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왕의 자격 - 칠정산 by 迪倫

제왕의 책임 - 교식추보에서 이야기를 이어갑니다.
지난 포스팅에서 언급한 "사여전도통궤"(四餘纏度通軌)라는 천문학 책의 발문에 세종대의 역법 프로젝트에 대한 타임라인이 기록되어있습니다. 그 내용 중에서 인용합니다:

"전하(세종)께서 즉위하신 이듬해인 을해년(1419)에 영서운관사(領書雲觀事)【신(臣)】 유정현(柳廷顯)이 유신(儒臣)을 시켜 역법(曆法)을 정리하여 바로잡게 하자는 의론(議論)을 올리니, 전하께서는 그의 주청을 가납(嘉納)하여 제왕의 정치에 그보다 중요한 것은 없다고 여기시어 각별히 마음에 담아두시고, 이에 예문관 직제학 【신】정흠지(鄭欽之) 등에게 분부하여 수시력의 법을 상세히 연구하고 그 술(術 산법(算法)과 상수(常數))을 조금씩 익히라고 하셨다."

고려에서 조선으로 넘어가는 격동기에는 천문역법을 정비할 상황이 아니었고, 그런 다음 왕조가 일단 정착이 되자 세종이 즉위한 이듬해 '전하, 이제 조선의 제왕으로서 자격을 갖추어야 합니다'라는 시대적 요구가 제기되었습니다. 그리하여 이때부터 대략 25년간의 프로젝트가 진행이 됩니다.

발문의 이어지는 부분입니다: (머릿숫자는 제가 임의로 붙였습니다)
1. 또 예문관 대제학 【신】정초(鄭招) 등에게 분부하여 한층 궁리하여 그 산법(算法)을 두루 익히게 하시고 또 의상(儀象)과 구루(晷漏 해시계와 물시계)를 제작하여 서로 참조하게 하시니, 역을 계산하고 입증하는 체계가 잘 갖추어지게 되었다.
2. 또 근년에 얻은 중국의 《통궤(通軌)》에서 사용한 방법은 수시력에 근본을 두고 가끔 더하거나 줄여서, 서역(西域)의 《회회력(回回曆)》과는 다른 체계를 갖추었지만 절목(節目)은 아직 온전히 갖추어지지 못하였다.
2. 임술년(壬戌年 세종 24년, 1442년)에 다시 봉상시 윤(奉常寺尹) 【신】이순지(李純之)와 봉상시 주부(奉常寺主簿) 【신】김담(金淡)에게 분부하여 《수시력》과 《통궤》의 체계에 근거하여, 같은 점과 차이점을 가려서 정밀한 것을 가려 뽑고 거기에 몇 가지 항목을 더하여 한 권의 책으로 만들게 하고, 《칠정산내편(七政算內篇)》이라고 이름을 붙였다.
4. 또 《회회력경(回回曆經)》, 《통경(通經)》, 《가령(假令)》 등의 책을 이용하여 그 계산법을 연구하여, 일부는 빼거나 더하고 또 누락되거나 생략한 것은 보완하여 마침내 온전한 책을 완성하여 《칠정산외편(七政算外篇)》이라고 이름을 붙였다.
5. 그러나 《수시력》ㆍ《통궤》ㆍ《회회력》은 일출입(日出入)과 주야각(晝夜刻)이 각각의 소재(所在 관측 위치)에 따라 계산하여 정한 것이어서 본국(本國 조선)과는 다르다. 이제 본국 한도(漢都 한양)의 매일(每日) 일출입과 주야각으로 바꾸어 내편과 외편에 기록하여 길이 정식(定式)으로 삼는다.
6. 《수시력경》의 역일(曆日), 《통궤》의 〈태양통궤(太陽通軌)〉, 〈태음통궤(太陰通軌)〉, 〈교식통궤(交食通軌)〉, 〈오성통궤(五星通軌)〉, 〈사여통궤(四餘通軌)〉를 비롯하여 《회회력경(回回曆經)》, 《서역역서(西域曆書)》, 《일월식가령(日月食假令)》, 《월오성능범(月五星凌犯)》, 《태양통경(太陽通經)》과 《대명력(大明曆)》, 《경오원력(庚午元曆)》, 《수시력의(授時曆議)》 등의 책을 모두 교정(校正)하고, 또 여러 문헌에 수록된 역대 천문, 역법, 의상, 구루에 관한 글을 모아서 합치고, 아울러 주자소(鑄字所)에서 간행하여 널리 전파하게 한다.




