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노'라는 영화를 보았습니다. 그런데! by 迪倫

올해 초여름 무료하던 어느 저녁날 넷플릭스에서 뭐라도 잠시 틀어볼까 하고 브라우징을 하다가 Kano라는 영화 포스터를 보고는 호오, 고시엔 시합도 다가오니 역시 여름의 고교야구 영화인가 하고 대충 스토리 요약도 건너띄고 무심코 영화를 보기 시작했습니다.


자, 여기서 이 시리즈를 시작하는데 먼저 양해의 말씀을 드립니다. 제가 접속하는 넷플릭스는 아마도 대부분의 제 글을 읽으시는 분들과 지역이 달라 브라우징의 컨텐츠가 많이 다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친구에게 다른 소셜미디어 상으로 이 영화 얘기를 했더니 넷플릭스에 그런거 없어 하는 볼멘 대답을 돌려받았습니다.

그래서, 제가 할 수 있는한 스토리를 설명 드리고 앞으로 이야기를 이어나가도록 하겠습니다. 혹시라도 한국에서 보실 수 있는 방법이 있으시면 보시는 것도 괜찮을 듯 합니다만, 제가 미리 알려드리는 주의 사항을 반드시 고려하시기 바랍니다.

저는 처음에 별뜻없이 이 영화가 일본영화이고 갑자원 출전을 다룬 고교야구 영화라고 생각했었습니다. 그런데 이 영화는 2014년에 개봉된 타이완 영화입니다. 갑자원에 출장한 야구팀 이야기이긴 합니다만, 일본 고등학교가 아니라 타이완의 중부 차이(嘉義)에 있던 가의농림학교(嘉義農林學敎) 야구부의 실화를 영화로 옮긴 것입니다.(중국어 발음은 '차이'입니다만, 이 이야기의 복잡성을 고려해서 중립적으로 한국어 발음인 '가의'로 표기하겠습니다)

이 학교는 1931년 제17회 일본 전국중등학교 우승야구대회에 첫 출전하여서 파죽 지세로 전통의 강호들을 꺾으며 결승까지 올라간 그야말로 학원야구만화의 정석같은 이야기의 실제 주인공입니다. 제목의 "카노"는 '가의 농림 학교' 이름을 줄인 '嘉農'의 일본식 발음(카기노린 = カギノウリン)입니다.

스토리는 이와 같습니다. 한번도 이겨본 적 없는 거의 동네 공놀이 수준의 시골 야구부 아이들이 야구 연습을 하는 것을 지켜보던 상업 부기를 가르치던 선생님이 야구부를 맡아 가르치게 됩니다. 실은 이 선생님은 본인도 원래 왕년의 유명선수였었던데다가 엄청난 야구 명문학교를 전국 대회에 이끌고 나갔던 진짜였던 것이죠. 아이들에게 일단 내가 맡은 이상 우리는 고시엔 전국 대회에 나간다고 맹훈련을 시켜 정말 기적적으로 지역 예선을 하나씩 이겨나가 마침내 전국 대회에 나갑니다. 전국의 쟁쟁한 강호들을 하나씩 이겨나가며 심지어 맞붙어 지게된 학교의 선수마저 응원하게 만드는 투지를 불태우며 결승전까지 올라갑니다.

결승전은 그야말로 박진감있는 경기가 되고 연이은 시합으로 손톱이 찢어져 피투성이가 된 투수와 그에게 마음껏 던져라고 우리가 잡아내겠다고 몸을 던지는 수비 선수들, 하나가 되는 팀워크와 이 투지에 감동한 관중들. 결국 경기에 지고 준우승에 머물지만 우승학교보다 더 큰 박수를 받으며 인사하는 선수들.

그야말로 야구에 진정으로 포커스를 맞춘 학원 야구 만화의 정석을 그대로 따릅니다.

그런데............아마 이 영화는 한국에서 개봉되거나 공개되기 대단히 어려울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말입니다.....


