 머리가 뭉특한 특유의 모양을 하고 있습니다. 실제 위의 해부도에서 스퍼마세티(spermaceti)와 멜론(그림 속에서 영어로 정크 junk 라고 적힌 기관) 기관이 없다고 한다면 향유고래의 모습은 돌고래처럼 아주 앞이 뽀족한 모양이 될 것입니다. 실제 향유고래의 턱은 대단히 쪼삣한 집게처럼 생겼습니다. 그러니 향유고래를 향유고래로 만드는 것은 머리 부분의 거대한 스퍼마세티 기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1650년 책에 실린 삽화인데 아마도 향유고래로 보고 있습니다. 향유고래가 뒤집어진 것을 보면 아래턱의 모습이 돌고래와 비슷하게 뾰족하게 긴 모습입니다.

이 스퍼마세티 안은 유동액으로 차있는데 이 유동액은 기본적으로 점도가 낮은 대단히 낮은 왁스입니다. 그러니까 기름이 아니고요. 수염고래의 트레인오일과 성분이 상당히 다릅니다. 수염고래의 기름은 지방산이 글리세롤분자에 붙은 트리글리세리드 성분인데, 향유고래의 보통 향유고래기름이라고 혼동해서 부르는 스퍼마세티는 화장품에 많이 사용되는 에스테르 종류인 세틸팔미테이트라는 화학적 성분이 주입니다. 유동성 왁스라는 성분으로 짐작하실 수 있듯이 양초용으로 고래기름보다 거을음이 적고 훨씬 더 밝을 뿐 아니라, 그리고 윤활유로도 대단히 좋았습니다. (생각해보면 만능 윤활유로 사용하는 WD-40 역시 생선기름이 원료입니다)

게다가 시대는 바야호로 제1차 산업혁명의 시대! 밤을 세워서 공장을 돌리고 공장의 기계가 물흐르듯이 돌아가게 해야하고, 거리에 불을 밝히고. 지난번에 설명드린 수염고래와 비교해서 탁월하게 고부가가치의 향유고래 스퍼마세티가 양키 포경선들에 의해 대량으로 공급이 되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런데, 수염고래들에 비해 향유고래는 좀더 공격적인 성향을 보여, 형유고래를 잡는 것은 작살 하나의 맨몸으로 마주 대하기 더 거칠고 어려운 작업이었습니다. 향유고래는 작살에 맞으면 그냥 수염고래처럼 곧장 일직선으로 도망을 가는게 아니라 물 속으로 잠수를 하거나 방향을 급하게 바꾸거나 하여 배를 통제불능으로 끌고 가면서 도망을 가거나 아예 배틀 들이받기도 하였습니다. 그래서, 역설적이게도 백인이든 막 노예상태에서 벗어난 혹인이든 아니면 악마의 자손이든 용감한, 아니 그정도로 무모한 인간이라면 누구나 기회를 가질 수 있었던 셈입니다. 물론 이와 함께 작살도 슬슬 업그레이드가 됩니다. 작살에 폭약이 탑재되어 몸 안에 박히면 터진다든가 하는 총으로 작살을 쏘아서 보다 깊이 박히게 하는 기술들이 속속 개발됩니다. 그만큼 고래도 인간에 대해 좋은 감정이 생길리 없겠죠. 향유고래의 공격적인 반응이 실제로 여러 건의 선박 침몰 사건으로 이어지고 그 결과가 소설 모비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향유고래는 여기에 또한가지 특성이 있습니다. 일정 해역에 주로 서식하는 편입니다. 양키 포경선은 처음에는 대서양 아메리카 대륙 남쪽의 칠레에서 케이프혼을 돌아 페루 해역으로 갔다가 북아메리카 대륙의 태평양 연안으로 거슬러 올라갔는데, 1818 년 즈음 19 세기 초반을 달군 서식지가 이들에게 발견이 된 것입니다. 이 해역은 북위 25도에서부터 40도까지 동경 125도에서 150도까지 그러니까 대체로 하와이부터 일본까지의 북태평양 해역입니다. 1819 년 하와이에 도달한 양키 포경선은 그곳에서 서북쪽으로 마침내 최대 향유고래 서식지인 이 그림 속의 지역, 19 세기에 재팬그라운드라고 불린 곳에 진출했습니다그리고, . 이곳에서 양키 포경선과 향유고래의 혈투가 벌어졌습니다.

