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리시탄 문제: 17세기 격랑의 바다...그리고 18세기 시도티 신부의 등장 by 迪倫

아라이 하쿠세키에 대하여 조금 더....에서 다시 1712년 에도의 세 남자 이야기로 돌아갑니다.

1712년 조선으로 돌아온 신묘 사행단의 임수간은 일종의 보고서를 주제별로 씁니다. 이중에 일본에서 수집한 국제정세 보고서에 해당하는 “해외기문”이라는 글이 있습니다. 지난번 라르데인을 소개할 때 이 해외기문에 적힌 아란타인에 대한 내용을 이미 소개했습니다. 아란타인 섹션에서 바로 이어지는 내용은 바로 일본의 키리시탄 즉 카톨릭 문제에 대한 요약입니다. 그 부분을 먼저 전문 소개드립니다:

남만(南蠻) 사람 미소종문(彌蘇宗門)이란 자가 맨 처음 장사치로서 장기(長崎)에 왔는데, 그가 요술을 잘하여 항상 사람들에게 말하기를, ‘네가 죽은 친속(親屬)을 보고 싶으냐?’고 하였다. 사람들이 만약 그렇게 해주기를 애걸하면, 과연 잠깐 사이에 죽은 사람이 나타나 드디어 서로가 붙들고 울면서 사생(死生)의 정(情)을 펴기를 생전과 같이 한다. 그리고는 손을 흔들어 가게 하면 다시 보이지 않는지라, 사람들이 다 신기하게 여겨 원근을 막론하고 너나 없이 따르는데, 혹 믿지 않고 가서 욕을 보이려 하면, 종문이 문득 먼저 알고 말하기를, ‘네가 만일 나의 도를 믿지 않는다면 빨리 가라’고 한다. 그러나 그 사람이 일어나려 하면 몸이 땅에 붙어 갈 수가 없어서, 비로소 놀라고 겁내어 잘못을 사과하는데, 등(藤) 채찍에다 침(鍼)을 붙여 매질하여 온 몸에 피가 마구 흘러도 꼼짝 못한 채 도리어 서로가 속이고 유인하여, 그를 높이 섬기는 자가 왜국 내에 많았었다.

그리하여 마침내 동무(東武)의 봉행(奉行)을 통하여 반란을 기도했는데, 어떤 사람이 그 글을 얻어 관백(關白)에게 고함으로써, 곧 군사를 풀어 체포하게 하니, 그들 무리 보기(步騎) 수천 명이 바다를 평지처럼 건너가는데 그 가는 방향을 알 수가 없어 온 나라 사람들을 다시 한 번 놀라게 하였다. 그 후 그 얼굴을 모사하여 네거리에 던져두니 그를 항상 섬기던 자들이 혹 통곡하다가 칼에 찔려 죽기도 하였다. 지금도 도시와 촌락에 게시판[制札]을 달고 상을 주어 가면서 그 도당을 체포하고 있다.

또 우리나라에도 서한을 보내어 바다에서 선박을 이용해 건너가는 수상한 자가 있거든 부디 꼭 죽여 달라고 했다.

그리고 왕년에 남만(南蠻)에서 표류한 수십 인을 체포하여 일본에 보냈더니 일본으로부터 후한 사례가 있었다. 그 뒤 장기(長崎)에서는 종문(宗門)의 동상(銅像)을 만들어 두고 여러 나라에서 표류해 온 자들로 하여금 그 동상을 발로 차게 하여 시험해 본 결과 난색(難色)이 있으면 꼭 죽여 버렸다 한다. 누가 말하기를, 종문이 맨 처음 왔을 때 조그만 금불(金佛)을 왜인들에게 나눠 주어 그들로 하여금 숭봉하게 하고 화복(禍福)으로 유인한 다음, 그 대중을 이끌고 반란을 일으켜 국군과 크게 싸우다가 실패하여 바다 위를 도보로 달아났는데, 40년 뒤에 다시 수만 명을 인솔해 와서 풍전주(豐前州)를 습격하다가 불리하자 도망갔다 한다.

만력(萬曆) 연간에 서양사람 이마두(利瑪竇 마테오리치)란 자가 바다를 건너 일본에 와서 천주교(天主敎)를 사람들에게 보급하니, 그 법은 대개 불교와 비슷하여 인과응보(因果應報)의 설이 있어 일본에서는 법을 만들어 금지했다. 그 뒤 서양 사람이 다시 온 것을 문득 죽이기까지 했는데, 근년에 또 살마주(薩摩州)에 와서 머무는 자가, 그 배는 돌려보내고 홀로 섬 사이에 남아 있었다.
가서 물어보니 왜말로 대답하기를, ‘우리 천주교는 모든 나라가 다 숭배하는데 유독 중국과 당신네 나라에서만 시행되지 않으므로, 우리 국왕께서 한 사람은 중국에 보내고 나 하나를 이 땅에 보내어 선교하게 하셨다. 당신네 나라에서 나를 용납하지 않을 것을 모르는 바 아니지만, 도(道)는 행할 수 있으리니 여기에서 죽을지언정 피하지 않겠다.’고 하였다. 이 말이 드디어 강호(江戶)에 들리니, 국왕이 원여(源璵)를 시켜 시험하게 했더니, 보고나서는 이상히 여겨 강호에다 가두어두고 현재까지 옷과 밥을 공급하고 있다고 한다.


