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의 산을 지키는 엘 에스빠뇨르. by 迪倫

사무라이 요스, 캡틴 차이나와 지룡!에서 이야기를 계속 나가기 전에 다시 시간을 앞으로 약간 돌려 지금 얘기드리는 이 동남 중국해 바다에 빠뜨릴 수 없는 또다른 선수를 소개한다고 얘기했습니다.

실은 이번 시리즈를 워낙 중구난방으로 왔다갔다 하고 있기는 하지만 전하고 싶은 이야기는 실은 하나입니다. 지금으로부터 몇백년전의 동아시아도 서로 서로 이어진 거대한 흐름 속에서 각자 상황에 따라 역사를 만들었다는 단순한 사실을 같이 얘기해보았으면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게 단순히 조선이 눈감고 귀막고 바보같이 있어서 선진 유럽문명을 받아들이지 않았다거나, 혹은 한반도는 역사 내내 항상 전략적 요충지라서 늘 외세의 개입에 휘둘리는 한많은 땅이다...같은 게 절대 아니라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타이완의 경우 1600년대 처음 국제지정학적 중요성에 부각되어 여러 일들을 겪지만 1680년대 들어 갑자기 다시 뒷문으로 퇴장하여 19세기 후반 일본이 다시 접근할때까지 전략적 중요성 마이나스 지역으로 지냈습니다. 17세기 중반까지 조선은 이미 충분히 대륙의 정세에 휘둘렸고, 그나마 17세기 후반부터 19세기 초반까지 전략적 요충지에서 한발 빗겨가서 평화로운 시대를 누릴 수도 있었습니다. 임진왜란이 붐인 것은 흥미롭지만 상투적인 반응은 실은 현재의 정치적 맥락만을 보여주는 것이지 역사적 맥락이나 장기 흐름 속에서의 인간사회를 보여주지는 않습니다. 이번 시리즈에 제가 소개하는 개별적인 인간들의 이야기는 조금이나마 전체적인 시각으로 인간을 보는 조그만 항목 하나 하나를 다른 연구자들이 열심히 연구해놓은 것을 그저 읽고 같이 얘기해보자는 정도입니다. 그러니 걸러서 읽어주시면 좋겠습니다.

꼰대같은 서론이 너무 길어졌네요. 자, 17세기 동중국해 바다로 다시 돌아갑시다.

1600년 현재 여러분이 만약 지구를 모니터링하고 있는 화성인이라면 어떤 제국이 가장 액티브하고 프라우드 쩌는 지구인들이라고 판단하시겠습니까?

아마도 뭔가 아슬아슬 위험한 정도로 보자면 카스티유 왕가가 이끄는 스페인 제국이 단연 탑이 아닐까 싶습니다. 스페인은 16세기 중반 지금의 멕시코 누에바 에스파냐와 페루의 포토시에서 막대한 은 광산을 발견하는 한편, 태평양을 가로지르는 항로를 개척하여, 처음으로 지구를 한바퀴 돌아서 이어주는 네트워크를 만듭니다.

게다가 1580년에는 스페인의 합스부르크 왕가가 포르투갈 왕위를 계승하여 버려서 이베리안 유니온이라고 부르는 스-포 연합국이 형성됩니다. 물론 정치체로서의 국가로는 별개로 존재하지만 왕이 하나이고, 해외에서도 서로 각별히 콜라보를 하라는 이 상태는 1640년까지 60년간 이어집니다. 그리고, 그와 거의 동시에 1581년 합스부르크 왕가의 영지였던 '저지대' 즉 니덜란트가 반란을 일으키고 네덜란드 공화국을 선포합니다. 1600년 전후의 전세계 바다에서 일어났던 스페인+포르투갈 VS. 네덜란드 (+잉글랜드) 전투와 해적질은 이 일의 확장팩일뿐입니다.


게다가 또하나의 키워드는 당시 스페인이 카톨릭 신앙의 종주국이었다는 점입니다. 이게 나중에 동아시아 역내에서도 좀 미묘한 상황을 불러오게 됩니다. 아무튼 그 얘기는 다시 하겠습니다.