이 영화는 일본식민시기를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영화가 확인안하고 보면 그냥 일본 영화라고 생각할 정도로 일본색이 짙은 정도가 아니라 일본 영화입니다. 이 영화에는 제국주의와 식민지의 모순을 다루지않고 오히려 가의농림학교 야구부의 일본인, 중국계 타이완인, 타이완 원주민 혼성팀이 서로 갈등따위는 없이 야구로 하나가 되는 "협화"를 강조하다시피 하고 있습니다. 영화에 사용된 언어는 일본어가 거의 90% 대부분이고 중국계 타이완인들이 사용하던 민남어와 객가어, 그리고, 원주민들의 언어 중에 아미어가 섞여 사용되지만 보통 중국어라고 하는 현재 타이완의 "국어" 혹은 "중국어 보통화"는 아예 등장하지 않습니다.

또한 무대인 가의시에 당시 타이완 총독부가 추진하고 있던 수로 건설 장면이 선수들의 개인사와 겹쳐서 등장합니다. 이들이 타이완 대표로 선발될때 수로가 완성되고 해당 지역의 농사의 큰 문제가 해결되어 다들 감격해하는 그런 에피소드들이 들어갑니다.

어라, 뭔가 이미 불편해지기 시작하고 있지요. 뭐 이따위 친일영화인가! 치아삐라! 하면 그만입니다. 저도 여기서 그만 소개를 마치고 이 영화는 아주 역사를 왜곡하는 친일영화였습니다 라고 하면 간단히 포스팅 하나 끝을 냅니다. 그런데 실은 이 영화에 나오는 여러가지 이야기들은 우리가 알고있는 역사와 대단히 밀접하게 연동되어 있습니다. 물론 제가 남들 모르는 '역사의 진실'같은 걸 여기 의기양양하게 밝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보다 말하자면 좀더 확장된 시선으로 보는 그런 거랄까요. 이번 시리즈의 이야기들은 감정을 조금 접어두고 읽어봐주시기 바랍니다.

자, 먼저 팩트 확인부터 시작합시다.

이들이 나간 전국 중등학교 우승야구대회는 지금은 '갑자원' 또는 '고시엔'이라고 하면 더 유명한 일본의 전국 고등학교 야구 선수권 대회의 옛날 이름입니다. 혹시 익숙치않은 사람들을 위해 왜 옛날에는 고등학교가 아니라 중등학교인지 잠깐 설명을 하자면, 지금 한국이나 일본의 6-3-3년제에서의 고등학교는 옛날 식민지시기에는 대부분 5년제의 중학교의 일부였었습니다. 뭐 옛날 소설이나 회고록따위에 종종 등장하는 구제(舊制) 중학교나 구제 고등학교같은 표현이 이것과 관련이 있는데, 여러번 학제가 바뀌어서 좀 변동이 없지는 않지만 대체로 6년제 소학교 마치면 5년제 중학교를 다니고 고등학교 3년 대학교 3-4년으로 이어졌었고, 그래서 왜정때 "중학교"라는 학교는 지금 중학교에서 고등학교 2학년 정도, 그리고, 그때 '고등학교'는 지금 고등학교 3학년에서 대학 학부 2학년 정도까지를 의미합니다. 그런데, 이건 거의 일본인에게 적용되는 코스이고, 조선인은 대략 1년 정도씩 모자라기도 하는 보통학교-고등보통학교를 다녔습니다. 그리고, 고등보통학교를 나오면 일본 고등학교에 해당하는 유일한 조선의 고등학교 경성제대 예과가 있었고, 그 외엔 수원고농, 경성고공, 연희전문, 보성전문같은 전문학교들이 있었습니다. 뭐 대략 줄여서 얘기하면 그렇다는 얘기입니다. 최근까지 이어졌던 의예과 2년-의대 4년 시스템이 어찌보면 이때의 유물 비스므리한 제도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조선에서 중등학교는 상급학교 진학을 염두에 둔 김나지움계통의 일본인 위주의 중학교와 조선인 대상의 고등보통학교, 여학생을 위한 고등여자학교('고녀'라고 보통 줄여불렀습니다), 그리고, 별개의 시스템으로 진행되던 사범학교가 있었고, 무엇보다 큰 비중을 차지하는 농림학교나 상업학교같은 실업학교가 있었습니다. 종종 이들 실업학교들이 고등농림학교, 고등상업학교, 고등공업학교와 같은 전문학교들과 이름이 비슷해 혼동이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만, 당시 사람들에게 만약 경성상업학교와 경성고등상업학교가 같은 곳 아니야 라고 하면 아마 큰 실례였을겁니다.

