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와 해달, 그리고 건너온 사람들(渡黨) by 迪倫

먼 이국 북쪽에서 온 비단옷.의 마지막에서 언급한대로 이번에는 에조/아니누와 마쓰마에, 그리고 에조치/홋카이도에 대한 이야기를 정리해보겠습니다.

그러저럭 청어 시리즈라고 시작한 지 여름도 다 지나버렸고 지난 한달 오프라인이 무지하게 정신없어서 뒷짐지고 있다가 보니, 차가운 바다에 이야기가 떠돌기에 슬슬 날씨도 추워지고, 아무래도 대충 시리즈를 마무리하려고 생각 중입니다. 이야기가 덧없이 마무리되더라도 너무 괘념치 말아주시기를 바랍니다.

아래의 그림은 도쿄 국립박물관에 소장된 16세기 일본 화가 셋손(雪村)이 그린 송응도(松鷹圖)입니다.

요즘 비즈니스맨들이 접대 및 호사취미로 골프를 필수 과목처럼 연습하는 것처럼, 15-16세기 일본의 잘나가는 전국무장(戰國武將)이라면 취미로나 비즈니스로나 매사냥을 했었다고 합니다. 심지어 오다 노부나가라든가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모두 유명한 매사냥 덕후들이었다고 하더군요.

지난번에 언급한 에조치에 발을 들여두고 로컬 파워로 성장하던 가키자키 요시히로(蠣崎慶広)가 도요토미 히데요시를 만나 본격 독립세력으로 떠오른 장면에서 역시 중요한 키워드가 바로 에조가시마에서 사로잡아온 "매"였습니다.

그런데, 이 헌상매가 하는 짓도 마침 이쁘게 학(鶴)을 잡는 쾌거(!)를 거두게 되고, 이후 전국 무장이라면 ‘에조가시마의 매’가 ‘수연(垂涎)’ 즉 머스트 아이템이 되어버렸다는 것입니다. 매사냥 덕후 다이묘들이 교토와 오사카로 사람을 보내 에조가시마에서 들여온 매를 사기 위해 수소문하다, 직접 마쓰마에에 응장(鷹匠: 매 훈련 장인)을 파견하여 아예 어린 매를 잡아 훈련을 시켜 보라매로 키우기 시작했고 이렇게 파견된 인력들을 “鷹侍”(매를 의미하는 다카를 붙여 다카사무라이라고 읽어야 하는 것 같은데, 다카마치라고 읽는 경우도 있는것 같은데 侍(사무라이)와 待(마치)가 혼동이 된게 아닌가 하는 설명도 있더군요.)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합니다. 매를 잡아 훈련시키는 곳을 “鷹打場”(다카우치바라고 읽는다고 합니다)이라고 하는데 17세기 후반에는 에조치에 무려 390개가 설치되었고, 마쓰마에번의 세입 중 이 매 사냥 관련 산업 수입이 무려 15-16퍼센트를 차지할 정도로 중요 산업이 되었다고 합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뿐 아니라 이후 도쿠가와 이에야스를 통해서 재차 확정된 마쓰마에번의 특권은 마쓰마에번으로 들어오는 모든 선박, 인원, 무역에 대해 세금을 징수하여 거둬들이는 것뿐 아니라, 마쓰마에의 매가 본토에 이송될 경우 각 번들이 이 수송 비용을 모두 부담하고 편의를 제공하게 하는 것이 포함되어 있었을 정도입니다.

