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세기 후반, 고래를 잡던 어느 노수부의 꿈. by 迪倫

1597년 얼음바다 속에서 살아돌아온 사람들.에서 이어서 이제 바렌츠 일행의 항해로 인해 헬게이트가 열린 17세기 후반의 무르만스코이해(바렌츠해)를 한번 살펴보고 넘어가겠습니다.(왜 헬게이트라고 하는지는 조금 있다가…)

대체로 당시 해양업종인들의 관념 속에서 북극항로로 중국에 가는 것은 마치 무스코비 컴퍼니가 우연히 발견한 루트인 스칸디나비아 반도를 넘어 바로 도달하는 비아르미아를 통해 육로로 다시 남진해서 모스크바/러시아에 갈 수 있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스칸디나비아 반도 너머 동으로 가서 노바야젬랴와 바이가트 너머로 통로를 뚫기만 하면 그 너머는 바로 타르타르이고 그러면 타르타르에서 바로 남쪽 육로로 부와 황금의 카타이로 이어진다고 생각한 것 같습니다.

실은 브렌츠해는 상대적으로 따뜻한 북대서양해류가 흐르는 지역이라서 오히려 얼지않는 바다라고 합니다. 쏘비에트시절부터 지금까지 중요한 북방함대 해군 기지 특히 잠수함기지로 유명했던 무르만스크시가 바로 바렌츠해의 남단에 위치한 부동항입니다. 그래서 오히려 빙하로 뒤덮혔던 노바야젬라 너머의 바다보다 위도는 높지만 상대적으로는 얼음이 적고 한류성 해양생물이 많았다고 합니다.

이 바다에서 바렌츠는 공포의 북극곰뿐 아니라 재미있는 생물체를 발견해서 소개를 합니다.

이 삽화와 연결된 7월 20일의 영어본의 번역입니다.
7월 20일 (1597년), 여전히 좋은 강풍이 분다. 대략 동남쪽으로 크로스 섬에서 48마일가량 떨어진 블랙포인트를 지났고 서남서로 항해를 하여 저녁 무렵 서쪽에 제독 섬을 보았다. 북쪽으로 그 섬을 지났는데 블랙포인트에서 32마일 거리였다. 그 섬을 지날때, 우리는 약 200마리의 시-호스(영어로는 Sea-horse로 번역되어 있음)가 얼음밭에 누워있는 것을 보았다. 그 가까이로 배를 몰아 가서 거기서 쫒아보려고 하다가 값을 비싸게 치를뻔했다.
엄청나게 힘이 센 그 동물들이 우리 쪽으로 헤엄을 쳐와서 (마치 우리가 귀찮게 한 것을 복수라도 하듯이) 우리 보트 주위를 돌면서 시끄럽게 소리를 쳐댔다, 마치 우리를 뜯어 먹으려는 듯했다; 하지만 마침 강풍이 불어줘서 거기서 빠져나올 수 있었다. 하지만 잠자는 늑대를 깨우는 짓을 한 것은 현명치 못했다


지난번 포스팅에서도 보여드렸던 헤릿 더 페이르의 마지막 삽화에 해당하는 날의 일기에 실린 바로 시-호스. 흐음, 이 해마는 우리가 아는 조그만 실고기과의 해마가 아닙니다. 실은 이 해마라고 영어로 번역된 생물체는 실은 바다코끼리입니다. 이게 왜 해마로 번역되었는지는 실은 좀 복잡한 언어계통이 얽혀있습니다. 실제 원래 헤릿 더 페이르의 네덜란드어 버전에서는 Walrusschen 발루센 즉 오늘날의 바다코끼리 Walrus라고 되어 있습니다. (아래 네덜란드어 본문에서 밑줄그은 부분입니다)

바다코끼리는 실은 바렌츠의 1594년 제1차 항해에서 이미 이 바다코끼리를 발견하고 사냥도 했고 심지어 암스테르담으로 생포해서 데려오기도 했었습니다.

제1차 항해의 일지에 실린 삽화입니다.

