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물에서 바라보는 우주라는게... by 迪倫

알아두면 나쁘지 않을 천문의 비밀...까지는 아닙니다 헤헤로 잠시 번외편을 올려놓고는 그 사이 시간이 흘러버려서 원래 쓰고 있던 기조를 살짝 놓치고 있는 중입니다. 그래서 잊기전에 저도 빨리 포스팅을 해서 기억을 되돌려놔야 할 것 같습니다.
아, 참고로 올해는 틈나면 밸리에도 글을 올려놓으려고 합니다. 너무 고립되어 있는것은 역시 좋은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새로 제 블로그의 글을 읽게되시는 분들이 계시다면 언제든지 댓글로 얘기 걸어주시면 좋겠습니다. 재미있게 "놀자"가 이 블로그의 목적입니다. 아무튼.... 다시 이야기를 이어갑니다.

우주와 인간의 끈을 그리도 끊기 어려워...까지 시리즈 글을 올리면서 최근 한국의 과학사학계에서 '발굴'한 조선 천문학의 성취와 한계를 정리해보았습니다. 그러면 이게 실제 17-18세기 지구상에서 어떤 단계에 있었던 것인지 비교를 해봐야 조금더 자세히 이해를 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이웃 국가의 경우를 살펴보고 무엇이 다르고 무엇이 같았는지를 보려고 합니다.

아래의 이미지는 유명한 오카노 레이코가 그린 음양사의 제일 첫편 "安倍晴明 忠行に随ひて道を習ふこと"(아베노 세이메이, 다다유키를 쫓아서 도를 배우는 일)의 한장면입니다.

이 장면이 있는 이야기는 원래 12세기에 엮어진 "고금물어집(今昔物語集)의 이야기 중의 하나입니다. 그림 속에서 다다유키도노(忠行殿) 또는 가모도노(賀茂殿)라고 불린 음양료의 우두머리가 이날 소년의 비범한 능력을 보고 그를 음양사로 가르치게 되면서 이 만화의 전체 스토리가 시작이 됩니다. 그리고 아베노 세이메이가 아시다시피 온천하의 요괴 귀신들을 물리치게 됩니다.

그런데, 여기서 소년 아베노 세이메이를 알아본 가모노 다다유키(賀茂忠行)는 실제 10세기 중후반 음양료의 수장이었던 사람이라고 합니다. 음양료(陰陽寮)는 헤이안시대의 관청 중의 하나로 점복, 천문, 달력, 시간측정을 담당하던 곳입니다. 원래 가모 집안은 일설에는 몇백년전인 7-8세기 견당사로 당나라를 다녀오면서 대연력(大衍曆)이라고 하는 달력을 도입한 기비노 마키비(吉備真備)의 후예로 그로 인해 대대로 음양료를 맡고 있었다고도 합니다. 그런데, 아베노 세이메이를 거둬들인 가모 다다유키의 아들 가모노 야스노리(賀茂保憲)가 이후 아베노 세이메이를 가르친 후 훗날 음양료의 일 중에서 달력은 아들 가모노 쓰미요시(賀茂光栄)에게 그리고 천문(그러니까 점복 퇴마를 의미합니다) 부분은 아베노 세이메이에게 전승하였고, 그 후 일본의 천문은 두개 집안이 번갈아가며 음양료를 맡아 이어져 내려갑니다.

이후에 아베노 세이메이 집안은 쓰치미카도가문(土御門家)으로 칭하고, 가모 집안은 가데노코지가문(勘解由小路家)와 고토쿠이가문(幸德井家)으로 칭하는데, 가데노코지로 칭한 가모 가문이 원래 일본의 공적인 천문 달력을 담당하면서 대대로 내려오다가 15세기 가모가문의 종주가 아들에게 살해를 당하면서 가모씨의 가계는 끊어지고 대신 아베노세이메이의 후손이 양자를 보내 형성된 물론 이후 다시 이 양자계통의 고토쿠이가계에 의하여 가모집안이 재건되면서 다시 양대 집안 라이벌 관계가 이어지지만 결과적으로 음양사 아베노 세이메이의 쓰치미카도 집안이 일본의 중세부터 근대에 이르기까지 국가 공식적 천문달력의 유일한 권위로 내려오게 됩니다. 호오! 과연!


