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8년 한인 러시아군인들. by 迪倫

달려라, 설국열차! 블라디보스톡으로! 고국으로!의 마지막에 소개한 1919년 4월 제1한인국민회의에서 사회를 본 서재필 박사의 연설에 등장한 1차대전에 참전한 "고려인 출신의 러시아 군인들"이 의외로 놀랍다는 반응이 많으셔서 잠깐 최근 뉴스 하나를 소개하고 넘어가겠습니다.

2013년초 독일 훔볼트 대학의 아카이브에서 국내 아리랑 연구자 김연갑씨가 오랜동안 추적해오던 흥미있는 아리랑 음반을 발견하여 소개하였습니다. 직접 한번 들어보시기 바랍니다.

이 아리랑 녹음은 1917년 독일에 포로로 잡힌 러시아군 내의 여러 제민족에 대한 인류학적 조사 자료로 민속노래와 언어들을 당시 원통형 축음기에 녹음하였다가 이후 동독지역에 속했던 베를린 훔볼트 대학의 라우트 아카이브로 보관하고 있던 것 중 일부입니다.

그런데 이후 추가 리서치를 통해 동영상에 등장하는 김그리고리(Kim Grigori)와 안스테판(An Stepan) 외에도 베를린 민족학박물관 포노그람 아카이브와 훔볼트대학교 라우트 아카이브(Lautarchiv)에서 1910년대 한인포로 강가브리엘 (Kang Gawriel), , 유니콜라이(Yu Nikolai), 유 니키포르(Yu Nikiphor), 김카리톤(Kim Chariton) 총 6명의 인적사항과 노래와 음성이 담긴 유성기 음반이 추가로 공개되었습니다. (자세한 것은 여기 클릭)

그중 국립국악원에서 보다 학술적으로 조사한 작년 2014년 12월의 발표 일부 내용만 살펴봅시다. 아리랑을 부른 김 그리고리는 1889년 1월 28일 니콜스크-우수리스크 출생으로 부모님은 경흥 출신 한국어 러시아어 가능하고, 직업은 원래 농업, 종교는 러시아정교라고 기록이 남아있습니다. 1917년이면 28세군요.
한편 안스테판은 1877년 자레치에(Zarech’e) 출신 블라디보스톡 거주. 부모님은 역시 경흥 출신 한국어 러시아어 가능, 직업은 원래 상업, 종교는 러시아정교. 그외의 다른 4명도 20대후반에서 30대 중반의 비슷 비슷한 백그라운를 가지고 있습니다.

1차대전이 발발하던 1914년 6월 짜르의 동원령으로 러시아 국적 소지 한인들이 먼저 4,000명 정도 정규 러시아군에 입대를 했으며, 이듬해 1915년 러시아 국적을 받기위해 러시아군에 지원한 한인이 다시 3,000명 정도되는 것으로 확인이 되고 있습니다. 이들은 시베리아 서쪽의 동부전선으로 배치되었고, 우연히도 이들 중 독일군에 포로가 된 6인은 독일에서 민족연구의 자료로 신상기록과 언어, 아리랑뿐 아니라 성주풀이, 기생점고, 백로타령, 담바고타령, 그리고, 대한사람, 조국강산 같은 독립운동가들을 남겼습니다. 참, 기이한 환상같은 흔적들이죠.

서재필은 아마도 러시아 연해주와 연결된 임정 인사를 통하여 러시아 군대에 근무하는 코리언에 대해 전해들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적어도 우리도 연합국의 일원으로 피를 같이 흘리고 있다는 주장을 하기위해 3만명은 약간 과장이 아닌가 싶기는 하지만, 전쟁 직후인 1919년초 무렵에는 그정도로 규모가 늘어났을 수도 있습니다.(이 추정에 대해서는 이 포스팅 맨 아래 내용을 참고하십시오)

그런데 왜 이들 한인들에 대해서는 우리가 잘모르고 있을까요?

