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시편성: 다시마의 맛! 昆布の味! by 迪倫

청어 is back! (and I'm back, too)에서 원래는 청어 얘기를 계속하려고 했는데, 덧글에 뜻하지않게 다시마에 대한 얘기들이 많이 실려, 이참에 다시마 얘기를 짧게 (라고 했지만 역시 길어질 것같은) 하려고 임시편성을 하였습니다. 아무렴 어떤가 재미있으면 되지 하는 심정이랄까요. ㅎㅎㅎ

지난편 히토메타마보코라는 17세기 후반의 지리물산지에 소개된 마쓰마에의 특산품 중에 "다시마"는 일본어로 "곤부(こんぶ:昆布)라고 합니다. 그런데 곤부/다시마의 소비량이 일본에서 가장 높은 지역들 중에 최근의 1위는 일본 서북쪽 해안가의 도야마현(富山)입니다만, 전통적으로 교토/오사카의 가미카타(上方)지역과 오키나와도 소비량이 높은 지역이었습니다.

지난번 덧글에 까날님이 오사카에서는 다시국물을 다시마로 내고 도쿄에서는 간장으로 다시국물을 내서 얕잡아본다는 내용을 적어주셨는데, 실제 교토요리의 국물 베이스는 다시마 우린 국물이 유명합니다. 뭐 오사카와 교토는 오랫동안 경제중심지이고, 수도이고 했으니 그런가보다 싶은데....

그런데, 오키나와라니요? 오, 오키나와는 해산물이 풍부하니까 다시마를 많이 먹나보다.....가 전혀 아닙니다. 다시마는 오키나와처럼 더운 바다에서 자라지않는 한류성 해조류입니다. 단적으로 일본 북단 홋카이도의 특산물입니다. 그런데, 오키나와현의 웹사이트에 오키나와의 식문화라면서 소개한 식품은 돼지고기, 콩, 오키나와소바, 챰프루와 함께 다시마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류큐요리에서 빠질 수 없는 다시마는 실은 오키나와에서 전혀 나지않습니다"라고 친절하게 적어두었더군요.

그래서 지금부터 도야마, 오키나와, 홋카이도, 교토/오사카를 다시마로 잇는 이야기를 들려드리겠습니다.

먼저 혹시 일본 역사에 그리 밝지않으신 분들도 많을테니 간단한 에도시대에 대한 설명을 먼저 드리겠습니다.
에도시대는 도쿄, 즉 에도에 있던 도쿠가와 바쿠후(막부)가 여러개의 번(藩)으로 나눠져있던 일본을 다스리던 시대입니다. 그런데 에도 바쿠후는 실은 연방의 중앙정부같은 게 아닙니다. 오히려 일본이라 부르던 세력권 내에 수많은 세력이 있는데 그중에 갑중의 갑이라서 오랜 기간 슈퍼 울트라 갑질을 한 것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물론 이에 동의하시지않으실 전혀 다른 시각이 많이 있습니다만, 아무튼 제 생각을 초간단으로 정리한 것이라 무리한 설명을 합니다. 오히려 쇼군을 왕으로 승격하여 바쿠후체제를 중앙정부화 하는 제도개혁을 시도했던 아라이 하쿠세키같은 사람은 결국 실각을 하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갑이 본능적으로 제도적으로 수많은 을.병.정..들을 갑 비스므리하게 성장하지 못하도록 수많은 제재를 이 시기 내내 가해왔습니다. 그래서 각 번의 재정을 고갈시키다시피하는 제도들이 이중삼중으로 행해졌습니다.

여러 번들 중에서는 도쿠가와 바쿠후가 성립될때 이에 반대했지만 살아남은 번들도 있었습니다. 규슈 남쪽 지금의 가고시마에 해당하는 사쓰마번(薩摩)도 그중의 하나입니다. 오! 사쓰마번이라면 유신을 이끈 주도적인 번이 아닌가요. 예, 맞습니다. 신식 라이플과 유럽식 군함을 구입하여 조슈번과 연맹하여 신정부군을 조직하여 구막부군을 토벌한 메이지유신의 공훈 번이지요.
이 막말유신기라고 하는 일본의 근세의 마지막 시기에 활약한 료마라든가 하는 소위 '지사들'을 배출한 지역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사쓰마번은 어떻게 그렇게 바쿠후와 정면 충돌을 할 수 있을 정도로 부강한 번이었을까요? 헐! 실은 19세기 전반까지만 해도 사쓰마번의 재정은 디폴트 상태였습니다. 그러던 사쓰마번이 1861년 분큐(文久) 2년부터 게이오(慶応) 3년인 1867년까지 직접 상하이에 가서 증기선과 라이플 1만정과 같은 규모로 대량의 서양 신식 무기를 매입하였습니다. 흐음...뭐지?

