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시아 두꺼비신선전 by 迪倫

지라이야와 두꺼비, 그리고, 닌자!에서 예고한대로 왜 일본의 지라이야는 하필이면 두꺼비 요술을 쓰는지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아래의 그림을 보시기 바랍니다.

이 그림은 3대 도요쿠니(3代豊国)가 1847년 그린 '지라이야호걸담(児雷也豪傑譚)' 입니다. 지라이야가 거대한 두꺼비에 올라 앉아 있습니다. 자, 그 다음 그림을 다시 한번 보십시오.

약간 사오정풍의 사람이 두꺼비 위에 앉은 그림인데... 그런데 이 그림은 일본의 지라이야가 아니라, 조선시대 16세기 후반의 화가였던 이정(李楨, 1578~1607)이 그린 <기섬도(騎蟾圖)> 즉 두꺼비를 탄 신선 그림입니다. 어랏랏랏.

이 두꺼비 위에 탄 사오정처럼 머리를 짧게한 사람은 실은 신선입니다. 원래의 인물 프로필은 10세기 중국 당나라와 송나라 사이의 시대인 오대 국가중 후량(後梁)의 연왕(燕王)때 재상을 지내던 유현영(劉玄英)이라고 합니다. 도교책을 늘 옆에 두고 지낸던 도교오덕 유현영은 어느 날 그의 집에 신선 중 A급 리그인 8선(八仙)중의 하나인 종리권(鍾離權)이 찾아와 그에게 선도를 강의하고 도력으로 엽전 열 개와 계란 열 개를 수직으로 세운 보탑을 만들어 보였다고 합니다. 이 보탑이 바로 "누란지위累卵之危", 즉, 엽전 위에 계란을 쌓은 탑보다 인생이 더 위태롭다는 의미라는데, 이에 퍼득 깨달음을 얻은 유현영은 그날 밤 잔치를 열고 재산을 어려운 사람들에게 모두 나누어 준 후, 떠돌아 다니며 명산에서 수련하여 신선이 되었다고 합니다. 이후 앞머리를 자른 동자의 모습으로 두꺼비 등에 타고 다녔다고 해서 유해섬(劉海蟾) 혹은 해섬자(海蟾子)라고 불렸다는데, 유해섬이 타고 다니던 두꺼비는 발이 셋 달린 금빛 두꺼비로 가끔 심술을 부려 물속으로 도망치면 유해섬이 가지고 다니는 동전꾸러미의 동전에 끈을 매달아 낚아 올렸다고 합니다. 그래서 중국 회화의 테마 중에 "劉海戲蟾" (유해자가 두꺼비를 놀린다)라는 것이 있습니다.

예를 들면, 이 설화를 그린 그림 중에 18세기 조선조 심사정(1707~1769), "하마선인도(蝦蟆仙人圖)"가 있습니다. 이렇게 두꺼비를 동전으로 희롱하는 모티브가 회화로 많이 그려졌습니다.

하지만 실은 중국 도교에서는 유해섬은 8선(仙)에는 들지못하는 마이너 리그에 속하는 B급 신선이었습니다. 그런데 중국 도교에서 동전과 금두꺼비를 데리고 다녀서 재물의 신선으로 포지셔닝이 되었는데, 역시 조선에서도 일찍부터 그때문에 재물복의 상징으로 받아들여집니다.

**섬(蟾), 하마(蝦蟆), 하마(蝦蟇): 모두 두꺼비라는 의미입니다. 일본어로는 '히키가에루' 또는 '가마'라고 읽습니다.

그런데, 역시 18세기 중국에서 일본으로 전해진 두꺼비 신선 유해섬은 또 좀 다르게 수용이 되었습니다.

다들 잘 아시는 만화 케로로의 캐릭터는 두꺼비 성운에 사는 '개구리 군인'이지요.