그런데, 문제는 그러는 와중에 정작 일본의 과학으로서의 천문학은 권위와 종교와 가문의 비밀스런 전승을 통해 완전히 중세 수준에서 머물게 됩니다. 원래 일본의 최초의 달력은 6세기 백제를 통해 중국 남북조 시대 남조 송나라에서 만들어진 원가력(元嘉暦)이 처음으로 시행된 것입니다. 고대에는 원가력을 기본으로 이후 의봉력, 위에 언급했던 대연력, 오기력 등의 당나라 달력들을 수입하여 부분적으로 시행하다가 9세기 후반인 862년 발해를 통해 선명력(宣明曆)이라는 당나라의 달력을 채용합니다. 선명력은 태양태음력으로 1년은 365.24671일, 그리고 1달(삭망월)은 29.530585일, 정작 중국에서는 70년 정도밖에 사용되지 않았지만 중국 주변의 국가들에서는 상당히 오랜기간 스탠다드로 사용이 되었습니다. 한국의 경우도 비슷한 신라시대 후반에 도입이 되어 고려시대 후반 14세기 정도까지 대략 500년 정도 사용되었고, 일본의 경우.....놀라지마십시오.....에도시대까지 무려 800년간 사용이 되었습니다.

선명력 자체는 상당히 정확한 편입니다. 현재 우리가 쓰는 그레고리력과 1년의 차이가 불과 0.002450일 차이가 날 정도입니다. 즉 408년이면 하루가 차이가 나게 됩니다. 그런데, 이 달력은 동지가 원래 원점이니까 동지나 춘분같은 24절기가 보정하지않고 800년을 두면 2일이나 오차를 보이게 됩니다. 꼴랑 2일....이 아닙니다. 게다가 전근대 사회는 더더욱 24절기가 중요한 농업 사회인데다가 천문 달력은 국가 최고 통수권자의 권위이자 특권입니다. 그게 정확하지 않으면 하늘이 부여한 혹은 하늘 그 자체인 권위가 무너지게 되는 것입니다.

음양료에서 보정하려는 노력은 전혀 하지않은 것은 아니었지만, 오랜기간 동아시아 질서에서 분리되어 교류가 없던 시기를 지나면서 일본은 일본열도라는 우물안에서 바라보는 우주만을 들여다 보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인조 21년 1643년 흥미로운 만남이 있었습니다. 아래의 이미지에서 제가 주황색으로 표시를 한 부분의 글을 보시기 바랍니다.


寬永二十年癸未 (將軍家綱公) 朝鮮容螺山者來, 玄貞相見 討問七政四餘 (并七政四餘爲十一曜)之運行 而歸國 依玄貞起志勵氣 自勤學是術有年
간에이20년 계미년 (1643년 도쿠가와 이에쓰나 쇼군 시절) 조선에서 용나산(容螺山)이라는 사람이 왔다. 오카노이 겐테이(岡野井玄貞)가 만나서 칠정사여(칠정은 해달 오행성, 사여는 紫氣、月孛、羅睺、計都 라고 하는 동아시아 고대 천문 점성에 중요한 4개의 허성, 이중 라후와 게도는 인도 고대천문학에서 전래된 것)의 운행을 물었다. 그가 귀국한 후 겐테이는 의지가 일어나 스스로 이 기술을 수년간 부지런히 공부를 하였다.


이 인용한 글은 "슌카이선생실기(春海先生実記)"라는 책에서 가져왔는데, 책제목의 슌카이 선생은 시부카와 하루미(渋川春海, 1639-1715)를 말합니다. 이 책은 시부카와 하루미의 후손이 쓴 전기로 시부카와 하루미의 스승 중의 한명인 오카노이 겐테이가 처음 당시 동아시아 달력법에 대해 배우게 된 부분을 기록한 부분입니다.

