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 이국 북쪽에서 온 비단옷. by 迪倫

북고려와 오적, 서수라...에서 도쿠가와 이에야스를 만나 초대 마쓰마에번의 번주가 되었다던 마쓰마에 요시히로 (松前慶広, 1548-1616)는 마쓰마에(松前)로 이름을 바꾸기 전에는 원래 가키자키(蠣崎)씨로, 가키자키 집안은 대략 4-5대 전에 에조치에 자리를 잡은 지방 실력자정도의 집안이었습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전국시대를 마무리하던 16세기 후반 처음 당시는 아직 가키자키 요시히로였던 그는 아이누-일본인 혼성 전투부대를 이끌고 도요토미를 만나 강한 인상을 주기 시작합니다. 에조(아이누)의 화살을 맞으면 가벼운 상처라도 죽게된다는 소문도 퍼지고 (실제 아이누인들의 화살은 장난감처럼 보이고 사거리도 짧지만 독화살을 사용했다고 합니다) 존재감을 어필한 다음,

1593년 규슈 히젠(肥前)의 나고야(名護屋)성에 조선침략을 준비하던 도요토미 히데요시에게 부대를 이끌고 가서 참전하겠다고 해서 칭찬을 듣고 참전 대신에 “고쿠세이노고슈인(國政の御朱印)”과 “덴마고한(伝馬御判)”이라는 두개의 라이선스를 받아서 돌아갑니다. ‘고쿠세이노 고슈인’이라는 것은 마쓰마에에서 다른 곳에서 온 상인들로부터 세금을 징수할 수 있게 한 것이고, ‘덴마고한’은 일본 혼슈의 쓰가루에서 오사카까지 다른 다이묘들에게 마쓰마에에서 매사냥용의 새매를 운송하는데 인부와 말을 제공하도록 의무한 것입니다. 더 간단히 말하면 마쓰마에에 일본의 다른 지역과의 교역에 대해 특허권을 부여한 것입니다.

이게 나중에 다시 설명하겠지만 에조치에서 대략 100년간 세력대치의 균형을 이루던 에조 아이누인들과 북상하기 시작한 일본인들과의 파워 발란스를 결정적으로 변화시키는 시초가 됩니다. 그런데, 이 1593년 규슈에서는 한편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같이 전하고 있습니다.

이때 히젠의 나고야성에 진을 치고있던 다이묘 중에 도쿠가와 이에야스도 있었는데 어떤 연유로 가키자키 요시히로를 만나게 됩니다. 그런데 이 회동에서 이에야스는 요시히로가 입은 신기한 옷에 관심을 보이는데 수완좋은 요시히로는 “산탄치미프(サンタンチミプ)”라고 부르는 이 옷을 그자리에서 벗어서 이에야스에게 바쳐서 환심을 샀다고 합니다.

아니 그런데 이게 도대체 어떤 옷이었길래 일본 최고 변방의 겨우 지방 유지정도가 입고있던 옷을 천하의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관심을 보였던 것일까요.

"오쿠테키카라토노시마(奧狄唐渡の嶋)"에서 온 것이라고 알려져있었던, 당의(唐衣)라고 적고 산탄치미프라고 읽는 이 옷은 말 그대로 산탄의 치미프입니다. 산탄은 山丹, 山旦, 山韃이라고 하는 지역인데 지난번 포스팅의 북고려와 오적의 영역 중의 하나인 아무르강 하류 연해주 지역을 의미합니다. 치미프는 일본 의복관련 단어집에서 아이누말로 아미프라고도 하는데 ‘우리가 입는 것’ 즉 ‘옷’이라는 의미라고 합니다.

그러고보면 오쿠테키가라토노 시마란 것은 오쿠테키의 카라토섬 즉 일본에서 사할린을 부르던 이름인 가라후토와 연결이 되는데 그 한자 표기가 “중국(唐)으로 건너가는(渡) 섬”으로 읽혀지기도 합니다. (뭐 이건 제가 무리하게 같다붙인 것이기도 합니다)

호오, 먼 변방의 야만인을 상대하던 요시히로가 입고있던 요상한 이름의 옷이 천하 대망의 이에야스에게 벗어줄 정도로 관심을 끌었다는 것이죠.

아래의 이미지를 보시기 바랍니다. 오, 이건 전형적인 중국 유목민계 비단옷이지요.