동아시아에 여송(呂宋)이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루손(Luzon)섬에 마닐라라는 거점을 확보한 것이 1571년. 그런데 시작부터 상당히 거센 저항을 받습니다. 16세기 동남중국해의 최고 악명높은 해적 두목 중에 리마홍(중국 이름은 林鳳인데 민난어로는 림홍이라고 읽는다고 합니다. 서구권 자료에는 Limahong으로 보통 등장합니다)이라는 해적이 있습니다. 1574년 마닐라에 아예 자신의 왕국을 만들겠다고 스페인인들을 두번이나 전면적으로 공격하는 일이 있었습니다. 간신히 중국 해적들의 공격을 이겨내고 마닐라를 역내에 보다 확고한 위치를 잡아 멕시코 아카풀코에서 마닐라로 오고 가는 태평양 횡단 노선을 확보하고 나니, 이번에는 일본에서 위협을 가합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조선만 타겟으로 삼은게 아니라 정말 세계 정복을 하려고 했던 것인지, 임진왜란을 일으킨 1592년 마닐라에도 편지를 보내 이미 자기가 레쿠오이(류쿠)와 아코라이(조선)을 이미 정복했으며, 동천축(동남아 국가들)에서도 조공을 바치고 있는데, 여송국은 아직 조공을 바치지 않는다며, 중국을 정복하러 갈 것인데, 그 노정에 마닐라가 조공을 바치고 일본의 무역상들을 수락하지않으면 군선을 몰고가서 쳐부수겠다. 내가 두달 안에 나고야로 내려갈텐데 그때까지 사신을 보내라, 안그러면 처들어간다...그런 편지를 보냅니다.
아래의 이미지는 바로 이 마닐라에서 받아서 스페인 왕실에 보낸 편지의 영어 번역입니다. 내용은 위에 요약한 대로 입니다.



물론 히데요시가 침공을 하지는 않았지만, 4년 뒤인 1596년 멕시코로 가다가 일본에 난파한 산펠리페호의 경우, 실제 비우호적인 사건이 되었기도 하고, 게다가 최초의 선교사 순교사건까지 이어져, 일본에 대한 스페인의 센치멘트는 그야말로 공포와 경악!

이렇게 마닐라의 스페인인들은 적들에게 둘러싸여있다는 위기감이 그 기저에 항상 깔려있었다는 것이죠. 실제 이후의 스페인인들의 해역내 활동은 모두 이 위기감을 통해서 이해할 수 있을 정도입니다.

마닐라의 도시구조 역시 그래서 인트라무로스(성벽 안)라는 스페인인 구역과 파리안(Parian de Alcaceria)이라 부르는 중국인 구역을 엄격히 구분하였습니다. 물론 필리피노나 일본인들 역시 구분된 구역으로 나눠두었습니다.

한편 주위의 동아시아 사람들에게 스페인인들은 어떤 모습이었느냐면, 일단 지구를 돌아 온다는게 아직 상식이 아니던 시기이니, 아메리카 대륙에서 온 은을 마닐라에 황금산이 있어서 그 산에서 난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이쯤되면 공공의 타겟이 되는거죠.

1603년 5월 23일, 마닐라에 3명의 중국 관리들과 일행이 도착합니다. 이들은 자신들을 판관이라고 소개하며 마닐라 지사를 만나기를 요청합니다. 총독을 만난 3인의 관리들은 도착하기 4일전 항해도중에 작성한 서신을 지사에게 제출합니다. 복건의 군사령관이라는 찬치안의 서명이 된 이 서신에는 이 방문의 목적이 루손섬의 카비테에 매년 금 10만량, 은 30만량이 나는 산이 있다는 루머를 확인하고, 이미 중국인들이 엄청난 양의 금은을 중국으로 반입하고 있으니 만약 이 황금산이 사실이라면 누구든지 액세스해서 금은을 캘 수 있어야 할 것이다. 그러면서 일행중의 한명인 티오헹이 이 산의 존재를 황제에게 상소를 올려 환관 코차이가 황제로부터 이 내용을 확인하라는 임무를 띄고 같이 왔다....라는 것이었다고 합니다. 또다른 한명의 관리는 지사가 두려워할 것 없다, 우리도 이 내용을 믿기는 어렵지만 확인하라고 하니 임무는 수행하려한다 는 등의 말을 합니다.