**가마성운 = 蝦蟇星雲 두꺼비성운입니당~
개구리는 일본뿐 아니라 한국에서도 고대 혹은 중세부터 군대를 상징했습니다. 개구리떼가 시끄럽게 울고 서로 올라타고 싸우는 형성이 군대로 보인 것이지요. 한국에서도 선덕여왕의 일화 중에 개구리가 울어 백제가 쳐들어오는 것을 미리 아는 것이 있지요.

그래서 개구리와 그 대장격인 두꺼비는 일단 군사적 이미지가 있는데다, 두꺼비와 뱀이 천적관계라서 서로 잡아먹는 것이 확대되어 이무기 같은 큰뱀의 카운터파트로 등장합니다. 종종 로컬 전설 중에 두꺼비에게 밥을 준 소녀가 이무기에게 잡혀가게 되자 거대 두꺼비가 나타나 이무기를 물리친다류의 이야기들이 꽤 있습니다. 그러고보면 지난편에 소개한 닌자 지라이야(児雷也)의 숙적도 오로치마루(大蛇丸) 즉 큰뱀 또아리이죠. ㅎㅎㅎ 만화 나루토까지 안가도 됩니다.

그런 호전적인 동물인 두꺼비를 데리고 다니는 중국의 신선 하마선인은 일본에 소개가 되자 곧 두꺼비 요술을 부리는 신선으로 탈바꿈합니다.

이 개구리 군대 그림은 19세기 중반의 우키요에 화가 우타가와 요시토라(歌川芳虎)가 그린 육지선인(肉芝仙人)에게서 요술을 배우는 장면을 묘사한 것입니다. 육지선인은 역시 두꺼비 선인의 다른 이름입니다.

뭐랄까 이렇게 이국(異國)의 요사한 군사적인 이미지를 가지게 된 두꺼비요술은 마침내 에도 일본의 가장 큰 공포 중의 하나와 결합합니다. 그것은 바로 기리시탄!

에도 바쿠후가 기독교를 금지하고 선교사들을 추방하던 17세기. 카톨릭이 가장 번성하던 규슈 지방의 아마쿠사(天草) 시마바라(島原)에서 1637년부터 1638년까지 카톨릭 교도가 주동이 된 반란이 일어납니다. 에도 바쿠후는 이 시마바라의 난을 진압하고부터 전 일본에 대해 본격적인 통제를 시작합니다. 에도 바쿠후는 심지어 조선에도 혹시라도 기리시탄이 준동하지 못하도록 협력해달라고 요청할 정도였습니다.
예를 들어 시마바라의 난으로 부터 거의 70년이 지난 1712년 신묘 통신사행단의 임수간이 일본에서 수집하여 제출한 국제정세 보고서 “해외기문”에도 "남만(南蠻) 사람 미소종문(彌蘇宗門)이란 자가 맨 처음 장사치로서 장기(長崎)에 왔는데, 그가 요술을 잘하여 (중략) 도리어 서로가 속이고 유인하여, 그를 높이 섬기는 자가 왜국 내에 많았었다.

그리하여 마침내 동무(東武)의 봉행(奉行)을 통하여 반란을 기도했는데, 어떤 사람이 그 글을 얻어 관백(關白)에게 고함으로써, 곧 군사를 풀어 체포하게 하니, 그들 무리 보기(步騎) 수천 명이 바다를 평지처럼 건너가는데 그 가는 방향을 알 수가 없어 온 나라 사람들을 다시 한 번 놀라게 하였다. 그 후 그 얼굴을 모사하여 네거리에 던져두니 그를 항상 섬기던 자들이 혹 통곡하다가 칼에 찔려 죽기도 하였다. 지금도 도시와 촌락에 게시판[制札]을 달고 상을 주어 가면서 그 도당을 체포하고 있다.

또 우리나라에도 서한을 보내어 바다에서 선박을 이용해 건너가는 수상한 자가 있거든 부디 꼭 죽여 달라고 했다.

