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으로 간 화한삼재도회 by 迪倫

이상한 나라의 교시로 시리즈는 일단 마무리하려고 마지막편을 쓰고 있는 중입니다. 워낙 그동안 이야기가 마구 걷잡을 수 없는 방향으로 흘러, 못다한 이야기는 3부를 나중에 다시 시작하든지 하고 일단 그러려니 해주시기 바랍니다.

오늘은 잠시 주말을 넘기기 전에 최근에 본 흥미있는 책에 대한 이야기를 하나 소개하려고 합니다.

그동안 17-18세기의 동아시아와 유럽간의 인터액션에 대한 이런 저런 이야기들을 많이 들려드렸는데, 그 중에 자주 등장한 또 하나의 책은 "화한삼재도회"라는 일러스트 백과사전이라는 책입니다.

화한삼재도회 『和漢三才図会』는 1712년 일본의 데라지마 료안(寺島良安)이 17세기 초반의 명나라의 왕기(王圻)가 1607-9년에 편찬 출간한 삼재도회 《三才圖會》를 모델로 삼아, 일본(和)과 중국(漢)의 천 지 인 3재(三才)를 정리한 일종의 일러스트레이티드 백과사전입니다. 제목을 화 和 가 아니라 왜 倭로 써서 왜한삼재도회로 된 경우도 있습니다. (일본어는 같은 발음입니다) 조선에는 18세기 중반 이미 이 책이 일본에서 들어와서 특히 북학파로 분류되는 학자들 사이에 꽤 필독서처럼 회람되었다고 하여 꽤 유명한 책입니다.

그동안 포스팅에서 이 책에 대해 언급한 것은 대략 다음과 같습니다:
1. 17-18세기 조선채널 무역의 흥망: 2부 - 6 2009년에 처음으로 이 책에 대해 언급을 하고 간단한 내용을 정리를 했었습니다.
2. 조선의 난학: 이덕무의 사례 그런 다음 2010년부터 이 책에 대해 네덜란드 관련 부분에 있어서 보다 본격적으로 살펴보기 시작했습니다.
3. 18세기 목내이, 그리고, 네덜란드.... 이어서 좀더 살펴보고 특히 네덜란드의 교역품에 관련된 내용을 소개하였습니다. 첫번째는 목내이 즉 미이라였구요.
4. 18세기 수상쩍은 오란다제 명약 - 유니콘의 전설 에서는 유니콘의 뿔에 대해 소개하면서 이 책의 내용들을 소개했습니다.
5. 화한삼재도회의 자명종편 약재뿐 아니라 자명종과 같은 기계에 대해서도 소개를 해보았고,
6. 에조의 땅. 저너머에... 그리고, 가장 최근에는 이 화한삼재도회 책이 조선의 지식인들에게 어떤 방식으로 지식의 바운더리를 확장시키는데 도움이 되었는지 예가 될만한 이야기를 소개하기도 했습니다.

실은 보시다시피 저 역시 굉장히 부분적인 내용만 찾아본 것을 소개를 드렸습니다. 실은 이 책은 105권의 81책 분량으로 천지인 각가 부문별로 당시 동아시아에 알려진 내용을 거의 총망라하고 있는 책입니다.

최근에 서울대 규장각 박물관에서 "규장각, 세계의 지식을 품다"라는 특별 전시회를 진행하면서 규장각에 소장된 외국 도서들을 특별 전시하고 있습니다. 이 중에 화한삼재도회도 역시 실물이 전시되어있습니다. 이덕무같은 실학자들뿐 아니라 규장각에서도 소장을 했었습니다. 특별 전시회는 내년 1월 6일까지입니다. 흔치않은 기회이니 관심있으신 분들은 시간이 나시면 꼭 가보시면 좋을것 같습니다. (여기 클릭)

원래 이 책은 1712년 발간이 초판본입니다.

한국어 위키백과를 보면 "현재 한국에 남아있는 《화한삼재도회》목판본 중에서 1713년 간본이 원중거와 성대중 일행이 구입한 것으로 보이며, 1772년 간본은 통신사의 방문과는 별도로 대마도(對馬島)에서 동래(東萊)를 거쳐 국내로 들어온 것으로 추정되는데 도입과정에 대해서는 아직 밝혀진 것이 없다."라고 두개의 판본이 전래되었다고 되어있는데, 규장각에는 제가 검색해본 것으로는 간행연대 미상의 1책과 1772년 간행의 79책이 있습니다.

