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43년 북태평양의 모험 - 금섬과 은섬을 찾아라? by 迪倫

17세기 후반, 고래를 잡던 어느 노수부의 꿈.에서 이어서 이제 예고대로 태평양으로 돌아가겠습니다.

때는 바야흐로 1643년 2월 3일, 지금의 인도네시아에 있던 VOC의 기지 바타비아에서 플라위트급의 본선 더 카스트리쿰(de Castricum)과 야트급의 더 브레스켄스(de Breskens)라는 이름의 두척의 배가 북동쪽 일본을 향해 출항을 하였습니다. 하지만 이 두 배는 여느 VOC 상선처럼 나가사키를 향해 가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이번 포스팅은 이 두 배의 알려지지않은 모험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잠시 여기서 그동안 얘기를 요약 한번 하자면 1610년대를 기점으로 네덜란드와 잉글랜드의 동북항로 시도는 대충 마무리됩니다. 헨리 허드슨이 동북방향에서 여전히 유빙에 막히자 서쪽으로 방향을 돌린 것이 어쩌면 상징적인 사건일지도 모릅니다. 그리고는 그때부터 대신 북극해 바다는 고래잡이의 어장이 되었구요.

이런 변화에는 한편 원래 동북항로의 모티브였던 동인도에서의 포르투갈의 약화로 오히려 길게 여러 특산품이 이어진 남양항로가 점점 더 중요 노선이 되어버린 점도 있습니다. 중국으로 빨리 안가도 문제없다 이거죠. 이때 네덜란드는 동인도 바다를 거의 장악하고 심지어 일본에서 포르투갈마저 제치고 그야말로 VOC와 “더치 골든에이지”를 구가하게 됩니다. 라이벌 잉글랜드 마저 이때 네덜란드와 잠시 콜라보 분위기였다가 암보이나 사건으로 뒤통수를 맞고 동인도 후방에 국으로 물러나있습니다. 이제 네덜란에게는 스페인이 워낙 장악을 하고 있어서 아직 제대로 이름을 올리지 못한 태평양만이 미지의 바다로 떠오릅니다. 그리고, VOC의 실적이 최고 상한가를 치던 1640년 전후 태평양 탐사를 본격적으로 론칭합니다.

예를 들어 1642년 바타비아에서 동남쪽으로 탐험대를 출발시켜 태즈매니아와 뉴질랜드, 피지와 서태평양 연안의 섬들을 ‘발견’하고 돌아왔습니다. 원래 호주 저 너머쪽에 전설의 금이 나는 나라가 있다고 했는데, 정작 뉴질랜드에서 마오리족과 폭력적 충돌만 하고 꽝! 꽝! ‘상업적 가치없음’ 판정을 내립니다. 이 원정 이후 이 지역은 18세기 후반 제임스쿡 선장의 항해까지 더 이상 유럽인들이 찾지 않는다고 해도 됩니다. 과연 돈안되면 호주 뉴질랜드도 그냥 버리는 VOC!

1642년 남양 탐험을 이끈 아벨 얀손 타스만(Abel Janszoon Tasman, 1603 – 1659)입니다. 이름은 그래도 태즈매니아라는 섬에 남았지요. (의미없다!)

아벨 타스만이 작성한 지도를 1663년도에 발간한 호주, 뉴질랜드, 태즈매니아의 지도입니다. 오른쪽 그리다만 해안선이 뉴질랜드와 태즈매니아입니다.
그런데 이 남방탐험의 한해 전과 한해 후인 1641년과 1643년 두번에 걸쳐 반대방향으로의 탐험이 있었습니다.

1641년의 항해는 실은 주목을 받을 만한 내용이 없습니다. 마테이스 콰스트(Matthijs Quast )가 이끄는 탐험대는 스페니시 필리핀의 마닐라를 우회하여 오가사와라제도를 넘어 아마도 북해도의 남단 정도까지 북상을 한것으로 보이지만 그냥 그 위로 펼쳐진 망망대해에서 더 이상 방향을 잡지 못하고 돌아옵니다. 다시 이듬해 위에서 언급한 남쪽 골드코스트를 돌아보고 에잉, 여기도 아닌게벼 하고 항해 실패 판정을 내린다음, 1643년 뭐 꽤 재미있는 항해가 시작됩니다.