다른 여러번들의 경우도 대동소이 마찬가지기는 했지만 17세기 18세기 내내 일본 경제가 성장하는 것과는 별도로 각 번의 재정상태는 세입의 기본인 쌀가격의 하락과 과도한 세출로 모두 엉망이 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장기적인 평화체제가 지속되면서 중하급의 사무라이 계급은 번이라고 하는 기업의 샐러리맨화 되어가고 있었습니다. 물론 샐러리맨화 라는 단어에는 물가는 오르는데 월급은 안오르고..까지 포함합니다. 사쓰마번의 경우 이런 재정파탄이 더욱 심화되어 이때의 사쓰마 번주를 "日本一の貧乏殿様"(일본 제일의 가난뱅이 영주)라고까지 후세에서 평할 정도였습니다. 세입이 부족한데 급료는 주어야하고 그러면 어찌하겠습니까? 차입금으로 재정을 메꾸는 것이죠. 남아있는 사쓰마번의 채무 기록에 의하면 1616년 이미 금화 1만 6천량의 부채가 1634년에 13만 3천량, 1753년에는 66만 6천량, 그러다, 19세기로 넘어간 직후인 1801년 121만량, 이때부터는 기하급수적으로 불어나 1832년 무려 5백만량으로 불어나 있었습니다. 이때 비슷하게 심각한 재정파탄을 겪고 있던 조슈번의 경우도 부채금액은 사쓰마의 1/4 규모였으니...그야말로 실질적인 디폴트 상태였다는 것이죠. 말하자면 번 자체가 거대한 부실 기업의 상태랄지...

그런데 불과 30년 뒤인 1860년대에는 어떻게 신식무기를 스스로 마구 사들이는 부자번이 되었을까요.

실은 19세기 전반 1830년대'텐포(天保)의 개혁'이라고 하는 무지막지한 리스트럭처링을 번 전체가 실행합니다. (뭐랄까 전체적으로 부실 대기업이 건실한 초우량 기업으로 탈바꿈하여 중간 관리자였던 이들이 나중에 전경련의 중책이 되는 것을 보는 것 같은데...)

텐포 개혁의 실상은 그런데, 디폴트를 선언한 후에 주로 소위 '가오'를 잡기위해 들어가던 지출을 무자비하게 줄여버리고 돈이 되는 몇가지 산업, 특히 설탕 제조업에 집중하여 세입을 늘리고, 자체 금화를 찍어내고(으잉?), 대중국 밀무역을 번듯하게(?) 해치워버린 것입니다.

이중에 대중국 밀무역을 다시 집중해서 설명드리겠습니다.

먼저 에도시대에 에조치 남부 지역을 장악한 마쓰마에번으로부터 일본의 모든 물산이 집중되는 가미카타 즉 교토/오사카 지역으로 특산품이 흘러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귀족들의 사냥을 위한 매라든가 해달의 모피로 시작된 특산물의 흐름은 점차 말린 연어같은 일반 상품으로 교체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점차 마쓰마에에서 가미카타까지 이어주는 항로가 형성됩니다. 이를 보통 일본 경제사에서 "기타마에센(北前船)"이라고 하는 것인데, 원래는 이 항로를 오가는 배(船)를 가르키던 것이 아예 항로의 이름으로 굳어버린 것입니다. 말하자면 '이번 배만 들어오면 말이야..'라고 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원래 이 항로는 서쪽으로 돌아가기라는 의미의 西回り(니시마와리 라고 읽습니다) 항로라고 합니다.

기타마에센의 니시마와리 항로 상의 주요 지명을 표기했습니다.

오사카에서 출발하여 세키가하라 내해를 지나 시모노세키를 돌아 해안선을 타고 북으로 올라가 마쓰마에에 도달합니다. 그곳에서 최북단으로는 리시리섬까지 올라가는데, 이 항로의 중간 중간이 모두 트레이딩 포인트들입니다. 즉 뭐든지 돈이 되는 것을 사서 싣고 가서 다음 항구에서 다른 물건으로 바꾸거나 팔고 사서 최종적으로 마쓰마에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쌀과 술을 공급하고, 대신 이곳에서 주 특산물 말린 연어, 청어, 다시마 등을 사서 오사카까지 가져오는 것입니다. 예, 다시마가 이 항로에서 대단히 중요한 상품이었습니다.

