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생 완벽이 바다 건너 다녀온 이야기 by 迪倫

이상한나라의 교시로 시즌 2: 도쿠베가 천축에 간 이야기에서 제가 무슨 대단한 비밀의 사나이를 소개하는 것처럼 글을 맺었지만, 실은 이미 학계에는 잘 알려진 인물이기도 하고 실제 어린이용 도서라든가 이곳 저곳 신문이나 책에서 소개를 하고 있는 사람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무엇보다 2007년 KBS의 한국사傳에서 이미 상세하게 다룬 적이 있다고 합니다. 하지만 의외로 마이너한 프로그램인가 그렇게까지 자세하게 알려져있지는 않더군요. 원전의 내용도 번역이 제대로 된 적이 없고....

그래서 이번에는 조선시대 스미노쿠라 상선을 타고 동남아시아를 다녀온 조선 사람의 이야기를 그야말로 자세하게 들려드리겠습니다.

조선시대에 지방에는 향안(鄕案)이라는 문서들이 있었습니다. 기본적으로 조선시대의 지방수령은 중앙에서 부임하는 것이라 로컬 사정에 어두울 수 밖에 없으니 이를 어드바이스 하는 자문기관으로 로컬 양반들의 단체인 향청이 보좌하였는데, 이 향청에 올라가있는 양반들의 멤버십 리스트가 향안입니다. 당연히 가오가 중요한 팩터이니 향안의 순서는 집안의 위상이나 전직 벼슬의 품계, 재산등등이 모두 고려되는 것이죠. 2004년 진주의 강태중씨가 집안에 전해오던 고문서들을 국립진주박물관에 기증하였는데, 그 중에 1634년에 제작된 진주 지역의 향안 한부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향안에 유학(幼學) 즉 과거를 치지않은 선비 한 명이 꽤 상단이 기록되어있었는데, 이 사람에 대해 한국 향토문화 전자대전의 데이터베이스에는 "이 책에 등재된 인물 중에는 ‘진주 출신으로 임진왜란 중에 포로로 잡혀가 동남아 등지에서 거금을 모았다’는 조완벽(趙完璧)이 유학(幼學)으로 기록되어 있어 눈길을 끈다."라고 설명을 하고 있습니다.

한편 이 향안으로부터 27년 전인 1607년. 왜란을 마치고 9년이 지난 후 처음으로 에도 바쿠후와 교린을 다시 회복하고 피로인 즉 왜군에 납치된 조선인들을 데리고 오기 위해 처음으로 회답 겸 쇄환사(回答兼刷還使)라는 이름의 조선 사신단이 일본을 방문했습니다. 이 쇄환사 사신단의 정사는 여유길이었고 부사는 경섬(慶暹, 1562~1620)인데 일본에서 납치된 조선인 1418명을 데리고 돌아왔는데, 이때 경섬이 쓴 사신단의 일기 "해사록(海槎錄)"이라는 기록이 있습니다. 이 기록의 윤 6월 1일자의 기록을 잠시 보겠습니다.
큰 비. 왜경에 머물렀다. 일로(一路)에서 쇄환(刷還)된 남녀가 1백여 명이나 되는데, 모두 맨손으로 따라와서 우리 일행의 지공한 나머지 쌀로써 날짜를 계산하여 양식을 주었다. 포로 진주(晉州) 선비 조완벽(趙完璧)은 영리하여 믿을 만한 사람이었다. 유문(諭文) 1통을 주어 초유(招諭)하여 쇄환하게 하였다. (후략) **註: 유문은 일종의 포고문, 공지문같은 것입니다. 당시 조선인 피로인을 조선으로 송환한다는 바쿠후의 명령이 일본에 잘 알려지지않아, 공지문을 조완벽에게 주어 다니며 조선인 포로들을 모아오라고 시켰다는 것입니다.

자, 오늘의 주인공 진주선비 조완벽을 소개합니다.

위의 두 기록에 언급된 서생 조완벽은 지금은 약간 그런 사람이 있었나 싶은 정도지만 17세기 초반 18세기까지 조선 선비들 사이에 꽤 알려진 인물입니다. 왜냐하면 처음으로 베트남을 다녀온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조완벽에 대한 이야기는 여러 책에 언급되어 있지만, 크게 두개의 문헌이 최종 정보 소스입니다. 하나는 지봉유설의 이수광의 지봉집에 실린 조완벽전(지봉집(芝峯集) 芝峯先生集卷之二十三 > 雜著 > 趙完璧傳) 과 또 다른 하나는 매창 정사신의 쓴 매창선생집에 실린 조완벽전(매창집(梅窓集) 梅窓先生文集卷之四 > 傳 > 趙完璧傳)입니다.
이 두 문헌은 같은 조완벽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기는 하지만 관점이나 전하는 콘텐츠가 조금 다르게 구성되어있습니다.