1641년의 실패를 다시 면밀히 연구한 후 인원을 보강하여 1643년 2월 바타비아를 출항한 두 척의 배는 방향을 필리핀을 동으로 우회한 후 북으로 직진하여 일본 너머 북태평양의 바다를 향해 나아갑니다.

여기서 잠깐! VOC라든가 지난번 포스팅의 잉글랜드의 여러 회사들이 배를 내보낼 때 그냥 무작정 가서 신대륙을 발견하라 하는 것이 아닙니다. 원래 해클루트나 메르카토르 같은 지리학자들이 여러 자료를 모아 특정 대상 지역의 추정 지도를 먼저 만들고 회사에서는 이 지도를 근거로 경위도와 날짜가 명시된 대단히 구체적인 지시서를 작성하여 선장에게 줍니다. 선장과 항해사는 지시서를 따라 항해를 하며 다시 측량을 하여 추정 지도를 업그레이드/업데이트 하고 이 항해 보고서를 돌아와서 회사에 제출합니다. 다시 이 보고서는 지리학자들이 분석하여 회사의 데이터베이스를 업데이트하고 다시 그 다음 지역의 추정 지도로 확대하고 다시 반복하는 과정을 계속하는 것입니다.

1641년과 1643년 북방 항해의 지시서에 명시된 목표지점은 타타르, 카타이, 코레아(!), 그리고 전설의 금섬과 은섬! 실제 통상적으로 알려진 것처럼 VOC에서 코레아에 대해 하멜 표류기 읽고 처음 관심 가진 것 아닙니다. 적어도 1638년 이전에 이미 코레아에 대해서도 주목을 했었고 그 후 여러 정황상 손익을 따져 돈 안된다고 판단되서 더 이상 진행안한거라구요. 뉴질랜드도 그냥 버린 VOC는 이윤을 쫓는 회사이지 말입니다. 흔히 꿈꾸듯이 접촉하기만 하면 근대화를 시켜주는 신터클라스(Sinterklaas = 영 santa claus)가 아니라.

그런데 회사의 항해지시서는 이들 지역을 탐험한 다음 북으로 더 진행하여 동북항로가 이어지는 지점으로 간 다음 여기서 계속 동으로 가서 아메리카 대륙의 서해안으로 이어지는 태평양을 가로지르는 북태평양 항로를 찾아라!고 하고 있었습니다. 당시의 태평양 횡단 항로는 멕시코-마닐라 노선의 스페인이 장악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지도 상으로는 완벽하죠!

지시서의 내용은 상당히 구체적입니다: 먼저 바타비아에서 몰루카 제도를 거쳐 트레나테항에서 일차 정박한 다음, 필리핀 제도 동쪽으로 북진을 해서 태평양을 올라갑니다. 일본의 혼슈 인근에 5월 20일에서 25일 사이에 도착한 다음 북/서북 방향으로 진행하여 일본 열도의 북단까지 도달한 다음 일본에서 ‘에소’라고 부르는 지역과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를 확인한 후 시간을 지체하지말고 마르코 폴로가 말한 카타이의 큰 강 입구에 있다는 무역항 얀지오(Jangio)와 브레마(Brema)를 6월 15일에서 20일 사이에 찾아가도록 합니다. (註: 카타이와 타르타르가 다른지 같은지 아직 정확하게 알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코레아는 타르타르와 같이 접촉하는 것으로 되어있습니다. 얀지오와 브레마 역시 마르코 폴로의 여행기에 나오는 지명으로 어디인지 아직 못찾았습니다.)
무역이 끝나면 8월초에 북으로 출발하여 다시 동남으로 방향을 바꿔 일본의 동쪽 끝 혹은 아메리카(!)의 서해안에 도착한 다음, 2-3주 정도 아메리카 해안을 탐사하고, 8월 25일 이후에는 금섬과 은섬을 찾아본 다음 귀로에 오른다.