이제 오사카 교토의 음식이 왜 다시마가 기본 베이스로 사용되는 요리로 발전했는지 어느 정도 이해가 되십니까? 그래서 가미카타에서 최상급품이 소비되고 난 후에 그 다음 등급품이 에도와 간토 지방으로 공급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특히 18세기말 19세기 초반 청어가 주요 상품으로 부각할 때까지 다시마는 바쿠후의 이해관계와 맞물려 전력상품으로 특히 주목을 받습니다.

위에서 각 번의 재정이 나빠졌다고 했는데, 그런 상황은 여러 번 중의 갑인 바쿠후라고 별다른 예외는 아니었죠. 바쿠후의 재정 역시 심각한 상태로 접어들고 있었습니다. 게다가, 17세기 후반 은 생산이 고갈되는 정도뿐 아니라 동전을 만들 구리조차 부족해지기 시작합니다. 이 당시 마침 중국과 교역이 다시 본격적으로 재개되자 중국에서 수요가 많은 건해산물을 밀어내기 시작합니다. 이런 건해산물은 다와라모노(俵物)라고 하는 전복, 해삼, 조개류의 3종 세트와 함께 남중국에 없는 "다시마"로 구성되었습니다.

특히 갑상선 관련 병에 좋은 요드가 풍부한 다시마는 중국에서 수요가 비상하게 늘어나서 바쿠후로서는 나가사키에 특별 사무소를 설치하고 대중국 수출에 집중을 하고 있었습니다. 18세기 후반 나가사키에서 중국으로 가던 상선의 선적량에서 다시마가 40%이상을 차지하던 것이 19세기 초반에는 적재량의 70% 이상을 차지하는 경우도 많았다고 합니다.

재정이 갈수록 악화되던 사쓰마번은 여기에 착안을 합니다! 사쓰마번에는 류큐왕국이라는 대중국 채널이 있었습니다. 나가사키에서 팔고 있는 것을 류큐를 통해 중국에 팔아도 되겠군 하는 비즈니스 아이디어가 떠오른 것이죠. 그러면 대신 다시마를 공급하고 다시마를 중국에 팔아서 들어오는 물품을 일본에서 받아줄 카운터파트가 필요한데...

이때 레이더에 포착된 것이 바로 기타마에센 항로의 도중에 있던 도야마(富山)입니다. 도야마 역시 재정을 살리기 위해 에도시대 중기부터 약재판매 도매업을 특화하고 있었는데, 이들이 마쓰마에로부터 들어오는 다시마를 받아서 사쓰마에 넘겨주고, 이 다시마를 사쓰마에서는 류큐 왕국을 경유하여 중국 동남해안의 무역도시로 실어내고, 반대급부로 중국산 약재를 받아다 도야마의 약재상들에게 넘겨 차익을 거두는 무역업을 시작합니다. 물론 바쿠후의 쇄국 정책에 위반되는 밀무역입니다. 이게 아까 얘기한 텐보 개혁 중 대외무역을 장려한다에 해당하는 것입니다.

도야마-사쓰마-류큐-중국의 라인을 통해 어느 정도 다시마가 수출되었는지는 저도 자료를 못찾아 모르겠습니다. 다만, 바쿠후가 경영하던 나가사키 경유 라인에서는 19세기 중반 1867년 수출액 총액 177만 6천 달러 중에서 다시마가 11만 3천 달러를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6.3% 정도인데, 순위 상으로는 5위 품목입니다. 그런데 사쓰마의 다시마 밀수출액이 나가사키의 바쿠후 수출액보다 컸다고 하니 대략 어림은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실제 지난번 인삼 시리즈에서 나가사키를 통해 북미 북동부 캐나다와 뉴욕 지역에서 발견되어 중국으로 수출한 광동삼이 들어오지는 못하였을거라고 했는데, 어쩌면 이 루트를 통해 광동삼이 일본 국내로 유입되었을 가능성이 농후합니다. 그리고, 밀무역이니만치 통계자료는 솔직히 찾을 수가 없습니다...-_-;;

아무튼 사쓰마는 나가사키의 바쿠후 채널을 넘어서 상당한 이익을 거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리고 텐포의 개혁도 결과적으로 성공하여 재정이 보완되자 신식 무기를 독자적으로 장만하였고, 이후에 역시 이 기타마에센에서 다시마 중개 요지인 시모노세키를 보유하였던 조슈번과 손을 잡고 신식 라이플과 증기선으로 바쿠후 타도에 나섭니다.