마쓰마에번은 매사냥관련 산업뿐 아니라 도항선박과 도항인들에 부과하는 세금 외에 사금의 채취와 에조인들과의 교역 수익이 17세기까지는 주 수입원이었습니다
그리고, 이런 일들을 하던 일본 사람들을 “와타리토(渡黨)"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런데, 이 와타리토는 정확히 어떤 사람들인지 약간 논란이 있습니다. 몇가지 기록들에는 원래 미나모토노 요리토모(源 頼朝)가 오슈-데와(奥州-出羽)를 정벌할때 해협을 건너 도망친 사람들의 후예라는 설도 있고, 가마쿠라 바쿠후 시대에 마치 예전 오스트레일리아처럼 유형보낸 범죄자들의 후예라는 설도 있습니다. 이들의 지도자였던 안도(安藤/安東)씨 역시 일본인인지 원주민인지 혼혈인지 계통이 부정확합니다. 다른 설로는 원래 일본 동북부의 야마토화된 에미시의 후예라든가, 아니면 혼슈의 야마토계와 에조인들의 혼혈이라든가 아무튼 변경의 영역에 흔한 주변인들의 세계였다고 보시면 대충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원래는 지역 수장이었던 안도씨의 수하였던 가키자기씨는 점차 바로 이들 와타리토의 지도자로 떠오르고 기존의 안도씨를 교체하여 독자 세력을 형성합니다. 그리고, 16세기 일본의 전국시대가 마무리되던 시기 매의 공급에서 보이는 것처럼 급속도로 일본 시스템의 영역 안으로 접어들게 됩니다. '건너온 사람들'이라는 의미의 와타리토 역시 점차 와진(和人) 즉 일본인으로 불리게 됩니다.

그런데, 15세기-16세기에 이들 와타리토가 쓰가루 해협을 건너 지금의 홋카이도 남단 오시마반도에서 마주친 원주민 – 이전 포스팅에서 사할린에서 홋카이도에 분포하던 골외(骨嵬)족 –들은 실은 단일한 그룹이 아니라 크게 두개의 다른 그룹으로 나눠져 있었다고 합니다. 하나는 唐子(가라코)이고, 또 하나는 日の本(히노모토)라고 불렀습니다.


먼저 唐子(가라코)는 이름이 짐작하게 하듯이 바로 신비한 용무늬의 실크 두루마기 에조니시키를 제공하던 홋카이도 서부 방면의 에조인들을 의미합니다. 이들은 사할린 남부까지 분포를 하고 그 북서쪽의 북고려, 또는 노아간, 산탄 이렇게 이름이 계속 바뀌었던 아무르강 해안지역의 대륙과 계속 인연이 이어졌던 곳입니다.

그리고, 또다른 하나. 해뜨는 곳이라서 일본이라고 자신들을 부르던 일본인들이 또다시 해뜨는 곳이라고 부른 日の本(히노모토)라고 하는 곳은 오시마반도에서 동쪽으로 이어지는 방향에 살던 에조인들로 이들은 지금의 쿠릴열도에 해당하는 지시마(千島)를 의미합니다.

아래의 그림 속의 동물이 뭔지 아시겠습니까?

이 동물은 해달입니다. 이 그림은 18세기 후반 제임스 쿡 선장의 일행에 따라갔던 화가 존 웨버가 그린 태평양의 해달입니다. 해달의 분포지는 미묘하게도 청어와도 같이 지금 이 시리즈에서 다룬 지역에 한정되어 있습니다.

특히 지도에서 보시다시피 한반도나 혼슈 남쪽의 일본에서는 원래 보기어려웠던 동물입니다. 한국어의 해달은 결국 바다에 사는 수달과 비슷한 동물이라는 의미로 붙인 이름이든지 아니면 sea otter의 번역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런데 재미있게도 일본어의 해달 랏코(ラッコ)는 원래 아이누어가 어원이라고 하는데 그래서인지 마치 외래어처럼 가타카나로 적는 경우가 많습니다. 한마디로 일본인들에게도 먼 바다의 산물이었다고 할까요.