마닐라 지사 돈 페드로 아큐나는 이들에게 인트라무로스 내에 숙소를 제공하고 임무 수행에 편의를 봐줍니다. 다음날부터 26일까지 이들은 중국인 구역에서 재판 및 송사를 집행합니다. 한편 당시 마닐라의 식민지 법원 아우디엔시아(Audienci)의 판사들은 마닐라 지사의 반대파였는데, 이들이 이 일에 대한 자체 조사에 들어갑니다. 27일 법정에서 1차 조사 결과가 보고되고 지사는 조사를 이유로 이들 중국관리의 활동을 중지시키게 합니다. 이어지는 날동안 마닐라 내부에서 지사와 법정판사들 간에 이 문제로 서로 치킨게임을 하는데, 이로 인해 중국관리들과 마찰이 계속 발행합니다. 이들은 출발 전날 기어이 카비테를 찾아가 산을 찾기까지 하는데, 결국 아무일도 없이 끝나긴 했지만 스페인인들에게 중국이 뭔가 자신들을 노리고 있다는 확신을 주게됩니다.

이일은 중국측의 기록도 있습니다. 공문을 작성한 찬치안은 간이첸, 이름이 언급되지않았던 두번째 관리는 왕시호, 환관 코차이는 가오차이이라고 합니다. 중국측에서는 이 일을 지방민 세력이 해외 무역을 하기위해 거짓 정보로 조정의 고위층을 움직인 것으로 결론을 내리고 돌아온 후 상소를 하고 일행을 이끈 티오헹등은 효수하고 본보기로 삼았다고 합니다.

그렇지만 그걸 알리없는 마닐라측은 전혀 다르게 받아들이고 있었고, 이 고조된 위기감은 성벽에 붙어서 지어진 중국인 구역의 집들을 허물고, 성벽을 수선하며, 중국인 구역의 수령들에게 정착인들의 인물정보와 무기 소유 여부들을 모두 제출하게 하는등 일촉즉발 위기 상황에 대한 대처를 시작합니다.

이에 자극받은 중국인들 역시 11월 반란을 일으키려고 준비를 하다가 스페인인들이 미리 준비에 들어가자 일정을 앞당겨 10월 3일 저녁 2천명이 성문 앞에 모여 방화를 하면서 폭동을 일으키기 시작합니다. 다음날 아침 성문을 열어달라는 요구가 거절당하자 본격적으로 스페인군인들과 무력 충돌이 시작됩니다. 이어지는 날들에 일본인들을 동원한 스페인인들이 중국인들을 진압하기 시작합니다. 게다가 군함까지 지원 포격을 시작하면서 중국인들은 마닐라에서 퇴각하여 바탕가 지방의 산파블로로 도망을 칩니다. 결국 지리멸렬해진 중국인들을 10월 20일 스페안 군대와 일본인, 필리핀 원주민 부대가 최종적으로 진압에 성공합니다. 사면을 받은 사람은 300명 정도이고, 나머지는 갤리선의 노예가 됩니다. 이 사건으로 중국인 2만 5천명 정도가 희생을 당했다고 합니다.

반란과 학살이 지난간 후 마닐라는 조사에 착수합니다. 먼저 이 처음의 반란이 3명의 중국관리의 방문과 관련이 있는 것인지, 그래서 중국측의 의도에 의한 것인지를 조사합니다. 이다 아니다의 의견이 나뉘었고 증언도 나뉘어졌지만 결국 관련이 없는 마닐라 정착인들의 돌발적인 폭동이었다고 결론을 내립니다. 그러자, 그러면 중국과 다시 무역을 재개하자고 하고, 마카오에 도미니코회 선교사를 사신으로 보내 중국 광동 복건에 자초지종을 설명하는 미션을 실행합니다. 이에 대한 대응으로 복건성 천저우의 대마닐라 무역상들이 방문하여 상황을 파악하고 복건 조정에 상황을 설명하여 1604년 5월 마침내 다시 13척의 중국배가 마닐라를 찾습니다. 마닐라에서는 반란을 일으켰던 사람들의 재산을 모두 몰수하여 이름을 분류하였다가 이들의 가족들에게 다시 돌려주는 굿제스처도 취합니다.