그래서, 제가 이 두 문헌을 섞어서 재구성해서 통합 조완벽전 적륜버전을 소개해드리겠습니다. (지봉집이 출처면 (지), 매창집이 출처면 (매)라고 표시를 하겠습니다)

(지)조완벽은 진주 출신의 선비이다. 약관의 나이 20살에 정유재란(1598년)으로 왜군에 잡혀 포로로 왜황이 산다는 교토로 갔다. 왜인에게 복속되어 일을 하는 것이 힘이 들고 늘 고향을 생각하며 돌아가기를 바랬다. 왜놈들은 목숨을 가벼이 여기고 이익을 중요시 여겨 상업을 농사로 삼고 배의 노를 말안장 삼아 바다 밖 남쪽의 여러나라를 다니기에 도달하지 않는 곳이 었었다. 그런데 조완벽이 문자를 잘 알아 배에 태우고 다녀 갑진년(1604년)부터 3년간 연달아 안남국을 왕래하였다.

(매)조완벽은 진주의 선비인데, 장령 하진보의 조카손녀사위이다. 정유재란때 왜인에게 잡혀서 일본으로 가서 사환(使喚)으로 일을 했는데, 우리나라 노비와 같은 것이다. 왜인이 안남국으로 장사를 하러 가서 큰 이익을 얻으려고 하면 반드시 절강인으로 바다와 바람을 잘 아는 자와 글을 잘아는 자를 구하고, 그런 다음에 출발을 했다. 완벽의 주인 왜인이 먼저 바람을 잘아는 뱃사람을 구했는데 글을 잘 아는 자를 구하지 못해서 걱정을 했다. 완벽은 진주에서 글공부를 하여 글을 좀 읽을 수 있었는데, 주인 왜인이 그를 데리고 가려하면서 약정을 써주기를 안남을 다녀온 후에는 완벽을 어디로 가든지 풀어주기로 했다. 완벽은 고국으로 돌아오고 싶어서 죽음도 피하지않고 그를 따라나섰다.

註: 이 왜인 주인을 이와오 세이이치(岩生 成一)가 "安南国渡航朝鮮人趙完璧伝について"(안남국도항조선인 조완벽전에 대하여) (朝鮮學報 6, 1954年8月)라는 연구에서 1604년부터 1610년까지 안남을 6번 다녀온 스미노쿠라료이(角倉了以 1554 - 1614)로 밝혔습니다. 조완벽은 스미노쿠라 선단이 최초로 안남을 갈 때 서기로 갔던 것인데, 덴지쿠 도쿠베가 역시 서기로 고용되어 처음 천축으로 가던 배의 선주 스미노쿠라 료이치의 할아버지가 스미노쿠라 료이입니다.

(지)안남은 일본에서부터 해로로 37,000리 떨어져 있다. 사쓰마로 바다로 나아가 중국의 장주(漳州), 광동(廣東)을 거쳐 안남의 흥원현(興元縣 = 지금 베트남 북부의 흥옌 Hưng Yên)에 도착하는데, 여기서 그 나라의 동경(통킹 Đông Kinh . 통킹은 도시의 이름이라기보다 국가/지역의 이름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동경은 아마도 통킹의 수도였던 하노이를 의미합니다)까지는 80리를 더 가야하고 그곳이 수도이다. 나라는 두개로 나눠져 있어서 하나는 안남국(安南國)이고 다른 하나는 교지국(交趾國)인데, 서로 전쟁 중인데 승부가 나지않고있다. (註: 당시 형식상의 왕조는 레이黎씨였지만 실권은 북의 쩐鄭씨와 남쪽의 응우엔阮씨가 대립하여 나라를 나누고 있었다고 합니다)

(지) 조완벽이 또 말하기를 광동까지 70리이고 해중에는 계룡산이 있는데 산이 대단히 높고 험하며 땅은 모두 얕아서 위험하다. 계룡산의 동쪽은 물이 동으로 흘러 배가 진행하기 대단히 어렵다. 반드시 산을 따라 안으로 지나가지않으면 동중국해로 멈추지않고 떠다니게 된다. 해류는 대략 이처럼 급하다. 일본에서 밤낮으로 40일 또는 5-60일을 가면 안남에 도달한다. 돌아올때는 해류를 타고 15일 밤낮으로 가면 일본에 도달한다. 그래서 매3,4,5월에 갈 수 있고 6월 이후에는 갈 수가 없다. 또한 왜선은 소형선이어서 큰 바다에는 나갈 수 없기 때문에 백금 80냥을 주고 당선을 구입하는데, 배의 선원은 모두 180 여명에 달했다. 중국인의 관습에는 해로를 잡는 자를 선주(선장)으로 삼으며, 지남침을 사용하여 동서 방향을 잡고, 또한 노끈에 추를 달아 떨어트려 바다 밑바닥의 흙을 건져올려 그 색을 판별하여 가깝고 먼 방위를 정했다.