그리고 왕년에 남만(南蠻)에서 표류한 수십 인을 체포하여 일본에 보냈더니 일본으로부터 후한 사례가 있었다. 그 뒤 장기(長崎)에서는 종문(宗門)의 동상(銅像)을 만들어 두고 여러 나라에서 표류해 온 자들로 하여금 그 동상을 발로 차게 하여 시험해 본 결과 난색(難色)이 있으면 꼭 죽여 버렸다 한다. 누가 말하기를, 종문이 맨 처음 왔을 때 조그만 금불(金佛)을 왜인들에게 나눠 주어 그들로 하여금 숭봉하게 하고 화복(禍福)으로 유인한 다음, 그 대중을 이끌고 반란을 일으켜 국군과 크게 싸우다가 실패하여 바다 위를 도보로 달아났는데, 40년 뒤에 다시 수만 명을 인솔해 와서 풍전주(豐前州)를 습격하다가 불리하자 도망갔다 한다.
"라고 하며 카톨릭의 추방과 시마바라의 난에 대해 언급을 하고 있을 정도입니다.

그런데 이 시마바라의 난은 지금보면 중세적 광신과 미신이 마구 혼합되어 여러가지 흥미있는 이야기가 많습니다. 그중에서 아마쿠사 시로(天草 四郎)라는 인물의 이야기는 궁지에 몰린 사람들이 구세주를 찾는 심리가 반영된 대표적인 예처럼 보입니다. 아마쿠사시로는 원래 고니시 유키나가의 가신이었다가 세키가하라에서 패하여 고니시가 참수당한 후 낙향안 마스다진베(益田甚兵衛)라는 가신의 아들인데, 예수회 선교사들이 추방당할 때 남겼다는 "25년 뒤에 신동이 태어나 기리시탄들을 구해줄 것"이라는 예언의 '신동'이 바로 그라는 얘기가 나돌면서 구세주로 거의 신격화되어 반란의 최고 수괴가 되어 난을 지휘한 사람입니다.

1962년 오시마 나기사 감독의 영화 "아마쿠사 시로 도키사다"의 예고편입니다. 오시마 감독의 작품은 이상하게 마음을 건드리는데가 있습니다만, 그건 다음으로 미루고...

이때 나이가 18살인가.. 실제의 모습은 알 수 없지만, 아마쿠사 시로의 전설 속 이미지는 아리따운 미소년의 모습으로 형상화 되어 있습니다.

이렇게 생긴 모습이 가장 전형적인 아마쿠사시로의 모습입니다. 목에 기리시탄을 대표하는 유럽풍 레이스 러프를 두르고 있죠.

워낙 센세이션한 사건이라 난이 진압된지 30년도 안되어 1666년 "아마쿠사 시마바라 모노가타리(天草四郎島原物語)"라는 조루리 작품에 시마바란 반란의 수괴 아마쿠사시로가 두꺼비 선인에게서 요술을 배우는 내용이 등장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작품에 대해서는 저도 아직 더이상 자세한 정보를 찾지못했습니다.

대신 조금 더 시간이 지난 1719년 에도 예능작가의 대표주자 중의 하나인 지카마쓰몬자에몽(近松門左衛門)이"게이세이 시마바라 카에루갓센(傾城島原蛙合戦)"이라는 일종의 풍자극을 씁니다. 아마쿠사 시마바라 모노가타리에 대해서는 실은 더이상의 자세한 정보를 못찾아 저도 자세히 다룰 수가 없지만 시마바라 카에루 갓센은 조금 자세한 줄거리를 읽었습니다.

지카마쓰몬자에몽의 초상입니다. 이 사람 나중에 다시 등장할 예정입니다. 아무튼...