찾아보니 해달은 피하지방으로 추운 바다를 견디는 것이 아니라 유달리 촘촘한 털로 바다의 추위를 견딘다고 합니다. 그래서, 해달의 모피는 다른 모피보다 더 두툼하고 품질이 좋아 특히 말안장 아래 깔개로 좋아서 전국시대의 무장들에게 특히 인기 아이템이 되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위의 지도에서처럼 이 해달의 모피는 바로 홋카이도 태평양쪽의 쿠릴열도로 따라 이어지는 곳, 바로 천개의 섬, 지시마(千嶋)에서 공급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 해달을 주로 공급하는 동쪽의 에조를 해가 뜨는 곳 히노모토 에조라고 불렀는데, 홋카이도 서쪽에서 사할린과 아무르강 하구로 이어지는 서쪽의 가라코 에조들과는 사뭇 다른 세력을 형성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리하여 16세기의 100년간 가라코,히노모토, 그리고, 와타리토가 서로 세력을 팽팽하게 맞서며 때로는 교역으로 때로는 무력충돌을 반복하고 있던 도중…어차피 서로의 세력을 현실적으로 인정하고 이익을 취하자는 교훈을 배워 16세기 중반 1550년에 다함께 3자 협정을 맺게됩니다. 이 협정을 "夷狄の商舶往還の法度" (이테키노 쇼하쿠 오한노 핫토)라고 부르는데, 간단히 풀어 말하면 에조치에 상선이 왔다 갔다 하는 것에 대한 법도라고 할지, 대체로 서로 교역의 안전을 보장해주는 협정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협상을 이끌어 낸 사람이 당시 와타리토 중의 세력을 얻은 가키자키 스에히로(蠣崎季広)였다고 하는데 그가 바로 초대 마쓰마에번주가 되는 요시히로의 아버지입니다.

그런데, 이 3개 세력이 균형을 이루던 16세기 말 이 3자간의 발란스가 깨어지고 와타리토가 우위에 선 다음 점차 일본인(和人 와진이라고 읽습니다)으로 편입되어버리며 가라에조와 히노모토의 에조인들을 통치하게 되는 포지션의 역전이 일어나는 일이 발생합니다.

바로 지난번에 언급한 1590년대 가키자키 요시히로가 임진왜란 출정에 나섰던 도요토미 히데요시를 만나 그레이트 로비를 성공적으로 수행하여 에조치의 독립된 수장으로 인정을 받고 독점권을 인정받은 특별 라이선스인 주인장(朱印狀)을 받아 오는 일이 있었습니다. 그는 동서 에조의 수장들을 모두 불러 모아 에조어로 이 주인장의 내용을 통역하여 선포를 합니다......만 이 사람 수완이 좋은 사람이어서랄지......에조인들에게 복속하지 않으면 도요토미의 백만대군이 정벌하러 온다 뭐 그런 식으로 뻥을 치게됩니다. 그런데 이게 먹혀들어간 거죠.

실제 생각해보면 그런 과장이 통하게 된 것은 단숨히 꾀를 부려 속여먹은 것이라기 보다, 이미 매라든가 해달의 모피로 인해 에조치의 효용이 일본 본토의 주력 세력에게 인식이 되었고 그러자 자원을 확보하기 위한 관심 즉 무력적 지원이 가능해지자, 변방 에조치의 주변인이었던 와타리토의 힘만으로는 무리였던 파워가 급속도로 실리면서 실질적인 무력의 차이가 현실화되었던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리하여 에조치 남단의 오시마 반도의 와타리토 거주지였던 지역은 1만석 석고 규모의 마쓰마에(松前)번이라는 번듯한 번으로 성장하고 바쿠후의 직접적인 이해관계가 걸리는 지역이 됩니다. (석고石高는 일본의 근대 이전 토지 생산성 단위인데 각 번의 정치경제적 위치를 이 석고로 나타내기도 합니다.)

그리고, 결과적으로는 에조인들은 이제 동에조이든 서에조이든 무관하게 점차 일본인에게 정치 경젭적으로 종속화 되어버립니다. 마치 니우 네덜란드인들과 이로쿼이족간의 관계처럼 유지되다가 점차 스페인과 인디오같은 관계로 점점 악화된 것이지요.