위의 지도는 19세기 양키 포경선의 조업지역을 표시한 것입니다. 일본 열도 부근에서부터 하와이 정도까지의 집중지역이 바로 "재팬 그라운드"입니다.

미국은 국사라는 중앙 정부에서 지정한 시점을 공식화한 과목은 없습니다. 물론 학교에서 미국사라는 과목을 배우기는 합니다만, 한국이나 일본의 국사와는 조금 개념이 다흡니다. 하지만 연방정부가 공식적으로 쥐하고 있는 역사적 입장은 물론 있었습니다. 다음의 내용은 미국 연방정부의 일본 개항에 대한 공식적인 입장이었던 것 중의 일부입니다.

There were several reasons why the United States became interested in revitalizing contact between Japan and the West in the mid-19th century. First, the combination of the opening of Chinese ports to regular trade and the annexation of California, creating an American port on the Pacific, ensured that there would be a steady stream of maritime traffic between North America and Asia. Then, as American traders in the Pacific replaced sailing ships with steam ships, they needed to secure coaling stations, where they could stop to take on provisions and fuel while making the long trip from the United States to China. The combination of its advantageous geographic position and rumors that Japan held vast deposits of coal increased the appeal of establishing commercial and diplomatic contacts with the Japanese. Additionally, the American whaling industry had pushed into the North Pacific by the mid-18th century, and sought safe harbors, assistance in case of shipwrecks, and reliable supply stations. In the years leading up to the Perry mission, a number of American sailors found themselves shipwrecked and stranded on Japanese shores, and tales of their mistreatment at the hands of the unwelcoming Japanese spread through the merchant community and across the United States.

그러니까 일본의 개항은 몇가지 이유가 있었는데, 첫째는 캘리포니아를 합병한 후 중국의 항구가 개항된 다음 태평양 항로에 대한 교통량이 늘어나고 증기선에 대한 석탄공급지가 필요해졌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여기에 더해 재팬 그라운드에서 조업하던 포경업계의 세이프 하버에 대한 요구가 반영되었다는 것입니다.

실제 이 해역에 대해 하와이의 경우를 살펴보면 상당히 흥미있는 비교가 됩니다. 하와이는 1778 년 쿡 선장이 방문하면서 알려진 후, 1785 년 미영불러 열강에 개방되고, 처음으로 1810년에 상업적 이해관계가 있는 포경선이 도착합니다.

그때까지 여러 부족이 난립하던 하와이 섬들은 이 와중에 카메아메아 1세가 통일을 하고 그 후의 카메아메아 3세 통치기간 중 라하이나 항구가 포경항으로 급성장합니다. 이 포경항 경제가 신생 하와이 왕국을 경제적으로 그리고 국제 정치 역학 구도 내에서 지탱하여 줬습니다. 하지만 이후 포경업의 열기가 지나가고 난 후에는 처음부터 미국인 자본이 들어와 조성된 플랜테이션 농업이 경제의 메인이 되자 결국 미국에 합병되어버리고 압니다.

마찬가지로 일본의 개항에도 역시 재팬 그라운드에 서식하던 향유고래를 쫒아온 양키 포경선이 대단히 중요한 역할을 하였습니다. 실제 이 과정에는 흠미있는 포경꾼들이 등장합니다. 길이가 어정쩡해서 일단 여기서 자르겟습니다.

다음편에서는 이렇게 시작된 양키 포경꾼들이 에도 일본의 개항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살펴보겠습니다.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 미국 연방정부의 역사 해석에 대한 부분은 미국 국무성 웹사이트입니다. https://history.state.gov/milestones/1830-1860/opening-to-japan 하지만 최근에는 공식적으로 이 내용들을 채택하지 않는다고 하고 있습니다.
재팬그라운드이 해역지도는 출전이 https://www.researchgate.net/figure/Major-areas-of-concentration-of-American-Yankee-whaling-catches-in-the-19th-century_fig8_271252928 입니다.