(매)절강인과 함께 배를 타고 안남국으로 향하는데 해로가 수천리인지 알기어려울 정도로 대양이 망망했다. 잠시 배를 대고 정박할 섬이 없이 가는데, 절강출신 뱃사람 후풍인(候風人)은 항상 배 위에 있으면서 오량선(五緉扇)과 해시계로 바람을 살피며 밤에는 분방위(分方位)로 별을 관측했다. 항상 긴 노끈에 쇄추를 잘아 바다에 떨어뜨려 바닷 흙을 끌어올려 색이 거무스르한지 흰지를 살펴보고 어떤 지방에 있는지 판단했다. 바다 물의 색도 푸르거나 희기도 하고 혹은 핏빛처럼 붉거나 먹물처럼 검은데, 검은 색이 가장 안좋은 것이었다.

(지)기괴한 일들을 보는 일이 대단히 많았는데, 바다 속에서 용이 놀다가 나타나는 것을 보기도 한다. 하루는 수십보 밖에 창룡(蒼龍 푸른용)이 다가오는 것을 보고 선원들이 대경실색하였다. 갑자기 검은 안개가 공중에 피어오르고 오색 무지개가 걸리더니 비와우박이 교차하면서 퍼붇고 파도가 끓어오르더니 배가 아래위로 여러차례 오르락 내리락했다. 이러기를 서너차례 하였는데, 이것은 용이 하늘로 오르려고 하다가 실패하면 그렇다고 하며, 선원들은 매번 용을 마주치면 유황과 닭털을 태웠는데, 용이 이 냄새를 싫어하여 피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 날은 창졸간에 생 닭 수십마리를 태워 던졌는데도 용이 배를 향해 다가오자, 선원들이 어찌할 바를 몰라 허둥대다가 총포를 수십발을 일제히 발사했다. 그러자 용이 갑자기 물 속으로 사라져서 벗어날 수 있었다.

(매)바다에서 기괴한 일을 만나게 되면 반드시 유밀과와 떡들을 바쳐 제사를 지내고 파도 위에 던져야 갈 수 있었다. 어떤 곳에 이르러서 후풍인이 말하기를 이곳은 배젖는 소리가 없는 이상한 곳이다 하였지만, 배는 이미 지나가고 있었는데, 갑자기 파도 위로 여성의 모습을 한 괴이한 것이 보였다. 후풍인이 크게 놀라며 바로 제사를 지내자 그 괴물은 즉시 사라져서 근심에서 벗어날 수 있었는데, 이는 한나라때 물에 빠져 죽은 귀신이라고 한다. 바다를 가로질러가는 도중 거대한 고래가 하늘까지 물을 뿜으면 즉시 닻을 내려 배를 멈추었다가 고래가 멈춘 다음에 배를 다시 움직였다. 후풍자는 이를 듣고 바꾸었다. 용이 나타날때는 반드시 물을 한길이나 내뿜으며, 선원들이 매번 정신없이 대단히 놀란다. 남해는 항상 안개와 비가 많아 바다 속에 큰 용이 많이 살고 있는데, 용이 바다 속에 있으면 반드시 뭔가에 몸을 걸친 다음에 구름을 얻어 변화하여 하늘로 올라간다. 용이 배에 걸치면 배는 반드시 침몰한다, 그래서, 용이 오는 것을 선원들이 보면 대경실색하여 생닭을 5-60마리 태워 냄새를 피우고 뜯어 뱃머리에서 파도에 던지면 용이 물 속으로 돌아가고 위험에서 벋어날 수 있다. 그래서 배에는 항상 닭을 수백마리 데리고 다닌다. 완벽이 다시 (안남을) 다녀올때 청룡을 만났는데, 그 비늘갑의 색이 휘황찬란했으며 꿈틀꿈틀한게 올라오자 (닭을) 제물로 바쳐 벋어날 수 있었다.
배가 50여일을 가자 안남국의 경계에 도달하였다.

(매)그 풍속을 보니 모두 머리를 풀고 맨발로 다니는데, 그 나라의 흙은 진흙이나 돌이 없고 연한 흰 모래뿐이며, 겨울에도 따뜻해서 맨발로 다녀도 다치지 않았다.
그 나라의 남자들은 처첩을 여러명 두는데 부유한 자는 수십명을 두었다. 매년 봄이 시작하면 그 남자들이 처첩들에게 금은 약간량을 나눠주고 물자를 사고 팔게 하는데, 그 처첩들은 이 금은으로 후년을 보내는 관습이 있다. 고로 그 처첩들이 이국 상선이 왔다는 얘기를 들으면 고위관리의 처첩이라고 하더라도 반드시 모두 휘장달린 가마(屋轎)를 타고 일가 여자권속들을 데리고 나란히 앉아서 왜인들과 상거래의 값을 흥정하는데, 혹 처녀가 있으면 얼굴값(面幣)을 더쳐달라고 하며, 그 들고 나며 여럿이 문지기를 따르는게 대단히 성하였다.

