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키가하라의 조선인. 시리즈 일단 마지막회. by 迪倫

회사, 근대의 미리보기.에서 원래는 포르모사 이야기를 더 이어간다고 예고를 했었습니다........만 그사이 세상이 험난하게 요동을 치고나니 그만 이 이야기의 동력을 잃어버렸습니다.

지금같아서는 어서 지구온난화가 진전이 되어서 빨리 돌고래에게 지구를 넘겨주는 것이 그나마 나은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레바논도, 파리도, 그리고, 서울도. 인간이 무엇인가에 대해 여러가지로 곰곰히 생각해볼 기회인가 싶기도 하네요.

아무튼 곰곰 생각하다 이상한나라의 교시로 시리즈 2부를 아무래도 또 한명의 국경을 넘은 17세기 사람을 소개하고 일단 마무리지으려고 합니다. 이미 이번 시리즈에서 조완벽과 토마스를 소개하였는데, 이렇게 임진왜란으로 조선이라는 사회 너머로 나갔다가 다시 돌아온 사람의 이야기입니다.

우선 아래의 글을 읽어봐주십시오. 이 글은 인조 2년인 1624년 8월 20일부터 다음해 3월 26일 사이에 일본에 회답겸쇄환사 일행의 회답부사(回答副使)로 갔던 강홍중(姜弘重)의 기록인 "동사록(東槎錄)"에서 을축년(1625, 인조 3) 1월 7일자 기사의 일부입니다.

"미시에 묵가(墨街)에 다다라 점심 들고, 좌도천(佐渡川) 부교를 건너 해가 지기 전에 대원(大垣)에 당도하였다. 옛날 가강이 수뢰와 더불어 싸울 때에 그 선봉(先鋒)이 휘원(輝元)의 군사와 관원(關原)에서 접전(接戰)한다는 소식을 듣고 관동(關東)에서 겸정(兼程 하루에 이틀 길[程]을 행하는 것)하여 달려가 구원할 적에 10만 병마(兵馬)가 일제히 좌도천(佐渡川)을 건너니, 냇물이 흐르지 않아 병마가 평온하게 건너, 마침내 승리를 얻었다. 그때에 강우성(康遇聖)이 가강의 군중(軍中)에 있어 그것을 목격하였다 한다."

흐음, 이게 무슨 이야기인지 설명을 드리겠습니다. 먼저 일행이 도당한 대원(大垣)은 일본 혼슈 중부의 기후현 오가키라는 곳입니다. 가강은 도쿠가와 이에야스를 말하죠. 관원(關原)은 세키가하라를 의미합니다. 예, 바로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천하를 얻게되는 결정전이었던 세키가하라 전투의 이야기입니다. 이에야스의 선봉이 세키가하라에서 맞붙었다는 휘원(輝元)은 모리테루모토(毛利輝元)입니다. 전투는 1600년에 일어났고 이 격전지를 24년후인 1624년 여름 조선의 통신사 일행이 지나다가 그날 강우성이라는 이가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군사로 이 전투를 목격(즉 참전)했다는 얘기를 전하고 있는 기사입니다.

실제 조선에서 임진왜란 당시 일본에 포로로 끌려간 사람들 중에는 무인들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이 강우성이란 사람은 조금 경우가 다릅니다.


강우성은 실제 당시 통신사행의 통역인 왜학 역관이었습니다.

원래 강우성은 1581년 생으로 진주 사람인데, 12살때인 1592년 10월 2차 진주대첩으로 진주성이 함락될때 일본으로 끌려간 사람들 중의 하나입니다. 이미 소개드렸던 조완벽이 이때 같이 끌려간 진주 사람이지요.
이후에 10년간 오사카, 교토 지역에서 억류생활을 보내다가 1601년 6월 250명의 포로 쇄환자 중 한명으로 조선으로 돌아옵니다.

원래 집안에 선대는 하급관리에 아버지는 주교수(籌敎授), 즉 산학 교수였었는데, 그래서인지 귀국한지 5년이 지난 1606년 선조 39년에 주학(籌學)으로 취재 입격합니다만, 곧 다시 3년 뒤 광해군 1년 1609년에 역과 증광시(增廣試)에 붙어서 왜학역관이 됩니다.

아무래도 일본 체제기간동안의 일본어 실력이 남달랐던 것으로 보입니다. 강우성은 이후 1617년, 1624년, 1636년 연달아 세차례나 일본에 통신사행에 역관으로 출행합니다. 위에 소개한 기사는 이중 두번째인 1624년의 통신사 기록에 해당되는 것입니다.