우선 이 가부키극은 직접적으로 시마바라의 난을 언급하고 있지 않습니다. 주인공의 이름도 아마쿠사시로가 아니라 '나나쿠사시로( 七草四郎)'이고, 무대도 12세기 가마쿠라(鎌倉)시대 초기 심지어 교토의 시마바라 유곽입니다. (시마바라 유곽은 반란이 났던 규슈의 시마바라와 한자 이름은 같은데, 실은 일본에서 가장 오래 현존하는 유곽지역의 이름입니다.) 미나모토노 요리토모(源頼朝)에게 패한 후지와라노 히데히라(藤原秀衡)의 아들 나나쿠사시로가 두꺼비를 타고 요술로 사람들을 현혹시켜 미나모토노 요리토모에게 복수를 시도하는 이야기인데, 눈가리고 아웅이라고 바쿠후에서 진노하여 공연은 단 1회로 끝나고 금지당했다고 합니다.(당연히 실제 역사와는 무관한 픽션입니다. 오히려 이름을 슬며시 감추고 시마바라의 반란을 다룬 것입니다)

하지만 이렇게 기리시탄 반란 + 두꺼비 요술의 한 세트는 대중의 인상에 깊게 남아 18세기 중엽 1757년 또다른 이국적 인물과 결합하여 크게 흥행에 성공하게 됩니다. 바로 덴지쿠 도쿠베(天竺徳兵衛)라는 인물입니다.

실제 인물이었던 덴지쿠 도쿠베에게 아마쿠사시로의 이미지가 덧씌워진다음 1757년 처음으로 덴지쿠도쿠베라는 인물이 등장하는 나미키쇼조(並木正三)의 가부키『天竺徳兵衛聞書往来』가 등장합니다. 이 이야기는 점점 살이 붙어 심지어 임진왜란의 경험까지 가미되어 인도를 의미하는 천축(덴지쿠)를 다녀온 도쿠베는 진주성 전투의 지휘자 진주목사 김시민의 아들로 키리시탄인데 일본에 조선과 아버지의 복수를 하러 옵니다. 김시덕 선생이 주간조선에 연재하고,『동아시아, 해양과 대륙이 맞서다 - 임진왜란부터 태평양전쟁까지 동아시아 500년사 -』(메디치미디어, 2015)에 수록하신 글 중에서 이 덴지쿠 도쿠베 소재의 가부키중 어쩌면 가장 유명한 "덴지쿠도쿠베 이국 이야기"(天竺徳兵衛韓噺)가 등장합니다. (여기를 클릭하세요. 책은 연재를 정리한 것이긴 하지만 좀더 재미있고 생각을 해야할 이야기가 많습니다. 강추입니다! )

그리고, 가부키 무대에 거대한 두꺼비의 스펙타클! 생각만 해도 우와! 재미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19세기로 들어와서도 덴지쿠 도쿠베의 이야기는 반복되어 서술이 되는데, 이중에 산토교덴(山東京傳 1761 - 1816)이라는 유명작가가 있습니다. 이 사람의 작품 리스트 중에 "적토 덴지쿠 도쿠베『敵討天竺徳兵衛』라는 작품이 있습니다. 그 책의 속표지인데, 오른쪽 아래 山東京傳記라고 저자 이름이 적혀있습니다.

이 책 중의 한 장면입니다. 오른쪽이 두꺼비의 덴지쿠 도쿠베입니다.


그런데, 이 산토교덴의 문하생 중에 마에노 만시치라는 전직 하급무사였다가 예능작가가 되려고 에도로 올라온 서생이 있었습니다. 그렇습니다, 바로 지난번 지라이야 편에서 소개한 처음으로 지라이야라는 인물에 대한 소설 독본을 쓴 간와테이 오니타케(感和亭 鬼武)입니다. 덴지쿠 도쿠베와 지라이야가 이렇게 이어진다고 할까요...

오니타케는 스승인 산토교덴도 리스트에 이름을 올릴 정도로 이미 에도인에게 익숙한 덴지쿠 도쿠베의 두꺼비 요술과 중국 소설에서 착안한 도둑 아래야(我來也)를 결합하여 두꺼비 요술을 부리는 신출귀몰한 도둑을 창안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게다가 그 도둑 지라이야의 네메시스는 바로 서쪽의 아마쿠사! (지라이야의 적이 가진 부적이 바로 西天草 즉 서쪽의 아마쿠사입니다!)라니 그럼 기리시탄 반란군!