마쓰마에번은 일본과 에조의 중간 에이전트 역을 전담하고 이를 효과적으로 운영하기 위해 와진 즉 일본인들과 에조인들이 섞여 살지못하도록 마쓰마에, 에사시, 하코다테의 세군데만을 교역장으로 오픈을 합니다. 그리고, 이제 혼슈로부터 새로운 와진(和人)의 물결이 몰려들고, 점차 일본 경제가 질적인 변화를 하던 18세기에 들어서는 마쓰마에도 일본 경제의 한 부분으로 편입하여 신기한 위세품을 조달하는 신비한 곳에서 벌크 코모디티를 공급하는 산업 생산지로 변모하게 됩니다.

다음편에는 그런데 이 변모와 마침내 다시 등장하는 청어(!) 이야기를 하기 전에 잠시 바로 이 18세기로 막 넘어가려던 에조치의 모습을 직접 부산 싸나이를 따라 구경해보는 시간을 갖도록 하겠습니다. 이전에 소개한 이덕무의 글 중에서 “임진년 난리에 가등청정(加藤淸正)이 깊숙이 북관(北關)에 들어갔다가 송전(松前) 사람 세류도우수(世琉兜宇須)란 자를 사로잡았는데 그 사람은 바람을 만나 표류하여 제주(濟州)에 머물러 산 지가 20년이나 되는 자였다. 청정(淸正)은 그를 얻게 된 것을 매우 기쁘게 생각하여 그를 향도(嚮導)로 삼고 후등차랑(後藤次郞)이라 개명(改名)해 주었다. 근세에 동래(東萊)에 사는 사람도 표류하여 하이(蝦夷)에 도착했다가 돌아왔으니 하이의 경계는 우리나라 북관(北關)과 서로 가깝다. 변방을 맡은 신하는 알아두지 않을 수 없다.” 라는 부분에서 언급된 “근세에 동래에 사는 사람”의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기대하셔도 좋으실 부록 이야기가 하나 더 따라갈 예정입니다.

**도요토미 이후 가키자키의 종주권을 다시 컨펌해준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가키자키 요시히로와 쓰시마의 야나가와를 불러 한참 후금의 발흥으로 엉망진창 그러면서 새로운 국제질서가 형성되고 있던 북고려 지역에 대해 조선을 경유한 정보와 에조치를 경유한 정보를 종합하던 회동에서, 야나가와는 가키자키에게 고려인삼을 선물하고, 화답으로 가키자키는 해달의 모피를 선물했다고 합니다. 야나가와는 실은 임진왜란 후 조선과 일본의 국서변조와 관련된 사건으로 유명한 사람인데, 언젠가 이 사람에 대한 얘기는 다른 기회를 엿보도록 하겠습니다.

**이번 편의 참고 글은 지난번 글에도 소개한 菊池勇夫 선생의 "北東アジアの中のアイヌ"(アイヌ文化振興・研究推進機構 平成13年度普及啓発セミナー, 2002), 紙屋敦之 선생의 "東アジアのなかの蝦夷地"(アイヌ文化振興・研究推進機構 平成14年度普及啓発セミナー, 2003) 외에도 홋카이도 우라카와초(北海道浦河町)에서 제공해주는 향토사 시리즈 "鷹侍 ―シャクシャイン裏面史"에서 매에 관련된 내용을 참고했습니다.

**솔직히 오늘 내용으로 미처 다루지못한 이야기가 좀 많습니다. 더 자세한 이야기는 어쩌면 그냥 저 차가운 바다에서 누군가 읽어주기를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이 포스팅은 아쉽지만 이런 이야기들이 있더라는 예고편 정도로 감안해주시고 일단 저는 진도를 나가도록 하겠습니다.