타이완 역시 식민지 제도가 적용되었으니까 기본적인 것은 비슷합니다만, 여기에 좀더 복잡한 인종구성이 가세합니다. 타이완은 우선 소학교부터 인종별로 3개로 분화됩니다. 일본인은 소학교, 주로 민남인이나 객가인 계통인 중국계의 경우 공학교(公學校),
원주민을 대상으로는 번동교육소(蕃童教育所) 또는 번인공학교(蕃人公学校), 대신에 중등학교는 이렇게 복잡하게 나눠지지는 않고 일본인들이 주 대상인 중학교와 대체로 민족혼합의 실업학교, 고등여학교, 사범학교 체제로 갑니다. 별도 민족별 학교가 중등학교 이상에서 구분되지 않고 대부분의 중등학교 이상의 기관들이 타이완 총독부 관할이었다는 점에서, 식민지가 되기 전부터 원래 근대적 교육기관을 이미 자체적으로 도입하기 시작했던 것이 이어져서 보통학교-고등보통학교라는 별도 학교가 있었고 사립 학원들이 나름대로 활발했던 조선과 다른 점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현대 고등학교의 야구대회가 당시에는 중등학교 즉 중학교, 고등보통학교, 상업학교, 농업학교, 공업학교들의 야구부가 참가하는 대회였습니다.

1915년에 시작된 전국 중등학교 야구대회는 처음에는 일본 "내지"의 중등학교들만 참가했습니다. 안그래도 이 영화의 일본에서의 마케팅 포인트는 아라? 타이완 학교가 고시엔에 출전해스무니까? 입니다만, 제7회 대회인 1921년부터 조선과 만주의 중등학교 참가를 허용했고, 다시 2년 뒤인 1923년부터 타이완의 중등학교 참가를 허용했습니다. 이 3개 외지 학교들은 제26회 1940년까지 20년간 지역 대표가 출전하였습니다. 중일전쟁이 한창 피크이고 태평양 전쟁으로 치닿던 1940년 제27회 대회에 지역예선이 부분적으로 실시되다 중단된 이후에는 전 일본에 결국 적국 귀축영미의 스포츠인 야구가 금지되면서 패전 후까지 대회가 중단되었습니다.

영화의 첫 시작에 가의농림 학생들이 대회 개막식장에 가까스로 늦게 들어오는 장면이 나오는데 각 출전학교가 등장하는 장면에서 이런 장면이 있었습니다.

예, 조선대표 경성공립상업학교와 만주대표 다롄상업학교입니다.

식민지 시기의 일본인 중심의 학교와 현재 대한민국의 학교간의 계승을 어떤 방식으로 볼 것인가에 대해서는 어떻게 받아들이는게 좋을지 여전히 정답도 없고 논란이 있습니다만, 아무튼 일단 화면에 나온 제17회 대회에 조선대표로 참가한 경성공립상업학교는 지금의 한국에서 이어진다고 하는 학교가 없습니다.