실은 이 이유는 20세기의 역사적 배경이 있습니다. 우선 이 포로 녹음만 하더라도 첫 발견자분이 80년대에 이미 존재한다는 것을 들었지만, 자료가 당시 동독지역에 있었기 때문에 독일 통일과 아카이브 공개까지 기다려야했습니다. 비슷한 이유로 러시아 지역의 한인들은 그동안 우선 "소련사람"들이었고, 게다가 30년대 후반이후 주 근거지였던 연해주에서 중앙아시아로 강제이주 당하면서 상당수의 고난과 단절이 발생한데다가, 이후 소련 붕괴 후 개방과 경제적 혼돈 속에서 더더욱 한국과 가깝기 어려웠던 점이 있습니다. 결국 1990년대 이후 러시아의 개방과 교류가 늘어나면서도 한참 지난 다음에야 생존했던 과거 한인들에게 접근이 가능해졌던 것이죠. 특히 1차대전에 참전한 것은 소비에트 시기 불리하게 작용하여 감추는 경우도 많았기도 하고 말입니다. 선도적인 연구들은 일부 있지만 아직은 충분한 연구가 부족합니다. 저야 뭐 기다리고 있는 사람 중의 하나일뿐입니다만. 아무튼 비록 지금부터 들려드리는 이야기에 아직 허술한 데가 많아도 이런 사정을 이해해주시기 바랍니다.



아무튼 서재필 박사가 말한 내용 중 러시아군 내에 한인들이 유럽 전선에서 참전한 것은 확인이 되지만, 1919년 4월 기준으로 "한인 러시아 군인들이 체코군단과 같이 시베리아로 돌아왔다"는 것은 현재로서는 솔직히 확인이 아직 안된 언급일뿐입니다.

체코에서 이들 한인과 체코군단에 대해 연구를 한 즈데나 클로슬로바 선생(Zdenka Kloslova, 또는 Zdenka Klöslová, 체코슬로바키아 과학 학술원 동방연구소의 선임 연구원이고, 프라하 카렐대학에서 한국어문학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클로슬로바 선생이 현재로서는 체코쪽에서 한국인과 체코군단의 관계를 연구하는 주 연구자인데, (http://korea.ff.cuni.cz/en/node/291) 작성한 논문 중의 한편 (혹은 일부가) 체코 교민회 사이트에 번역이 되어 올라온 적이 있습니다. 여기에 보면 "유명한 가이다의 열차에 있던 16명의 한국인들"에 대해 언급하고 있습니다만. 체코어 원 논문을 읽을 수가 없어 현재로서 더이상은 알 수 없습니다. 체코어 잘하시는 분 언제 이런 연구들 번역 좀 해주세요!

하지만, 迪倫齋도 나름대로 끈질긴 데가 있는 곳이니만치, 몇가지 체코군 또는 가이다 장군과 한인 무장부대에 대한 접점들은 찾을 수 있었습니다.

일본외무성 자료라는 사료 아카이브가 있습니다. 아카이브 자체는 워낙 잘알려져서 현대사를 연구하는 전세계 학자들이 이미 많이 분석을 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오랜 기간동안 별로 주목을 받지않고 있던 일부 자료 섹션 중에 『不逞團關係雜件 朝鮮人ノ部 在西比利亞』이라는 방대한 섹션이 있습니다. 제목 그대로 "항일 단체 관계 기타 분류 중에서 조선인 파트 - 시베리아"편입니다. 주로 블라디보스톡 영사관과 기타 하얼빈, 간도같은 곳의 치안당국 등에서 그야말로 방대하고 자세하게 소위 "불령선인"들을 조사 보고한 기록입니다.