핑백

  • 迪倫齋雜想 : 청어 is back! (and I'm back, too) 2014-11-18 14:21:07 #

    ... 아래 이미지의 마쓰마에로부터 시작입니다. 우선 흥미 위주로 아래의 그림만 확대해서 보도록 합시다. 제가 주요 부분은 한국어 번역을 첨부했습니다. 이 지방들이 모두 이전 포스팅에 나왔던 것 기억이 나시는지요. 마지막 그림의 에사시는 이선달이 마침내 문명세계로 들어와 도달한 '예사치(曳沙峙)’라고 했던 지금의 홋카이도 江差입니다. ... more

  • 남중생 : 54. 웅담 2018-10-25 01:07:27 #

    ... 매와 해달, 그리고 건너온 사람들(渡黨) ... more

덧글

  • 이종혁 2014/09/27 18:47 # 삭제 답글

    남으로는 오키나와 북으로는 홋카이도

    현지인과 본토인이 미묘하게 분리되고 섞이는 역사가 홋카이도 부터 시작이 되었군요.

    언젠가는 가보겠지만, 홋카이도의 이야기도 기대됩니다. ^^

    일본역시 길게 오래 섞인 다민족 국가라는 느낌이 듭니다.
  • 迪倫 2014/09/27 23:27 #

    일본인들도 자기들이 다민족 국가라는 것을 종종 인식하지 못하는게 아닌가 싶을 때도 있을 정도입니다만, 확실히 한국보다는 다양한 구성이긴 합니다. 물론 최근의 한국사회는 아마 좀 달라지고 있는것 같습니다만.

    저의 주 관심은 이렇게 변방의 주변인들이거든요^^ 홋카이도는 상당히 다채로운 포인트가 있습니다.
  • 2014/09/27 20:49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2014/09/27 23:29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 2014/09/27 23:40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 2014/09/29 06:37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 밥과술 2014/09/27 21:20 # 답글

    오랬만에 반가운 글 잘읽었습니다~ 청어에 해달이 오버랩되어 나오는군요. 재미있어요!

    옛날에 우리나라 한량들에게 세가지 오입이 있다고 했으니, 일응이마삼색이라 했답니다. 여색보다 재미난개 승마요, 그보다 앞서 최고는 매사냥이란 얘기지요. 책에서 읽은 얘기가 아니라 어려서 매를 키우던 분깨 들었습니다.

    부산싸나이 이야기 , 기대하시라, 개봉박두! 로군요 ㅋ 기대합니다~^^
  • 迪倫 2014/09/27 23:32 #

    실은 이번 시리즈의 후반부는 청어랑 너무 멀리 가버렸나 싶기도 합니다^^

    9월 여러가지 일들이 있어서 차분히 앉아 정리할 틈이 안나서 잠시 있다보니 한달이 거의 지나버렸습니다.

    매사냥은 좀 매력적인 것 같습니다. 말도 타야하고 평원도 있어야하고 호사취미로는 극상이 아닌가 싶은 요소들이 많은데 로망입니다. ^^

    다음편은 좀 금방 올리도록 해보겠습니다.
  • 역사관심 2014/09/29 01:47 # 답글

    얼마전 뉴스를 보니 일본도 마지노선인 1억명선이 62년이후 처음으로 붕괴직전이라고 다민족국가로 이민자를 적극수용하는 정책을 펴려고 하고 있다더군요. 그전에 그 땅에 수십년 살아온 외국인들에게 열린 마음으로 대하면 어떨런지... 우리도 마찬가지지만, 대놓고 시위같은 건 안하니;

    글과 상관없이 다민족국가 이야기가 나오니 최근상황이 오버랩되어서 토해보았습니다 ^^;

    에조인들과 대화족은 1699년 봉기이전에는 어떤 관계인지 감이 아직도 잘 안옵니다. 두개의 국가같은 느낌인지 (에미시들은 중앙집권체제는 아니었지만), 아니면 같은 '일본/왜'안의 다른 민족으로 서로를 인식한 것인지...
  • 迪倫 2014/09/29 06:45 #

    국가 내의 다민족 존재와 소위 "민족국가(nation-state)"간의 갈등이 앞으로 각 국가들이 해결해야 할 중요한 문제 중의 하나가 아닐까 싶습니다.