구조가 대략 철릭비슷하게 말을 타기 좋도록 아래 주름치마 형식의 옷이 달리고 화려한 문양이 들어간 공식적인 의상입니다. 이 옷은 "에조니시키(蝦夷錦)"라고 불리는 에도시대에 유행한 홋카이도에서 수입한 옷입니다. 에? 홋카이도 야만인인 아이누족이 일본에 공급한 옷이라구요?

이제 낯이 꽤 익숙해지셨을 니콜라스 비천의 “북부와 동부의 타타르(NOT)”에는 다음과 같은 에조인들에 대한 묘사가 실려있습니다.

이 섬의 배후에는, 북쪽으로, 上 또는 高 예소인 오쿠에소(Oku Jeso)의 본토가 있다. 일본인들은 이 땅의 상황과 크기와 모양에 대해 정확한 정보가 없다. 몇년 전에 그곳에 발을 디딘 어떤 선원이 보고하기를 그 야만인들 사이에 어떤 사람들은 대단히 좋은 중국산 실크(fijne Sineesche Zydene)를 입고 있었는데, 그로 미루어 보면 반도이거나 아니면 적어도 다츠(Daats) 즉 타타르와 대단히 가까운 곳일 것이라고 결론을 내렸다. (NOT pp. 63)
또, 이전에 소개한 1643년의 카스트리쿰호는 지금 홋카이도의 아케시만에서 상륙한 적이 있는데 이때 관찰한 것을 역시 비천의 책에 기록이 남아있습니다.

(아퀘이(Acqueys = 아케시) 지역의 에조인들에 대한 설명이 먼저 나옵니다. 대체로 상당히 일본화된 풍습들입니다) 그들은 일본식으로 젓가락을 사용한다. 다만 북위 48도 50분에 사는 이들은 제외이다. 이들은 여전히 일본식으로 머리를 밀기는 하며 또한 실크 스커트(zyde rokken)를 입고 피부가 좀더 희고 언어는 다른데, 젓가락을 쓰지않고 손으로 음식을 집어먹는다. (NOT pp.135)
둘다 재미있게도 실크 옷/스커트을 입은 야만인에 대한 기록이 있습니다.

아니 지금까지 이야기가 맥락도 없이 도대체 이뭥미?......그래서 바로 단도직입적으로 설명들어갑니다.

시대를 앞으로 돌려 13세기 동북아시아에서도 북쪽 연해주와 사할린을 배경으로 벌어진 길리미(니브흐족)과 골외(아이누족)의 갈등은 몽골이 개입하여 몽골제국 내로 편입되고 조공무역의 형태로 전환됩니다. 몽골의 관할 기구인 요양행성은 이곳에 아무르강 사할린 지역을 총괄하는 정동원수부(征東元帥府)를 지금의 러시아 니콜라옙스크-나-아무례(Никола́евск-на-Аму́ре)에 설치하고 사할린쪽의 니브흐/아이누에게서 모피를 받고 대신 철제 제품이나 자기를 주는 일종의 조공무역을 운영합니다.

그리고, 특히 수장급에게는 권위를 부여하는 위세품으로서 중국의 비단관복을 하사합니다. 그런데 14세기 후반 명이 들어서고 몽골은 북원으로 돌아가게 되자 이 지역에 힘의 공백이 발생합니다. 잠시의 공백기 후 15세기가 되자 명이 다시 이 정동원수부 자리에 누아간도지휘사사 (奴兒干都指揮使司 보통은 노아간도사라고 합니다)를 설치합니다. 그런데 명은 실제 그리 영향력을 원나라만큼 발휘하지 못하고 그다지 큰 관심도 없이 시간이 지나갑니다.

문제는 사할린 남부와 이어지는 홋카이도에 살던 에조 아이누인들에게 중국으로부터 전해오던 선진 물품들의 공급이 이전보다 원할하지않게 되는 문제가 생긴 것이죠. 그러자, 이들은 남쪽으로 내려와 이제 슬슬 북으로 올라오기 시작하던 일본인들과 접촉하고 교역을 시작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들을 통해 철물, 쌀, 청주같은 물품을 공급받고 대신 모피와 해산물, 그리고 무엇보다 중국을 통해 북쪽 루트로 입수한 비단 관복을 일본에 공급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가키자키씨는 이 무렵 에조 아이누인들과 교섭하던 실력자였고 그가 아마도 도쿠가와 이에야스에게 벗어주었다는 산탄치미프는 바로 이 실크 관복, 혹은 에조니시키였을 것라는 것입니다. 이 에조니시키는 일본에 15세기부터 본격적으로 수입이 되어서 18세기 에도의 인기 이국정취 아이템이 되었다고 합니다. 중국산 비단옷이 나가사키를 통해 들어온다고 해도 뭔가 먼 북국의 이해할 수 없는 것으로부터 전해지는 비단옷은 그 자체의 신비한 아우라를 가진 것이라고 할까요. 아래의 그림은 17-18세기의 아라이 하쿠세키가 지은 에조에 대한 초창기 책 "에조시(蝦夷志)"에 실려있는 에조니시키의 그림입니다.