아마도 쓰시마를 통해 구한 판본이 규장각에 18세기말경에 소장된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관련 자료를 지금 찾지를 못하겠네요 -_-;;)

자, 서론은 이쯤하고, 오늘의 본론입니다. 이 책은 흥미롭게도 유럽으로도 전해졌습니다. 물론 누가 그런짓을 했겠습니까, ㅎㅎ

17-18세기에 중국의 책들은 예수회 선교사들을 통해 꽤 상당한 분향이 번역 소개되었지만 일본의 책은 정리하자면 딱 3명의 인물에 의해서입니다. 이 3명은 17세기의 엥겔베르트 캠퍼(Engelbert Kaempfer, 1651-1716), 이삭 티칭(Isaac Titsingh,1744-1812), 그리고, 마지막은 유럽인이 아니라 일본인 다이코쿠야 고다유(大黒屋 光太夫, 1751-1828)입니다. (혹시 지볼트는? 하고 의문이 드실지모르겠습니다만, 지볼트는 19세기의 사람이고 19세기에는 이미 상당수의 일본책과 지도가 서구권에 나갔으니 이번 포스팅에서는 제외합니다)

17세기 후반 엥겔베르트 캠퍼가 수집한 책들은 니콜라스 비천에게 전해졌습니다. 호! 역시 동바의 모든 지식은 비천에게로!

다이코쿠야 고다유는 18세기 후반 저멀리 러시아에 표류되어 가서 에카테리나 여제를 만나고 돌아온 사람인데(이전 포스팅 "오로시아국 이야기: 달콤한 꿈이 악몽으로 바뀌다 "참고하세요. 여기 클릭, 이때 자기가 가지고 있던 책들을 귀국 전에 1791년 상뻬쩨르부르그의 과학원에 기증하였습니다. 이 기증한 책의 대략 내용은 조루리 희곡집, 소설, 일본, 에도, 교토, 오사카, 나가사키의 지도, 서일본 33군데의 관음 신앙명소 소개책, 세쓰요슈(節用集)라고 하는 일본 중근세의 사전이었다고 합니다.

마지막으로 이삭 티칭은 VOC의 일본 파견 상관장으로 일본에 1779-1780년, 1781–1783년, 그리고, 1784년에 걸쳐 3번을 근무하였던 사람입니다. (이전 포스팅 1793년 데지마에서 보고한 규슈 시마바라의 지진과 쓰나미...에서 그에 대해 소개를 하였습니다)

이삭 티칭은 이후 아시아에서의 근무를 마치고 네덜란드로 귀국할때 일본의 책 콜렉션을 가지고 왔습니다. 그래서 이삭 티칭을 근대적 일본학의 시조라고도 평가를 하는데, 그냥 책을 가져와서가 아니라 일본어를 구사하고 책을 읽을 수 있었던 18세기 통털어 유럽에서 몇명되지 않는 사람이었고, 그 스스로 일본에 대한 자세한 책들을 저술하였습니다. 아래는 그의 책 중에 "Bijzonderheden over Japan" (일본에 대한 일러스트)라는 책 중의 일러스트입니다.


이삭 티칭은 1803년 그의 콜렉션 중의 일부를 파리의 비블리오테크 임페리알(La Bibliothèque Impériale)에 기증합니다. 이 기증 콜렉션에 "화환삼재도회"가 들어있었습니다. (비블리오테크 임페리알은 지금 프랑스 국립도서관 비블리오테크 나쇼날의 전신입니다)

그리고, 24년이 지난 1827년 이 "화한삼재도회"에 대한 유럽언어로 해제 번역한 연구가 출간되어 나옵니다.

19세기 초반 프랑스에 어학 천재 장 피에르 아벨 레무사(Jean Pierre Abel Remusat, 1788-1832)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이 사람은 원래 약학을 공부하다가 중국의 본초학에 대한 자료들을 접하고는 그만 점점 중국학에 빠져들어가 프랑스 중국학의 거의 초창기 거인이 된 사람입니다. 아예 레이무샤(雷暮沙)라는 중국어 이름을 사용할 정도였습니다.

(줄리앙 레오폴드 보일리가 그린 레무사의 초상입니다)

레무사는 도서관에서 티칭이 기증한 화한삼재도회를 연구하여 1827년 Notices et extraits des manuscripts de la Bibliothèque
du Roi 11 (왕립도서관의 문서에 대한 주목할 내용과 발췌문)이라는 학술지에 "Notice sur l’Encyclopédie japonoise et sur quelques ouvrages du meme genre" (일본 백과사전과 몇가지 비슷한 문건에 대한 주목할 점)이라는 논문을 발표합니다.
바로 이 제목의 일본 백과사전(Encyclopédie japonoise)은 바로 화한삼재도회이고 몇가지 비슷한 문헌은 훈몽도휘(訓蒙図彙)를 의미합니다.

이 연구논문의 이미지 몇개를 보여드리겠습니다.
우선 첫 페이지입니다

앞부분에 전반적인 일본과 백과사전류에 대한 설명이 나옵니다.