오늘 이야기를 마무리하면서 하나 덧붙이고 싶은 것은 결국 어느 것도 원조를 따지는게 무슨 의미냐는 것입니다. 지금은 모두 일본 것으로만 아는 나루토 만화의 지라이야는 알고보면 중국의 신선이었고, 조선에서는 재복의 상징이었고 일본에서는 반역의 상징으로 각각 자신들의 환경 속에서 재해석되어 다시 태어난 것입니다.

그나저나, 실존 인물이라던 덴지쿠는 도대체 누구길래 이렇게 된 것일까요. 다음편에서는 실제 덴지쿠를 만나봅시다. 그리고, 와글와글 17세기 동중국해로 가보겠습니다.

*먼저 참고한 자료는 지난번의 『江戸読本の研究』第三章 江戸読本の世界 중에서 "第三節 戯作者たちの<蝦蟇>-江戸読本の方法-", (高木 元, ぺりかん社、1995)를 여전히 많이 참고했습니다. 敵討天竺徳兵衛는 와세다대학 아카이브가 출전입니다. http://www.wul.waseda.ac.jp/kotenseki/html/bunko06/bunko06_00991/index.html 유해섬에 대한 이야기는 월간 해인이 출전인데 (http://haeinji.danah.kr/contents/index.html?contents=default_view&webzine_no=388&seek_no=23) 여기에 유해인을 "연나라 재상"이라고 잘못 설명한 것은 '후량 연왕의 재상'으로 제가 바로 잡습니다. 傾城島原蛙合戦에 대한 이야기는 일본의 이 블로그를 참고했습니다: http://77422158.at.webry.info/200902/article_27.html 아마쿠사 시로의 초상은 아마쿠사 시로 관광협회의 웹사이트 http://www.kami-amakusa.jp/history/index.html가 출전입니다. 그외는 그밖의 웹에서 가져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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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Nocchi 2015/08/06 12:28 # 답글

    두꺼비 전설의 본류 계통 쪽 하고는 별 관계 없긴 하겠습니다만 ...
    영웅문 1부 서독 구양봉의 '합마공' 도 있죠 ( 이쪽은 모양만 따라 한 듯 )
    두꺼비 거북이 이런 생물들이 보면 묵직하고 느리고 귀는 밝으나 입은 무겁고 품위가 있어서 영물(靈物)로 자주 취급되는 것 같습니다

    이건 한의학 만의 것은 아니고 동양 전통에서 이러한 종류들을 이른바 "갑류(甲類)" 라고 하는데요
    "행동이 느리고 말수가 과묵한" 특징이 있습니다
    두꺼비 거북이 닮으면 귀인으로 치죠 이건희 회장이라던지... 떡두꺼비 같은 아들을 점지해 주십시오 등등...
    거북이가 평소 짜디짠 해초 한 입 만 먹고 소식(小食) 하듯이 갑류는 소식 하라고 하며
    혹은 건데기 먹는 것[食]은 적고 국물이나 술 마시는 것[飮]이 많으면 갑류라고 봅니다
    짜디짠 치즈 한 토막에 와인 2잔 이렇게 먹는 걸 좋아해야 갑류가 되죠 안주빨 세우고 잘 먹고 많이 먹으면 그건 갑류가 아닙니다 ㅋㅋ
    두드러진 갑류에게 쓰는 치료법이나 전문적인 처방 또한 따로 정해져 있습니다
  • 迪倫 2015/08/07 09:51 #