글 중의 조선의 용나산(朝鮮容螺山)은 실은 조선의 객 나산(朝鮮客 螺山)이 잘못 전해진 것으로 밝혀져 있습니다. (客/容) 나산(螺山)은 당시 제5차 조선통신사 일행의 4번째 위치에 해당하는 독축관(讀祝官) 박안기의 호입니다. 박안기는 당시 36살 정도로 추정하는데 당시 도쿠가와 바쿠후의 이데올로그 하야시 라잔(林羅山)과의 대담이 남아있을 정도의 유학자입니다.

오카노이 겐테이가 나산 박인기를 통해 배운 천문 운행 즉 역법은 시기적으로 대략 200년 전인 1442년부터 조선에서 시행된 '칠정산 내편'으로 파악됩니다. 칠정산 내편은 원래 원나라때 만들어진 수시력(授時曆) 혹은 명나라때 이름만 바뀐 대통력(大統曆)의 역법 계산법입니다. 오카노이 겐테이는 이 수시력/대통력/칠정산 내편을 수년간 연구한 후 시부카와 하루미라는 제자에게 전수합니다.

지금은 일본에서 에도시대 대표적인 천문학자로 평가받고 "천지명찰"(天地明察)이라는 소설, 만화, 영화로까지 만들어진 이 시부카와 하루미는 원래 바쿠후 쇼군을 위한 바둑 명인 집안의 아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어릴 적부터 산학, 역법, 천문, 한학, 등을 배우고 특히 산학과 천문 역법에 크게 관심을 기울여 오카노이 겐테이에게서 천문달력법을 배우고 쓰치미카도 집안의 쓰치미카도 야스토미(土御門泰福)에게서 음양도를 배웠습니다.

(월간 아프터눈 2012년 8월호에 실렸던 천지명찰 만화의 한 부분입니다. 시부카와를 완전 현대식 이케멘으로 묘사하였습니다. 후후)

20대부터 달력 작업에 필수적인 해의 고도, 위도, 경도를 측정하고 이를 상수로 수시력을 작성하여 달력을 헤이안 시대부터 지켜지던 선명력을 대체하자고 건의를 합니다.......만, 보기좋게 일식 계산에서 실패를 하여 '무'로 돌아가 버리는 실패를 맛봅니다. 그런데, 그의 스승 중에 쓰치미카도 야스토미가 있었죠. 당시 교토 조정의 음양료는 수 세기 동안 원래 아베노세이메이 후손들이 두 가문으로 나눠 돌아가며 맡아오던 음양두 자리를 이때 가모씨를 이어받은 쪽에서 독차지를 하다시피 하는 일이 계속되고 있었습니다. 어떤 의미로 보면 결국 시대가 더이상 점성술보다 일월식 예측을 포함한 달력 작성쪽이 더 요구되어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오랜 기간 종가이면서도 오히려 주도권을 상실한 쓰치미카도 집안에서는 신진 첨단 외국 이론을 바탕으로 달력을 개력하면 이미 2일의 오차를 수백년간 반복하는 부정확한 달력의 상대 가모계를 체압할 수 있다는 계산이 생긴 것이죠. 그래서, 일식 예측 실패 이후 보다 수정을 하여 완성시킨 시부카와의 수시력 기반 달력으로의 개력 청원은 쓰치미카도 집안의 후원으로 현실화 되기 시작합니다.

마침 바쿠후 역시 아무리 실질적인 일본의 통치자라고 하더라도 하늘의 운행을 장악하지 못하면 동아시아 전통에서의 진정한 통치자일 수 없다는 명분과 실질적인 권위의 문제를 이를 통해 해결할 수 있다는 계산이 맞아떨어집니다. 이리하여 1686년 마침내 시부카와 하루미의 "정형력(貞享暦)"을 공식적으로 채택하고 800년 묵은 선명력을 이제서야 버리게 됩니다. 그리고, 에도 바쿠후는 천문방(天文方)을 설치하여 교토의 텐노로부터 달력 편찬의 권위를 가져오게 됩니다.