그러니까 먼저 수시력의 이론을 연구한 다음, 관측장치를 만들어서 이론을 제대로 이해한 것인지 검증을 하고, 추가로 중국의 자료를 구하여 대조하여 미비한 부분을 파악한 다음, 이를 모두 종합하여 칠정산 내편을 먼저 작성한 다음, 체계가 다른 비교검증을 위한 회회력 시스템의 연구 보정작업 결과를 엮어 칠정산 외편을 펴내고, 여기에는 조선 기준의 위도 차이에 따른 상수들의 보정값을 적용하였고, 이후 레퍼런스 자료들을 모두 교정작업을 한 후 출판 배포하여 알렸다. 라는 내용입니다.

그런데, 이 과정을 잘 살펴보면 한가지 수시력의 작성과정과 다른 점이 있습니다. 수시력을 만들때 곽수경의 태사원은 먼저 관측장비를 새로 제작한 다음 각 지방에서 필요한 상수들을 구하기 위한 실측을 먼저 하였습니다. 실측값들이 정해지자 이를 기초로 '입성'(立成)이라고 부르는 천문 상수표를 만듭니다. (이 입성이라는 표는 마라게 천문대에서 작성된 지즈Jiz와 같은 상수를 모은 표입니다. 예를 들어 해가 한바퀴 돌아오는 1년은 65.2425일, 그런 식의 숫자가 들어있습니다) 그 다음에 입성을 적용하여 이론적 계산 방법을 도출합니다. 만들어진 계산 방법을 다시 실측값으로 보정하여 확정한 다음 달력으로 만들어 내었습니다. 한마디로 하면 데이터에서 이론을 도출한 것입니다.

조선의 프로세스는 이론은 이와 반대로 기존의 수시력을 수용해서 이해한 다음 관측 장비를 만들어 실증을 한 것입니다. 이론을 수용한 다음 데이터로 확인하고 보정한 과정이랄까요.

여기서 잠시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조선시대 혹은 그 이전의 한국사의 특히 과학에 관련하여 어떠 어떠한 결과물이나 인물에 대해 "세계 혹은 동아시아 최초의" 라든지 "누구 누구보다 더 먼저"같은 화려한 수식어를 사용하는 경우 자세히 들여다보면 자세한 내용이 정확히 적혀있지 않은 경우가 많습니다. 대체로 수식어들과 자랑스런 의미들만 나열되어있거나 혹은 기본적인 과학용어를 틀리게 사용하는 경우조차 있습니다.
21세기의 한국은 전세계에서 단연 발군의 테크놀로지 선도국가입니다. 얼마전 미국과 북한의 갈등이 초긴장이었을때 모경제전문 통신사에서 만약 한국에 전쟁이 일어난다면 이라는 시나리오를 국제 정치적 맥락을 완전 배제하고 국제 경제의 측면으로만 분석한 것을 본적이 있습니다. 시나리오의 결과는 전세계 반도체 수급과 그로 인한 전자산업에 직격탄으로 인한 거의 마비상태라는 것이었습니다. 그 정도로 지금 한국의 과학기술은 만만치않습니다.

하지만 21세기의 한국이 패러다임을 바꿔버리는 과학혁명을 주도하는 나라인가 하는 질문을 던진다면 솔직히 우리는 대답을 알고 있습니다. 이 대답은 제도와 사회적 수요와 공급, 경제적 정치적 지원, 메인스트림 과학계가 어디서 영향을 받고 형성되었는가 같은 대단히 복잡한 맥락의 결과입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15세기에는 15세기의 사정이 있습니다. 그 사정은 21세기 한국의 기준으로 재단하기 어렵습니다.