이런 상황을 두고 일본에서는 홋카이도에서 오키나와와 중국을 이어주는 "곤부 로드(다시마의 길)"이라든가, 또는 '다시마가 메이지 유신의 숨은 원동력이 되었다' 까지 언급을 합니다만, 어느 정도 접어두더라도 상당한 초창기 사쓰마번의 재정을 살리는데 도움이 된 것은 사실입니다.

그리고, 이 와중에 도야마는 마쓰마에로부터 받아서 사쓰마에 넘기기 위한 다시마 가공업이 발달하였고, 지금도 다시마 소비량 일본 전국 1위의 지역이 되었습니다. 또한, 중국에 수출할 등급이 되지못하는 남은 다시마를 소비하기 시작한 류큐 왕국의 사람들은 지금은 비록 소비량이 많이 줄었다고 해도 여전히 대표적인 전통 음식의 하나로 다시마를 먹고 일본 제일의 장수 지방으로 살아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은 임시 편성이라서 재미있는 이미지도 미처 구하지 못했습니다. 그럭저럭 이야기만 무지하게 길어졌는데, 어차피 다음에 하려던 청어 이야기에 결국 다 관련된 얘기들이라서 와르르 쏟아 부어두고 넘어갑니다. 그런데 18세기말에 접어들자 이 기타마에센 항로에 흥미있는 상품이 등장합니다. 아무튼 청어 이야기의 마무리 단계입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늘 포스팅은 몇가지 자료를 참고했습니다. 우선 "거상들의 시대" (원제 豪商たちの時代, 일본경제신문사, 2006) 와키모토 유이치 지음, 강신규 옮김, 한스미디어, 2008의 pp 208 "다시마의 길을 아시나요" 부분에 잘 정리가 되어있습니다. 그리고, 사쓰마의 재정 관련은 ”幕末の薩摩の財源について”、池田真里、”薩摩藩における調所廣鄕の天保の改革" 平池久義, 시모노세키시립대학논집 46권2호, 해산물 대중 수출관련 데이터들은 "나가사키항의 무역" 나가사키세관 조사부 조사통계과,”江戸時代に長崎から中國へ輸出された乾物海産物”、松浦 章, 2011 등을 참고했습니다.

**에도와 간토지방에서 다시마 요리가 발달하지않은 것은 품질 좋은 다시마를 확보하지 못한 것도 있지만 에도 지방의 물이 경도가 높은 쎈물이라서 다시마가 잘 우려나지않아 대신 가쓰오부시나 장유(간장)으로 국물을 내게 되었다는 얘기도 있더군요... 그러고보면 'ㄴㅅ' 너구리면은 가미카타 교토 계통의 면요리인가 보군요...는 물론 농담입니다.

**일본어 곤부의 어원은 일본어 자체 어원, 중국어 綸布 (관포)라는 학설, 아이누어의 콤푸라는 여러 얘기가 있습니다만, 중국-사할린 채널을 통해 중국어 관푸를 아이누인들이 받아 콤푸라고 한것을 다시 일본에서 곤부라고 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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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까날 2014/11/20 13:49 # 답글

    오키나와 소바를 처음 먹었을 때의 의문이 큐슈보다 돼지고기를 몇 배는 더 먹고, 중국의 영향도 더 많이 받은 오키나와에서 국수 육수는 왜 다시마 일까였습니다. 그러다 자연스럽게 무역 루트를 알게되었죠.

    그런데 다시마가 어떻게 홋카이도에서 오키나와까지 수송되었는지는 이번에 처음 알았습니다. 오사카가 도쿄보다 서쪽에 위치하면서도 홋카이도의 다시마를 쉽게 구할 수 있었던 것이 동해쪽으로 도는 루트를 탔기 때문이었군요.
  • 迪倫 2014/11/20 14:03 #

    아, 의문에 약간 답이 되셨다면 다행입니다. 저 서쪽으로 도는 루트는 일본 근세 경제에서 상당히 주목하는 루트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이지항이 원래 탔던 배가 같은 방식으로 한반도 동해안을 도는 조선의 상업 선박이 아니었을까 하고 추정하고 있습니다. (자료가 더 없어서...ㅠㅠ)
    그리고, 이 기타마에센은 가무이전에도 약간 변형된 형태로 등장하더군요.