1차 항해의 일기에서는 바다코끼리는 대단히 힘센 바다의 몬스터라고 하며 황소보다도 크고 바다 속에서 늘 지내며 피부는 물개같고, 털은 짧으며, 입은 사자와 같은 데 주로 얼음 위에 드러누워지낸다. 정수리를 정확히 가격하지않으면 거의 죽이기 힘들다. 다리는 네개인데 귀가 없고 보통 새끼 한 두마리를 낳는다. (중략) 그 입에는 한쪽에 하나씩 두개의 이빨이 나와 있는데 하나의 길이는 반 자 정도 되며, 흰색에 딱딱하며 게다가 상아색이기도 해서 특히 무스코비, 타르타르, 그리고 아는 곳에서는 코끼리의 상아만큼 (상품으로) 좋아보인다.
라고 하고 있습니다. 뭐 상선이니까요. 여정에서 상품화할 수 있는 것은 모두 확보를 하는 것이고, 궁극적으로 중국에 판매할 가능성까지 모색하고 있습니다.

아무튼 간단히 줄여 말하면 이 얼음 바다에서 뭔가 가용할 상품이 발견이 되었다는 것이죠.

동북항로로 가는 통과지역으로서가 아니라 바렌츠해 자체의 상업적 이용은 바렌츠의 탐험이후 17세기 시작무렵 본격 시작이 됩니다. 시작은 우선 잉글랜드입니다. 잉글랜드의 스티븐 베넷은 1603년부터 곰섬으로 진출해서 바다코끼리를 잡기 시작합니다. 그런데 곧 더 엄청난 상품을 발견합니다. 바로 고래입니다!
1607년 아직 잉글랜드의 무스코비 컴퍼니 소속으로 동북항로를 찾기위해 헨리 허드슨이 바렌츠의 해도를 들고 두번째 항해에 나섰을 때 스피츠베르겐 인근에서 심지어 고래가 슬릉슬릉 와서 배를 건드리고 가기까지 합니다. 그러고보니 곰섬에서 스피츠베르겐까지 엄청난 개체수의 바다코끼리와 고래가 말그대로 둥둥 떠다니는데, 마침 서유럽의 기름 수요 증가와 맞물려 여기 주목한 무스코비 컴퍼니는 1610년부터 본격적으로 배를 보내서 고래를 잡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이 소식에 스페인의 바스크인, 프랑스, 네덜란드에서도 고래잡이 배를 보내기 시작합니다.

그러자 바로 몇해 지나지도 않은 1613년 포경선 26척이 이 스피츠베르겐 인근 연안으로 파견됩니다. 이 중 반은 잉글랜드 배들이었습니다. 초반 기선을 잡았다싶은 잉글랜드는 아예 고래잡이 배들을 완전 무장을 하고 나타났는데, 심지어 어떤 배는 대포 21문을 장착했다고 하니, 이건 싸우자는건지 고래를 잡자는 건지…

원래 유럽 대서양에서의 포경은 원래 전통적으로 바스크인들의 일이었습니다. 조각배를 내려 고래 가까이 가서 작살을 찌르고 줄다리기를 오래 한 다음 고래가 죽으면 해안으로 끌고와서 해체를 하는 그런 방식인데, 실은 이 방식이 작살을 총으로 발사하는 작살총이 발명되었던 19세기까지 갑니다.


1714년이 되자 한해전 잉글랜드의 공격적인 전략에 자극받아 네덜란드가 작심하고 달려듭니다. 역시 네덜란드 답게 그냥 배를 몰고 나가는게 아니라 VOC 형태의 북부 회사 즉 Noordsche compagnie 노르드스헤 콤파니를 결성한 다음, 국가 최고 기관인 스타텐 제네랄에서 그린란드에서 노바야젬랴까지 포경 독점권을 받은 다음, 각종 시스템을 정합니다. 예를 들면 고래기름에 대한 생산 쿼타, 최저가격 보장, 선원 최고 임금 보장같은 기본 장치를 마련한 다음 스피츠베르겐으로 5월경 출발을 합니다.