오른쪽 위부분에 會圖才三漢倭라고 쓴게 보이시죠. 이전에 인삼 시리즈에서 엥겔베르트 켐퍼가 조사한 아시아 약재이름도 그렇고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쓴 동아시아 관행을 그대로 지키고 있습니다. 물론 읽을 줄 몰라서 그냥 그림처럼 베낀게 아닙니다.

위의 두 이미지는 '이로하' 즉 일본어 가나를 소개한 것입니다.

이렇게 개략적인 설명을 한 다음 화한삼재도회의 목차를 하나 하나 모두 제공하고 있습니다.

프랑스어로 번역한 목차에 일본어 표기를 곁들이고 있습니다. 아래는 人부의 이국에 포함된 조선 부분의 해제입니다.

이 부분에 해당하는 내용은 아래입니다.

제목에 조선, 조선이라고 가나 표현, 그리고 난데없이 선비, 계림이 같이 적혀있습니다. (원래 선비, 조선이다가 이후 신라, 고려, 백제의 삼한이 되었다는 얘기가 처음 적혀있습니다) 이 내용이 간략하게 프랑스어 해제에 적혀있습니다.

해제의 내용에는 '신공황후의 신라 정벌' 이야기도 옮겨져있는데, 옆의 각주에 엥겔베르트 캠퍼의 자료가 적혀있습니다.

화한삼재도회는 원래 중국의 삼재도회가 원본이지만 일본을 거쳐 동아시아뿐 아니라 유럽에도 일찍 그 책이 전해지고 연구가 진행되었습니다. 아마 어쩌면 동아시아에 대한 상당 부분의 정보가 이들 연구를 통해 상세하게 정확한 부분은 정확한대로 부정확한 부분은 부정확한 대로 전해진 게 아닐까 싶습니다.

화한삼재도회의 외국 예를 들면 유럽이나 조선에서의 수용에 대해 좀더 많은 연구들이 나오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다음에는 더 흥미있는 소개를 드리면 좋겠습니다.

**이삭 티칭은 일본 근무를 마치고 바타비아에서 근무하다가 이후 1794년 네덜란드 국가 대사 및 VOC의 대표로 건륭제 치세 60년 경축행사에 참가합니다. 동행했던 대사 일행 중에 판 브람 하우크헤이스트(van Braam Houckgeest)가 쓴 "Voyage de l'ambassade de la Compagnie des Indes Orientales hollandaises vers l'empereur de la Chine" (중국 황제에게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의 대사로 참가한 여행)이라는 책에 건륭제를 알현하는 자리에 몽골과 코레아 사신들과 같이 들어간 이야기가 나옵니다. 이 이야기는 언젠가 따로 다시 들려드리겠습니다만, 코레아라.... 당시 71세의 홍양호(洪良浩, 1724 - 1802)가 정사로 조선에서 파견되었는데, 그는 그날 같이 건륭제를 알현한 홍모인 이삭 티칭을 보고 어떤 감상을 남겼을까요. 문득 궁금해집니다.

**우선 화한삼재도회의 유럽 전래에 대해서는 "Collecting japanese books in Europe from the seventeenth to the nineteenth centuries", P. F. Kornicki, Bulletin of Portuguese - Japanese Studies, núm. 8, june, 2004,에서 처음 알게되었습니다. 그래서, 원 출전들을 찾아보았고, 아벨 레무사의 논문은 https://archive.org/details/NoticesEtExtraits11 이 출전입니다. 화환삼재도회의 이미지는 꽤 여러군데서 찾을 수 있는데, 제가 이미지를 찾은 곳은 그 중에 시마네 대학 디지털 라이브러리 http://www.lib.shimane-u.ac.jp/0/collection/da/da.asp?mode=vt&id=1317 입니다. 이삭 티칭의 책은 일본 국회도서관의 아카이브 중에서 http://www.ndl.go.jp/nichiran/data/L/195/195-002l.html 이 출전입니다.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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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빛의제일 2015/11/09 22:55 # 답글

    화한삼재도회는 어쩐지 저희집 책꽂이 구석진 아래를 차지한 한글판 브리태니커 느낌입니다.
    다음에는 더 흥미있는 이야기를 하신다니, 으허허허 좋다 소리가 저절로 나옵니다. ^^;;
  • 迪倫 2015/11/11 11:42 #