처음에는 이 에조니시키가 구치에조 즉 지금의 홋카이도에서 들어온다고 알았었는데, 18세기 초반 일본이 에조치에 대한 장악이 보다 견고해지고 자세한 정보들을 더 많이 확보하게되자 이 에조니시키가 실은 일본보다 오적(오쿠에조/오쿠테키)에 더 가까운 북고려에서 오는 것으로 밝혀집니다. (이 부분의 출전: 「제국주의 이전 시기 일본의 여행 담론 - 가토 기요마사의 오랑카이, 미나모토노 요시쓰네의 북고려 -」, 김시덕, 2010.)

지난편 가토 기요마사의 조선에서 후지산을 보다라는 클리셰 이미지에 등장하던 마쓰마에 출신의 표류민 고토지로가 에조치와 연결된다고 믿었던 북고려에 살면서 머나먼 이국 야만인의 이미지를 가지고 짐승 가죽옷을 입고있거나 아니면 그냥 일본인처럼 옷을 입었으나 아래는 야만인처럼 입고있던 그림은 당연히 그런 이미지를 살린 것이지만, 제가 마지막에 다시 강조한 가토 기요마사 조선군기의 삽화는 특히 여러가지 포인트에서 바로 이 에조니시키를 묘사하여 이국풍의 효과를 낸 것으로 보입니다.

일단 오늘은 여기서 짧게(?) 끊고 바로 이어서 그리하여 처음에 언급한 가키자키 요시히로가 도요토미 히데요시에게서 라이선스를 받아온 것이 어찌하여 무슨 힘의 발란스를 깨게 되었고 이후 마쓰마에는 어떻게 성장하였고 에조 아이누인들은 어찌하여 일본에 반란을 끊임없이 일으켜야할정도로 복속이 되었는지, 그리고, 에조니시키와 다른 교역품은 어떻게 진행되었는지 이어지는 이야기를 계속 해보겠습니다. 그리고, 아무튼 그 끝자락에 다시 청어가 돌아올 것입니당!


**비천의 책 NOT에 전하는 카스트리쿰호의 기록에 나오는 아퀘이는 지금 홋카이도의 쿠시로 인근의 아케시만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보나스로 NOT에 등장하는 아케시만의 측량해도입니다. 카스트리쿰호의 선장 드프리스는 이 만을 발견하고 "바이더후더호프(Baay de Geode Hoop = Bay of Good Hope)" 즉 희망의 만이라고 이름을 붙였습니다. (카스프리쿰호 이야기는 여기)


**맨위의 용문 에조니시키 이미지의 출처는 아오모리현 디지털 박물관 웹사이트: http://digitalmuseum.web.fc2.com/area5/501/ 이고, 아라이 하쿠세키의 에조시는 위스콘신 대학의 동아시아 디지털 아카이브: http://digicoll.library.wisc.edu/cgi-bin/EastAsian/EastAsian-idx?type=header&id=EastAsian.Ezoshi&isize=S , 그리고, 마쓰마에 요시히로에 대한 이야기들은 菊池勇夫 선생의 "北東アジアの中のアイヌ"(アイヌ文化振興・研究推進機構 平成13年度普及啓発セミナー, 2002), 紙屋敦之 선생의 "東アジアのなかの蝦夷地"(アイヌ文化振興・研究推進機構 平成14年度普及啓発セミナー, 2003)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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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빛의제일 2014/09/01 01:28 # 답글

    관복이라고 하면 요즘 특수기관들 제복처럼 생각합니다만, 교역품이 되니 신기합니다.
  • 迪倫 2014/09/03 23:31 #

    형식적으로는 부족의 족장의 지위를 인정해주고 시스템 안에 흡수하는 역할이니까요. 위지동이전이었던가 마한이었덤가 역시 같은 맥락으로 모자를 주는 기록도 있었죠.
  • 리리안 2014/09/01 09:19 # 답글