그런데, 15세기 수시력과 같은 달력체계를 이해하여 실측으로 보정하고 심지어 자국의 위도에 맞게 상수값을 수정 적용하거나 국가 기관에서 이 지식을 습득한 인력을 시험으로 체계화 하여 선발하고 교육을 시켜 지속적인 시스템으로 정착화시킨 나라는 정말 몇되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 중에 조선이 있습니다. 실제 위의 인용문에서 언급된 수시력 관련 서적들은 이후 중국에서는 상당수가 실전되고 규장각에만 남아있는 경우도 많을 정도입니다. 우리가 꼭 제일 먼저가 아니어도 또는 우리만 우리스스로 독자적인 뭔가를 하지 않았다고 해도 21세기 반도체가 그러하듯이 15세기의 조선의 천문학 역시 과장해서도 낮추어봐서도 안되는 것이랄까요. 아무튼 이런 얘기는 그만하고 다시 이야기를 이어갑니다.

칠정산 내편은 종종 언론에 보도되는 것과는 달리 기본적으로는 수시력의 심화학습입니다. 칠정산이란 이름은 일곱개의 별 즉 해, 달과 오행성을 계산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내편은 구조가 7개의 장으로 구성되어있습니다.

1장은 역일 즉 지난번에 설명드린 달력의 일자를 계산하는 법입니다. 24절기와 매달의 삭망을 정하는 산출법, 또 해와 달의 타원형 궤도로 인해 생기는 속도의 변동을 의미하는 영축지질차같은 것을 산출하는 법입니다.
2장은 하늘을 빙둘러 나눈 28수(宿)이라고 하는 별자리의 위도를 황도와 적도에 대비하여 구하고 그 사이를 변환하는 것, 해의 움직임에 대한 것들이 토픽입니다.
3장은 달에 대한 것입니다. 달의 궤도인 백도와 황도의 관계, 달의 위치등을 다룹니다.
4장은 조금 다른 내용인데 저녁에 해가 막 지고 난 어스름(昏이라고 합니다)과 새벽에 해가 뜨기 직전(明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밤시간 중에 남쪽하늘 정중앙에 보이는 별들의 위치에 대한 것입니다, (북극성을 기준으로 위도에 해당하는 높낮이를 거극도(去極度)이라고 하고 동서방향의 각도를 적도수도(赤道宿度)라고 합니다) 이 4장은 밤의 시간 측정을 위한 것입니다.
5장은 마침내 "교식" 즉 일월식 예측입니다. 지난번 설명한 내용을 더 자세히 들어가면 황도와 백도 교차점 전후로 일식이나 월식이 일어날 수 있는 범위(식한), 일식의 경우 달이 태양에 들어가는 시점부터 빠져나오는 시점을 10개 단계로 나눠 각각의 시간과 식이 일어나는 부분의 위치와 범위, 월식의 경우 지구 그림자에 달이 들어가는 시점부터 빠져나와 다시 빛이 나는 단계까지의 각각의 시간을 모두 측정, 산출, 예측하는 것입니다. 이 5장을 계산하기 위해 1장부터 3장까지 기본 계산을 모두 해야 합니다.
6장은 수금화목토성의 5행성의 움직임을 다룹니다. 태양의 운동에 대해 각 행성의 위치를 계산하는 법입니다.
7장은 조금 다릅니다. 전근대 천문학에는 사여성(四餘星)이라는 가상의 별이 있었습니다. 자기, 월패, 라후, 계도라고 불리는 이 네개의 별은 진짜로 존재하거나 관찰되는 것이 아니라 가상의 설정입니다. 하지만 이 별들은 특히 인간의 운명에 관련되어있다고 믿어져서 명리학같은 쪽에서 중요시 여기던 것입니다. 이 가상의 별이 어떻게 움직이는가에 대한 장입니다. 저도 이 사여성에 대해서는 거의 아는 게 없습니다.

곽수경은 이중 태양의 속도가 빨라졌다 느려졌다 하는 영축(盈縮)차와 달의 경우에 해당하는 오차인 지질(遲疾)차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초차법(招差法)이라는 일원3차방정식을 창안했고, 또한 일식과 월식이 일어나는 시간에 그날의 해뜨고 지는 시간과 얼마나 시간 간격이 있는지를 계산하기위해 호시할원술(弧矢割圓術)이라는 구면삼각기하학의 방식을 적용하였습니다. 지금도 이게 곽수경의 독창적 업적인지 아니면 이슬람 수학의 영향을 받은 것인지는 논란 중입니다만, 아무튼 이전과 비교하기 어려운 고등 수학을 사용할 줄 알아야 했습니다.