    까날님의 포스팅 중에서 오키나와의 다시마 요리 관련 포스팅을 못찾았습니다. 관련 글이 있으면 연결했을텐데...
  • Nocchi 2014/11/20 14:44 # 답글

    오늘 이야기 정말 재미있는데요 ^^
    온열대 기후인 오키나와 사람들이 왠 난데없이 한대 식품인 다시마를 즐겨 먹게 된 이유를
    짧고 간결하면서 놓친 것 없이 설명 해 주는 좋은 글 같습니다
    그리고 에도 막부(의 정체성)은 '갑 중의 갑(질)' 이라는 표현도 좋았습니다
  • 迪倫 2014/12/05 00:43 #

    좀 늦게 답을 답니다. 재미있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 이종혁 2014/11/20 17:54 # 삭제 답글

    어느 하나 허투루 볼 것이 없습니다. 단지 바다 속의 풀한포기도

    어렸을 때, 미역은 씹기 좋아서, 다시마는튀각으로 만든거 아님 씹기 귀찮다고 잘 먹지도 않았는데 ^~^

    요즘 미생이라는 드라마(원작 만화를 먼저 봤음)에서 보면 종합무역상사라는 세계가 시대를 떠나서 펼쳐져 있다는게 실감이 되더군요.

    그러고 보면 적륜님이 다루셨던 돈만주면(?) "지옥의 끝도 찍고 온다는" 플라잉 덧치맨들이의 일상도 다를 바가 없는데 말이죠.

    코어 코모디티 의 회전률은 다양하다는 것을 느낍니다.

    적어도 제가 국민학생때는 돈 버는 아이템이 쌀가게에서 주유소의 전환이었는데 말이죠. ㅋㅋㅋ
  • 迪倫 2014/12/05 00:47 #

    세상 모든것에는 이야기가 있지요! ㅎㅎㅎ
    그중에 아주 조금 전해들은것을 다시 들려드리는겁니다만..

    제가 원래 종합상사 출신이거든요. 그래서 미생 만화도 드라마도 모두 좋아합니다. 물건을 팔아 이윤을 남기는 것은 전쟁이거든요. 다만 사람을 죽이는게 아니라 살려서 이윤을 보려는 점에서 평화로운 전쟁이랄까요... 뭐든지 팔 수 있으면 팔아본다. 그러면 어느새 세상이 바뀐다. 뭐 그런 거죠^^
  • 함부르거 2014/11/20 19:08 # 답글

    꼭 다시마 하나 때문만은 아니겠지만 망해가던 번이 일어나고 막부를 타도하고... 작은 아이템 하나가 변혁의 바탕이 된다는 것이 정말 흥미롭습니다. 이게 경제사의 재미인 것 같네요.

    니시마와리 항로에서 에도가 빠져 있는 것이 이상해서 찾아보니 에도가 마지막 기항지로 되어 있는 버전도 있네요. http://www.city.takamatsu.kagawa.jp/11275_I1_12.html 동쪽으로 도는 항로(히가시마와리 東回り) 도 있는데 자세히 읽어 보진 않았지만 서쪽보단 덜 중요한 항로였던 것 같습니다. 일본에서도 꽤 흥미있는 주제인지 東回り航路 같은 주제로 구글링하니 꽤나 많은 문서가 나옵니다.

    일본 서부로 도는 항로가 발달한 것은 태평양으로 도는 항로보다는 안전했기 때문일까요? 거리도 서쪽이 더 가까운 것 같구요. 러일전쟁 당시에도 러시아 함대가 일본 함대가 기다리고 있을 가능성이 높은 (위험한)쓰시마 해협으로 들어온 것은 태평양 항로가 파도가 거칠고 거리가 멀어서였다고 짜르의 마지막 함대에서 읽은 기억이 납니다.
  • 迪倫 2014/12/05 00:51 #

    말씀대로 동쪽으로 도는 노선도 있었습니다만 근세 시기의 주 물동량은 서쪽항로였다고 합니다. 아무래도 내해와 대양의 물살의 차이가 다르니 리스크가 달랐을거로 보입니다. 도쿄/간토 지방으로는 내륙운송이 활용된 것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앞으로 이어질 얘기에 이 동쪽으로 도는 항로가 잠깐 등장할 예정입니다. 청어가 아니라 정어리와 함께요. 잠시만 기다려주십시오.
  • Esperos 2014/11/20 19:30 # 답글