그러자 곧 아니나 다를까 스피츠베르겐 인근 바다에서 이전투구가 벌어집니다. 무장한 배들이 서로 견제를 하고 그런 분위기 속에서 선원들은 모두 손에 작살을 들고 에이허브 선장처럼 고래를 쫓고....뭐랄까 헬게이트가 열린 북두의 洋이랄지 원피스의 바다스러운 상황이 되었다는 것이지요.

여기서 잠시. 근세의 유럽은 실은 지속적인 전쟁상태였습니다. 왕위 계승권이든 종교적 이유를 달든 이 전쟁들은 결국 '영토'를 확보하는 것인데, 이 영토란 기본적으로 사람이 정주하고 농업을 하고 그래서 거기서 세금을 징수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사람이 살지않으니 이 영토 종주권의 개념이 해당되지않는 곳이 바로 북극 지역이었던 거죠. 상업적 이해관계가 걸리자 북극해를 누구의 영역으로 둘것인가, 한 국가가 북극의 바다들에 대해 독점 또는 우선권을 주장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이 유럽 정치의 한 이슈로 떠오릅니다. (물론 그리 큰 이슈는 아니었지만 말입니다. 한편으로 현대 남극대륙이나 달에 대해서 어느 한 국가가 소유권을 주장할 수 없는 것은 바로 이런 역사의 타임라인 상에서 형성된 개념입니다. 그러니 달에 성조기를 꽂아도 달이 미국령이 아닌 것이죠. 달은 아직 무리라고 하더라도 남극대륙의 경우 한국도 좀더 근본적이고 실효적인 접근을 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그런데, 프랑스와 스페인 바스크는 실질적으로 국가적 관심이나 지원이 없어 금방 도태되고 맙니다. 이제 남은 파워는 잉글랜드, 덴마크(와 노르웨이 연합왕국), 네덜란드의 3파전!

또다시 먼저 잉글랜드! 1614년 네덜란드가 시스템적으로 전환하자, 잉글랜드에서 이 스피츠베르겐 섬은 우리 땅이라고 선언해버립니다. 1551년 휴고 윌로비경이 얼음에 갇혀 죽기전에 멀리 어떤 섬을 봤는데 그게 이 섬이었어, 우리가 그때 이미 발견했다고 우기기 시작합니다. (註: 확인되지않은 휠로비의 섬은 의외로 널리 알려져서 메르카토르는 1595년에 이미 노바야젬라 옆에 휴고윌로비의 섬을 그려넣기까지 했습니다. 물론 바렌츠는 스피츠베르겐과 무관하게 월로비의 섬은 잘못된 정보라고 무시해버립니다만. 요즘이 연구는 휴 윌로비가 스피츠베르겐까지 올라가지는 못했고 아마도 노바야젬랴를 본 것일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
그러자 1615년 덴마크와 노르웨이 연합왕국에서 그린랜드와 스피츠베르겐에 해군을 보내 무력을 과시하면서 아예 이름을 자기들 왕이름을 붙여 크리스찬베르겐으로 바꾼다고 선언합니다.....만, 유럽 외교가에서 완전 외면당해버리고 맙니다.

영리한 네덜란드는 이 와중에 섬의 주권 따위는 주장하지 않습니다. 정작 바렌츠가 정확히 해로를 작성하고 원칙적으로 ‘발견’했지만, 오히려 “마레 리베룸” 이론을 이 북쪽 바다에도 적용해서 여기는 ‘누구의 땅도 아닌 혜원, 아니 스피츠베르겐’이라고 주장합니다. 실은 계산이 확실히 선거죠. 고래는 그야말로 충분하니 다른 국가에게 허용해도 괜찮아, 왜냐하면 고래잡이의 노하우와 기술, 그리고, 무엇보다 기본적으로 시스템이 다른 두 나라의 고래잡이 배들이 네덜란드의 노르드스헤 콤파니를 따라올 수 없었던것을 알았던거죠. 게다가 한발 더 나아가면 내수에 거의 의존한 잉글랜드와는 달리 유럽 전역에 고래기름을 판매하는 유통망, 네트워크가 이미 네덜란드에 장악되어 시장을 장악하고 있으니. '내거아닌 내거같은 내거'인데 뭐 굳이 분쟁을 일으키겠어요^^.