그중 1918년 10월14일 블라디보스톡(浦潮 = 우라시오 이 표기에 대해서는 이전의 글을 참고하세요, 클릭)에서 작성된 보고서 "朝鮮人部隊 편성에 관한 건"을 소개해드리겠습니다. (모두 5 페이지인데 이미지는 첫 페이지만 보여드리고 번역은 제가 요즘 한국어 표현으로 대충 해서 소개합니다. 틀린 부분이 있어도 전체적으로는 비슷할테니 아무쪼록 양해바랍니다)

浦潮정보 9월27일 "조선인부대편성에 관한건"
9월 25일 블라디보스톡 발간 러시아어 신문 '고-로스 푸리모-리야' 지에 다음의 기사가 실림. 가이다 장군은 근위소위 "원(元)"에게 조선국민대대편성의 허가함. 27일 같은 신문지상에 "원"의 "한인장교와 병사에게 국민대대편성에 관한 격문"이 실림. 격문의 내용은 다음과 같음. '조선인 장교와 병사에 대한 격문. 장교와 병사 동포에 고함. 독일과 오스트리아에 대적한 세계대전의 첫해에 우리 조선인은 명예롭고 위대한 러시아군의 전열에 참가하여 신성한 병역의 의무를 이행했다. 우리 동포의 다수는 러시아 구국의 전장에서 싸우고 많은 사람들이 적군의 포로가 되어 독일에서 고초를 당하고 있다. 우리 자신과 부모들을 굶어죽을 상황에서 구하고, 우리 자녀들이 러시아에서 살아가면서 제한없는 권리를 부여받기위해서라면 자신의 목숨을 바쳐서 하는 것은 명백하다고 자각하고 전쟁에 임하였고, 신께서 우리를 보호하셔서 독일의 탄환과 포탄의 파편 속에서 우리를 지켜주셨으며 그리하여 우리 출정군인은 각종의 상흔을 입고 돌아왔다. 그 후 과격파(註: 볼셰비키)의 군대해산령을 따라 우리는 현재의 전역을 마치고 각자 돌아와 쉬게 되었다. 그러다 시국이 급변하여 과격파의 무질서를 배제하고 전체 러시아 국의 충실한 국민의식을 갖고 자신의 이해를 버리고 러시아 부흥군에 가담하도록 하자. 내가 경애하는 우리 조선인 동포에게 바라는 것은 조선국민대대에 참가하여 러시아 국민으로서 신성한 국민적 의무를 다하고 그와 같이 러시아는 우리에게 능히 똑같이 할 것이다.
(1918년) 9월 23일 나는 "체코슬로바키아"군 및 "러시아"군 사령관 "가이다" 소장에게 조선국민대대편성을 허락받았다. 이 부대는 새로 신설된 부대로서 러시아 연대에 편입되게 된다. 각 장교와 병사들은 일반 동원을 기다리지말고 새로 편성되는 우리가 평생 열망해온 조선국민대대에 나와 참가하여 신성한 의무를 다하자. 대대편성의 장소와 소속관헌의 지령은 다음에 별도로 다시 공포한다. 국민조선대대장 근위소위 원(元).


이 내용이 실렸다는 "ゴーロスプリモーリヤ(고-로스 푸리모-리야)"는 리서치를 해보니 "골로스 프리모릐야 (Голос Приморья)"라는 신문으로 1917년부터 1919년까지 발간이 된 블라디보스톡 지방 신문이었더군요. 이 해당 내용이 실린 기사를 찾으면 더 좋았겠지만, 저의 러시아어는 그런 레벨이 아니라... ㅠㅠ 언젠가 역사학자들의 수고를 기다려봅시다.

아무튼 1918년 9월이라면 아직 서유럽 전선의 전쟁은 진행 중이고, 동부전선을 떠난 체코군단이 8월 이후 시베리아 동부로 볼셰비키에게 밀려간 콜차크 제독의 백계 러시아군과 손을 잡고 가이다 장군이 시베리아 사령관으로 막 떠오르던 시기입니다.