다롄상업학교는 나중에 별도로 왜인지 얘기하겠지만 만주라고 하기에는 좀 어색한 요동반도 다롄항에 있던 상업학교였습니다. 건물은 지금도 다롄시 제36중학교가 사용하고 있지만 역시 건물 외에 계승이라는 점은 노스탈자에 젖은 일본인들 외에는 딱히 없습니다.

하지만 소위 '외지(外地)'의 학교라고 해도 실제 거의 일본인 학생들이 대부분인 거류민 일본인 자제들의 야구팀들이 출전한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예를 들어 조선에서는 일본인 학교라고 하는 경성중학교, 용산중학교, 아니면 경성공립상업학교가 초창기 선발학교들이었습니다.

타이완의 경우 참가가 시작된 제9회부터 영화의 주인공인 가의 농림이 첫 17회 대회에 출전할 때까지 전부 타이베이의 일본인 학생 위주의 타이베이 제일중학교와 타이베이상업학교, 타이베이공업학교가 주력 선발학교들이었습니다.

영화의 무대인 가의는 타이완 섬의 서쪽 중간부분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당시에는 약간 농촌 곡창지대이긴 하지만 대도시라고는 할 수 없던 곳입니다.(아, 현재는 대도시입니다. 아래 지도의 박스처리된 부분입니다)

게다가 그나마 일본인 위주의 가의중학교도 아닌 가의농림의 야구부는 당시에는 그야말로 갑툭튀랄 정도로 돌발변수였습니다. 게다가 야구부가 일본인, 한족, 원주민족의 혼성팀이라니? 지금 뒤돌아보는 우리말고 당시에도 이런 구성은 믿어지지 않는 이상한 팀이었습니다.

그래서 다음에는 가의라는 곳에 왜 가의 농림학교가 생겼고 어찌하다 민족혼성 야구팀이 생겼는지, 타이완식 표현으로 "일치시기(日治時期)"에 대하여 몇가지 얘기해드리겠습니다.


**그나저나 간만에 거창하게 얘기를 시작하고 글을 쓰기 시작하자마자 아차, 이 영화를 한국에서 보기 어려운데 앞으로 이 일을 어이하누 하는 생각이 막 몰려옵니다. 그런다고 예고까지 하고 이제 다른 걸로 바꾸기도 그렇고 ㅠㅠ 아무튼 죄송합니다.
대신 예고편이라도 올려서 대체로 이런 영화였습니다 하고 보여드리고 넘어가겠습니다. 스포츠 영화로서의 만듬새는 괜찮습니다.
먼저 타이완의 예고편이고,

일본에서의 예고편입니다. 미묘하게 포인트가 다르긴 합니다만. 아무튼 한번 대충 이런 거라고 보시면 됩니다.


**그런데 롯데 올해 가을야구 한번 할려나요.

핑백

  • 남중생 : 전화 받고 있다...? 2017-12-06 20:33:39 #

    ... 다. 그러나 내지인(일본인)들이 다니는 중학교를 다니면서, 내지인 여학생을 짝사랑하는 것이죠... ㅠㅠ 참고: 적륜 님의 '카노'라는 영화를 보았습니다. 그런데! "조선에서 중등학교는 상급학교 진학을 염두에 둔 김나지움계통의 일본인 위주의 중학교와 조선인 대상의 고등보통학교, ... more

덧글

  • Nocchi 2017/08/20 07:06 # 답글

    우왓 새 시리즈!
    올 여름에 휴가차 일본을 다녀왔는데 문화 자체가 강자나 자기와 동등하다고 생각되면 약간 '억지과잉' 으로 친절하고 상냥한 시스템 이라 식민지인이래도 '야구를 잘 한다면' 오히려 차별이 크게 많지는 않지 않았을까 하는 상상도 드네요
    잘 보았습니다 기대 만발입니다
  • 迪倫 2017/08/21 09:01 #