이러한 새로운 고등산술과 관측법을 익히는 프로젝트를 국가적으로 지원한지 어언 10년!

세종10년 1428년 3월 30일의 세종실록 기록입니다:
서운 정(書雲正) 박염(朴恬) 등에게 명하여, 삼각산(三角山) 꼭대기에 올라가 명일(明日)에 일식(日食)이 있을지 없을지를 바라보게 하였다. 대개 수시력(授時曆)과 선명력(宣明曆)의 법(法)에 일식(日食)은 모두 마땅히 인시(寅時)와 묘시(卯時)에 있다 하였으므로 평지(平地)에서는 살펴볼 수 없기 때문이었다.

그 다음날인 4월 1일 오전 3시부터 7시 사이에 있을거라 계산된 일식을 확인하러 삼각산에 올라가라고 명한 내용입니다. 그리고, 그 다음날의 실록은 "癸丑朔/日食"라는 문장으로 시작합니다.
예, "계축일 초하루 일식"!! 프로젝트 시작 10년 후 이제 수시력의 일월식을 응용할 수 있는 단계에 이르른 것입니다.

하지만 수시력만으로는 교식추보 즉 일월식 예측이 그리 정확하지 않았습니다. 원래 수시력 자체도 그리 완전하지는 않았기도 합니다만, 그래서 아직도 계속 오류가 발생되었던 것이죠. 심지어 프로젝트의 추진자였던 세종 역시 아, 역시 무리인가! 관두는게 나을까 하고 고민을 할 정도였습니다.

세종실록 세종12년 1430년 12월 11일의 기사에 보면:
임금이 총제(摠制) 정초(鄭招)에게 이르기를, "지난번에 유순도(庾順道)를 보았는데, 그기 말하기를, ‘책력[曆]을 교정함에 있어 이를 갑자기 옳게 하기가 어렵다.’ 하였다. 과연 그의 말과 같다면 애만 쓰고 실익이 없을 터이니 이를 정지하는 것이 어떻겠는가." 하니, 초(招)가 대답하기를, "《황명력(皇明曆)》·《당일행력(唐一行曆)》·《선명력(宣明曆)》 등의 책을 가지고 참고하여 상세히 연구하면 거의 바르게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였다. 임금이 말하기를, "책력과 천문(天文)의 법은 쉽사리 자세히 알기 어려운 것이다. 그러나 다시 계산법을 연구하여 초안을 작성해서 장래에 이를 잘 아는 사람이 나오기를 기다리라." 하였다.

아무튼 이런 고민과 후회의 시간을 보낸 후에 그래도 프로젝트는 진행되어야 한다! 으샤 으샤 하면서 나아가던 세종14년 1434년 10월 30일 마침내 세종은 조정 경연에서 이렇게 선언을 합니다.

"일력의 계산[曆算]하는 법은 예로부터 이를 신중히 여기지 않는 제왕(帝王)이 없었다. 이 앞서 우리 나라가 추보(推步) 하는 법에 정밀하지 못하더니, 역법(曆法)을 교정(校正)한 이후로는 일식·월식과 절기(節氣)의 일정함이 중국에서 반포한 일력[曆書]과 비교할 때 털끝만큼도 틀리지 아니하매, 내 매우 기뻐하였노라. 이제 만일 교정하는 일을 그만두게 된다면 20년 동안 강구(講究)한 공적(功績)이 반도(半途)에 폐지(廢止)하게 되므로, 다시 정력을 더하여 책[書]을 이루어 후세로 하여금 오늘날 조선(朝鮮)이 전에 없었던 일을 건립(建立)하였음을 알게 하고자 하노니, 그 역법을 다스리는 사람들 가운데 역술에 정밀한 자는 자급(資級)을 뛰어올려 관직을 주어 권면하게 하라."