이 내용에는 제정러시아 군대에 들어갔던 한인 군인 - 장교와 사병 모두 - 에 관련한 정보가 개략적이지만 증언으로 남아있습니다. 이 보고서 중의 조선국민대대의 대대장 "원(元)"은 "미하일 이바노비치 원"입니다. 제정러시아 군대에서는 근위소위 계급이었습니다.

동부전선에서 체코군단이 한인 군인들과 접촉이 있었던 것은 아직 자세히 모르지만, 아마도 체코군단이 시베리아 철도를 타기 시작한 이후 한인들과 조직적으로 접촉한 것으로는 첫번째 기록으로 보입니다. 원소위가 직접 가이다 장군으로부터 부대 편성 승인을 받았다고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후 한인 무장세력에 대단히 촉각을 곤두세운 일본측 자료에는 이 국민대대에 대해 대단히 여러번 자세한 후속 보고를 하고 있습니다.

조선국민대대는 러시아 삼색기에 짜르문장이 들어간 제정 러시아 군대의 깃발을 본떠 러시아 삼색기에 태극 문양을 그려 사용했다고 하는데, 실은 이 부대는 러시아 적백 내전기간 유일한 백계 러시아 한인 부대입니다. (물론 대체로 1918년-1920년 사이에 조직된 적위파 한인 부대는 상당히 많았습니다만, 그 이야기는 이 다음에 이어집니다)

그런데, 이 조선국민대대는 이듬해 1919년 5월 영국군에 지원을 받는 미하일 이바노비치 원 소위의 제1대대와 미국군에 지원을 받는 표트로 미하일로비치 김 2등대위(혹은 중위)의 제2대대로 나눠집니다. 그리고, 얼마가지못해 1919년 7월 이후에는 거의 부대가 와해되는 상황으로 진행됩니다. 그리고, 부대원의 대부분은 항일 독립운동 부대로 합류해버립니다.

왜그랬는지, 어떤 일이 있었는지 그 이어지는 이야기는 너무 길어져서 다음편에 들려드리겠습니다.

대신 여기서 절단신공을 부리려니 좀 미안해서 대신 1917년 9월 13일자 신한민보의 기사 하나를 소개해드리겠습니다. (신한민보는 미국 샌프란시스코의 교민단체인 대한국민회의의 기관지입니다.)


한 기사가 아래위로 나눠져서 실려있던 것이라, 제가 아래에 다시 적었습니다. (원래는 띄어쓰기가 없지만 제가 임의로 띄웠고, 아래아는 ㅏ 또는 ㅗ, ㅅㅂ은 ㅃ, ㅅㄷ은 ㄸ로 고쳤습니다. 표기를 일부러 살렸는데 소리 내어 읽으면 금방 이해되실 것입니다.)

제목: 구쥬 젼댱 한인 군가
1. 우리는 배달나라 사나희라 불ㄱ은피 뿔뚝뿔뚝소사나때 총메고 칼안차면 못하리니 쇠쥬먹 번ㅅ젹들고 뇌떠셔셔

후렴: 압흐로 압으로 ㅅ뒤여나가셔 큰승리 엇기까지 싸홈하야 한반도 대민족 영광 돌니고 루시아 깁흔 은공 갑흐리라

2. 셰비리아 넓은 들에 "쉰휘령시" 갑아보긴 이뙤로다 한억만 슬라비안 큰 민족은 우리의 가쟝 졍든 친구로다
3. 억만고 쳐음 보난 이 싸홈에 츔 한번 못 추어보면 못난쟈라 을지공 리튱무의 본을 빗아 빗뇌세 림젼무퇴 조샹 교훈
4. 한만명 우리 군사 드러보소 이 싸홈에 싸홈법을 못뵈우면 이담날 우리 싸홈 어이하리 일심코 뵈워두셰 싸홈법을
5. "우랄"산 넘어 싸홈터에 압흐로 번괴갓치 달녀나가 뎍병과 유쾌하게 졉젼할뙤 억괴츔 절로 나셧되 노누나
6. 빗치라 "알파"산 슬젹 지나 "벌린"셩 "유엔나" 함락하고 "콘스탄뚜루뎐" 대회 뎜령한 후 승젼가 두둥두둥실 도라오셰

이 노뢰는 우루시아 졍부의 후의를 갑흐며 실전 졍황을 경력하기 위하야 구쥬대젼댱에 츌젼한 우리 일만 건아의 불으난 군가.