(위키피디아에 올려진 1729년의 정형력의 이미지입니다. 총 384일이 한해로 되어있는 것을 보니 아마 윤달이 들어있었나 봅니다)

일본의 자료들에는 이 정형력에 대해 대단히 훌륭한 의미를 부여하고 있습니다. 처음으로 일본의 현실을 반영한 달력을 일본인의 손으로 만들어 냈다... 뭐 그런 것인데, 실은 동아시아 전체로 봐서는 아직 갈 길이 멀었다고 할까요. 동시대인 17세기 후반 이미 조선은 청나라의 예수회 선교사들이 서양 천문학의 결과를 도입하여 작성한 보다 정확한 시헌력을 정형력의 30년 전인 1654년에 이미 공식 시행단계에 들어갔고 있었습니다.

무엇보다 정형력은 아직도 하루를 100각으로 나누는 기존 동아시아 시스템으로 이루어져 있었습니다. 지난번에 설명드렸듯이 1각이 12분이고 매 시마다 소각을 붙여 숫자를 맞춰주는 복잡한 시스템인데 결국 이 방식이 아예 계절에 따라 시간 자체가 가변적인 부정시법(不定時法)이라고 부르는 '유도리있는 시간'으로 이어집니다. (하루 하루 생활에는 편할지 몰라도 천문학이 발달할 수는 없죠)

이쯤에서 와, 그럼 일본은 조선보다 200년이나 뒤떨어져 있었던 것이구나, 조선 쩐다!라고 마냥 좋아할 일이 절대 아닙니다. 지금의 천문학 수준은 한국과 일본이 솔직히 엄청난 격차를 보이고 있습니다. 링크한 글은 2005년도의 기사입니다만, 12년이 지난 지금 달라졌다고 할 별로 자신이 없습니다. ('갈림길에선 한국의 천문 연구', 과학동아, 2005)

아직 시마바라의 난과 같은 키리시탄 반란과 선교사 추방의 기억이 생생한 17세기의 일본은 서양관련 정보를 모두 엄하게 금지하였습니다. 청과 조선에서 이미 활발히 당대 거의 동시 패션으로 도입하고 연구하던 유럽 천문학의 성취 역시 일본 열도의 우물에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18세기로 접어들어 사회가 안정되자 쇼군 도쿠가와 요시무네(徳川吉宗)는 일련의 부분적 개방과 개혁을 시도합니다. 조선의 인삼을 토종화 시킨 것도 이때이고, 천문학에서도 서양 역법을 기초로한 새로운 달력 편찬 작업을 시도한 것 역시 이때입니다. 시부카와의 후손이 대대로 맡은 천문방에 나가사키에서 청나라와 서양 천문학에 대한 정보를 소개한 니시카와 마사요시(西川正休)를 합류시켜 달력을 수정하는 작업을 바쿠후의 지원으로 시작합니다.......만, 이를 어쩌나 일을 추진하던 천문방의 우두머리 시부카와 로쿠조(渋川六藏)가 갑자기 죽고, 요시무네 쇼군이 죽고, 니시카와는 새로운 서적들을 소개는 했지만 실제적인 계산을 해낼 실역은 없고, 표류하던 국책 프로젝트는 흐르다 결국 교토 음양료의 쓰치미카도가문에 가서 결국 보력력(寶曆曆)이라는 정형력을 약간 손만 대다만 그냥 옛날 달력으로 멈춰버리고 맙니다. 당연히 바쿠후에서 달력이라는 통치자의 권위가 다시 형식적이지만 실질적으로 손댈 수 없었던 교토의 텐노 조정에 다시 돌아가 버린 셈이죠. It's all about power....