    오, 갑류라는 분류가 있군요. 마른밥 좋아하고 술 잘못먹는 대신 안주를 많이 먹는 저는 을류인가 봅니다 ㅠㅠ

    그나저나 한의학에서는 두꺼비형을 긍정적으로 보았군요^^
  • Nocchi 2015/08/07 13:50 #

    아..갑을병정의 갑 이 아니라 갑주(甲胄)를 뜻하는 '갑(甲)' 입니다 한자는 같지만 ...
    거북이는 딱딱한 등껍질을 지고 있고 두꺼비는 피부가 두껍다는 의미이죠
    어/ 조/ 주/ 갑 (魚/ 鳥/ 走/ 甲) 으로 나뉘어지는 데 여기에 기본적으로 어느게 낫고 어느게 나쁘고 의미는 없습니다
    다만 확실히 닮으면 귀인(貴人) 이라고는 봅니다 새를 확실히 닮았다 물고기를 확실히 닮았다 ...
    대부분의 (보통 일반인) 사람들은 적당히 닮았죠 반면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원숭이 닮아서 귀인 이라 했습니다 이건희는 거북이
    닮았는가에 대한 판단은 걸음걸이의 중심점으로 보는 것이 원칙입니다
    예를 들어 걸을 때 새처럼 목이 뻣뻣하게 움직이면 조류(鳥類) ( 닭둘기 등 거리의 새를 보면 목을 쭉 빼고 걷습니다 )
    거북이처럼 등뼈를 꼿꼿히 세우고 등으로 걸으면 갑류(甲類) ( 이건희 회장 걸음걸이 생각하면 될 듯 )
    개 고양이 말 처럼 배꼽 중심으로 걸으면 달릴 주 자를 써서 주류(走類)
    물고기가 꼬리 지느러미 흔들며 가는 것 처럼 꼬리뼈를 흔들고 걸으면 어류(魚類) 입니다
    안주빨 많이 먹는 건 보통 어류 입니다 ㅋㅋ 저도 대표적인 어류죠
    물고기는 하루 종일 뭔가 먹고 있고 반면 거북이는 하루에 해초 한 입 먹고 물 만 마십니다
    그래서 그런지 몰라도 물고기는 수명이 짧고 거북이는 수명이 길어 오래 살죠 십장생

    또한 '갑류'라고 해서 전부 긍정적인 것은 아닙니다
    거북이도 남생이 자라(중국에서는 욕)도 있고 ... 격이 있어야 합니다
    ( 물론 같은 격 이라면 주류 보다는 갑류가 더 사회적으로 성공한 상 일 겁니다 하지만 격이 높은 주류는 격이 낮은 갑류를 이기죠 )
    제가 관상학에 관심 있거나 배운건 아닙니다...
    그러나 보행학, 보행 시 동작에 대한 동적 역학은 의학에서도 중요한 의미를 갖죠
    건강하게 걸으면 건강하다고 하고 걷는 모습을 보고 병을 판단하기도 합니다 그것이 한의학이 아니래도 말이죠
  • 밥과술 2015/08/06 18:37 # 답글

    두꺼비하면 우리는 소주회사 심볼로나 그 모습을 보았는데, 이렇게 펼쳐놓고 보니 오묘한 세계가 펼쳐지네요. 왜 개구리보다 두꺼비가 영물취급을 받았을까 새감 궁금해집니다. 일본에 '두꺼비 기름 장사'라는 말이 있듯이 독을 품고 있고, 또 그독이 약으로도 효용이 있어서 그런 걸까요. 중국에서는 두꺼비가 달을 상징한다고 하는군요. 무심코 지나가는, 우리의 생활과는 거리가 멀어진 두꺼비 이야기가 한중일을 오가니까 재미있습니다. 잘보고 갑니다~^^
  • 迪倫 2015/08/07 09:54 #

    두꺼비가 의외로 영물로 받아들여진 것 같습니다. 위의 Nocchi님도 언급하셨듯이 왠지 갑류라고 하니 상위 레벨을 나타내는 것 같습니다.