(이 노래는 러시아 정부의 후의를 갚으며 실전 정황을 배우기위해 유럽 대전장터에 출전한 우리 1만 건아들이 부르는 군가)

아아... 지금부터 100년 전에 저 먼 유럽의 참호 속에서 들려오는'억만년 처음보는 이 싸움에 춤한번 못추어보면 안된다'고 '이 싸움에서 싸우는 법을 배워 이 다음 우리 싸움에 써야한다'면서, '을지문덕과 충무공을 본 받아 베를린, 비엔나, 콘스탄티노플 점령하고 승전가를 부르면서 돌아오자'던 바로 한인 군인들의 군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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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Cicero 2015/05/03 12:43 # 답글

    작년말쯤에 괴테문화원과 국립국악원에서 관련해서 공동으로 학술행사를 진행하기도 했던게 생각나는군요.
  • 迪倫 2015/05/03 12:51 #

    아, 문체부에서 작성한 이 공동 학술행사의 자료를 참고했습니다 ^^
  • 행인1 2015/05/03 22:51 # 답글

    무려 1차대전에도 수천명이 참전했을 줄이야...
  • 迪倫 2015/05/04 07:54 #

    서부전선쪽은 아무래도 미국을 통해 참전한 사람들이 확인이 되고 있기는 합니다만, 확실히 1차대전에 대해서는 알려지지 않은 내용들이 많습니다.
  • 빛의제일 2015/05/03 23:28 # 답글

    몇 해 전 읽은 사라지는 언어 관련 책에서 본 원통형 축음기 음반은 무시무시하다 느낌이었는데, 링크 기사에 나온 원통형 축음기 음반은 참 고맙습니다.
    '춤 한 번 못추어보면 안된다'는 표현에, 국사시간에 배운 삼국지 위지동이전 내용이 떠오르면서 역시 우리 민족했다가 이어지는 내용에 가슴이 아릿합니다.
    저 노래를 불렀을 사람들의 마음을 생각하니 뭉클해집니다.
  • 迪倫 2015/05/04 07:57 #

    신문기사 이미지가 몇개 부분은 저도 옮긴게 정확한지 싶기는 합니다만, 처음 이 노래를 보고 참 여러가지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그나저나 한국인들이 베를린 비엔나 점령하고 돌아오자는 스케일도 대단하고 을지문덧 이충무공 역시 빠지지 않으시고 ^^ 대단한 자존감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 불별 2015/05/03 23:54 # 답글

    1차 대전에 중국인 노무자 10만명이 군속으로 참전했다는 이야기는 들었는데, 고려인이 참전했을 거라는 생각은 못했네요.. 저 밑 군가는 정말 시사점이 많은 것 같습니다. 새로운 종교를 받아들이면서도 역사와 전통을 지키고 조선을 언젠가는 돌아가야 할 땅으로 생각했다니..
  • 迪倫 2015/05/04 07:59 #

    러시아 한인은 지금 고려인들, 또는 중앙아시아 강제이주의 희생자 뭐 그런 식의 이미지가 형성되어 있는데 그보다는 좀더 제대로된 위상을 알아줘야 하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입니다.
  • 불별 2015/05/03 23:54 # 답글

    혹시 저 군가의 내용과 이 포스트 주소를 트위터에 올려도 될지 여쭙니다.
  • 迪倫 2015/05/04 07:59 #

    물론 괜찮습니다^^
  • 남중생 2015/05/04 01:17 # 답글

    슬라비안 큰 민족은 우리의 가쟝 졍든 친구로다. 범슬라브주의가 한인들의 독립의식에 어떻게 작용했을지 궁금해지네요.
  • 迪倫 2015/05/04 08:01 #