(기본적으로 명 조정이나 지방 관청들은 바다 바깥으로 나간 백성들에 대한 의무를 더 이상 챙기지 않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기본적으로 이들이 이미 국법을 어긴 해적들인 경우가 대부분이고, 이미 복건 광동의 해안지역은 명이 포기를 한 지역으로 봐야 이 후속처리 과정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앞서 소개한 리단은 이때 살아남았지만 결국 스페인과의 비즈니스에 대해 한계를 느끼고 대신 히라도를 택한 것으로 보입니다.

한편 마닐라의 스페인인들은 통합이베리안 동료인 포르투갈인들이 이익을 맘껏 즐기듯이 이제 본격적으로 중국과 일본 시장에 직접 액세스하려고 시도를 합니다. 그리고, 이 시도는 카톨릭 내 그룹들간의 갈등과 맞물려 점점 복잡해집니다.

게다가 중국과 어느 정도 관계가 안정되어 아카풀코-마닐라-복건 라인이 잘 굴러간다 싶으니까, 싸우자! 붙어보자! 하면서 반란군 루크 스카이워크가 아니라 네덜란드가 등장한 것입니다.

다음편에서는 이 중국에 대한 접촉 시도와 이 와중의 조선 청년 에피소드, 그리고, 다시 타이완의 등장으로 이야기를 넘기겠습니다. (이야기가 자꾸 늘어지는데 괜찮은가요? 너무 늘어지면 대충 요약할까 싶기도 하고....청어시리즈를 마무리 못한 트라우마가 ㅠㅠ)

**이번 편에서는 지난편에 소개한 자료들 중에서
"An overview of the Spaniards in Taiwan (1626-1642)", Jose Eugenio Borao, National Taiwan Univ. 2007,
"Macao as the non-entry point to China: the case of the Spanish Dominican missionaries (1578-1632)", Jose Eugenio Borao, National Taiwan Univ.2009 ,
"Pulling the Spanish out of the 'Christian Century': Re-evaluating Spanish–Japanese relations during the seventeenth century.", Thomas W. Barker. 2009 외에
"The massacre of 1603: Chinese perception of the Spaniards in the Philippines", Jose Eugenio Borao, National Taiwan Univ. 1998을 좀 자세하게 참고했습니다.
그리고, 인용한 히데요시의 편지 부분은 "The Philippine Islands, 1493-1898: Relating to China and the Chinese", Volume 4, Emma Helen Blair, A.H. Clark Company, 1915 의 구글북이 출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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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빛의제일 2015/10/12 22:28 # 답글

    저는 늘어짐 대환영입니다.
    이번 시리즈 읽으면서, 이번 포스트는 옆동네사람들이 필리핀에서 이리 저리 태그매치한 느낌입니다.
    그 와중에 조선 청년은 무엇을 할까 기대가득입니다.

    청어 시리즈는... 요즘 대하와 꽃게철 시작한지라 제가 메뉴는 바꾸어서 먹겠습니다. ^^(대하 꽃게 산지에 사는 사람입니다.)
  • 迪倫 2015/10/19 11:05 #

    이번에는 타이완에서 이리저리 태그매치하는 이야기들이 이어집니다.

    아, 그냥 막 늘어져보기로 했습니다. '갈데까지 가보자....' 뭐 그런 느낌입니다만...
  • 이종혁 2015/10/13 10:17 # 삭제 답글

    태국여행에서 현지 화교친구와 이야기를 나눈적이 있습니다.

    아무래도 명나라 시절/대항해시대 물밖으로는 관리나 외교적인 보호를 받지 못한 상태이다보니 그 이후에 정착해서 살아도 혈연이외의 뭔가보다는

    그 나라 사람의 정체성이 강한게 지금 필리핀 대통령이 된 분부터 태국현지에 사는 사람들의 입장이 조금은 이해가 됩니다.