하지만 민간에서 외국의 첨단 천문학 달력 이론을 공부한 학자들이 등장하면서 일월식 예측을 정확히 해내는 경우가 늘어갑니다. 그리고, 바쿠후에서도 천문방을 통해 계속 달력 개력 작업을 다시 추진합니다. 그리하여 다카하시 가게야스(高橋景保)같은 이들 학자들을 등용하여 18세기가 끝나가던 1797년 청나라의 "역상고성후편"(曆象考成後編)을 도입한 관정력(寬政曆)을 실시하게 됩니다. 역상고성 후편은 지난번 포스팅에서 설명드린 예수회 선교사 쾨글러가 티코 브라헤의 천문관을 바탕으로 케플러와 카시니의 이론과 관측값을 적용하여 1741년 업데이트한 시헌력의 베이스인데, 조선에서는 일본보다 55년 정도 이전인 1742년 해석 완료하여 1743년부터 적용하기 시작하였었습니다.

격차가 점점 짧아지고 있죠. 이 격차는 19세기 후반 천문방에서 "만서화해어용(蛮書和解御用)"이라는 서양 학문 번역 전문 기관을 설치하고, 이 기관이 이후 가이세이학교(開成学校)를 거쳐 도쿄제국대학교가 되면서 결국 서양 천문학을 전격 수용하면서 완전히 뒤집어지고 맙니다.

시간을 길게 놓고 그 전개를 보면 어느 시대 어느 나라에나 시부카와같은 천재적인 인물은 있습니다. 하지만 전체 사회가 진전을 하는데는 개인이나 민족과 같은 당사자의 문제가 아니라 그들이 그 실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해주는 시스템이 결정적입니다. 그리고, 그 시스템이 가능하려면 하늘이 열려있어야 하는 것이지요. 다시 말하자면 생각과 지식과 사람들이 드나들고 섞여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이 됩니다. 그래야, 도미노현상처럼 새로운 정보의 자극이 전달되고 누적되어 질적으로 다른 과학혁명으로 진행될 수 있는 것이겠지요.

근세 후반의 일본은 그런 오랜 정체에서 급하게 변화하기 시작합니다. 19세기에는 그 결과로 케플러 방식의 반사망원경을 만들어 내기도 합니다. 자, 이야기는 다시 망원경으로 돌아가겠습니다. 다음 이야기를 기다려주시기 바랍니다.

**일단 일본의 달력에 대해서는 "直伝 和の極意 あっぱれ!江戸のテクノロジー", NHK, 2011과 일본국립천문대에서 제공하는 일본 달력의 역사 정보(http://eco.mtk.nao.ac.jp/koyomi/wiki/CEF2BBCB2FC6FCCBDCA4CECEF1.html)을 크게 참고하였습니다.
시부카와 하루미에 대해서는 "江戸の天才数学者", 鳴海 風, 新潮社, 2012에서 참고하였고, 아베노 세이메이와 관련된 부분은 이 자료들과 위키피디아의 각각 인물들의 자료를 연결 정리한 것입니다. 이미지는 음양사와 천지명찰은 제가 가지고 있는 만화책이고 정형력은 위키피디아의 자료입니다. 고금물어집의 아베노 세이메이 장면은 http://www.geocities.co.jp/HeartLand/1608/koten2.html에 현대어역문이 있습니다.
나산 박인하에 대한 부분은 "인물 과학사1: 한국의 과학자들", 박성래, 책과함께, 2011의 내용을 참고하였습니다. 그리고, 원 출전에 해당하는 슌카이선생실기는 와세다대학 아카이브 http://www.wul.waseda.ac.jp/kotenseki/html/bunko08/bunko08_c1017/이고 해당 부분 번역은 제가 했습니다.

**오랜만에 역사 밸리에 올립니다. 제글을 처음 읽으시는 분들에게는 지금 이 글이 이어지고 있는 "멀리바라보는 근세-遠鏡" 시리즈의 앞의 글들과 혹시 흥미가 있으시면 몇해전에 올렸던 일본의 자명종에 대한 글을 같이 읽어보시면, 제가 자세히 얘기하지 않고 넘어가는 이야기들을 좀 쉽게 이해하실 수 있을 겁니다.
재미있게 읽어주시면 좋겠습니다.