    범슬라브주의를 한인들이 어떻게 인식했는지 몇가지 단서들을 보긴 했는데 아직 저도 이쪽은 그렇게 잘알지못해... 그러고 보니 그쪽을 조사해보는것도 재미있을것 같습니다...
  • 역사관심 2015/05/04 04:03 # 답글

    허, 전설로만 듣던 러시아 한인군대의 연구가 본격적으로 이제 시작이로군요. 저런 군가는 정말 색다른 느낌입니다.
    (그나저나, 오늘 이글루스에 글 보내려 했는데, 공교롭게 이 글이 딱 올라오네요. 몇달만인지;)
  • 迪倫 2015/05/04 08:02 #

    러시아에서 소비에트 이전의 역사를 복원시키고 있으니 아마 앞으로 더 재미있는 내용들이 더 나와질것으로 보입니다.

    그나저나 다시 작동하나보네요^^
  • 밥과술 2015/05/04 22:46 # 답글

    잘 읽고 갑니다. 짧은 덧글로 소회를 담기엔 벅찬 생각이 많이 듭니다. 나중에 기회닿을 때 자세히 달겠습니다~
  • 迪倫 2015/05/06 10:55 #

    감사합니다! 벅찬 생각이라고까지 해주셔서 언제 말씀 들어보고 싶습니다.
  • Nocchi 2015/05/06 10:03 # 답글

    마지막에 인용하신 노래 가사 한 마디로 '튱격뎍' 이네요

    2차 대전은 연합국측에 대한 참전으로는 실 참전 인원 고작 몇 십 명 수준밖에 되지 않음에도 교과서에 대서특필 급으로 실리는 데
    1차 대전에서는 훨씬 많은 숫자의 한국인 연합군 참전자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교과서에 단 한 줄 실리지 않는다는 사실을 처음 알게 됩니다
    무려 100년 전에 축음기로 녹음된 <아리랑> 까지 있을 정도인데 이렇게 무시당하다니 . 역량의 한계와 정치 싸움에 휘말린 한국 학계의 현실인가 싶기도 하고 .
    그래도 큰 학자가 있었으면 놓치지 않고 다루었을 주제 일 거 같은 데 ..

    두 번 충격 먹고 갑니다
  • 迪倫 2015/05/06 11:02 #

    아직 연구가 많이 없어서 잘모르겠지만 1차 대전에 러시아 한인도 아마 한 1만명 정도? 미국에서도 지금 보면 상당히 많은 한인 병사들이 Dough boy로 유럽에 갔었습니다.

    말씀하신 내용은 실은 한국 학계의 현실이라기 보다 20세기 한국사회의 장애가 있었습니다. 우선 러시아에서 활동한 한인들이 결국 쏘련사람들이 되었기때문에 알 수도 없었고 알아도 말할 수도 없었습니다. 이것은 심지어 북한에서도 마찬가지인게 이 사람들이 결국 해방후 쏘련군과 같이 온 쏘련파의 주력이었는데, 아시다시피 60년대초반 모두 숙청당하고 소련으로 돌아간 후 더이상 발언권이 없어져버렸습니다. 남북 모두에서 잊혀진 사람들이었던 것이죠. 실은 나중에 좀더 얘기하겠지만 체코군단 역시 체코 민주화 이후에 다시 재평가 발굴되었습니다. 2차대전때 독일 점령기간 동안과 동구 공산권에 속해있을때는 탄압을 받았습니다. (둘다 적으로 싸운 사람들이었으니까요 ^^)

    의외로 연구는 그래도 진행되고 있습니다. 그러니 저한테까지 이야기가 흘러와서 이렇게 글도 올리는 거죠. 한국 사회가 좀더 개방적으로 포용력이 생기고 자존감이 생기면 보다 더많은 연구들이 나와지리라 생각합니다.
  • Nocchi 2015/05/07 10:08 #