예! 내 매우 기뻐하노라 하고 선언을 합니다. 대략 세종 14년 무렵 일단 수시력 프로젝트는 완성되었다고 보고 있습니다. 이후에도 조선에서는 "질정산내편정묘년교식가령"이라든가 "교식추보령가령"같은 책들을 펴내서 실제 천문현상에 대한 이론적 계산값과의 비교를 하여 분석한 예시집을 펴내었습니다. 아, "가령"이란 한자로 假令이라고 쓰는데, 요즘 우리가 가령 이러이러 하다면 하고 가정법에 사용하는 그 가령과 같은 말입니다. 조선시대 특히 천문학쪽에서 가령이라고 하는 것은 what-if 아니면 for example 하고 비슷한 용법으로 사용되었습니다. 그러니까 일종의 예시모음같은 것입니다. 이런 예시 자료를 통해 실전 응용을 통한 이론을 더욱 정확하게 다듬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수시력 완전정복을 위한 칠정산 내편이 진행되던 한편 지난번에도 설명드린 것처럼 회회력 역시 수시력과 같은 수준으로 연구를 하였습니다.

이 글 처음에 인용한 사여전도통궤 발문 중 이에 관련된 부분을 다시 살펴봅시다:
4. 또 《회회력경(回回曆經)》, 《통경(通經)》, 《가령(假令)》 등의 책을 이용하여 그 계산법을 연구하여, 일부는 빼거나 더하고 또 누락되거나 생략한 것은 보완하여 마침내 온전한 책을 완성하여 《칠정산외편(七政算外篇)》이라고 이름을 붙였다.

여기는 그냥 짧게 기록했지만 실은 저도 이걸 어떻게 손을 볼 수 있었지? 하는 의문이 들고 있는 중입니다.
명나라에서 난징으로 이전시킨 회회사천대의 자료를 중국어로 번역하고 정리하여 만든 회회력법은 이상하게 오류가 발생하여 거의 사용되지 않고 있었습니다.
회회력은 다들 아시다시피 달만을 기준으로 한 이슬람계 달력입니다. 그래서 한 해가 354일로 태양력이나 태양태음력의 360일 이상의 한해보다 짧습니다. 그리고, 역원 즉 모든 계산의 기준이 종교적 이유로 622년으로 맞춰져 있습니다. 그런데 명나라에서 편찬된 회회력법에는 역원을 계산할때 태음력으로 계산하지 않고 한해가 더 긴 태양력으로 계산하는 오류를 범해서 더 길게 과거 역원을 산출하는 바람에 622년 이 아니라 그만 수나라 개황(開皇) 기미년 즉 서력 599년으로 맞춰져 버린 것입니다.

세종의 사이언티스트 이순지와 김담은 오류가 나는 계산들을 분석하여서 599년 아닌데 622년이 되어야 계산이 맞는데 하고 찾아냈습니다. 칠정산 외편은 그래서 이슬람 달력의 기준인 622년 기준 계산으로 보정되어 있습니다.

도대체 어떻게 이게 가능했을까요? 이슬람 달력을 이해해낸 세종 사이언티스트들은 이후 가령으로 이어지는 보완작업에 이슬람 방식의 수정을 적용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과연 칠정산 내외편은 조선의 우수성을 드러내는 자주적인 "본국력"이군요!? 제가 그래서 먼저 말씀을 드렸던 것입니다. 칠정산 외편에서 중국 회회력의 오류를 찾아냈지만 칠정산에서 역원을 622년으로 수정하지는 못했습니다. 대신 역원을 엉터리 599년으로 두고 여기 보정값을 정하여 622년으로 계산 속에서 수정되도록 하여 사용하였습니다. 왜냐하면 이것은 명에서 정한 역원이기 때문이었습니다.
이쯤되면 이것은 과학능력의 문제가 아니죠. 그래서 15세기에는 15세기의 사정이 있었던 것지요.

하지만 조선은 대신 실질적인 차원에서 할 수 있는 일들을 하였던 것입니다. 그리고, 세종 26년 1444년 칠정산 내외편과 각종 참고 천문서적들을 모두 증보교정하여 국가에서 인쇄하여 반포하는 것으로 프로젝트를 마칩니다. 이 달력의 프로젝트와 함께 달력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해시계와 물시계를 만들고 전국에 배포하여 국가 시간을 바르게 지정합니다. 이후 조선은 적어도 국가 즉 제왕이 시간을 공식적으로 지정하여 백성들에게 알려주는 시스템이 작동하는 "국가"가 됩니다. 이게 바로 서경에 나온 요임금이 "해와 달과 별의 운행을 헤아려 기록하고, 백성들에게 때를 잘 알리게 하였다.[曆象日月星辰 敬授人時]"라는 바로 그 제왕의 자격인 것이죠.