    야구라는 점만 놓고 본다면 꽤 차별이 많지않았다는 생각도 들 정도입니다. 타이완과는 조선과 또 다른 관계가 형성된 것도 사실이고, 현재 일본 야구사에도 타이완 출신들이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아무튼 여러가지 좀더 복합적으로 봐야하는 것이 아닌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중입니다.
  • 2017/08/20 11:03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2017/08/21 09:03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 빛의제일 2017/08/20 20:55 # 답글

    죄송합니다. 마지막 문장 가을야구에서 빵 터졌습니다. 저는 트잉여 수준으로 트위터에 머무르는데, 평소에는 거의 타임라인에 보이시지 않는 분이 그 팀이 지면 거의 꼭 '그깟 공놀이' 트윗을 하셨습니다. 고향이 그 쪽인지라 고 최동원 선수가 활약했던 그 해 코리안 시리즈 때 거리의 분위기가 아직도 기억에 남습니다.

    제가 본 책 가운데 갑자원 들어가는 것은 만화 머나먼 갑자원 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189317 입니다. 눈물 콧물로 본 만화인데, 이 영화도 그런가 생각하고 포스트를 읽으니 제가 모르는 다른 세상 사람들 이야기여서 기대됩니다!

    '어라, 뭔가 이미 불편해지기 시작하고 있지요./ 좀더 확장된 시선' 앞 문장에서 당연히 불편하던 차에 오오 역시 싶었고, 뒤 문장을 보고 끄덕끄덕이었습니다.
  • 迪倫 2017/08/21 09:05 #

    머나원 갑자원은 얼마전 본 한국 영화 '글러브'와 비슷한 내용이군요. 글러브라는 영화도 농아학교 야구부를 다룬 영화인데, 야구에 좀더 포커스를 뒀으면 좋았을텐데 하는 아쉬움이 좀 남았었습니다.

    '좀더 확장된 시선'을 제대로 전해드리도록 노력해보겠습니다.
  • 남중생 2017/08/23 11:26 # 답글

    오호홍! 제가 일전에 올렸던 광주학생항일운동(11.3 운동)을 다룬 영화들과도 비교해 볼수 있겠네요. 일본이 영미귀축의 스포츠라 야구를 금지했다는 점은 참 재미있는데, 북한도 미제와 일제의 제국주의 스포츠인 야구를 비선호한다고합니다. (포스팅에서 '영미귀축'에서 살짝 오타를 내신듯 싶습니다.)
  • 迪倫 2017/08/23 12:43 #

    오타 살짝 고쳤습니다. ㅎㅎ 감사합니다.

    야구는 30년대에 이미 통제 대상이었습니다. 처음에는 너무 과열되서 사회문제가 되어서이고 40년대에는 말그대로 전시하에 국민정신의 문제여서라고 합니다. 다롄 얘기를 하면서 이 부분 살짝 언급할 예정입니다.
    그 생각은 못해봤는데 광주학생운동 영화와 한번 비교해보겠습니다.
  • 남중생 2017/08/23 12:47 #

    광주학생운동 줄거리에서는 야구를 통해 일본을 이기는 것! 페어플레이를 하지 않는 일본의 진상을 고발하는 것!이 강조됩니다.
    YMCA야구단도 비슷한 맥락이라고 생각되고요.

    대만이 훨씬 오래 식민지였는데, 조선과 만주가 일본 야구 리그에 우선적으로 편입되었다는 것도 흥미롭습니다! 뭔가 대만이면 다 오냐오냐 해줬을것 같은데... 실상은 그렇지 않은가 보군요.
  • 역사관심 2017/09/18 04:07 # 답글

    새시리즈 읽기 시작합니다! 롯데는 3위로 치고 올라갈듯~
  • Nobrino 2021/02/06 09:05 # 삭제 답글

    찾아 보니, 대만 학교라고는 하지만, 무시할 수 없는 숫자가 내지인이더군요. 감독 코치 다 일본인이고. 중국인, 원주민들은 주축이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나중에 대만 스포츠에서 나름 활약하게 되기는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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