조선시대 중인 테크노크라트 계급의 교육방식을 감안해보면 아마도 일본에 끌려갔던 12살때 이미 글과 산법에 능하여 도쿠가와 군의 회계등을 다루는 기술직 군역을 맡아서 있었을 가능성이 큽니다. 그리고, 이렇게 전해지는 이야기뿐이긴해도 그가 세키가하라 전투를 직접 체험한 조선인으로 이름이 남아있습니다.

조선으로 돌아와 일본어 역관이 된 강우성은 실은 17세기 대단히 중요한 핵심 일본전문가가 됩니다. 그가 관여한 일본관련 일들은 전방위적으로 실제 임란 이후 조선과 일본이 다시 교린관계를 재건하는데 대단히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일본에 갔을때마다 그는 직접 사방 팔방을 다니며 조선인 피로인들을 모아서 데리고 오는 역할을 합니다. 예들 들어, 1617년 광해 9년 통신사 추탄(楸灘) 오윤겸(吳允謙)이 쓴 동사상일록(東槎上日錄의 10월 8일의 기사입니다:
맑음. 강우성을 고대(苦待)하였으나 오지 아니하였다. 저녁에 돛단 배 한 척이 바다 밖에서 오므로 나는 부사ㆍ종사와 더불어 기둥 밖 바다가 바라뵈는 곳에 나앉아 고대하고 있었는데 점점 포구에 가까워 오는 것을 보니 바로 강우성의 배였다. 그래서 일행 상하가 모두 기뻐하여 서로 불러댔다.
강우성은 광도(廣島) 및 비전주(備前州)를 역방하여 두 곳에서 포로된 사람 46명을 얻고 일기도에 도착하여, 또 한 사람을 얻었는데, 자기는 행차가 머물고 기다리는 것이 염려가 되어서 순풍을 기다리지 아니하고 작은 배를 타고서 노를 재촉하여 먼저 오고, 포로된 사람을 실은 배는 큰 배인데다 짐마저 무거워서 반드시 사람을 기다려서 출발해야 하기 때문에 일기에 머물러 바람을 기다린다고 하였다.

강우성이 이렇게 사방팔방 다니면서 조선인 포로를 찾아 데리고 오는 기사가 3번의 통신사행의 각 기록 이곳 저곳에 끝도 없이 나옵니다. 그야말로 있는 힘껏 조선인들을 쇄환하기 위해 노력을 하는 모습이 보입니다. 그가 이렇게 각 지방의 관청들을 상대로 조선인 쇄환을 하러 다닌 것을 보면 아마도 세키가하라 전투뿐 아니라 일본에서 억류되었을때 글과 산학을 알아서 적어도 아주 밑바닥의 노예가 아니라 그래도 고급 일본어가 통하는 곳에서 일본어를 배우고 일을 하였던게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듭니다.

실은 이후 쓰시마에서 내부적으로 도주와 바쿠후에 줄이 닿는 장로간의 알력으로 문제가 생겼을때 강우성은 조선측의 입장을 대변해서 쓰시마 도주를 지원하여 조일간 외교관계 문제를 무마하고 넘어가는 일이 이었었습니다. 이 일은 언젠가 나중에 다시 자세히 포스팅을 하도록 하겠습니다.

무엇보다 강우성의 왜학 역관으로서의 업적은 실은 임진왜란 후 왜어 역관 교육 시스템을 재정립한 데 있을 것입니다.

조선시대 후기에 일본어 역관이 되려면 상당히 어려운 관문을 일찍부터 거쳐야만 했습니다. 심지어 지금 영어마을처럼 숙식을 하면서 해당 외국어만 쓰면서 지내야하는 데 조선말을 하면 벌점을 받게되는 그런 체험 과정도 있었을 정도입니다.

조선후기 왜어 학습서로서 가장 중요한 텍스크북은 "첩해신어"(捷解新語)라는 책이 있습니다. 첩해신어라는 제목은 말그대로 임란 이후 새로 업데이트된 말(신어)를 빨리 깨우친다(첩해)한다는 의미입니다. 이 책의 구성은 먼저 1-4권의 내용은 쓰시마에서 동래로 오는 과정의 통역들간에 오가는 대화를 순서대로 기록한 것과 5-8권까지 조선 동래에서 일본 에도에 까지 가는 통신사행의 과정을 일본어와 조선어로 각각 기록한 일한대역 대화집입니다.