(지)그 나라의 남녀는 모두 머리를 풀고 맨발로 다니며 신발을 신지 않는데, 비록 고귀한 신분도 그렇다. 어른들은 이빨을 검게 물들이이고 오래사는사람이 많다. 한 노인이 머리가 희고 난 다음에 다시 노랗게 되면서 이빨이 어린아이 같이 되어, 그래서 노란머리 어린아이 이빨을 가진 자라고 했다. 나이를 물으니 120살이라고 하며 백살이 넘은 이들이 이렇게 있었다. 또 세간에는 독서를 숭상하며 시골에 학당이 있어 소리내어 읽고 들으며, 아동들이 모두 몽구와 양절번씨론을 외우거나 또는 시문을 습득하였다. 글을 읽는데 합구성(合口聲)을 사용하는데 우리나라의 글씨와 비슷하다. 다만 종이가 매우 귀하며, 책은 즉 모두 중국책들이다. 또한 조총을 즐겨 익혀 어린이들도 능히 사용한다. 그 땅이 대단히 따뜻하여 2-3월에 서과(西瓜) 감과(甜瓜) 등이 있고, 논을 경작하는 것은 때가 없어서 3개월 기간 동안에도 농사를 짓기 시작한 사람, 농산물을 키우고있는 사람과 수확하는 사람들이 있다. 해는 낮에는 뜨겁고 밤에는 시원하며, 땅은 비록 바닷가지만 해산물이 많지는 않다. 과일은 귤과 리찌가 있으며, 그외 다른 과일은 없다. 곶감을 주었는데 무엇인지 모르더라. 누구든지 항상 빈랑(檳嗃)을 먹으며, 푸른잎도 함께 먹는데 어떤 적인지는 모르겠다. 소설이 말하기를 남쪽 사람들은 빈랑을 먹는데, 등나무를 같이 곁들여 씹으면 떫지않다고 하였다. 대략 이런 것들인데, 빈랑은 높이가 몇 장이나 되고 대나무 마디가 있는 것처럼 곧게 자라며 이파리는 파초와 비슷하다. 식물들은 모두 높고 크게 자라며, 길쌈으로 짠 천은 대단히 견고하고 질기다. 뽕나무는 매년 밭에 심어 누에를 치며 실크가 풍부하여 귀천없이 실크옷을 해입는다. 목이 마르면 사탕풀(蔗草)를 씹으며, 밥은 겨우 배를 채울 정도만 먹고 술은 항상 넉넉히 마신다. 침향가루로 고약을 만들어 몸과 얼굴에 바른다. 모습이 맷돼지같은 물소가 있는데, 색은 검푸른색이고, 인가에서 키워 농사도 짓고 잡아먹기도 한다. 해가 더운날은 물소가 물속에 들어갔다가 해가 지고 나면 나온다. 그 뿔이 대단히 크고 검은 뿔인데, 왜인들이 와서 사가지고 간다. 오대사에는 점성(占城 참파 = 크메르)에 수시(水兕 = 물 꼬뿔소)가 있다고 하였는데 이 물소를 말한다. 코뿔소는 왠지 의문이다.
코끼리는 로과(老撾)지방에서 난다, 그래서 상산(象山)이라고 한다. 덕 코끼리가 있어 그 상아가 최고 5-60척은 된다. 국왕은 70마리 정도까지 기르고 있으며 나갈때 코끼리를 타고 다닌다. 코끼리는 사람처럼 무릎을 꿇고 절한다.
공작, 앵무, 흰 꿩(白雉), 호초 등이 많이 난다.

자, 이제 이 조완벽전이 조선 사회에 주목을 끈 중요한 부분을 소개합니다.

(매)여러 곳에서 지봉의 시를 애송하는 것을 보았는데, 선비들이 완벽에게 어느 나라 사람이오 하고 물으면 조선인이로 하고 답을 하며 왜인에게 잡히어 일을 맡아서 오게되었다 하면 선비들이 당신이 조선인이면 동국의 이지봉의 시를 아시겠군요 하고 완벽이 처음 들어본 적이 없어 잘모릅니다 하고 사실대로 답하면, 그 선비들이 이지봉은 귀국의 문장가인데 어찌 당신이 모를 수 있소 하며 이지봉의 작품을 읊었다.
'遠憑重譯謁君王。提封漢代新銅柱。貢獻周家舊越裳。山出異形饒虎骨。地蒸靈氣產龍香'
마지막구 처음과 끝이 잘 맞지않는다고 하자 완벽이 글을 좀 알아서 호랑이 虎자가 아니라 코끼리 象이 되어야 한다 하고 바로잡아주었다.