    일단 더 재미있는 연구 결과들이 나올때까지 기다려 봅시다....흐음....
  • 행인1 2015/11/09 23:27 # 답글

    이렇게도 정보가 전달되고 교류가 이루어지는군요.
  • 迪倫 2015/11/11 11:43 #

    교류의 역사가 때로 생각보다 많이 얽혀있지요 ^^ 저는 그 점이 늘 매혹적입니다.
  • Nocchi 2015/11/12 12:12 # 답글

    1712 년의 일본의 외국 연구 역량이 당시 우리나라랑 차이가 적지 않게 납니다 ;;;;
    문제는 300년이 흐른 지금도 아마 일본의 수준에는 따르기 어려울 거 같습니다
    근데 일본이란 나라가 세계사적으로도 보면 은근히 강대국 입니다
    평면적 단순 비교 보다는 우리는 우리 나름대로 잘하는 분야를 찾으면 될 듯 ..
    아니 찾아서 잘 키워야 그나마 작은 나라 라도 국권을 유지 할 수 있지 않을까요??
    그런 생각이 듭니다
  • 迪倫 2015/11/13 06:28 #

    저는 꽤 오랜기간 일본과 한국을 비교하면서 한국도 일본과 다르지않은 것이 있었다는 것을 찾으려 했었습니다. 그 결과가 실은 현재까지로는 상당히 설명하기 어려운 복합적인 내용이 되어버렸다고 솔직히 해석하기가 제 능력 밖의 레벨인 것 같습니다.

    최근의 제 생각은 아직 완료된 것은 아니지만 일본과 한국은 대단히 다른 단계를 거쳐 발전해온 문화라서 일본은 이런데 한국은 이렇다고 비교하는 프레임 자체가 실은 적용되지않는 것이 더 많다 정도에 가있습니다.
    아마 남기신 말씀이 이 생각과 일맥상통하는데가 있지않을까 생각합니다.
  • 남중생 2016/01/04 16:03 # 답글

    이삭 티칭과 연행사 이야기는 서유기의 네덜란드 항목에서 언급하신 적이 있으셨죠. 기억납니다.^^ 재미있는 글, 기대하겠습니다.
  • 迪倫 2016/01/11 12:30 #

    티칭과 연행사의 조우에 대해 아직 조선쪽 자료를 좀더 찾고있습니다. 언젠가 좀더 구체적인 자료를 발견하면 소개해드리겠습니다.
  • 남중생 2017/02/01 00:55 #

    다음과 같은 기록을 찾았습니다.
    1794-5년 사행 때, 진하사(정사)였던 박종악이 북경에서 정조 임금에게 쓴 편지입니다.
    편지를 쓴 날짜는 1795년 (을묘, 정조 19) 정월 28일입니다.

    "외국에서 오는 모든 사신은 예부에서 담당합니다. 다만 하란국(荷蘭國)의 사신은 화신(和珅)이 점검합니다. 그들이 오갈 때는 갑사를 보내 그들의 관소(館所)를 지키고 사람들의 통행을 금지하는데, 그 의도를 모르겠습니다."

    출처는 박종악이 정조에게 쓴 편지 모음집인 수기(隨記)인데, 2016년 10월에 나온 따끈따끈한 책이죠!
    현대어 번역은 이 책의 244 페이지, 원문은 337 페이지, 영인된 이미지는 402 페이지의 119-b를 참조하시면 됩니다.
  • 남중생 2017/02/01 01:01 #

    적륜님께서는 홍양호(洪良浩, 1724 - 1802)를 말씀하셨는데, 1794년 겨울에는 두 연행사가 16일 정도의 차이를 두고 앞뒤로 출발했습니다. 연행사 목록이 잘 정리된 블로그 글이 있어서 함께 소개드립니다. (http://erebus4.tistory.com/254) 홍양호는 동지사 겸 사은사의 대표(정사)였고, 먼저 출발한 박종악이 진하사 정사였습니다. 네덜란드인들과 조선인들이 함께한 자리가 건륭제 치세 60년 경축행사라면 진하사가 참석하지 않았을까 싶네요. 안타깝게도 박종악이 정조에게 보낸 편지글 중에 네덜란드가 언급되는 것은 달랑 저 한 문장 같습니다.
  • 迪倫 2017/02/01 02:27 #

    감사합니다! 소개해주신 블로그에 정리 잘되러있어 도움이 될것 같습니다.
    실은 이 포스팅 이후에 티칭과 만난 조선쪽 기록 찾았습니다. 네덜란드 사절단의 이름까지 나와있더군요. 그리고 조선 사절단이 네덜란드 사절단과 같이 있는 기록화도 찾았는데 이게 티칭 일행인지 아직 확인을 못했습니다. 아무튼 언제 정리해서 소개할까 고려 중이긴 합니다만 뭔가 좀더 이어지는 내용이 있을지 좀더 찾아보고 있는 중입니다.
  • 남중생 2017/02/01 11:47 #

    우왓, 기록화라니... 대단하네요! 티칭이 중국황제와 일본쇼군을 둘다 만난 유일한 서양인이라고 여겨지는 만큼, 중국에서 만난 조선과 네덜란드의 사신단이라면 티칭 일행이 맞을거라고 사료됩니다. 차후의 포스팅도 기대되는군요.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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