네덜란드는 북극해의 섬들에 가공처리 스테이션을 설치하고, 작살과 창으로 고래를 잡아 해안으로 끌고오면 가공 스테이션에서 잘게 잘라 끓여서 기름을 채춰해서 나무통에 담아 귀환하는 포경선이 실고 돌아오는 시스템을 실행합니다. 그러면 도착 즉시 이 기름통들이 바로 운하를 타고 유럽 내륙의 수출 네트워크에 타고 올라가 전 유럽에 유통되는 것이죠.

1639년의 스피츠베르겐에 있던 노르드셰 콤파니의 가공처리 스테이션의 그림입니다.

이렇게 17세기 전반에 본격화된 바렌츠해의 포경업은 1640-1670년 기간동안 새로운 문제에 부닥칩니다. 고래는 바보가 아니거든요. 처음에 멋모르고 인간들에게 날벼락을 맞은 고래들이 더 이상 섬들의 연안 가까이에 나타나지 않고, 이제 저 먼바다로 도망을 쳐버렸던 것입니다. 이 원양의 고래를 따라 나섰던 여러척의 포경선이 고래의 복수랄지 유빙에 갇혀 배를 포기하는 일이 매년 계속해서 발생하기 시작합니다.

1660년 암스테르담. 인간이란 동물은 참 악착같습니다. 네덜란드에서 첫번째 포경전용 이중 선체 강화선을 건조합니다. 쇄빙선까지는 아니지만 그래도 얼음에 맞서볼 수는 있는 단계까지 갑니다. 오로지 고래잡겠다고. 그러자, 환경이 바뀌어서 섬의 스테이션 대신 배에서 1차 처리한 후 저장해서 암스테르담으로 바로 가져오면, 암스테르담에서 대형 전문 가공 공장에서 기름을 추출해서 다시 유럽에 수출하는 시스템으로 전환합니다. 실은 이미 1642년 노르드스헤 콤파니의 독점을 해제하고 경쟁을 허용하여 산업 자체를 더욱 크게 키워서 이후 네덜란드가 거의 북극해 포경을 주도하는 판세로 나갑니다. 자료에 의하면 1684년이 북극해 포경의 피크인데, 이해 스피츠베르겐에 네덜란드에서 포경선 246척이 출동해서 1185 마리를 잡았다고 합니다. 비교를 하자면 같은 해 2위는 북독일인데, 포경선 57척에 227 마리입니다. 더이상 설명이 필요한지… (출전: The Unending Frontier: An Environmental History of the Early Modern World, John F. Richards, Univ. of Cal. Press, 2006)

그런데, 네덜란드로서는 그럴만한 이유도 있었습니다. 바로 이 시기 그동안의 캐시카우 청어 어업은 급속도로 쇠퇴하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예를 들어 홀랜드 지방만 1630년 한해 하링바위스가 500척 규모였는데 매년 감소하기 시작하여 백년 뒤인 1730년에는 반 이하로 줄어듭니다. 단지 하링바위스가 줄어드는게 아니라 그러자 직간접으로 관련된 인원들과 산업들이 따라서 위축되고 또한가지 하링바위스를 통해서 이뤄지던 숙련된 선원의 트레이닝이 점점 부실해지고 이게 해군의 부실로까지 이어진 것입니다. 이 와중에서 그래도 북극해의 포경이 비록 하링바위스 선단만큼의 규모와 영향력은 아니라도 지속적으로 원양어업의 동력이 되어줘서 네덜란드의 해양 경쟁력을 유지하게 해줬다는 것입니다.(출전:Dutch Seaborne Empire 1600-1800, C.R. Boxer, Penguin Books, 1965)