(지)문리후 정초(文理侯 鄭勦)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환관으로 일들을 맡아 보는 이였다. 나이는 80세이며, 거처가 웅장하여 문리후용 기와로만 지붕을 이었고 기와는 유회(油灰)로 이어붙였으며, 공작의 꼬리 깃털로 짠 장막을 치고 있었다. 하루는 문리후의 집에 초청받아 갔는데, 고관 수십 명이 열을 지어 앉아 연회를 벌이고 있었다. 그들은 조완벽이 조선인이라는 말을 듣고 후하게 대하며 술과 음식을 접대하였고, 일본에 포로로 잡혀간 이유를 묻고 왜놈이 조선을 침략한 사정을 듣고 측은한 마음을 자못 표시하였다. 거듭 책 한권을 꺼내 보여주면서 이것은 귀국의 이지봉(李芝峯)의 시입니다 하였는데 지봉은 이수광의 호이다. 시는 이수광이 정유년 중국에 사신으로 갔을때 안남의 사신에게 증정한 시였다. 당신이 고려인이라고 하니 능히 이지봉을 아시겠죠 하였다. 조완벽이 시골 출신으로 어린 나이에 포로가 되어 지봉이라 칭하는 분의 성함을 들어보지 못하여 지봉이 어느분인지 알지 못합니다 하자 좌중이 모두 탄식하며 의아해했다. 조완벽이 그 책을 넘겨보니 고금의 명작 수백편을 많이 실어 두었는데, 그 첫번째에 조선국 사신 이지봉의 시를 두었으며 모두 붉은 점으로 비점(批點 일종의 하이라이트)을 찍어두었다. 또 그 시 중에서 기묘한 모습의 산에서 코끼리 뼈(註: 상아)가 많이 난다 (山出異形饒象骨)라는 한 구절을 가리키며 이곳에 상산(象山)이 있는데 이것 참 더욱 신기하군요 서로 더불어 칭송하기가 끊임이 없었다. 다시 수일후 유생들이 또 그를 집으로 초대하여 술과 음식을 성대히 대접하며 귀국은 예의의 나라라 저희 나라와 서로 통합니다 라며 극진히 위로하였다. 책 한권을 보여주면서 묻기를 이것은 귀국 재상 이지봉의 작품입니다. 우리나라 모든 서생들이 복사를 하여 외우고 암송하고 있으니 가히 한번 보십시오 하였다. 조완벽은 진실로 조석인(朝夕人)으로서 뜻을 무시하지않고 기록을 살펴보고는 다시 종이와 붓을 청하여 수편을 받아적어 배로 돌아왔다. 10일 정도 후 학교를 방문하여 여러 선비를 보았는데, 이 책을 가진 선비들이 실로 많았다.

(지)문리후가 조완벽에게 말하기를 귀하가 본국으로 돌아가기를 원하신다면 이곳(안남)에서 중국으로 돌아가시게 돌아서 풀려날 수 있도록 이곳에 모름지기 머무르시게 하자 조완벽은 그 말을 따르고 싶어했다. 그런데 보니 이 나라 사람들이 속임수가 많고 믿기가 어려움을 보고 다시 우리나라가 여기서 너무 멀어 아무래도 안되겠습니다 하고 답했다.

(매)또 그나라는 세간에서 문장을 높이사는 것이 성하여 집집마다 읽고 외우는 것이 끊어지지않는 것을 보았다. 향거(鄕擧)라는 것은 우리나라의 고을, 읍, 도시의 회시(會試)로 사람을 뽑는 것과 같은 것인데, 그런 다음 왕도로 보내게 된다. 또 그 나라의 사람은 겉은 온순하게 보이지만 마음은 속임수가 있고 욕심이 많음을 완벽이 보고는 이 나라로 도망쳐서 사신을 통해 중국을 거쳐 조선으로 돌아가라는 제안을 받았지만, 그 속임수와 신뢰하기 어려움을 보고 결국 따르지 않았다고 한다.