그리고, 제가 믿어지지 않을 정도라고 한 것은 바로 이런 의미였습니다.

한편, 세종대의 칠정산 프로젝트에는 이슬람 천문학의 흔적이 적지 않습니다. 특히 이론을 마스터한 후 이를 검증하기 위해 곽수경의 천문대를 복사하다시피한 천문 관측기구들을 제작하였는데 여기 이슬람 천문학의 영향이 많다고 합니다. 그래서 다음 편에서는 조선 전기에 마침내 등장한 아스트로라브에 대해 얘기하면서 이슬람 천문기기의 영향에 대해 얘기해보겠습니다.

**참고한 자료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조선의 서운관 - 조선의 천문의기와 시계에 관한 기록" 조지프 니덤, 살림, 2010
"한국 천문학사의 한국적 특질에 관한 시론:세종 시대 역산(曆算) 연구를 중심으로" 전용훈, 한국과학사학회지 제38권 제1호, 2016
"고려 역법의 이해, 국역 고려사 역지 역주" 김일권, 석당논총 54집, 2012
"The calendar and the time account of the Turko-Tatars", Gamirzan M. Davletshin, Journal of Sustainable development, (vol. 8, no.5) 2015 중앙유라시아 지역의 달력에 대한 글입니다.
"Analysis of interval constants of Shoushili-affiliated calendars", Byeong-Hee Minhn, Ki-Won Lee, Young Sook Ahn, Research in Astronomy and Astrophysics, 2012
"칠정산내편 편찬과 세종의 조선시간 만들기" 전용훈,
"칠정산외편과 세종의 국가경영", 이은희,
"조선초 간행의 교식가령 연구", 이은희, 한영호, 한국과학사학회지 34권 1호, 2012
"교식추보법가령 연구", 한영호, 이은희, 동방학괴 제159집, 2012
외에 마이너한 자료들이 조금 있었는데 기본적으로는 대동소이합니다. 세종실록은 조선왕조실록 데이터베이스이고, 사여전도통궤 인용은 한국 고전번역 데이터베이스입니다.
그리고, 제가 가능한 조선시대 천문학 용어들을 현대어로 풀어서 썼지만 그래도 조금씩은 들어갔습니다. 이들 칠정산의 용어들에 대해서는 "칠정산내편에 수록된 역법 용어정리" http://anastro.kisti.re.kr/calendar/word_order/word_order_intro.htm 에 잘 정리되어 있습니다.

**참고한 자료 논문들은 실제 수학식으로 가득차있는데 의외로 재미있었습니다. 다만 너무 기술적인 세부사항이라 그냥 아쉽게 넘어갑니다. 아무튼 재미없는 달력 얘기는 그림 한장 없이 이쯤에서 넘어가고 아스트로라브로 다시 돌아가보겠습니다. 다음편에 조선 전기의 아스트로라브에 대해 기대해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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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2018/03/26 12:39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2018/03/31 12:57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 Nocchi 2018/03/26 14:31 # 답글

    재미있게 잘 보았습니다

    고등학교 때 수학 물리랑 전혀 친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지구과학은 전혀 흥미가 없지는 않았던 기억이 납니다
    하지만 내용이 여전히 어렵다는 .... 그래서 끼어들 능력이 없는 것 같습니다 ㅠㅠ
  • 迪倫 2018/03/31 12:57 #

    괜찮습니다. 어차피 저도 전문가가 아니라 공부해가면서 재미있어서 하는 얘기인데요. 재미있었다는 댓글이 제일 좋습니다!
  • 빛의제일 2018/03/27 02:45 # 답글

    블로그 마실 와서 포스트들을 읽다보면 어느 문장이 유달리 콕 와닿을 때가 있는데,
    이번에는 "이쯤되면 이것은 과학능력의 문제가 아니죠.", "시스템이 작동하는 "국가"입니다.
    지금도 천문학 공부는 쉽지 않은 것 같은데, 15세기에는 15세기의 방법으로 했다고 해도 대단합니다.
  • 迪倫 2018/03/31 12:58 #