    제 개인적 의견으로는 대화족에게 있어 에조치는 정치적 실체로서 다른 '국가'라는 생각보다 그냥 경계 너머 혹은 문명 너머의 땅으로 보인게 아닌가 싶습니다. 에조인들 역시 그 비문명의 땅에 사는 다른 존재로 인식한 것 같습니다. 영토적으로도 19세기까지는 일본의 땅으로 인식하지 않았고 ...

    다음편에서 어쩌면 이런 인식 체계의 일부를 약간 보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 행인1 2014/09/28 08:47 # 답글

    매와 해달 가죽이라는 양대 품목으로 따오른 지역의 신흥 강자라니 흥미롭네요.
  • 迪倫 2014/09/29 06:48 #

    공교롭게도 이 매와 해달 모피가 당시 주력 무인세력의 주목을 끄는 아이템이었는데다가 에조니시키로 알려진 대륙과의 연결고리로 알려졌으니, 일본에는 뭔가 궁금한 지역으로 떠오른게 아닌가 싶습니다.
  • 함부르거 2014/09/28 13:01 # 답글

    매사냥은 아직도 중동 지역에선 성행하더군요. 물론 석유 부자들의 이야기입니다만... 시대를 막론하고 남자의 호사 취미로는 최고급에 속하는 것 같습니다.
  • 迪倫 2014/09/29 06:51 #

    지금도 중동이나 몽골, 중앙아시아같은데서는 아직 유지된다고 들었습니다. 뭔가 호쾌함이 느껴지는 아우라가 있죠! 호사취미로는 단연 탑이라는데 한표! 입니다. 저도 한번 기회가 되면 구경이라도 해보고 싶습니다.
  • 빛의제일 2014/09/28 13:03 # 답글

    해달 나오니까, 중간에 만화 보노보노 한 컷 나올 줄 알았습니다. ^^;;
    일본 관련 책들 읽으면 홋카이도와 오키나와는 사람들이 다르구나 생각하면서도 다민족국가라는 생각을 못했는데,
    한국도 일본도 다민족국가임을 처음 덧글에서 깨닫습니다.
    매사냥 이야기에서는 오래전에 본 우리 나라의 마지막(?) 응사 다큐멘터리도 떠오릅니다.
    고향이 부산이고 어렸을 때, 동래에 살던 친척집에 갔던지라 다음 포스트가 기대됩니다.
  • 迪倫 2014/09/29 06:55 #

    보노보노는 실은 제가 잘 모르는 만화라서 검색은 되었지만 아쉽게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일본은 확실히 오랜 다민족 국가이지요. 한국도 우리가 믿고 배웠던 것보다는 다양합니다. 그걸 인식하면 좀더 다양성이 너그러이 수용되는 사회가 될텐데 말입니다...

    마지막 응사 다큐먼터리 재미있었을 것 같습니다. 어떤 프로그램이었었나요?

    다음편 정리 중입니다.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 빛의제일 2014/09/29 14:15 #

    한국 이야기 <참매와 나> 소개 http://home.ebs.co.kr/docuprime/newReleaseView/152?c.page=1
    다시보기 유료 http://www.ebs.co.kr/replay/show?prodId=348&lectId=10148681
    여러 나라 이야기 <매를 가진 사람들> 소개 http://home.ebs.co.kr/docuprime/newReleaseView/143?c.page=1
    다시보기 http://www.ebs.co.kr/replay/show?prodId=348&lectId=3049734 입니다.
    다시보기가 유료입니다. ^^;; 유튜브에서 제목으로 찾으니 몇 개 나옵니다.

    직장일에 화가 좀 나니, 잉여력이 상승하여 쉬는 시간에 후다닥 찾았습니다. ㅡ_ㅡ
  • 迪倫 2014/10/02 12:31 #

    링크 감사합니다. 비록 제가 돈을 낼 방법이 없어서(?) 볼 수가 없지만 언젠가 방법을 찾아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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