(지)조완벽은 이전에 여송국(呂宋國)을 가는 일도 있었는데, 이 나라는 서남해 중에 있으며 보화가 많은 곳으로 사람들은 모두 스님처럼 머리를 깎았다. (註: 여송은 Luzon 즉 필리핀을 말합니다. 당시는 스페인의 직할령이었습니다) 류구 지방은 대단히 작은 곳인데, 그곳 사람들은 모두 편발을 하고 두건을 썼음며, 검술과 총술을 연습하지 않았다. 사쓰마에서 300리 거리에 류황산(이오지마 硫黄島를 의미)이 있는데, 멀리서 바라보면 산이 모두 황색이다. 5-6월 항상 연기가 피어오른다. 일본에 있을 당시 교토에 서복사(徐福祠 진시황의 명으로 불로불사의 약을 찾아 동으로 간 서복을 제사지내는 사당)을 보았는데, 서복의 후예가 그 주인으로 불교를 공부하고 식읍이 있었으며 나리의 정사에는 참여하지 않았다. 또 왜인들은 조선의 서적을 가장 귀중히 여기고 소중히 보관하는 일이 많았는데, 안남인들 역시 큰돈을 들여 (조선의 서적을) 구하였다.

(매)완벽이 다시 일본으로 돌아갔는데, 그 왜인 주인이 약속을 지키지않고 풀어주지 않으면서 안남을 다시 다녀오면 반드시 물어주겠다는 약조를 문서로 작성해주었다. 완벽은 부득이 다시 갈 수 밖에 없었는데, 그 다음에도 돌아온 다음 놓아주지 않았다. 인근의 이웃 왜인들이 약속을 지키지않음을 비난하는 것이 부글부글 끓어오르자 어쩔수 없이 왜주인이 그를 풀어주었다. 그런 다음 완벽은 편안히 은량을 스스로 모았고 본국 고향으로 돌아가게 되자 그 어머니와 처가 별탈없이 살아 있었다. 지금은 평안하게 살며 터를 잡고 처음처럼 돌아갔으며, 이런 일들로 부자가 되어 부유하게 조용히 살아간다고 한다. (매창집의 전은 여기서 끝)

(지)정미년(1607년) 回答兼刷還使 여우길(정사) 일행이 일본에 갔을 때 조완벽이 왜주인에게 눈물로 간청하여 고향으로 귀국하였는데, 노모와 처가 그대로 살아있었다고 하니 과연 놀아운 일이다.

(지)무릇 안남은 우리나라에서 수만리나 떨어져있어 옛날부터 통행이 없었는데, 하물며 바닷길로는 얼마나 멀겠는가! 조완벽이 동쪽 끝에서 남쪽으로 가로질러 험난한 바람과 파도를 무릅쓰고 아만인의 땅에 갔다가 만번의 죽음을 이기고 목숨을 건져 무사히 돌아왔으니 이는 과거에 정말없던 일이다. 공자왈 충성과 믿음(忠信)을 말하고 진심과 공경함(篤敬)으로 행하면 오랑캐의 땅이라도 갈테다라고 하였는데, 또 그는 이름 또한 완벽(完璧)이니 어찌 그 이름을 져버리지 않은 자라 하지 않으리요! (지봉집의 전은 여기서 끝)


어떻습니까. 서생 조완벽은 정유재란에 끌려가서 교토의 스미노쿠라 상선을 타고 그렇게 베트남과 필리핀, 오키나와의 동남해를 주유하고 자유의 몸이 된 다음 부를 모아 첫번째 조선 사신들이 오자 사신들을 도와 조선인 포로들을 모아서 고향 진주로 돌아와 다행히 무사했던 어머니와 아내를 만나 행복하게 살았다는 그야말로 소설같은 이야기입니다.

현재의 연구에 의하면, 1607년 귀환한 다음 적어도 1611년 이전 3년 동안에 조완벽이 진주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매창 정사신의 친구인 김윤안에게 해주었는데, 김윤안이 이를 듣고 서울로 올라와 이준과 정사신에게 해주었으며, 이준은 '기조완벽견문(記趙完壁見聞)'이란 글을 쓰고, 정사신은 위에 번역한 매창선생집의 "조완벽전"을 썼다고 합니다. 이 두 글은 거의 내용이 일치하는데 정사신의 글이 좀더 자세합니다.

이에 반해 이수광의 글 '조완벽전'은 이 매창집 계통의 글과 다른 내용들이 많습니다. 일단 이수광 본인의 이름이 등장하게 되는 부분은 매창집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자세합니다. 그래서 최근 연구는 정사신과 이준이 베트남에서 이수광이 완전 동아시아 최고의 문사가 되어있는 사실을 알리게 되자 이에 이수광이 직접 조완벽을 만나 자세한 얘기와 안남의 풍속을 전해듣고 정리하여 별도의 조완벽전을 구성한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이후의 조완벽전이 인용된 문서는 대략 이 두 문서의 내용을 언급한 것으로 보입니다.