실제 이 글이 말하는 반란은 바로 1637년 10월부터부터 1638년 2월까지 규슈 남쪽 시마바라에서 일어난 키리시탄의 반란을 의미합니다. 이 반란이 최종적으로 진압되고 난 후 일본은 키리시탄에 대한 극도의 진압, 탄압 정책을 19세기 중반 흑선의 도래까지 유지합니다.

위에도 나와있듯이(제가 볼드체로 표시한 라인입니다) 조선에도 시마바라 진압이 끝난 직후부터 이에 대한 정보를 교환하고 협조를 요청해오고 있었습니다. 실제로 1620년경부터 40년경까지 20년 가량 마카오에서 지속적으로 선교사를 밀입국시키려다가 적발되는 사건들이 이어졌습니다. 게다가 조선과 관련된 또다른 사실은 어쩌면 벨테브레이가 표착했을때 대마도에서 그의 신병 인수를 거부한 이유와도 관련이 있을 수 있는데, 무슨 일이냐면 조선의 남해의 섬들에서 대마도를 통해서 일본으로 잠입하려 한다는 정보를 바쿠후가 입수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를 대마도에서 서계를 통해 바쿠후의 정보를 알려주면서 조선에서 협조해주기를 요청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실제 조선에 대한 금제요청은 이보다 좀더 복잡한 바쿠후-대마도-조선의 각각의 이해관계가 얽혀있기는 합니다만 이번에는 생략하고 넘어갑니다.

그런데 1644년 이 조일 공조체제가 상당히 효과를 본 사건이 발생합니다.
그 해 여름 7월 광동성 광저우부에서 출발하여 나가사키로 가던 중국인 52명이 승선한 광동선(廣東船)이 전라남도 진도군 남도포(南桃浦)에 표착하는 사건이 있었습니다. 전라감사가 조정에 보고하자 비변사에서 중국인의 표착은 상당히 골치아픈 절차가 많은데 일단 나가사키로 간다했으니 지속적인 금제요청도 있고해서 대마도를 통해 넘겨주자고 의견을 개진하여 그렇게 명령이 내려갑니다.

이게 아직 명청 교체기가 완결이 되지않아 원래는 중국표착민은 중국으로 돌려보내는데, 광둥성이면 남명정부의 영향권이고 남명인이라면 청을 통해 돌려보내는 것이 원할하지 않을뿐 아니라 청으로부터 남명과 내통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까지 받게되기 때문에 아예 안그래도 협조요청을 보낸 일본으로 넘겨버리자고 한 것입니다. 벨테브레이의 경우도 이와 같은 처리였는데 이때는 대마도에서 접수를 거부한 것입니다.
그런데 조선측에서는 아예 이 사람들에 대해 심문도 제대로 하지않고 보호하고 있다가 그냥 대마도로 넘겨버립니다. 즉 심문했다가 耶宗(야소 종문)이 아니라면 대마도에서 접수를 하지않을것이고 그럼 청 아니면 남명하고 상대해야 하는게 그건 외교적으로 미묘하게 곤란해지고…그럴바에야 니네들이 알아서해라 하는 식으로 왜관에 그냥 인도해버립니다. 그러면서 스스로 한인(漢人)이라고는 하는데 사(邪)가 끼어있을 수도 있지만 우리는 판별 능력이 없어 왜관에 인도하니 귀국의 처치를 부탁합니당 하고 슬쩍 키리시탄일 가능성을 언급합니다.