잠깐 여기서 이야기 하나 들려드리겠습니다. 17세기 후반 이 바렌츠해의 어느 여름날. 작살을 막 던져 꽂고 열심히 뒤쫓으며 실랑이를 벌였지만 그만 작살이 부러져 멀리 얼음 아래로 사라져 버린 고래를 바라보면서 바다에서 평생을 보낸것 같은 한 노인이 옆에 있던 젊은 신참에게 지나가는 말처럼 이야기를 해줍니다. 저 고래는 말이야 이 부러진 작살이 꽂힌채로 저 얼음 아래 바닷길을 타고 바이가트를 너머 타르타르의 바다를 지나 코레아라는 곳의 해안에 가서 숨을 거둘거야. 신참은 어리둥절 해서 타르타르라면 야빤 너머 차이나 말인가요? 그런데 코레아는 어떤 곳이죠? 베네딕트 노인은 대답을 않고 대신 씩 웃음을 짓습니다.

아, 오해마시기를, 이 이야기는 제가 자료를 바탕으로 상상해서 지어낸 이야기입니다. 이 17세기 중기 조선에 표착했던 하멜 일행의 이후에 대해서는 대체로 알려진게 없습니다. 그런데, 지난번에 언급한 니콜라스 비천의 “Noord en Oost Tartarye” (북부와 동부 타타르)”에서 적어도 한명의 이후 행적은 짐작이 됩니다. 하멜의 일행에는 용어(jonge), 즉 급사가 3명 있었는데, 이중 한명인 로테르담 출신의 베네딕투스 클레르크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이 사람이 이후 또다른 선원 에이보켄과 함께 니콜라스 비천에게 코레아에 대한 정보를 제공합니다. 이 내용이 바로 제가 두번째 주(註)2라고 하면서 뒤로 미뤄둔 내용입니다.
“En tot bevestiging, dat de Hollandsche Harpoenen op Korea in de Walvisch zijn gevonden, zoo hebbe ik met Benedictus Klerk van Rotterdam, welke op Korea gevangen geweest is den tijd van dertien Jaren, over deze Harpoenen gesprooken, die dan verzekert, wel toe te hebben gezien, wanneer in zijn tegenwoordigheit uit het lichaem van een Walvisch op Korea, een Hollandsche Harpoen wierde gehaelt, en zegt uitdrukkelijk zulks aen het maekzels gezien te hebben. Hy gaf reden van kennis, dat hy en andere zijner makkers, in hun jeugt uit Holland op de Groenlandsche Visschery hadde gevaeren, en vervolgens de Harpoenen wel kenden; zeide verder, dat de Koreërs hunne byzondere schepen, en gereetschap tot deze vangst hadden, wes hy met zijn mede gezellen vast stelde, dat ’er opening tusschen Nova Sembla en Spitsbergen moeste zijn, ten minsten voor zwemmende Visschen: gelijk de Koresche Zeeluiden zeiden, dat ten Noord-oosten van haer een openbare Zee was. Zy oordeelden, met meer gemak van die kant, als van deze zijde, dat naeuw, of dien weg te verzoeken zouden zijn, en dat dagelijks uit het Noorde van Tartarye scheepjes in Korea quamen, en omtrent Korea, meer zoodanige Visch wierd gevonden, gelijk men in de Noordzee vind, als Haring, enz. Dies deze man besloot, dat Asia aen America te dezer oort niet en is gehecht” (Witsen, 2e dr. dl. I, bl, 43–44).
코레아에서 13년간 잡혀있었던 로테르담의 베네딕투스 클레르크에게서 확인한 바는 코레아의 바다에 네덜란드 작살이 꽂힌 고래들이 발견된 다는 것이다. 그는 이렇게 네덜란드 작살이 부러진채 코레아 해안에 고래가 밀려와서 죽은채로 발견이 자주 되었으며,이게 코레아나 일본의 작살과는 확실히 다른 것이라고 했는데, 그린란드(註: 스피츠베르겐 일대를 바로 인근의 그린랜드와 같이 묶어서 그린랜드라고도 했습니다)에서 고래잡이를 오래 했었기 때문에 잘알고 있었다. 노바야 젬랴와 스피츠베르겐에서 타르타르를 넘어 코레아의 동북쪽 열린 바다로 이어지는 해로가 있어서 북해에서 발견되는 청어가 그곳에서 발견된다며, 아시아와 아메리카가 이어져있지 않다고 얘기했다.
(번역을 나름대로 노력은 했는데 그래도 대단히 어설프게 대략 의역을 했습니다. 양해바랍니다)
이 내용으로 제가 이 비천의 책에 실린 얘기를 정리해서 문득 상상해 본 것입니다. 14살에 조선땅에 떨어져서 27살이 되어서 고향으로 돌아간 다음에도 그는 다시 바다로 나갔었나 봅니다. 어쩌면 그 바렌츠해의 고래를 잡으면서 저 바다너머 고래와 청어는 갈 수 있는 코레아와 사람들을 그리워했을지도 모르죠.