    제가 답답한 마음에 약간 오바 한 듯 싶습니다 ^^
    어쨋든 이제라도 언젠가 일제를 향해 총부리를 돌리기 위해 광활한 시베랴 벌판을 달린 대한 남아들의 기개가 조금이나마 더 밝혀지고 알려졌으면 하네요
    종북좌파 윤이상 음악제를 폐지 하라는 집회가 성황리에 열리는 작금의 대한민국 분위기 에서는 지금도 쉽지 않은 일 일 수도 있겠습니다만..
  • 迪倫 2015/05/07 12:18 #

    하하, 오바까지는 아닙니다. 저도 잘모르든 내용들을 알게되니 우와 하고 놀랬던 것들이라 이렇게 좀더 많이 알려지면 좋겠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얘기하려 하지만 20세기 불행한 역사에 맞물려 알려지는게 쉽지않았을 거라 생각됩니다....
  • newbie 2015/05/06 03:33 # 삭제 답글

    이 노래는 인터넷에서도 접해 봤고 올해초인가? 저번에 KBS에서 고려인 특집 다큐 할 때도 나와 관심있게 잘 보았던 부분이라서, 뒷이야기가 항상 궁금했습니다. 백계한인부대 이야기도 덕분에 정말로 처음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저 노래가 지구 한 바퀴 태평양을 건너 전해지고, 그게 신문에 실리는 모습 자체가 참 가슴에 와닿네요. 두 공동체가 머잖아 연락이 끊어지고, 각자 힘겹고 머나먼 길을 걸어갈 것을 생각하면 더더욱 그렇게 느껴지는군요...
  • 迪倫 2015/05/06 11:15 #

    아, 이 노래가 인터넷에 이미 나와있었나요? 몇단어를 정확히 식별을 못해 제가 얼머무린게 있는데, 참고를 하게 한번 봤으면 좋겠습니다. 고려인 특집 다큐가 있었던 것은 아는데, 제가 보지를 못했습니다. 노래 가락도 들려줬었나 봅니다. 백계 한인부대의 자초지종은 조만간 이어서 올리겠습니다.

    그리고, 예, 저 역시 저 노래가 지구를 한바퀴 돌아 기록되고 다시 전해지는데서 참 여러가지 감회가 들었습니다. 혹시 모르겠습니다만, 예전에 이렇게 먼길 돌아온 음식을 먹고 글을 올린 적이 있습니다: http://dylanzhai.egloos.com/3243829 "20세기가 시작될때 한반도를 떠나 멀리 멀리 오랜 역사를 거쳐 돌고 돌아온 이 음식들을 20세기가 끝날 무렵 반대방향으로 떠나온 제가 뉴욕의 조그만 식당에서 먹어보게 되었습니다"라고 소감을 적은 적이 있습니다. 멀리서 각자 "살아가다 보면" 이렇게 접점들이 생기더군요.
  • newbie 2015/05/06 15:49 # 삭제

    아 제가 표현을 애매하게 해버렸네요. 맨 위 독일에서 채록된 아리랑은 방송을 탄 적이 있지만, 밑의 신한민보 군가는 정말로 웹상 어디에서도 못 보던 기록이예요. 덕택에 이번에도 많이 알아갑니다.

    소개해 주신 식당 글도 재미있게 잘 보았습니다. ^^ 다음 에피소드도 정말 기대되네요! 좋은 하루 되세요
  • 迪倫 2015/05/07 12:11 #

    아! 제가 잘못 오해앴군요. 재미있게 읽어주셨다니 감사합니다!
  • 함부르거 2015/05/06 18:50 # 답글

    역사를 읽다 보면 전체 또는 일부가 다른 대국의 용병집단처럼 살아가는 민족들이 있습니다. 코사크라던가 쿠르드, 멀게는 징기스칸이 멸망시킨 타타르처럼 말이지요. 대체로 제국의 변방에 위치해서 민족의 정체성은 있는데 국가를 이룰 만한 힘이나 전통이 없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만.