핑백

  • 남중생 : 동아시아 천문학의 "월패성"은 유대교 신화의 릴리트? 2018-07-07 00:03:17 #

    ... 게도는 인도 고대천문학에서 전래된 것)의 운행을 물었다. 그가 귀국한 후 겐테이는 의지가 일어나 스스로 이 기술을 수년간 부지런히 공부를 하였다.▲적륜 님의 우물에서 바라보는 우주라는게... 中 조선 천문학자가 일본인에게 사여성 계산법을 가르쳐주는 장면. 하지만 나머지 둘, 자기와 월패는 유래가 아리송합니다. 혹시 조선인들은 사여성에 대해 ... more

덧글

  • 남중생 2017/01/23 17:30 # 답글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라잔(羅山)과 나산(螺山)의 만남도 흥미롭네요.
  • 迪倫 2017/01/30 07:57 #

    아직 이 대담기록을 찾지못해 내용을 모르는데 저도 어떤 내용이었을지 흥미가 있어 찾아보려합니다.
  • 남중생 2018/07/05 22:44 #

    적륜 님, 우연히 일본국회도서관 뉴스레터 한 편을 읽게 되었는데, 이 포스팅에서 적륜님께서 설명하신 시부카와 이야기를 다루고 있어서 복습하는 기분으로 읽었습니다. 다만 이 뉴스레터에서는 시부카와가 소개한 수시력(혹은 일본 위치에 맞게 계산한 수시력+알파) vs. 유학자들이 주장한 명나라 대통력의 구도로 해석하고 있어서 다소 의아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대통력이 수시력에서 이름만 바꾼거라면 왜 이런 대결 구도가 생긴걸까요?
    마치 훈민정음 반포할 때의 반대파 신하들이 연상되는데 ("전하, 중국의 글자를 쓰지 않고 스스로 글자를 만드는 것은 오랑캐의 풍습이옵니다!")
    어쩌면 "아무리 실질적인 일본의 통치자라고 하더라도 하늘의 운행을 장악하지 못하면 동아시아 전통에서의 진정한 통치자일 수 없다는 명분과 실질적인 권위의 문제"가 바로 막부와 천황, 유교와 음양도?의 구도를 띄었을 지도 모르겠네요.

    여기에 대해 적륜 님의 의견을 듣고 싶습니다!

    http://www.ndl.go.jp/en/publication/ndl_newsletter/205/20501.html
  • 迪倫 2018/07/06 11:02 #

    개력 자체는 필요하였던 상황이고 하지만 시부카와의 수시력은 그냥 도입이 아니라 일본의 위도로 상수를 보정한 달력이었고 유학자들이 주장한 명의 대통력은 이전의 전례를 따라 (당연히 선진 과학인) "그대로" 도입하는 것이 옳다는 주장이 대립했다고 합니다. 다만 대통력이 교토의 조정이나 에도 바쿠후에서 공식적으로 채택되지는 않았고 3번째의 시도만에 바쿠후와 음양료 모두의 후원을 받아 조쿄력으로 개력이 공식적으로 가능해진 것으로 알려져있습니다. 저는 그 와중의 우여곡절은 자세히 몰라 이때 주목해서 적지 않았습니다. 실제 대통력은 수시력의 거의 같은 버전이지만 조쿄력은 원래 수시력의 계산 방법론에 일본 위도의 상수 보정을 더한 체계라고 합니다.