    저건 사실 교역하라고 준 것이 아닐텐데 말이죠^^;
  • 迪倫 2014/09/03 23:34 #

    마쓰마에로 올라간 일본인들이 아마 꼬득인게 아닐까요? ㅎㅎ 우리는 칼을 줄테니 너 입은 것을 벗어줘라...뭐 그런..그러다보니 아에 교역이 되어버린게 아닌가 싶습니다.
  • 까날 2014/09/01 10:02 # 답글

    북쪽에서 그렇게 적극적인 교역이 있었을거라고는 생각도 못했습니다.

    생각해보니 당시 대륙의 활동이 왕성할 때는 홋카이도까지도 손이 닿았겠군요, 반대로 대륙의 영향력이 줄어들자 남쪽으로 내려와 일본과 교역.... 이런 흐름이라고는 이번에 처음 알았습니다.
  • 迪倫 2014/09/03 23:36 #

    홋카이도가 위치를 보면 교묘한데가 있습니다. 다음에 설명하려는데 실제 북미로도 이어지고요. 홋카이도 아이누도 그래서 미묘하게 내부적으로 입장 차이가 있더군요. 자세한 얘기는 잠시만!^^
  • 함부르거 2014/09/01 12:52 # 답글

    생각해 보면 선사시대에는 시베리아를 통한 인적 교류가 있었다고도 하고, 고대의 초원의 길 같은 북방 평원지대를 통한 교역로가 분명 존재했으니 그 끝자락에 훗카이도가 있었다고 하면 이해될 수 있는 문제겠죠. 이런 일에 대해서는 사료가 없는 게 참 아쉽네요. 유목민족들의 일이었으니...
  • 迪倫 2014/09/04 04:48 #

    보통 우리가 '문명'이라고 간주하는 곳들만 교류가 있었다고 생각하다가 놓치는 부분들이 확실히 있는 것 같습니다. 자신들이 남긴 사료가 없이 주위에서 남겨진 토막들만 가지고 보면 어쩌면 중요했던 것들이 영영 사라졌을 가능성이 더 크죠. 하긴 그렇게 뭔가 남기고 물려주고 그래서 집착하게되는 농경거주민들은 결코 이해할 수 없는 유목민들의 세게인가 싶기도 합니다만...
  • 이종혁 2014/09/01 19:30 # 삭제 답글

    삽화 끝에서 세번째에..

    도쿠가와 히데요시로 잘못 올라갔네요~ ^^


    아프리카에 발령 받기 전, 3년 전 경주 국립 박물관에서 월남국 유물전을 본 적이 있습니다.

    청조 말기까지의 영향을 받았는지 용포가 청나라 왕족의 그것과 거의 흡사 하더군요.

    동북아 국가를 제외하고 한국과 왠지 친밀감을 느낄 요소가 많아 베트남에 대한 호감과 인식을

    한 단계 더 높일 계기가 됬습니다.


    오랑캐가 만든 어떤 물건이라 멸시하기 보다는 확실히 권력자가 탐낼만한 위용이 지네요.

    이런 Genuine 을 보면 물건이 흔한 요즘에서 보기 힘든 뭔가가 느껴 진달까요.
  • 迪倫 2014/09/04 04:52 #

    도쿠가와는 이런 버벅 버벅 실수를 하다니... 수정했습니다. 쓰다보면 머리 속에 있던게 뒤섞이는데 본인은 일단 실수해버리면 찾아내기 어려워집니다. 자세히 읽고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제가 베트남에 대해서는 정말 잘 모릅니다. VOC와도 실은 연관이 있어 자료도 있는데 이상하게 머리 속에 그림이 잘 안그려지네요. 베트남에 대해 좀더 찾아볼 필요가 있는데 말입니다...