자, 자, 지금보면 이게 뭥미스러운 이상한 데가 한두군데가 아닙니다만, 실은 당시 세계지리의 최고 수준의 정보를 조합하여 만든 항해 지시서입니다.뭐 물론 예상하시듯이 이대로 되었을 리가 없죠.

자 이제 실제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살펴볼까요.

2월에 바타비아를 떠나 몰루카를 거쳐 트레나트항에 기착한 다음 4월 4일 다시 일본 방향으로 출항한 두 배는 5월 19일-20일 일본 도쿄 남쪽 바다의 하치조시마(八丈島) 인근에서 태풍을 만나 두 배가 헤어지게 됩니다. 항해 지시서에서는 만약 두 배가 풍랑으로 헤어지게 되면 북위 37.5도의 일본 연안에서 기다리면서 대포를 일정하게 발사하여 신호를 하여 다시 만나도록 되어있었습니다.

일단 카스트리쿰호가 먼저 일본의 연안을 따라 올라가기 시작합니다. 5월 22일부터는 심지어 인근 일본인 어부들이 생선을 가지고 와 자신들이 가진 쌀과 아락 즉 증류주를 바꿔먹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때의 기록에 어부가 아닌 일본인들이 주위를 맴돌며 감시를 하는 것이 알려집니다. 5월 25일 지시서의 약속장소인 37.5도 부근에 도착한 카스트리쿰호는 먼저 브레스켄스호를 기다리기 시작합니다. 이 기간동안 일본 배들이 계속 접촉을 합니다만, 지시서대로 일본에 상륙하거나 관리들과 접촉하지는 않고 관망합니다. 5월 31일 최종적으로 카스트리쿰호에서는 선상회의를 통해 브레스켄스호를 기다리는 것을 중지하고 항로를 진행하기로 결정합니다. 6월 3일 북위 39도, 일본 혼슈 북부의 난부 지역 연안에 도달합니다. 일본인 어부들과는 지속적으로 접촉을 하고 생선이나 음식을 가져와 바꾸는데 일부 일본인들이 항구로 들어가자고 권유/재촉을 합니다. 하지만 카스트리쿰호는 이를 거절하고 북으로 진행을 합니다. 6월 10일 북위 42도 29분, 동경 163도 19분을 기록합니다. 즉 홋카이도의 동쪽 바다를 지나갑니다.

한편 헤어진 브레스켄스호는 6월 10일 이날 북위 39도 27분에 뒤쳐져서 북상하고 있었습니다. 이때 브레스켄스호는 카스트리쿰호와 달리 선원들이 일본 동북부 이와테현의 미야코시 부근의 야마다만에 상륙하여 인근 마을의 주민들과 접촉을 합니다. (하지말라는 것을 하면 문제가 생깁니다...) 다시 북상을 계속한 브레스켄스호는 카스트리쿰호와 각각 별개로 일본 혼슈 이북의 지역을 탐사합니다.

6월 카스트리쿰호는 홋카이도 동쪽 해안을 거쳐 계속 북상하여 쿠릴열도의 쿠나시르, 이투루프, 우루프 섬을 각각 발견하고 이투루프와 우루프 사이의 해협을 거쳐 서진하여 사할린 섬의 남쪽 지방을 탐사합니다. 이투루프와 우루프 섬 사이의 해협은 나중에 카스트리쿰호의 선장 브리스의 이름을 따서 브리스 해협이라고 불리게 됩니다(아래 지도에서 1855라고 그러진 선을 말합니다). 이 해협을 경계로 남쪽의 이투루프와 쿠나시르, 시코탄, 하보마이가 현재 일본이 러시아와 북방4개도서 분쟁을 일으키고 있는 지역입니다.

이 지도는 현재의 쿠릴열도의 지도입니다. 이 해협 북쪽의 우르투프부터 러시아이고 그 아래는 원래 일본이라는 거죠. 20세기의 역사의 후유증으로 남은 국경분쟁이기는 하지만 1643년 현재는 여기는 굳이 말하자면 네덜란드의 땅이라고 해야할른지. 심지어 이투루프섬은 스타텐 아일란트(나라섬), 우루프는 콤파니 아일란트(회사섬)이라는 무뚝뚝한 이름을 붙였으니까요.