    원산지가 아니어도 해당 물류가 주로 지나는 길목이었기 때문에 토착음식의 감초가 되다니, 생각해보면 충분히 그럴 법한 이야기임에도 불구하고 얼핏 떠올리긴 쉽지 않군요. ^^a
  • 迪倫 2014/12/05 01:13 #

    얼핏 생각하면 이상하지만 실제 시장에 장기적으로 물건이 흔해지면 자연스럽게 발생하는 일이죠. 예를 들면 약간 경우가 다른것 같아도 부산의 밀면을 만드는 밀가루는 한국에서 밀이 생산안된지 오래지만 미국 원조물자라든가 이후의 수입물량으로 밀가루가 흔하여 발생한 향토음식이니까요. ㅎㅎ
  • 초록불 2014/11/21 15:19 # 답글

    잘 보았습니다.
  • 迪倫 2014/12/05 01:13 #

    늘 감사합니다!
  • 행인1 2014/11/21 23:13 # 답글

    다 망해가던 사스마 번을 일으킨 것중 하나가 다시마 밀무역이었군요.
  • 迪倫 2014/12/05 01:15 #

    전적으로 다시마때문만은 아니지만 꽤 중요한 소득원이기는 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일본에서는 약간 오버해서 다시마가 메이지 유신의 숨은 힘이라고까지...-_-;;
  • 빛의제일 2014/11/23 20:42 # 답글

    다시마의 숨겨진 역사 재미있습니다.
    이전 포스트와 다른 분 덧글과 이어져 너구리랑 다시마 튀각을 먹어야겠다 생각합니다.
  • 迪倫 2014/12/05 01:17 #

    ㅋㅋㅋ 너구리 드셨습니까? 너구리는 정통 교토풍 면요리라는...^^

    숨겨진 역사 계속 이어갑니다. 기대하소서..
  • 역사관심 2014/11/26 04:57 # 답글

    재밌게 읽었습니다. 다시마가 한류성인지도 모르고 있었네요. 그나저나 일본의 '번'위주의 자체무역자체가 우리의 시각에선 생소한지라 항상 읽으면서도 정말 이국적입니다.
  • 迪倫 2014/12/05 01:20 #

    다시마가 한국도 70년대 이전에는 강원도 이북에서만 났다고 하더군요. 70년대에 가서야 북해도산을 경북 해안에서 양식에 성공하여 보급했답니다.

    저도 번체제에 대해 계속 공부 중입니다. 이번편에서 약간 무리하게 단순화시켜 언급을 했는데 이게 약간 아직 잘모르는 부분이 있습니다. 그점 감안해주시기 바랍니다. 어찌보면 사쓰마번이 예에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
  • 밥과술 2014/12/17 18:11 # 답글

    정말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일본에 가서 생활하면서 흥미로왔던게 오키구스리(置きぐすり)라는 제도였습니다. 모든가정에서 각종상비약을 담아놓은 박스를 가지고 있는데, 이게 처음엔 무료입니다. 그리고 일년에 두번정도 사람이 돌면서 점검을 하여 사용해서 비어있는 약품을 보충을 하고 대금을 받아갑니다. 신기해서 물었더니 도야마의 약장수(富山の薬売り)라고 하는 제도로 오랜 전통이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의 사업방침은 '先用後利'라고 해서 '우선 사용하도록 하고 이익은 나중에'라는 방식으로 많이 인용되고 있습니다. 일본사람들도 그저 눈이 많이와서 겨울에 할 일이 없어서 도야마 사람들이 약장수를 시작했다고 알고 있는 것 같습니다. 여기에 다시마, 중국무역등이 엮여있었군요. 배우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 迪倫 2014/12/28 15:20 #

    알려주신 오키구스리 제도와 도야마 이야기 흥미있는 이야기입니다. 그 전통이 지금도 이어져서 지켜지는 것이군요^^
    참고문헌으로 소개드린 "거상들의 시대" (원제 豪商たちの時代, 일본경제신문사, 2006)는 저널리스트가 쓴 책이라 약간 흥분을 하는 경향은 있지만 에도시대의 상업 발달에 대해 상당히 쉽고 재미있게 씌여진 글입니다. 관심있으시면 추천을 드립니다.
  • 2015/01/06 03:34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2015/01/14 13:22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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