이 이미지는 첩해신어의 첫 페이지 부분입니다. 일부만 읽어드리겠습니다. 아, 이건 17세기 초반의 일본어와 조선어입니다.(이말은 중세 국어와 일본어에 이게 얼마나 중요한 자료인가 하는 포인트입니다)
なにかしこちこいそちかたいくわんにいてみか申
나닝가시 고찌 고이 소찡가 다이 관 니 이뗴 밍가 모+ㅜ 수
아므가히 이러 오라 네 代官의 가 내말로 (아무개요, 이리 오시오, 당신네 대관에게 가서 내말로)
おとついここもといゑくたて
오도쭈이 고고모도예 군다뗴
그적긔 여긔 ㄴ+아래아 려와 (그저께 여기 내려와... 후략)

이 책은 이후 지속적으로 업데이트 버전이 나와 조선 후기 내내 일본어 텍스트북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경전으로 사용되었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이 책의 저자는 바로 지금 소개드린 강우성입니다.

이 책의 내용은 외교와 무역의 실무 언어들을 익히기 위한 것이기 때문에 그냥 입에 발린 표현들뿐 아니라 상대방에게 강하게 압박을 가하는 내용의 대화들도 많이 들어있습니다. 읽다가 약간 심한게 아닌가 할 정도로 얼굴 붉히며 해야하는 말들도 들어있더군요. 그런데, 마지막 부분에는 흥미롭게도 그런 저런 사행의 과정을 마친후 서로 송별연을 하면서 나누는 이야기들로 보이는 대화로 마무리됩니다.

그중의 일부분입니다.

こなたのとしもわ加うみゑた里ことはのせつもよう御さ里おのおのやうな
고나다노 도시모 와고우 미예다리 고도바노 셔쭈모 요우ㅇㄱ+ㅗ ㅿㅏ리 오노오노 요우나
자네 나토 져므셔 뵈고 말 겯도 됴ㅆ+아래아 오니 자네네 ㄱ+아래아 ㅌ+아래아 신

しゆころくにんも御され加なとみなね加うわ里やうこくのためと申ことて御さる
슈 고로구 닌 모 ㅁㄱ+ㅗ ㅿㅏ 례가나도 미나 녕고우와 료웅 고구노 담몌도 모+ㅜ 수 고돈뎨ㅁㄱ+ㅗ ㅿㅏ루
분 五六人만 계시과댜 다 원ㅎ+아래아 몬 兩國의 ㅎ+아래아 욤이라 니ㄹ+아래아 ㄴ+아래아+ㄴ 이리ㅇ+아래아+ㅂ도쇠

현대어로 옮기면 다음과 같습니다.
자네 나이도 젊어보이고 말투도 좋으니 자네같은 분 5-6인만 있었으면 하고 원하는 것은 두 나라에서 하고자 하는 바라 이르는 이이로다.

결국 두 나라가 서로 같이 나아가려면 서로 말이 통하고 이어줄 수 있는 사람들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12살에 왜국에 포로로 끌려가 그 나라에서 10년 세키가하라 전투에까지 참전하고 고향 조선으로 돌아온 강우성은 다시 그와 같이 일본으로 끌려간 사람들을 구해 돌아오는데 힘을 쓰고 두 나라가 다시 교린할 수 있도록 통역을 하고 일본어를 배워 두 나라가 화평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텍스트북을 만들고, 그리고, 그 끝에 그가 진정으로 전하고 싶었던 얘기를 전하고 있나봅니다.

평화는 실은 대단히 지난하게 얻기 어려운 것입니다. 그게 인간입니다. 그저 주어지는 적도 그럴 이유도 없습니다. 그래서 평화는 더 소중한 것입니다. 동아시아와 이 지구가 좀더 평화로워지면 좋겠습니다. 그러려면 서로 이해하고 알아야겠지요. 강우성이 일생을 통해 전하고 싶어했던 그대로 말입니다.

아무튼 이것으로 이상한 나라의 교시로 2부는 이상하지만 여기서 일단 마무리합니다.

교시로 영화에서 파생된 이야기는 아직 더 있습니다만, 언젠가 제가 다시 3부를 연재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동안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첩해신어에 대해서는 정승혜 선생의 "조선후기 왜학서 연구" (태학사, 2003)가 가장 알찬 연구서적입니다. 관심이 있으시면 추천할 만 합니다. 위에 인용한 첩해신어의 내용과 현대어문은 "조선시대 일본어 교과서 첩해신어와 일본어학습" 한불학예사, 2013 에서 인용했습니다. 이 책은 일부 문제가 조금은 있지만 전체 내용을 모두 소개하고 있는 유일한 버전입니다. 이미지의 출처는 http://jikjiworld.cheongju.go.kr/app3/jikjiworld/content/english/metal/index.jsp?top=05&sub=1&left=05&url=mn050/mn050_020.jsp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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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이종혁 2015/11/17 15:27 # 삭제 답글

    요즘 예기치 않게 인명이 다치는 때에 더욱 와닿는 말인것 같습니다.