최근의 연구에는 향유고래는 원래 들이받기를 하기 위해 머리모양이 그렇게 진화한 것이라는 연구도 있습니다. https://www.sciencenews.org/blog/wild-things/sperm-whale%E2%80%99s-head-built-ramming

해부도는 위키피디아가 출전이고 17세기 향유고래의 뒤집어진 그림은 https://blog.biodiversitylibrary.org/2014/10/a-whale-of-talethe-leviathan.html 가 출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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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迪倫齋雜想 : 에도의 森, 에도의 입(口) 2019-03-18 12:43:55 #

    ... 향유고래를 따라 재팬그라운드로!에서 설명드린 바와 같이 양키 포경선들은 1818년 재팬그라운드의 발견 이후 동북 아시아의 해역으로 와글 와글 모여들었습니다. 그 와중에 처음으로 일본 ... more

덧글

  • 함부르거 2019/02/25 14:12 # 답글

    향유고래 뒤집어진 그림은 또 처음 보네요. 고래란 생물이 다 그렇지만 향유고래는 해부학적으로나 생태적으로나 정말 흥미로운 생물 같습니다.
  • 迪倫 2019/03/01 12:12 #

    저렇게 뒤집어진 그림이나 사진은 실제로 저도 거의 기억에 없는데 의외로 예전 그림에 보니 딱 설명하려던 내용이 그대로 드러나더군요. 향유고래는 고래 중에서도 확실히 흥미있는 고래입니다.
  • BigTrain 2019/02/25 14:44 # 답글

    '모비 딕'에서 피쿼드호가 대서양을 거쳐서 일본 근해까지 오는 걸 보고 "소설적 상상력이 참 풍부했네~ 고래 잡자고 어떻게 미국 동해안에서 일본까지 와?" 싶었는데, 리얼이었군요.. 역시 돈 앞에서 사람의 모험심이란..
  • 迪倫 2019/03/01 12:17 #

    그렇죠, 고래잡이란 것은 처음부터 인간종의 육체적 한계를 최대로 확장하는 데서부터 나중에는 인간 산업의 한계를 가능한 늘려나가는 과정이 아니었나 싶은 생각도 들 정도입니다.
  • 홍차도둑 2019/03/01 18:42 #

    모비 딕 에서 언급되는 넨터킷의 유명 가문이 있습니다. 그 가문이 19세기 남극탐험에 영향을 까쳤습니다. 사우스 조지아 인근을 비롯한 지도작성이 그 가문이 최초로 해 내거든요. 실제 대항해시대2 메르카토르 현실판입니다. "니들 남극근처 가서 지도(해도) 작성해 오면 고래값 말고도 그려온 것 만큼 보상금 지급!" 그렇게 해서 최초의 남빙양 지도들이 만들어지고...
    대항해시대가 괜히 "고증 철저" 라는 말이 나오는 것이 아니죠
    추가 보너스 지급이...돈 앞에서 사람의 모험심이...ㄷㄷㄷ
  • 홍차도둑 2019/02/25 15:29 # 답글

    1.
    윤활유와 양초 외에도 등유로도 사용되었다더군요(양초도 등유라면 등유지만 ㅎㅎ). 이 포경업 덕분에 미국의 남극 진출 및 해도 발전에도 영향을 준 부분이 있습니다. 남극탐험사에서 꼭 나오는 부분이 '미국 포경업의 진출' 이라는 부분입지요.
    그리고 언급하신 윤활유는 결국 석유업에서도 대체가 되기 됩니다. '로드 왁스' 라고 해서 검은 찌꺼기 부분이 윤활유로 조금 사용하지만 어느 정도 이상 되면 긁어내야 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 석유의 '로드 왁스'는 이후 바셀린으로 만들어져서 여러 화장품 및 의약품으로 진출하는...네 완벽하게 고래 화학산업을 대체하게 됩니다.
    고래산업은 결국 현대 석유사업 이전의 종합화학산업으로 언급하신 시대에 한 몫을 차지하게 되었었지요.