이번 편은 흔한 이미지 하나 없이 그냥 두 저본 문서의 전체 내용을 번역하는 걸로 달렸습니다. 이지항의 표주록처럼 이런 경우 원전의 목소리를 들려드리는게 어설픈 이야기 구성보다 나은 것으로 믿습니다. 다만 제 번역이 언제나 그렇듯이 그다지 좋지는 않습니다. 원전을 직접 확인해보시고 싶으신 분들은 우선 지봉집의 조완벽전은 여기 클릭 하시고, 매창선생집의 조완벽전은 여기를 클릭하시면 됩니다.

조완벽전의 판본과 전래과정에 대한 내용들은 "<조완벽전(趙完璧傳)〉의 텍스트와 문학적 의미 연구", 권혁래, 語文學 第100輯, 2008.6을 참고하였습니다. 번역에서 좀 아리송한 부분은 이 논문에 인용된 부분 번역을 참조하였습니다.

자, 오늘 글이 좀 길어졌습니다. 원래는 이 조완벽전으로 몇가지 이야기를 더 하려했는데, 너무 길어져서 다음편으로 넘기고, 그럼 스미노쿠라는 어떤 상인이었는지, 어찌하여 교토에서 그런 해외무역 상인이 나온 건지, 이수광은 왜 그리도 베트남에 셀렙이 된 것인지, 도대체 조완벽이 만난 문리후 정초라는 관리는 누구인지, 그리고, 무엇보다 조완벽전과 너무나도 관계있어 보이는 쇼미더 트루스 조선버전 디스전에 얽힌 논란의 고소설을 하나 소개하겠습니다. 이야기는 그런 다음 (뜬금없이) 사르후 전투로 넘어갈지 다시 동중국해로 넘어갈지 한번 두고 봅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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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역사관심 2015/09/20 12:49 # 답글

    한국사 전에서 이분 이야기를 본것이 이제사 조금 기억이 납니다. 이정도의 모험기라면 인지도가 하멜정도는 되야하는 거 아닌가 싶네요! 뜯어볼 구석도 꽤되어 추후 다시 찬찬히 읽어보겠습니다. :)
  • 迪倫 2015/09/23 23:24 #

    안그래도 조완벽전의 바다 괴물/용/고래 이야기가 올리신 바다괴물 이야기들과 재미있는 연결전들이 있어보였습니다^^
  • 남중생 2015/09/20 21:51 # 답글

    문리후가 소개되는군요. 두둥!
  • 迪倫 2015/09/23 23:25 #

    옙!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 남중생 2018/02/19 20:46 #

    몇 년 전에 대만을 찾아갔을 때, 여행객이라고 했더니 인심 좋은 아저씨들이 갖고 있던 빈랑을 나눠주시더라구요.
    다만 문제는 이상한 이파리에 싸여있었습니다....
    빈랑 씹어보자고 꼬득인 대륙 중국인 형도 그 이파리가 뭔지는 모르겠다고 하던데... 이제 조완벽전 같은 기록을 참고 삼아 생각해보니 등나무 잎이었습니다;;

    가끔 옛 유습이 21세기에도 그대로인 걸 보면 또 인간사란 무엇인가~ 하게 됩니다^^
  • 迪倫 2018/02/20 10:07 #

    오호! 그런데 같이 먹으면 떫지않던가요? 정말 신기한 기분이 드는 경험담입니다. 조완벽과 남중생님!
  • 남중생 2018/02/20 13:18 #

    사실, 빈랑을 씹어본 경험이 그 한 번 뿐이라... 대조군이 없습니다 ㅠㅠ 하지만 확실히 감 같은 떫은 맛은 아니었어요!
  • 남중생 2019/11/21 22:16 #

    적륜 님, 윗 글에 "쩐鄭"이라고 쓰셨는데, 북부 베트남의 鄭 씨는 Trinh 그러니까 "찐" 또는 "찡" 씨라고 표기하는 것이 맞습니다.ㅎㅎ
    베트남의 쩐(Tran) 씨는 陳 씨입니다.
  • 빛의제일 2015/09/20 22:17 # 답글

    본문에 언급된 대로, 조완벽은 이름 그대로 완벽한 사람 같습니다.
    유일하게 가본 다른 나라가 베트남이어서, 감히 제 머리 속에 이미지를 만들었습니다. ^^;;
    다음 포스트를 안내하는 마지막 글에서 '뜬금없이'라는 표현이 '더 재미있게'로 바꾸어 읽혀집니다. :)
    이 시리즈의 처음을 생각하면 어쩜 이리 여기로 저기로 이어지는지 신기하고 재미있습니다.
  • 迪倫 2015/09/23 23:48 #

    미스터 퍼펙트!
    책들을 읽다가 이래 저래 사람과 일들이 이어지는걸 보면 저도 늘 경이롭습니다. 역사란 사람들이 서로 상호작용하는 거란게 새삼 실감이 나죠.
  • Lon 2015/09/20 23:22 # 답글

    저도 표해록 정도만 알고 있었는데 이런 이야기도 있군요.
    지금은 일때문에 빠르게 읽었지만 다시 천천히 탐독해 봐야겠네요.
  • 迪倫 2015/09/23 23:50 #

    조선 시대의 다른 이국경험담은 대부분 표류기인데 조완벽전은 상선을 타고 찾아간 것이라 성격이 조금 다르더군요.