    찾아보니 의외로 3국이 공유하면서도 다른 모습으로 발전시키는게 재미있는 것 같습니다.재미있게 봐주셔서 늘 감사합니다!
  • 빛의제일 2015/08/06 22:44 # 답글

    포스트를 읽고나니 '달려라 두꺼비, 날아올라라 두꺼비'를 읊조리게 되고, 어쩐지 두꺼비 그림의 진로소주 구해서 마셔야 하나 싶습니다. ^^;;
    두꺼비는 콩쥐의 물독 구멍도 막아준 것 같은데, 두꺼비 애호가가 되어야겠습니다. :)
  • 迪倫 2015/08/07 09:55 #

    그런데 금복주가 아직도 있나요?

    전래설화에는 두꺼비가 소녀들을 많이 도와주더군요... 왠지 좀 음흉(?)한 기분이...-_-;; ㅎㅎㅎ
  • 2015/08/07 02:20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2015/08/07 09:48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 행인1 2015/08/07 22:44 # 답글

    1. 가부키에도 저런 엄청난 소품이 출연(?) 할줄이야...

    2. 두꺼비 관련 설화에서는 두꺼비가 은혜를 갚기 위해 마을 뒷산에 사는 거대 지네와 동귀어진 하여 먹여살려준 아가씨를 구한다는 줄거리도 있지요.
  • 迪倫 2015/08/13 12:01 #

    1. 안그래도 이 덴지쿠 도쿠베가 에도사람들에게도 경악의 스펙타클이었다고 하더군요. ㅎㅎ

    2. 두꺼비 설화의 등장 괴물은 주로 지네 또는 이무기로 변주되는 것 같더군요. 지네와 이무기가 어떤 차이가 있는지 분석해보면 그것도 재미있을 것 같습니다만... 하도 자료가 인터넷에서 베끼기로 서로 혼합되어버려서 어느게 어느건지 알 수가 없게되어버린 것 같아 아쉽더군요.
  • 2015/08/09 21:21 # 삭제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이종혁 2015/08/09 21:24 # 삭제 답글

    저도 두꺼비하니, 서독의 합마공을 떠올렸는데.. ^^

    동양에서는 다산과 재복의 상징이지만 서양에서는 그리 좋은 이미지는 아니더군요.

    아무래도 예전 주류회사의 이미지가 금복주 같은 경우는 포대화상이고 진로는 두꺼비였으니

    고전과 현재의 이미지는 순환하는 것 같습니다. 한 때 알아주지 않은 심벌이 소설이나 만화로 이미지업! 되버리니

    최근 추천받은 만화를 다 보았는데 헤우게모노(효게모노)를 보면서 에피소드에서 아마쿠사가 나오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중국이나 일본과 다르게 당시 조선에서는 환타지류에서 너무 폐쇄적인 이미지가가 강해서 우리나라도 저 시기에는 뭔가 잼난 게 있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도 큽니다. 흠.. 일지매 이전의 이미지라면 홍길동전이나 전우치전 같은 것도 연관점이 있지 않을까 내심 생각해 봅니다.
  • 迪倫 2015/08/13 11:59 #

    아참 진로가 두꺼비였죠....

    조선에도 18세기에 환타지류 검술 소설들이 상당히 많았습니다. 제가 2부에서 일부 소개를 드려보도록 하겠습니다. 권선징악이나 사필귀정이 아니라 그냥 이게 뭐야 싶은 이야기들도 좀 있더군요 ^^ 그런 이야기들이 좀더 대중적인 컨텐츠로 발전 못한 것은 확실히 아쉽습니다.

    그나저나 서독의 합마공은.... 도대체 폼이 안나서 모른척하고 싶습니다 흑흑....
  • 역사관심 2015/08/18 07:51 # 답글

    하마선인도가 이 주제를 그린 것이었군요. 역시 특이하다는 생각은 하고 있었는데... 역시 잘 배우고 갑니다.
  • 迪倫 2015/09/14 10:30 #

    하마선인도는 실은 꽤 재미있는 테마인 것 같습니다. 역사관심님이 더 찾아 올리실 내용들 기대해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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