이들 광동인들은 결국 10월 경 일본으로 호송된 후 키리시탄인지 판정하기 위해 11월 초 나가사키로 이송됩니다. 그런데, 이게 왠일, 나가사키에서 심문한 결과 52명 중에 기독교신자 5명이 있었을뿐 아니라 마카오를 출입하던 사람이 21명이나 포함되어 있다는 것이 밝혀집니다. 대경실색 나가사키 부교소에서 바쿠후에 보고를 하고 바쿠후는 대마도를 통해 조선에 적발 내용과 감사, 그리고 그들로부터 확보한 제2차 조선경유 잠입계획을 전달합니다. 한편 적발된 이들 중에 변심을 한 자들은 살려주고 급여와 집을 제공해주면서 다시 키리시탄 적발을 하는 메아카시(目明)으로 활용하고 나머지는 옥중에서 병사 또는 처형을 당합니다. 조선에서는 예조참의 명의로 1645년 가까운 시일내에 이들 키리시탄이 배를 만들어 일본으로 가기위해 조선으로 온다는 정보에 놀랐다며 이를 알려주어 양국간의 우호를 더욱 더 느낀다는 답서를 보냅니다. 조선은 그럭저럭 체면도 세우고 일본은 일본대로 거보세요 이런 일 있다했죠 하며 양국이 교린의 우의를 돈독히 했다는 훈훈한...이 아니잖아! 농담입니다만, 실은 일본은 상당히 단속을 더욱 강화하였고, 조선은 어렴풋이 상황의 심각성을 인식하기 시작하긴 하게됩니다. (**이 부분은 신동규 선생의 “근세 동아시아 속의 일조란 국제관계사”, 경인문화사, 2007에 포함된 4장 일본의 그리스도교 금제요청과 표착 이국선 처리 부분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이렇게 17세기 초반부의 일본, 그리고 2세기 가량 뒤인 19세기 초반의 조선은 이 천주교로 인해 크게 홍역을 치릅니다. 대신 이 중간의 2세기 동안은 상대적으로 잠잠한 기간이었고, 포르투갈의 마카오도 스페인의 마닐라도 그들 자체의 경제와 파워의 쇠퇴에 따라 일본에 선교사를 잠입시키는 것에 어느 정도 포기를 하였습니다만, 반면에 일본은 임수간의 해외기문에도 등장하는 후미에(踏み絵) 즉 기독교 상징을 그린 동판을 밟고가도록 하는 검증 시스템을 가동하여 상시 경계 체제로 아예 “키리시탄 박멸”을 성취했다고 생각했을 정도였습니다. 조선은 한편 일본은 절지단(切支丹) 때문에 난리였다는군요 하면서도 태연하게 베이징 통해서 들어오는 서학 책자들을 “명경석유(名卿碩儒) 중에 보지않은 이가 없다”며 의외로 별 문제삼지 않고 그러려니 하고 있었습니다. (이 말은 순암 안정복의 순암집 잡저 천학고 중에 나옵니다)

그런데 이 기간의 중간 즈음인 1708년 가을 뭐랄까 시쳇말로 소위 ‘도꼬다이’라고밖에 표현할 길이 없는 한 사나이가 일본에 도착합니다. 이 사람은 바로 이탈리아 팔레르모 출신의 조반니 바티스타 시도티(Giovanni Battista Sidotti, 1668–1714) 신부입니다. 그리고, 그의 일본 잠입은 아라이 하쿠세키와 운명적인 만남으로 이어집니다.

양조절이 원래 잘안되는데다가 계속 하면 얘기가 너무 길어질 것 같아 일단 여기서 자릅니다. 원래 시도티와 아라이 하쿠세키의 얘기를 하려고 한 것이었는데 배경 설명이 좀 길어지고 있는데, 뭐 그리 급할 것도 없으니...될 수 있으면 주말 전에 다음편 마무리해서 올려보도록 하겠습니다. 1764년 조일 금제 공조체제 사건의 내용은 신동규 선생의 "근세 동아시아 속의 日.朝.蘭 국제관계사"(경인문화사, 2007)이 출전입니다.

이야기를 자르는 대신 보너스 트랙입니다.

이 이미지는 "A History of Christianity in Japan: Roman Catholic and Greek Orthodox missions(일본의 기독교 역사: 카톨릭과 그리스 정교)"(Otis Carry, 1909)라는 책에 실린 시마바라 난 당시 기독교 반란군들이 부르던 전쟁가 중 일부 전해져서 살아남은 부분입니다.
번역은 대충 다음과 같습니다: "화약과 총알이 남아있는 한, 진압군을 계속 쫓아나가 우리 앞에서 흩어지는 모래처럼 날려버릴것이다. 적군의 둔탁한 총 소리를 들어봐라: 돈! 돈! 우리의 무기는 회답을 보낸다 '천부 신의 축복으로 내 너의 머리를 날려버리리라!"

이 전투에서 살아남은 이는 없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것이 아마 19세기말까지 일본이 화승총을 전투에 사용한 마지막 시기라고 합니다. 그리고, 당시 VOC는 포르투갈에 대한 여러가지 복합적인 이유로 시마바라 난을 진압하는데 직접 전투함과 대포를 지원하였습니다. 종교적 신념과 국가체제. 그 둘이 맞붙으면 그야말로 "인간 존재의 바보성"이 여실없이 드러나는 것인가...하는 생각마저 든다고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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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함부르거 2013/03/28 14:17 # 답글

    현대에도 일본과 외교적으로 삐그덕거리는 시점에서도 공안 관련 부서끼리는 정보공유가 되기도 했었죠. 자위대와의 군사교류도 끊이지 않고 있구요. 물론 서로간의 자존심때문에 그리 편한 관계는 아닙니다만.