아래의 지도는 당시 카스트리쿰호의 정보로 보다 세밀하게 그려진 동북 아시아 일대의 지도입니다.

이 지도에서 홋카이도-사할린-쿠릴열도 부근을 확대하여 현재의 지도와 비교해보았습니다.

하지만 사할린과 홋카이도 사이를 통과해서 원래의 목적지이던 만주 혹은 한반도쪽으로 진행을 하지는 못했습니다.

카스트리쿰호를 뒤따라 브레스켄스호도 7월말경 홋카이도 지역에 도착하여 아이누인들을 만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하지만 브레스켄스호는 원래의 임무보다 금섬과 은섬의 발견에 더 신경을 쓴 것 같고, 그래서인지 중국으로 가는 길목인 서쪽 통로 사할린쪽이나 쓰루가 해협을 찾지못하고(혹은 찾지않고) 서쪽으로 더 가지 못한채 다시 7월 28일 아와테현의 야마다만으로 다시 돌아와 그곳에 상륙하고 이전에 접촉한 적 있던 주민들과 함께 파티를 벌입니다. 문제는 파티를 벌이고 오랜 바닷 생활에 지쳐 흥겨운 마음이 든 것까지는 좋았는데, 아가씨들을 따라 갔던 선장을 포함한 10명의 선원들이 그만 정신을 차리고보니 칼을 겨눈 사무라이들에 둘러싸여있더라는....

하필이면 조금 일찍 예수회에서 일본에 잠입하려던 선교사들이 계속 발각되어 처형, 고문, 배교 등의 온갖 최악의 상황을 겪던 중이라 이들 역시 나가사키가 아닌 에도와 가까운 지역에 밀입한 키리시탄으로 간주되어 미인계를 사용하여 체포가 된 것이었습니다. 이들의 이후 이야기는 실은 이번에는 다루지않겠습니다. 다만 다행히 오란다인이라고 판명이 되어 지난한 교섭을 거쳐 생환했습니다만, 아무튼 여자들을 따라가 정신을 잃고 생포되어 문제를 일으킨 사유로 뭐 불명예스러운 이름이 되어버리기는 했습니다. 회사 생활에서는 이런 스캔들 참 결정적이죠. (VOC 회사생활 가이드북이랄지...)

그렇게 졸지에 선장과 선원이 잡혀가버린 브레스켄스호는 더 엉망이 되어 남은 선원들이 이렇게 된거 하고는 우리가 정말 관심잇는 것은 금섬과 은섬! 이 섬들을 찾아서 바다를 헤메고 다니다 다행히도 사할린 남단을 살펴보고 다시 일본 동쪽으로 빠져나온 카스트리쿰호와 조우하여 타이완의 포트 제일란트를 거쳐 12월 중순 바타비아로 귀환합니다.

원정은 당시 이미 바타비아에서도 결론을 내렸듯이 완전 실패로 끝납니다. 브레스켄스호의 체포된 선원들의 송환 교섭은 17세기 일본의 쇄국정책과 특히 VOC와의 대외관계에 나름대로 꽤 중요한 의미와 전환점을 부여한 것입니다. 그런데 카스트리쿰호의 기록은 이후 시간이 지난 후 책으로도 출판이 되었는데, 반면 브레스켄스호의 7월달 이후의 기록은 현재 남아있지않습니다. 특히 홋카이도 동해안을 탐사한 것과 금섬과 은섬을 찾아 돌아다니 기간은 무슨 일이 있었는지 정확히 알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브레스켄스호의 항해일지는 알 수 없는 이유로 소실되었기 때문입니다. 뭐 VOC에서는 경쟁자들에게 알리지않기 위해 종종 중요한 정보는 비공개로 사장시키는 경우도 많았고 브레스켄스호가 일으킨 사건이 윤모 대변인 방미 사건에 버금가는 스캔들이기도 했어서 그런게 아닌가 싶기는 합니다마만, 아무튼 이 항해일지가 마지막으로 간 니콜라스 비천의 책에 그나마 일부 내용이 있어서 추정하는 것입니다.