    늘 요점을 짚어주셔서 정말 선생님이시구나 하는 생각을 안할 수 없습니다!
    천문학 공부는 정말 재미있는데 너무 어렵습니다 ㅠㅠ
  • 밥과술 2018/03/27 17:43 # 답글

    세종대왕의 업적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됩니다. 칠정산내외라는게 보통 스쳐지나갈 게 아니로군요. 오늘은 대충 읽고 넘어갑니다만 나중에 다시 와서 천천히 읽어보도록 하겠습니다.
  • 迪倫 2018/03/31 13:01 #

    저도 세종대왕의 업적을 그냥 유물이름을 맥락없이 외우게 할게 아니라 그 동안 역사학계에서 연구한 결과들을 활용해서 왜 어떻게 이런 일련의 일들이 진행되었고
    그게 어떤 의미인지를 정확히 알려주는 그런 컨텐츠가 좀 많았으면 좋겠다고 생각이 들었습니다.
    칠정산 외편은 저도 아직 디테일을 정확히 몰라 좀더 공부를 하면 언젠가 다시 후속편을 쓰고 싶을 정도입니다.
  • 역사관심 2018/04/10 06:14 #

    적륜님의 말씀에 크게 공감합니다. 이름 외우고 넘어갈 일이 아니라, 이런 식으로 당시 세계사속에서의 이런 일들의 흐름과 의의, 그리고 최소한의 그 업적의 정확한 내용과 성과를 느끼는 교육이 훨씬 중요하지요. 특히나 핸폰으로 검색하면 연도따위의 단편정보는 수도 없이 제공되는 21세기교육이라면...
  • 눌눌 2018/04/02 11:18 # 답글

    하늘 아래 새로운 게 뿅 하고 튀어나올 리 없지요
    외부의 뛰어난 점을 잘 소화시키고 이용하던 저 기조가
    왜 갈수록 없어졌는지 그저 안타깝습니다 ㅜㅜ
  • 迪倫 2018/04/03 02:02 #

    예, 결국 모든 문명이란게 한두명의 천재가 아니라 오랜 인류의 활동이 다 누적되어서 이루어진다고 해야하는게 맞겠죠.조선전기는 이후 임란과 호란으로 전방위적인 단절이 한번 있었고 이후 조선 후기는 대단히 다른 사회가 된 것으로 보입니다. 물론 근현대사의 단절은 두말할 것도 없구요. 오히려 고려와 조선전기를 하나로 묶어서 보는게 더 편리해보일 정도입니다. 사회가 계속 영속적으로 유지된다는게 특성이 항상 그대로이지는 않다는 것을 우리는 종종 혼동하는 때가 많은 것도 같구요... 그래서 옛날 기록을 찾아보는 재미랄지 의미랄지 그런게 있는것 같습니다.
  • 역사관심 2018/04/10 06:15 # 답글

    "조선시대 혹은 그 이전의 한국사의 특히 과학에 관련하여 어떠 어떠한 결과물이나 인물에 대해 "세계 혹은 동아시아 최초의" 라든지 "누구 누구보다 더 먼저"같은 화려한 수식어를 사용하는 경우 자세히 들여다보면 자세한 내용이 정확히 적혀있지 않은 경우가 많습니다. 대체로 수식어들과 자랑스런 의미들만 나열되어있거나 혹은 기본적인 과학용어를 틀리게 사용하는 경우조차 있습니다."
    ----> 앞으로 정말 이런 점 개선되면 합니다. 전혀 교육과 관계도 없고, 정작 이런 업적들의 내용과 전정한 의미를 가려버리는.

    그리고... 세종은 정말... (숙연).
  • 迪倫 2018/04/16 12:49 #

    뭐 어찌보면 예전에 너무 조선은 무지몽매한 실패자로 규정지어 가르치다가 아니다 그런게 아니다 하는 사실들도 있으니 반동으로 다시 과장하게 되어버린 축면도 이해는 됩니다만, 기본적인 개념은 정확히 하고 그런 다음 의의를 강조해도 될텐데 싶습니다.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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