    한일관계란 게 옛날이나 지금이나 앞에선 툭탁거리면서도 뒷편으론 서로 도와주는 모습이 그리 변한 것 같지 않습니다. ^^
  • 迪倫 2013/03/30 10:20 #

    한일관계는 말씀대로 참 이해하기 어려운 관계 중의 하나입니다.정말 어려운 이웃이기도 하구요...한국만큼 일본을 잘아는 나라도 세계 속에 없고 그만큼 잘 모르는 나라도 없을 겁니다...

    그런데 실은 둘 사이가 떼어 생각할 수 없을 만큼 밀접한 관계이기도 합니다.그래서 더 어려운게 아닌가 싶습니다만... 
  • 빛의제일 2013/03/28 22:20 # 답글

    이렇게 엮이고 저렇게 엮이는 모습에, 다소 뜬끔없이 공각기동대의 '네트는 광대하다'가 떠올랐습니다. ^^;;
    광대하다기 보다 이어지고 얽힌 것 같습니다. 언제나 그렇듯이 다음편을 기대합니다.
  • 迪倫 2013/03/30 10:19 #

    흐음...이번 시리즈의 주제를 역시 바로 파악하셨군요. 이것은 이 글을 읽고 계신 빛의제일님도 실은 사용되고 있는거대한"메트릭스"입니다...음하하하..................는농담입니다. 처음엔 이런 연결관계에 대해 써보고 싶었는데 중간 중간 판이 튀는 느낌이 실은 있지만 모른척하고 밀어붙이고 있는 중입니다. 
  • 행인1 2013/03/28 22:34 # 답글

    1. 네덜란드야 프로테스탄트 공화국이었니 가톨린 교도들의 반란을 쓸어버리는 것을 원조하는데 일말의 주저함도 없었겠죠.

    2. 시마바라 난에 대한 서술이 독특(?)하군요. 예수가 물위를 걸었다라는 이야기와 기타 등등이 한데 뒤섞인듯 합니다.
  • 迪倫 2013/03/30 10:13 #

    1. 뭐 후미에도 별 문제 없이 200년간 해치우던 사람들인데요^^ 게다가 포르투갈-스페인은 원래 적이니 그들의 하수인인 일본인들쯤이야 뭐...
    2. 시마바라 난을 조금더 공부를 한 다음 이 전문을 다시 한번 분석해보려고 생각 중입니다. 바다 위로 말을 타고 우루루 몰려나갔다는 기록이 이곳 저곳 있는데 이것이 어떤 사건을 말하는지 어쩌면 찾을 것도 같습니다. 임수간의 정보는 내용은 따져보면 상당히 정확한데 이야기 자체는 상당히 판타지 스럽습니다.
  • 밥과술 2013/03/29 18:39 # 답글

    "남만(南蠻) 사람 미소종문(彌蘇宗門)이란 자가 맨 처음 장사치로서 장기(長崎)에 왔는데, 그가 요술을 잘하여 항상 사람들에게 말하기를, ‘네가 죽은 친속(親屬)을 보고 싶으냐?’고 하였다. 사람들이 만약 그렇게 해주기를 애걸하면, 과연 잠깐 사이에 죽은 사람이 나타나 드디어 서로가 붙들고 울면서 사생(死生)의 정(情)을 펴기를 생전과 같이 한다. 그리고는 손을 흔들어 가게 하면 다시 보이지 않는지라" ... 이대목이 정말 흥미롭군요. 어떤 요술을 부렸길래 이러한 풍문이 돌게 되었는지 궁금합니다. 근거가 전혀없는 것은 아닐 것이고, 우리나라 동자무당처럼 접신 빙의를 하여(또는 한것처럼) 사자의 목소리를 흉내내고 하는 것인가 궁금하기도 하구요.

    여튼 옛날 자료들을 요즈음 읽으면 참 재미있는 것이 많군요. 이래서 역사서가 잘못하면 헤어나지 못하는 허니트랩이 되는 걸 수도 있겠습니다~^^;;
  • 迪倫 2013/03/30 10:16 #

    여기 하니트랩 에 허우적대는 거미밥 있습니다! ㅋㅋ

    안그래도 말씀하신 부분 저도 굉장히 궁금하였습니다. 그래서 좀 짐작가는 내용이 있는데 아직 결정적인 자료를 못찾아 조금 더 찾아보고 있는 중입니다. 이게 의외로 아하! 스러울 수 있다고 생각이 들어서요. 이 시리즈와 별도로 이 부분은 따로 정리해보려고 합니다. 기대하셔도 좋을것같습니다라고 미리 큰소리부터 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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