카스트리쿰호의 기록을 1858년에 출판한 "Reize van Maarten Gerritsz. Vries in 1643 naar het noorden en oosten van Japan " (마르텐 헤릿츠 프리스의 1643년 일본 북쪽과 동쪽으로 간 여행)의 표지입니다.

그런데, 이들이 결국 일정에 차질을 빚도록 했던 "금섬, 은섬"은 도대체 뭐였길래? 이 섬들은 실은 근세 서구권에 리코데오로(Rico de oro), 그리고, 리코데플라타(Rico de plata)라고 알려진 전설의 섬들입니다. 그런데, 이 섬들이 서양에 알려진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마테오 리치 즉 리마두 대인의 곤여만국전도! 다음번에 두둥! 다산 정약용이 설명을 따라 카스트리쿰호와 브레스켄스호의 원래 목적지들을 금섬과 은섬과 함께 찾아가 보겠습니다. 그리고 그 너머의 북쪽 바다의 섬 이야기를 이제부터 얘기해드리겟습니다.

**지도에서 보시듯이 한반도 위로 이어진 아시아 대륙 해안과 사할린, 홋카이도가 어떻게 이어져있는지 떨어져있는지 아직 이때 확인들을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하멜의 보고서와 니콜라스 비천의 책에 나오는 베네딕투스 클레르크의 진술에 의한 조선의 동북 바다는 열린 바다이며 바이가트를 둘러 청어와 고래가 왕래할 수 있도록 동해-오호츠크해-북국해가 연결되어 통한다고 한 것은 특히 동북항로가 실제 가능할 수도 있다는 증거에 해당되어 상당히 중요한 증언이었던 것입니다. (명색이 청어 시리즈이라서 한번은 '청어'를 들먹여보았습니다. 청어가 한번은 더 등장할 예정입니다. 당분간은 차가운 바다 얘기만 나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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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까날 2014/07/31 14:55 # 답글

    호주까지 갔으니 카타이가 금방인데..... 이런 생각도 드는데 말입니다. 그런데 처음 지도를 보고 왼쪽 바다가 호주인 줄 알았습니다.
  • 迪倫 2014/07/31 23:21 #

    문제는 자기들이 샤먼, 타이완에서 접촉하고 있는 치나가 카타이라는 것을 파악못하고 있었다는게 더 큰....

    그런데, 첫번째 지도는 보신대로 호주 맞습니다. 왼쪽 상단의 라인은 호주 서해안과 서북쪽 해안선입니다. 그리고 오른쪽 하단의 뉴질랜드의 서쪽 중간 해안선과 태즈매니아의 남쪽 해안선입니다.
    **라인 안쪽으로 약간 파랗게 칠한 부분이 땅입니다. 라인이 이어지지 않은 것은 전체 규모나 해안선을 아직 다 파악하지 못해서 입니다.
  • 초록불 2014/07/31 17:52 # 답글

    그런데 만주 지방에는 대체 뭐라고 적혀 있는 건가요???
  • 迪倫 2014/07/31 22:27 #

    Regno di Niuche는 여진 지방 Niuche = 여진/여직의 표기입니다.
    비스듬히 같이 적혀있는 Tartarie del Kin o del Oro는 '킨 또는 금(oro)의 타타르'라는 의미입니다. 시기적으로 금나라가 아니라 후금을 의미하는 것으로 해석됩니다.

    동쪽의 Tartary di Yupi는 생선껍질의 타타르라고 번역할 수 있는데, 이게 원래 아무르강 유역의 나나이족같은 퉁구스족 지역을 표시한 것입니다. Yupi는 魚皮의 음이 전사된 것으로 예수회 선교사들의 정보로 알려진 것입니다.
  • 초록불 2014/08/01 10:14 #

    친절하고 상세한 답변에 감사드립니다.
  • 행인1 2014/07/31 23:18 # 답글

    도다시 VOC가 등장하는군요.
  • 迪倫 2014/07/31 23:23 #

    17세기에는 거의 원탑 단독 드리볼이었으니까요^^
  • mori 2014/08/01 04:55 # 답글

    타즈매니아가 타스만의 이름이 붙여진 거였군요!! 하트모양으로 유명한데 직접 여행할 때는 나무가 빽빽하고 이런 곳이 야생인가! 싶었습니다. 당시 탐험하던 사람들에게는 어떻게 보였을지 궁금하네요. 저야 여행을 간 것이었으니 마냥 좋기만 했지만 정말 저 당시의 사람들은 목숨을 걸고 하는 탐험인데 생각만 해도 제가 두근두근합니다.
  • 迪倫 2014/08/01 14:40 #