    2.
    이번 글은 줄 베른의 소설 '해저 2만 리그' 인용하신 부분이 있는데...하나 더 인용하셔야 합니다.
    '해저 2만 리그'의 대왕오징어 말고도 소설 초반에 '재팬 그라운드'가 나옵니다.
    미국 해군 군함 링컨호가 노틸러스호를 발견한 지점이 바로 '재팬 그라운드'죠
    아로낙스 교수의 주장 외에도 '그 괴물 아주아주 거대한 향유고래 아님?' 이라는 이야기가 꽤 신빙성있게 받아들여져서 향유고래의 주 서식처를 수색 포인트로 잡았고 그래서 링컨 호의 항해 코스가 언급하신 '계절따라 서식지'를 고대로 따라갑니다. 멜빌의 '모비 딕' 도 마찬가지고요.
    그렇게 돌아다니다 링컨 호는 재팬 그라운드'에서 수색이 실패하자 링컨 호의 선원들이 "가장 향유고래 잘 나오는 재팬 그라운드에서 수색실패했다면 이 괴물은 없는거다!" 라고 반발하고 선장이 '콜럼버스처럼 3일 더 해 보자 오케이?' 하는 장면..이 이벤트 나오는 장면이 바로 '재팬 그라운드' 입니다.
    언급하신 소설 두개의 한국 번역본은 전부 다 '일본 근방' 이라고 번역들 했을 겁니다.
  • 迪倫 2019/03/01 12:24 #

    1. 예, 맞습니다. 등유로도 사용되었습니다. 제가 글을 쓰면서 이야기를 이어나가느라 부분 부분 다 얘기하지 못하고 조금씩 빠트리고 있습니다 ㅠㅠ 아래 밥과술님 글에 먼저 언급하신 것 포함해서 석유산업과 포경업의 관계에 대해 조금 뒤에 차근히 전체적으로 포스팅에 올리겠습니다. 조금만 기다려주십시오. 아, 말씀하신 종합화학산업의 성격에는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심지어 현대의 플라스틱까지 포함해서요^^

    2. 아, 해저2만리그의 그 부분도 그러고보니 언급하였으면 더 좋았었겠네요. 그런데, 실제 포경선은 아주 고대부터의 바스크족의 전통이 남아서 선원들이 선장에 무조건 복종하는 것이 아니라 독립적 지위를 유지했다고 하더라구요. 그래서 콜럼버스의 경우도 선원들이 대부분 스페인 바스크족들이어서 대서양을 건널때 계속 '반란/반항(?)'에 고심하면서 설득을 간신히 했었다고 하더군요.
  • 존다리안 2019/02/25 18:58 # 답글

    향유고래의 친척인 리비아탄 멜빌레이 (다름아닌 이 멜빌이 백경의 그 멜빌입니다.)도 그 박치기로
    수염고래를 사냥하고 다녔다네요.
    당대에는 메갈로돈의 유일한 라이벌이었습니다.
    좀 묘한 건 결국 둘 다 서서히 쇠퇴의 길로 들어섰다는 건데 수염고래들이 대형화되면서 사냥하기
    힘들어져서 그렇다는 설이 있습니다.
  • 迪倫 2019/03/01 12:28 #

    오, 리비아탄 멜빌레이가 있었군요! 이 놈도 머리뼈만 보면 돌고래처럼 뾰족하네요.
    하긴 한때 범고래도 영화 프리윌리로 히트하기 전까지는 킬러웨일이라거나 아무튼 바다의 무자비한 맹수류 이미지만 가지고 있었죠.
    글 마지막에 url을 알려드린 글에 향유고래의 머리가 충돌용으로 진화한 것이라는 학설도 재미있더군요.
  • 빛의제일 2019/02/25 21:49 # 답글

    오~ 아~ 이렇게 추임새를 넣으며 포스트 읽었습니다.
    제가 고래고기를 먹은 적은 없지만, 포스트 읽으면서, 뭐든 먹을 생각만 하지 말고 다른 쪽도 생각해야겠다 싶었습니다.
  • 迪倫 2019/03/01 12:29 #

    이제는 고래고기는 그냥 단념하십시오 ㅋㅋㅋ

    늘 누구보다 재미있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밥과술 2019/02/25 22:16 # 답글

    흥미진진하게 읽었습니다. 역설적으로 이야기해서 석유를 활용하지 않았으면 고래가 씨가 말랐을 것 같네요. 뒤집어 얘기해서 산업혁명과 동시에 석유를 활용했다면 고래가 더 많이 남아있을 수도 있었겠다 싶군요. 고래가 지능이 참 높다고 하던데 작살을 맞고 살아남은 고래가 동료들에게 뭐라고 얘기했을까가 궁금합니다. 인간이 탄 배를 피해라 등등 커뮤니케이션을 하지 않았을까 상상해 봅니다. 다음편이 기대됩니다~
  • 홍차도둑 2019/03/01 01:38 #