    천천히 읽고 생각 나눠주세요^^
  • 이종혁 2015/09/21 21:49 # 삭제 답글

    작년 즈음에 하노이를 다녀왔는데 문득 아프리카 발령 전, 경주국립박물관에서 본 베트남왕가의 보물전이 떠올랐습니다.

    지금은 단순히 경제력에서 한수 아래라고만 여기는 나라지만 중화의(지금으로 따지면 미국이상의 슈퍼파워) 영역권에서

    대월국이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을만큼의 문명지국이라고 각인이되어 그 후, 베트남에 대한 정보를 관심깊게 보곤 했습니다.

    동남아에서 이런 유교국가가 존재한다는 것도 흥미로운 일이고, 문화적인 동질감으로 선린의 유대를 수백 년전에 나눴다는

    사실이 새삼 놀라울 따름입니다. ^^
  • 迪倫 2015/09/23 23:51 #

    베트남에 대해 공부를 좀 해보고싶은데 아직 여력이 안되네요^^

    의외로 동아시아적 성격이 강하던데 언어와 문자가 좀 장벽입니다 ㅠㅠ
  • 밥과술 2015/09/21 22:20 # 답글

    이런저런 사람들의 이야기가 참 재미있습니다. 정화같은 중국사람이나 러시아여제를 만난 일본사람 이야기를 보면서 우리나라에도 일찌기 이렇게 밖으로 나가 색다른 경험을 한 누군가가 있었으면 싶었는데, 이렇게 접하고보니 욕구도 조금 풀리고 흥미도 새록새록 깊어지고 그럽니다~ 잘읽고 갑니다.
  • 迪倫 2015/09/23 23:54 #

    역사 속에 있는 이런 사람들 이야기는 알게되면 늘 감탄이 나옵니다. 지금도 바다 건너는 먼데....
    재미있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Nocchi 2015/09/22 09:12 # 답글

    흥미로운 이야기 잘 읽었습니다
    문득 베트남 고관의 조언대로 대륙관통 코스를 따랐음 어떻게 되었을 지도 궁금합니다
    일본에 노예로 잡혀 있는 신세에서 하루라도 빨리 벗어날 수 있다는 제안이 상당히 솔깃 했을 것 같은데
    하지만 조선비님이 저러한 판단을 내린 데 에는 당시 정황상 근거가 있었을 것 같습니다

    우리나라도 하멜 일행을 평생 가두어 두려고 했던 전력이 있으니
    어디 베트남 시골에 유배되어 노역봉사를 하면서 평생을 살게 되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해 봅니다
  • 迪倫 2015/09/23 23:58 #

    그래도 글을 아는 선비니까 노역을 시키지는 않고 뭔가 문서수발 작업을 끝없이 시키는 ^^

    그보다 중국으로 갔으면 명청교체기의 전란에 휘말려 전쟁터로 끌려갔을 가능성이 더 큽니다. 그 비슷한 이야기가 다음에 이어질 예정입니다.
  • 행인1 2015/09/22 22:21 # 답글

    포로가 되어 일본에 끌려갔다가 머나먼 베트남까지 가다니 인생역정이...
  • 迪倫 2015/09/24 00:00 #

    이게 실제 있었던 일이라는게 더 믿어지지않을 정도로 대단한 롤러코스트인데, 해피엔딩이라 더 믿기지않죠^^ 엄청나게 운좋은 사람이라는데 한표!
  • newbie 2015/09/23 09:25 # 삭제 답글

    내용을 받아적는 이수광의 얼굴 표정이 능히 상상이 되네요 ㅎㅎ 싱글벙글...

    오늘도 재미있는 이야기 정말 잘 읽었습니다.
  • 迪倫 2015/09/24 12:37 #

    이수광이 표정관리 참 어려웠을거 같죠?
    재미있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자주 얘기 남겨주세요.
  • 앨런비 2015/09/24 13:48 # 답글

    역시 예상대로 이와오 세이이치가 이걸 확인했었네요(...) 슈인센은 거의 이와오 세이이치의 연구에 주석을 붙이는 정도인 듯 하던데.
  • 迪倫 2015/09/27 11:17 #

    확실히 이 부문의 연구는 이와오 선생의 연구가 단연 메이저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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