    오, 타즈매니아에도 가보셨군요! 저는 호주 쪽으로는 아직 못가봤습니다. 자연환경이 좋다고 얘기는 들었는데 ㅠㅠ
    그보다 휴가라도 좀 가면 좋을텐데..... 이번 여름은 이런 저런 이유로 그냥 꽝이군요. 흐흑. 그래서 이렇게 생각으로 얼음바다 위로 모험 중입니다.
  • 헤르모드 2014/08/01 05:42 # 답글

    두구두구두구 드디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 迪倫 2014/08/01 14:41 #

    시간이 좀 나서 연방 올리고 잇는 중입니다. ㅎㅎ 이제 본격적으로 동아시아로 돌아왔습니다^^
  • 여행유전자 traveldna 2014/08/02 00:46 # 답글

    잘 읽었습니다^^ 지난 번에 다 읽어 놓았는데 덧글은 오늘 쓰게 되네요. 홋카이도 - 사할린 - 쿠릴 열도 옛 지도와 비교 흥미롭네요. 이 당시의 뱃사람이라는 사실은 한 명 한 명이 세계적인 모험가였다고 생각이 듭니다.
  • 迪倫 2014/08/08 12:54 #

    그래서, 지도를 조금 더 올려보았습니다. 옛날 지도에는 이 이름없는 뱃사람들과 탐험가들의 생각과 꿈(욕망)이 모두 반영되어 있어 굉장히 재미있는 것 같습니다. 이번 시리즈에서 그동안 책을 읽다 배운 고지도 읽는법을 은근 슬쩍 나눠보려고 해보는 중입니다^^
  • 빛의제일 2014/08/04 22:01 # 답글

    청어 시리즈인데, 청어 책은 없고, 대구 책은 있다고 하셔서, 저는 책 <대구>를 읽다가 대구지리를 사먹은 적이 있습니다. ^^;;
  • 迪倫 2014/08/08 12:56 #

    대구 지리 먹고싶습니다. 미국와서 얼마 안되서 생선가게에 미국답게 큼직한 대구가 있길래 사서 대구탕을 끓였는데 대서양 대구는 퍼석해서 식감이 완전달라서 흑흑...

    원래 생선역사계에서는 대구가 더 유명합니다. ㅎㅎ
  • 밥과술 2014/08/05 19:02 # 답글

    희귀동물들의 고향 타스마니아가 거기서 유래한 이름이군요. 산타클로스, 에소, 카타이, 이런 이름들을 실마리 찾아 언어로 맥을 짚는 것도 참 재미있는 작업일텐데 시간이 없으니 ㅠㅠ 위에 나온 일본의 '북방영토'라 불리는 도서도 발음이 일본어와 러시아어가 닮은듯 달라서 재미있습니다. 지난번에 블라디보스톡 갔을때 안 건데 블라디보스톡의 V 발음을 일본어에서는 '우'로 표기합니다. 그래서 우라지오스토쿠가 되지요. 그걸 줄여서 우라지오라고 해서 浦塩라는 표기를 했다고 합니다. 한자로 써놓으면 그럴듯한 일본 항구같이 보이네요.
  • 迪倫 2014/08/08 12:59 #

    우라지오! 그럴싸합니다. 안그래도 이 쿠릴열도 지역의 이름들은 원래 일본어였는지, 아이누어였는지, 아니면 러시아어였는지 어원자체가 불분명한 게 많은 것 같았습니다. 러시아어 단어들 중에 오래전에 일본통해서 들어온 경우에는 V를 우라고 쓰는 경우가 간혹 남아있더군요. 옛날 공산당 기관지 프라우다도 요즘 표기로는 프라브다가 되어야 하는데 역시 프라우다가 맞는 것같은 느낌이라서^^

    언제 시간되실때 언어학적 이름의 유래들 한번 부탁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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