    역시 일본국회도서관의 웹페이지 하나를 참고하십시오 http://www.ndl.go.jp/koyomi/chapter1/s2.html
    "貞享暦は、渋川春海がみずからの観測に基づき、中国元代の授時暦に中国と日本の里差(経度差)を補正し、1年の長さが徐々に変化するという消長法を援用して改良した暦法です。..........改暦の機運のなかで、前例にならい中国の明の官暦「大統暦」をそのまま用いようとする伝統派に対し、春海は3度上表し、みずからの『大和暦』の採用を願い出ます。将軍家綱の後見役である保科正之(ほしなまさゆき)や、徳川光圀(とくがわみつくに)をはじめとする幕府の有力者の知遇を得た春海は、改暦に不可欠な政治力をも持ち、改暦を成功に導いたのです。この改暦によって幕府は編暦の実権を握り、暦は全国的に統制されました。"
  • 함부르거 2017/01/23 22:04 # 답글

    일본의 역법 발달이 늦은 것은 중앙집권화가 미약했던 영향이 큰 것 같습니다. 서양도 정신적 중앙집권자였던 카톨릭 교회가 역법 발달을 주도했으니 말이죠.
  • 迪倫 2017/01/30 08:01 #

    중앙집권화가 미약했다기 보다 역법에 관해서는 권력이 이원화되고 그러면서 명분상의 권력이 종교적 색채를 띈게 이유가 아닐까하고 생각을 하는데 카톨릭 교회도 그런점에서 비교가능한 게 아닌가 싶기는 합니다. 서양 역법은 이번에는 다루지않고 넘어가는데 기본적으로 카톨릭교회는 유대 달력 베이스의 부활절을 계산하기 위해 달력에 힘을 쓴 경우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 골든 리트리버 2017/01/24 00:11 # 답글

    700년 이상 누적된 선명력의 오차 덕분에 임진왜란 당시 기록에서도 일본 측이 기록한 날짜는 조선 측에 비해 -1일이 되더군요.

    예를 들면 1592년 임진왜란 발발시 고니시 유키나가vs정발의 부산진 전투가 발생한 날짜는 조선 측 기록에서는 음력 4월14일인데 일본 측 기록에서는 음력 4월 13일로 되어있습니다.
  • 迪倫 2017/01/30 08:02 #

    오호, 이런 실제 비교가능한 예가 있는 줄 몰랐습니다. 혹시 이와 관련된 상세한 논문이나 기사가 있을까요?
  • 빛의제일 2017/01/25 23:13 # 답글

    다 읽고나니 제목이 참으로 의미심장합니다. 시스템과 사람을 말씀하셨는데, 사람 만드는(?) 시스템에 있는 사람으로서 몇몇 일들이 떠오르기도 합니다.
    저는 음양사, 잘 생긴 주인공이 나오는 귀신잡는 만화였다가 이상한 종교만화, 이렇게만 기억하는데,
    천문학과 이어지고 조선과 일본이 이어지고 유럽도 넘어가고 신기하고 재미있습니다.
    겉으로 드러난 모습과 속 이야기들이 이어지면서 다른 것도 재미있습니다.
  • 迪倫 2017/01/30 08:05 #

    음양료에서 전해지는 천문점복의 기술은 실은 신도의 한 유파로 뭐든지 -道로 만드는 일본식 성향에 맞춰 음양도, 천문도, 역도와 같은 이름의 체계로 성립이 되어있습니다. 그러니 아무래도 한국에서의 전개 과정과는 차이가 많이 나는 것 같습니다.
  • 역사관심 2017/01/26 03:33 # 답글

    저런 역사가 또 있었군요. 흥미진진합니다. 그리고 이런 이야기 (특히 조선과 이웃국들의 비교)를 읽을 때마다, 현재의 역학구도를 반영하지 않고 (혹은 역으로 자국중심주의를 반영하지 않고) 그대로 역사를 바라본다면 훨씬 많은 것을 아시아전체가 풍부하게 (그것이 한국이건 중국이건 일본이건) 얻을텐데..하는 생각이 듭니다.
  • 迪倫 2017/01/30 08:06 #

    저 역시 동아시아 전체의 스코프로 이런 저런 역사 현상들을 서술하면 훨씬 더 객관적이고 풍부한 내용들이 많을텐데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 최근 상황은 더 어려워져 가는게 아닌가 싶어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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