    주인장보다 먼저 답글을 달게 되어 죄송합니다만...현실은 고래가 씨가 말라버려서 대체품으로 석유를 활용하게 된 이유가...석유활용이 산업혁명 당시에는 아주, 매우 어려운 일이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이 석유라는 넘은 산업혁명의 중심이라는 유럽쪽 보다 중동쪽부터 먼저 사용을 시작하고 채굴 난이도로 인해 유럽쪽은 채굴이 얼마 되지 않았습니다. (나프타라는 말이 바빌로니아에서 처음 쓰였습니다. 바이블의 '제네시스' 시절 바벨탑 이야기 그때쯤 말입니다!) 산업혁명의 원동력이 석탄이었던 이유가 당시 유럽에서는 석유채굴이 많지 않았던 시절이라서요. 석유는 채굴 난이도와 쏠림현상으로 인해 근대적인 운송수단으로 대용량을 보낼수 있기 전까지는 이용에 대한 쏠림이 상당히 큰 자원이기도 합니다. 유럽이 산유국으로 떠오른 것은 결국 '채굴 난이도가 높은 곳에서도 캘수 있는' 기술이 장착된 다음입니다. 이른바 영국 북해의 유전이나 극지방의 유전들이 개발되면서 유럽의 나름 끗발있는 산유국들이 나오기 시작했죠. 러시아도 유럽이라고는 하지만 고대부터 이름났던 코카서스 주변을 제외하곤 지리상 아시아지역에서 유전, 가스등이 나오는지라...그런 쏠림 현상이 컸습니다.

    그렇게 된지라 석유를 활용하게 된 것이 고래의 씨가 말라버리면서 대체자원을 찾는 과정에서 일어난 일입니다. 고대에도 '나프타'라는 말이 나온 유래와 상업적 석유채굴의 초기와도 상통하는 면이 있긴 한데 거기까지 댓글에 쓰면 주인장께서 쓰신 원문을 회손할 수 있기에 여기서 마치겠습니다.
  • 迪倫 2019/03/01 12:34 #

    홍차도둑님이 먼저 흥미있는 설명을 해주셨네요. 실은 제가 알기로는 미국쪽 (원래 석유가 상용화 산업화된 첫 산유국이죠) 의 경우를 다룬 자료가 대부분이라 홍차도둑님의 설명과는 조금 다른 얘기를 하려고 했습니다. 그러고보니 유럽쪽은 조금 다른 경우였다고 해야하기는 하겠습니다.

    원래 이 부분을 이 다음 다음에 쓸려고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석유가 주자원이 된 이후인 1970년대까지 정말 멸종위기로 몰아넣을 정도로 왜 더 많은 규모로 포경업이 활발하였던 것인지도 조금 뒤에 전체적으로 정리해서 올리겠습니다.

    그런데 고래들 사이에 커뮤니케이션이 있어서 인간을 피하라고 했을거라는 데 저는 실은 그럴거라고 거의 믿고있습니다.
  • 迪倫 2019/03/01 12:36 #

    홍차도둑님, 그런데 나프타 관련 얘기는 저도 잘 모르는 얘기입니다. 궁금합니다!
  • 2019/02/27 16:38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2019/03/01 12:35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 남중생 2019/02/27 16:39 # 답글

    일본에 석탄 매장량이 대단하다는 소문은 도대체 어디서 나온걸까요...?
  • 迪倫 2019/03/01 12:35 #

    이거는 저도 좀 궁금합니다. 한번 19세기 이전 자료들을 찾아보아야 할 것 같습니다.
  • 2019/03/01 13:31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이종혁 2020/07/14 16:11 # 삭제 답글

    이글을 계기로 일본의 지도와 하와이 사할린, 캄챠카 반도를 넘어 알래스카 까지 시야가 터집니다.

    예전 아마미 군도에서 오키나와까지 제도로 나눠져 있는 부분을 이해하고는 멀지만 친근해져서

    결국 오키나와 까지 갔던 기억이 떠오르네요. (하와이는 언제쯤..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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