    야만의 땅에 완전 최상급의 용문비단옷을 입은 추장들의 모습...이라면 왠지 압도감이 있었지 않았을까요^^
  • 2014/09/05 19:34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2014/09/07 22:06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 역사관심 2014/09/06 04:49 # 답글

    갈수록 재밌네요..ㅎㅎ
  • 迪倫 2014/09/07 22:08 #

    재미있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추석 잘보내세요!
  • 남중생 2014/09/06 15:28 # 답글

    굉장히 흥미롭게 읽었습니다. "북쪽의 신비로운 비단옷"이라고 하니 굉장히 뜬금없는 연결고리가 하나 떠올랐는데요. 이미 알고계시겠지만, 迪倫님께서 "아라사의 거대 얼음 두더'쥐'"편에서 인용하셨던 오주연문장전산고의 겁야번 변증설은 사실 맘모스 이야기가 주제가 아니라, 겁야번(怯夜幡)의 존재를 변증(고증)하는 항목입니다. 이 "겁야번"이라는건 불교에서 깨달음을 얻은 큰스님이 났을 때 절에서 내거는 깃발인데, 달빛 아래에선 그림자가 생기지 않는다고 합니다. 이규경은 바로 이 "그림자가 생기지 않는 천(깃발)"에 주목해서 어떻게 이런 현상이 가능한지를 고증해나가는데, "차가운 북쪽 바다의 얼음 속에 사는 빙잠(얼음누에)이 있는데, 이 얼음누에...고치로 만든 비단은 그림자가 생기지 않는다더라."는 여러 기록들을 인용하면서, "또 북방의 얼음 속에 사는 두더지, 마문탁와라는 것도 있는데 이 동물의 털로도 직물을 만든다고 하니 얼음두더지와 얼음누에가 같은 동물일지도 모른다..." 라는 식으로 논리를 전개합니다.
    서설이 너무 길어졌는데, 제 궁금증은 이 "얼음누에" 전설이 혹시 홋카이도 등지에 사는 북방 민족들의 비단옷을 보고는 "응? 북녘땅에서도 비단이 있다는건 추운 지방에서 사는 얼음누에가 있나보다..."같이 와전된게 아닐까 하는 생각입니다.
    또 한가지 궁금증은 이 얼음누에가 뿔이 달렸다고도 하는데 그렇다면 차가운 바다에 사는 뿔이 달린 동물이라면... 역시 지난 포스팅에서 다룬 적있는 일각고래, 우니코루와 모종의 관계가 있는건 또 아닌지...
    저 혼자 이런저런 상상의 나래를 펼쳐보았는데 어떻게 생각하실지 모르겠습니다. ㅎㅎ
  • 迪倫 2014/09/07 22:40 #

    남겨주신 덧글 제가 더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얼음누에 전설을 에조니시키와 연결한 아이디어는 상당히 흥미있습니다. 사료 중에서 연결고리만 찾아내면 정말 가능성도 있어보입니다.

    겁야번은 말씀대로 맘모스가 주제가 아닙니다 ㅋㅋ. 겁야변을 제가 처음 읽었을때 저는 이 그림자가 생기지않는 천을 러시아를 통해 들어온 유럽의 시스루 옷감인 시폰, 조제트같은 얇은 천을 말한게 아니었을까 하고 생각을 했습니다. 실제 세번수 실크사를 사용해서 제직한 시폰이나 조제트는 그림자가 보이지않는다고 해도 될 정도라서 말입니다. 하지만 18세기 이후에 원래 에조니시키를 공급하던 산탄지방 즉 아무르강 하류 해안지방은 러시아의 영역이 되었고 그렇다면 러시아 경유 유럽산 옷감 - 에조니시키 - 얼음누에전설 등이 서로 혼합되었을 가능성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얼음누에와 뿔, 일각고래, 우니코루는 어떻게 연결고리가 있을까요? 한번 찾아보면 재미있는 내용이 나올 것도 같습니다. 확실히 북쪽 지방은 전설과 현실이 혼재된 곳이라서..

    흥미있는 생각 감사합니다. 이렇게 얘기나누는게 블로그의 재미인 것 같습니다.
    남중생님, 추석 즐겁게 잘 보내시기 바랍니다!
  • Esperos 2014/09/08 04:09 # 답글

    재미있군요. 저런 중국식 관복이 교역대상이 될 줄이야. ^^;;
  • 迪倫 2014/09/08 04:55 #

    전혀 예상치못했던 곳에서 언밸런스하게도 최상급 용문자수의 실크 옷을 보면 뭔가 신비한 느낌이 들면서 소문이 퍼지게되는 그런 게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그러면 당연히 머스트 아이템에 되어버려 어떻게든 구해오라고 하는..^^

    Esperos님, 추석 즐겁게 보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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