네덜란드와 잉글랜드의 동북항로 경쟁 레이스는 대략 17세기 초반에 끝이 납니다. 포경업이 대신 활발해지고 이 북극해도 점차 익숙해지기 시작합니다. 지구 반대편의 동인도 바다에서 제법 성공적으로 포르투갈과 스페인을 몰아내고 자신들의 네트워크를 확립하자 더 이상 동인도 남양항로도 모험선이 아니라 정기선화 됩니다. 그리고, 이제 아직 지도에서 그려지지않은 지역을 찾아 기회를 먼저 잡기위해 태평양으로 진출합니다. 주인공은 VOC!

다음 이야기는 1643년 북태평양의 금섬과 은섬을 찾아 떠나는 모험입니다. 이야기는 이제 후반전으로 접어듭니다. 이제 본격적으로 아시아 무대로 자리를 옮깁시다.

아, 동북항로가 상업적으로 본격화 된 것은 특히 2014년 올해입니다. 하지만 1930년대 소비에트에서는 스탈린 동지의 오랜 꿈을 이루기위해 무르만스크에서 하바로프스크를 이어주는 동북항로 개척에 매진하여, 수많은 쇄빙선을 얼음에 갇다바치고 1934년 실은 성공을 했었습니다. 그 이야기는 언젠가 다음 기회로 미루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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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까날 2014/07/26 14:36 # 답글

    북극해에서 사라져서 코레아의 바다에 나타난 고래라........ 정말 원피스의 바다입니다. 그런데 역시 당시 해역 다툼은 국가라는 스폰서 없이는 링에 오르기 힘들었군요.

    그런데 저 당시 저런 대규모 포경을 보고 있으면 2위를 따따불 스코어로 떨어트리고 독주하는 네덜란드가 대단하기도 하고, 유럽이 일본 보고 고래 먹는다고 뭐라고 할 처지가 아닌게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 迪倫 2014/07/30 14:05 #

    역시 프랑스나 스페인보다 잉글랜드, 네덜란드가 좀더 악착같은데가 있었던게 아닌가 싶기도 하구요. 그렇긴한데도 네덜란드의 독주는 대단하죠.

    고래 문제는 그런데 유럽은 먹지않고 그냥 기름과 수염만 채취하였단게 더 나쁘다는 느낌이 들기도 합니다. (저는 실은 외가가 울산이라 어릴적 고래고기를 먹으며 자랐거든요... 이성적으로 포경금지를 지지하지만 고래고기가 추억의 콤포트푸드이기도 해서... 아무래도 인간의 이중성은..ㅠㅠ)
  • 행인1 2014/07/26 21:44 # 답글

    1. 청어에서 포경으로 옮겨진게 그런 국가적(?) 관심이 있었군요.