    러시아에 의탁해서 스스로 용병 노릇을 자처한 옛 조선인들을 보니 우리 민족도 정말로 나라가 없었다는 게 실감납니다. 정말로 나라가 없었구나...

    참 여러가지 감정이 밀려들어서 감상을 쓰기가 어렵네요...
  • 迪倫 2015/05/07 12:12 #

    정말로 나라가 없어진 후 사람들은 각자 가장 좋은 길을 찾아서 갑니다. 오늘 이 국민대대의 배경이 되는 2년 사이의 일들을 대략 정리를 했습니다. 어쩌면 좀더 이들을 이해할 수 있으실지 실마리같은 것을 찾으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 ㅇㅇ 2019/06/08 16:33 # 삭제

    러시아 국민으로서 러시아군에 입대해 싸우는 게 용병? 지나치게 민좆주의적 사고방식이네요
  • Nocchi 2015/05/07 10:09 # 답글

    원래 세계 역사 속에서 원래 1차 대전이 갖는 의미가 2차 대전보다 훨씬 크다고 할 수 있는 전쟁인데요
    기존의 한국 역사책 속에서는 그 전쟁 동안 한민족이 마치 아무것도 한 것이 없다는 식으로 씌여져 있어서 외국 학자들이 보면 조선은 일제 치하에서 태평성대를 누렸는지 알겠습니다
    세계가 대격변의 시기 일 때 조선은 평화(?)롭게 지내다가 1919년이 되어서야 미국 대통령이 주장한 무슨무슨 민족자결주의 영향으로 독립만세운동을 (처음으로) 했다 이런 식으로 역사 서술이 흘러가는 데 ... 곰곰히 생각 해 보면 이건 논리적으로 말이 안 되는 겁니다
    어렴풋이 '말이 안된다' '이건 일제를 간접적으로 찬양하는 수준이다' 라는 생각을 갖고 있었는 데 '숨겨진(?)' 실제 역사를 접하고 보니 더욱 놀라고 충격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기존 학계의 무책임 함에 답답함을 느꼈던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물론 당시 시대에 코렁탕을 안 마시려면 그렇게 할 수 밖에 없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만...
  • 迪倫 2015/05/07 12:15 #

    안그래도 1차대전 시기에 너무나도 내용이 없어 늘 궁금했습니다.그래서 이래저래 동아시아에 그때 무슨일이 있었는지를 찾아보다보니 체코군단과 러시아 한인들에 대한 이야기들을 접하게 되고 흥미를 가져서 좀더 찾아보았습니다.

    제가 뭐 숨겨진 역사를 찾아낸 것은 아니고 이미 연구가 진행되어 있는 것을 찾아 읽고 정리해서 이야기를 들려드리는 것입니다. 아무튼 사람들의 이야기로 읽어주시기 바랍니다. 저는 그게 더 먼저라고 생각하거든요.
  • 2016/08/08 18:00 # 삭제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迪倫 2016/08/08 22:08 #

    안녕하세요! 예, 님의 블로그처럼 출전 남겨주시면 괜찮습니다. 그보다 이렇게 정중하게 부탁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마 군에 들어가시는가 봅니다. 여러가지 이유가 있으시겠지만 아무쪼록 건강하게 잘 해내시기 진심으로 바랍니다.

    실은 자료를 더 모으고 있는 중이지만 1차대전에 미국과 영국군에도 한인 병사들이 있었습니다. 어떤 사연이었는지 어떤 의미가 있는지 찾아보고 있는 중입니다만, 남기신 말씀처럼 그 덕을 우리가 현재 보고있는게 아닌가 생각합니다. 자주 들러서 얘기 남겨주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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