    화교후손(?)이긴한데 본인은 중국어를 못한다..라고 하니 일본이나 미국에 있는 화교들과는 아무래도 궤..랄까? 조금 다른 느낌을 받았습니다.

    대만이라는 나라의 역사 근간에 대해서는 여러 각도로 봐야 이해가 되겠습니다.
  • 迪倫 2015/10/19 11:07 #

    차이니즈가 바깥 세상에 나와보면 얼마나 많은 카테고리의 차이니즈가 있는지 새삼 놀랄때가 많습니다. 그걸 그냥 중국인으로 묶으면 놓치거나 잘못 보는 일이 너무 많을겁니다.

    타이완은 대단히 흥미로운 복합성이 있는 곳이라서 단순히 중국으로 간주하거나 친일국가라고 몰아세워서는 안되는 것 같습니다. 공부를 하면 할 수록 어려워지네요....
  • 행인1 2015/10/13 22:57 # 답글

    상당히 파란만장한 필리핀의 역사군요...
  • 迪倫 2015/10/19 11:08 #

    필리핀은 저도 아직 잘 모르는 국가입니다. 그나마 17세기 스페인령 시기만 조금 찾아본 정도인데, 이후 21세기까지 미국과도 맞물려 정말.... 여기대면 한국은 상대적으로 뭐가 침략과 한의 역사라고 할 수 있을까 싶을 정도입니다.
  • 밥과술 2015/10/15 18:02 # 답글

    통신이 발달하지 않았던 시절에 여기에도 가짜 대표단이 공식사절을 사칭한 사건이 있었군요. 옛날에 일본에서 중국으로 조공무역을 할때 한번 가면 엄청 남는 장사였던지라 라이센스를 속여서 갔다가 진짜 사신들하고 가짜 사신들하고 중국땅에서 싸움도 벌어지고 그랬다는 이야기가 생각이 납니다~

    스페인이 참 대단한 나라였군요. 재미있게 공부하고 갑니다~
  • 迪倫 2015/10/19 11:12 #

    스페인은 16-17세기에는 아마도 명나라에 비교할 수 있는 유일한 제국이 아니었을까 싶을 정도입니다. 그야말로 해가 지지않는 제국을 처음으로 인류 역사상에 구현한 나라는 영국이 아니라 스페인입니다.

    그리고, 17세기 초반 이미 복건 절강 광둥의 지방정부는 명나라 중앙정부 조정과 무관하게 자신들의 국가를 운영하고 있었던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이미 중앙 권위가 무너졌던 것 같습니다. 최근에 명말 청초 연구들을 보면 그동안 알려진 것보다 더 활발한 해양무역의 네트워크를 밝히고 있어서 상당히 흥미로운 것 같습니다.
  • 남중생 2015/11/06 17:13 # 답글

    황금산이 필리핀에 위치한 게 아니라 더 멀리 "아메리카"라는 대륙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중국인들은 이 뒤로 미국을 금산이라고 부르게 되고... 사실 이게 제대로 된 연결고리인지는 모르겠지만 1세대 차이니즈 아메리칸들은 미국을 gold mountain이라고 알고는 건너갔다고 합니다. 예전에 미국쪽 교과서에서 읽은 기억이 나네요. 아마 Lisa See의 On Gold Mountain이라는 책의 일부분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 迪倫 2015/11/07 15:00 #

    실은 金山은 19세기 캘리포니아를 가르키는 것이죠. 리사시의 책 역시 그의 가족사가 19세기 캘리포니아 금광붐을 타고 건너온 중국 이민사를 다루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필리핀의 금산은 아마 좀더 정확히 말하자면 17세기 이후에 잊혀진 일이 되었을 것입니다. (필리핀의 금산은 복건성이 루머가 퍼진 무대이고, 캘리포니아의 금산은 광동성이 루머의 무대이니까요.)

    하지만 말씀처럼 어쩌면 이 두 금산 사이에 저 아래 무의식적인 전승관계가 있을지도 모릅니다.필리핀에 대해 좀더 공부를 해봐야할 것 같네요^^
  • 남중생 2015/11/07 17:05 #

    오오 그러니까 한 줄로 연결된게 아니라 평행선(parallel)이라는거군요. 파고들수록 재미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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