    평화를 위한 노력은 서로를 알기위한 소통이라는 말이 더욱 공감합니다.

    즐겁게 놀러갔다가 그리고 자신의 뜻을 알리기 위해 갔다가 다치는 일은

    없기를 바라면서도 어떤 보이지 않는 손이나 키다리 아저씨 같은 존재가 이런 것을을 긍정적으로

    이끌어 줬으면 하는 상상도 합니다. 결국 우리 스스로가 해야 되는 것이겠지만서도요.

    예나 지금이나 그런 점들은 항상 중요한듯 합니다. 오늘도 잘 보고 갑니다. ^^
  • 迪倫 2015/11/19 02:38 #

    늘 전해졌으면 하는 얘기를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Nocchi 2015/11/17 18:13 # 답글

    긴 시리즈 쓰시느라 정말 수고많으셨습니다

    오늘의 세상이 혼란스럽고 개탄스러운 것은 사실이지만
    강우성의 예 처럼 임진왜란 때 는 오늘의 혼세는 우습다 할 만 한 혼세가 아니었을까요????
    인류의 역사는 혼세의 연속이고 결국 십승지(十勝地)를 찾아가는 수 밖에 없는 것 같다는
    말도 안 되는 자조적인 생각마저 합니다
  • 迪倫 2015/11/19 02:41 #

    그래도 앞으로 나가고 있다고 믿으려고 하는 중입니다. 아마 당분간은 실질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신쇄국시대가 진행될 것처럼 보이긴 합니다만... 그래도 밥에 돌이 아무리 많아도 밥이라고 불리는 한은 쌀이 돌보다 많다고 생각합니다.
    아무튼 늘 잘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빛의제일 2015/11/19 22:20 # 답글

    뭐랄까 어느 노래 제목이었나, 모든 것이 제 자리로 가는 길이라는 말이 떠오릅니다.
    그 길이 어떤 길인지는 모르겠습니다.
    요즘 가끔 떠오르는 것이, 세상은 미쳐돌아가도 진부한 표현처럼 바다물에 들어 있는 소금처럼
    제 갈 길을, 사람의 길을 가는 분들 덕분에(포스트에 언급된 강우성처럼) 그나마 세상이 망하지 않나 싶습니다.

    시리즈의 처음과 끝이 이렇게 이어지다니 신기하고, 긴 시리즈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고맙습니다.
    그러면서 뻔뻔하게 다음 시리즈는 또 얼마나 재미있을까 두근두근입니다.
  • 迪倫 2015/11/24 02:35 #

    마지막까지 재미있다 해주시는 분은 빛의제일님뿐인가 하는 생각이 ㅠ.ㅠ

    세상이 그래도 망하지않는 것은 그래도 제자리에서 할일을 하는 사람들이 있어서겠죠. 그렇게 믿어야 희망도 있구요.

    다음 시리즈는 당분간 모색을 해봐야겠습니다.....
  • 남중생 2016/01/05 03:42 # 답글

    세키가하라 전투의 조선인 군무원(?)이라... 적륜님 포스팅을 그간 바빠서 따라가지 못하다가 이제야 정주행하고 있습니다.^^
  • 迪倫 2016/01/11 12:32 #

    감사합니다!
  • 키키 2016/02/01 05:15 # 답글

    와 저런 사람이 있었더니... 강항과는 무슨 관계가 있나요? 진주에 강씨가 많이 모여살아, 왠지 연관이 있을 것 같은..
  • 迪倫 2016/02/03 13:24 #

    키키님 오랜만이네요^^ 강항과는 다른 집안으로 보입니다. 우선 간양록의 강항은 姜씨인데 강우성은 康씨입니다. 아무래도 요즘은 康씨는 주위에도 별로 없는 것 같습니다만...게다가 강항이 양반이었는데 반해 아직 중인 계급이 완전 고정되기 전이긴 하지만 강우성은 중인계층에 속하구요. 2차 진주 대첩 당시 워낙 많은 진주사람들이 끌려가서 대단히 많은 이야기들을 남긴 것 같습니다. 앞에서 소개했던 조완벽이나 토마스도 모두 진주 출신으로 나오니 말입니다. 어쩌면 진주의 집안들에 아직 알려지지않은 더많은 이야기들이 전해올지도 모릅니다.
  • 룰리레몬 2016/06/09 21:27 # 답글

    늘 그렇지만 좋은 글 잘 읽고 갑니다!
  • 迪倫 2017/03/09 10:53 #

    재미있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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