    2. 15세기까지 그린랜드에서 살던 바이킹의 수입원 중 하나도 바다코끼리의 어금니였다고 합니다.
  • 迪倫 2014/07/30 14:09 #

    1. 한가지 글 중에서 좀더 분명하게 말하지못한 것은 18세기로 다가가면서 유럽의 식단이 바뀌어서 청어보다 대구나 연어같은 고급어종으로 옮아간 것도 한 가지 이유였다고 하더군요. 하지만 기존의 선원 어부들은 자연스레 좀더 산업이 성장하는 곳으로 몰리게 되니, 게다가 이게 외교 정치들과 맞물려 국가적 지원을 받게되었더군요.

    2. 예, 제가 전에 언급한 것처럼 이번 글에서의 '발견'은 서유럽의 기준입니다. 실제로 먼저 소개해드린 올라우스의 카르타 마리나 지도에도 바다코끼리의 그림이 들어있습니다.다만 근대적 방식으로 본격 남획을 하기 시작한게 이떄부터라는... 그래서 지금 그린랜드에는 아마 멸종이라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 빛의제일 2014/07/27 00:52 # 답글

    지난 번에 말씀드린 <북극을 꿈꾸다>에서 고래인가 어떤 바다생물의 남획이 북극에 대한 접근 또는 접근 방법을 바꾸었다는 내용이 얼핏 떠오릅니다.
    베네딕투스 클레르크는 그 고생을 겪고도 계속 배를 탄 것 보면, 바다에는 배에는 저로서는 이해가지 않는 무언가가 있는 것 같습니다.
    '노르드스헤 콤파니'에는 음.. 역시 네덜란드는 컴퍼니! 읊조렸습니다. ^^
  • 迪倫 2014/07/30 14:11 #

    베네딕투스 클레르크는 좀더 자세히 알면 굉장히 흥미로운 삶을 살았을 것 같습니다만... 더이상 알 수가 없네요. 제 주위에도 고향이 고향인지라 배를 타시는 분들이 많았는데, 바다와 배에는 육지의 붙박이 인생들이 이해못하는 마력이 있는것 같습니다.
  • 역사관심 2014/07/27 09:40 # 답글

    당시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이게 지구이야긴가 싶어요. ㅎㅎ
  • 迪倫 2014/07/30 14:11 #

    조금만 기다려주시면 좀더 놀라운 조선발 이야기들이 나올 것입니다. ㅋㅋㅋ
  • 여행유전자 traveldna 2014/08/02 00:31 # 답글

    네덜란드는 정말 딱 필요한 것만.
  • 迪倫 2014/08/08 12:48 #

    그래서 어떤 역사학자는 "the Dutch never forgot to take their economic pulse, no matter how high feelings might run"이라고 말을 남겼더군요. 모르겠습니다, 어떨때 사회가 정말 어느 한쪽도 명분 고집하지않고 직설적으로 이윤의 주판을 딱딱 때려서 서로 대하는게 오히려 더 인간적이기도 하고 더 효율적이기도 한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 이종혁 2014/08/09 11:31 # 삭제 답글

    가끔 제가 인터넷에서 쓰는 닉이 "오리너구리"인데..

    인것도 아닌것도 같은 이상한 녀석이라는 느낌이 재밌어서 사용중입니다.

    한글로써의 표현이겠지만, 바다코끼리라는 명칭도 재밌는데

    실제 발견한 사람들은 이 동물에 대하여 잡아놓고도 어떻게 생각했을지가 재밌습니다.

    그 때도, 고래라는 동물은 저~~~엉말 큰 물고기라고만 생각했을텐데 포유류라고 보기 보담요. ^^

    현재, 근무중인 곳이 부산/울주군 이다보니 TV만 켜면 고래가 돌아오는 곳이라는 표현을 많이 합니다.

    아~ 고래부심이 대단한 듯하네요.
  • 迪倫 2014/08/12 10:30 #

    요즘 부산/울주에서 근무하신다니 ^^ 더 반갑습니다! 울산이 외가라서 어릴적부터 고래고기를 먹으며 자랐습니다. 뭐 그쪽 사람들 고래부심이 좀 있죠^^ ㅋㅋ 요새도 장생포에서는 고래고기를 판다고 들었는데요. 아무튼 맛있는 해산물들 많이 드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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