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83년 9월 25일 (4) - 브로드웨이 뮤지컬!!! by 迪倫

1883년 9월 25일(3) 신세계의 마천루에서 이어서 씁니다. 마침내 9월 25일 일정의 마지막입니다.

1883년 9월 25일 오후 일정을 마치고 브로드웨이를 거슬러 올라 23가 메디슨 스퀘어 파크 옆의 호텔로 돌아온 보빙사 일행은 저녁의 일정을 소화하기 위해 다시 마차를 타고 브로드웨이를 따라 프린스 스트리트까지 내려갑니다.


A가 호텔이고 B가 지금의 목적지 브로드웨이와 프린스 스트리트의 코너에 있었던 니블로스 가든(Niblo's Garden)이라는 곳입니다.

자, 언젠가 한국의 뮤지컬 역사를 쓰게 된다면 1883년 9월 25일을 반드시 기억해주시면 좋겠습니다. 바로 이 날이 공식적인 기록상으로 한국인이 연극과 노래와 댄스가 어우러져서 무대에서 공연되는 뮤지컬이라는 장르의 공연에술을 처음 접한 날입니다.

보빙사 일행들도 전기나 기선이나 군함같은 근대 기물은 이미 전래된 책을 통해서 또는 청이나 일본을 통해서 대략 감을 잡았겠지만, 이런 서구의 흥행물은 아마 처음이었을 것입니다.

뉴욕 헤럴드나 뉴욕 타임즈같은 신문의 기사들은 대부분 그냥 저녁에 니블로스 가든에 갔다는 얘기만 전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역시 좀더 찾아보니, 뉴욕주 오번시에서 1879년부터 1885년까지 발행되었던 오번 뉴스 & 블리틴(Auburn New and Bulletin)의 9월 26일자 신문에서 이날 저녁 이곳에서의 보빙사 일행의 모습을 일종의 연예면처럼 스케치한 기사를 찾았습니다.
해당 부분을 잠시 번역합니다:
"코리언 사절단의 일행들은 ......어제 저녁 니블로스 가든의 박스석을 차지하여, 그곳에서 큰 대우를 받았다. 그들은 입장을 할때 청중들이 보낸 박수를 (자신들에게 보낸 것임을) 알아차리지 못하고 있었는데, 비서관(迪倫註: 서광범을 의미)만 그의 옷깃을 펄럭여서 청충들을크게 웃게 만들었다. 그는 흰 소매의 초록색 가운을 입고 녹색의 안경을 쓰고 있었다. 박스석의 금박과 흰색의 배경 속에서 그 의상은 금 색 테두리가 둘러진 학교의 지도같은 효과를 보였다. 그는 큰 오페라 글래스를 눈에 대고 5피트(약 1.5미터) 전방의 발레 걸들을 조심스레관찰하면서 즐거워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들은 댄스 장면에서 모두 진심으로 크게 웃었다. 그들은 특히 중국 의상을 입은 배우를 높이 치면서, 장면이 바뀌는 것을 확실히 즐거워하면서 그들의 언어로 열심히 토론했다"

항상 이들에 대한 묘사는 거의 감정을 표현하지 않는다고 했었는데, 크게 웃고 즐거워한 거의 유일한 기사입니다. (뭐 물론 연예면 특유의 과장이 좀 있다치더라도 말입니다)

이 공연이 정말 재미있었든지 이후 뉴욕 헤럴드지가 전반적인 보빙사 일행의 미국 소감을 정리해서 올린 10월 15일자 기사에서 민영익의 이 날 공연에 대한 코멘트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내(迪倫註: 민영익을 의미) 생각에는 조만간 '조선 드레스'도 무대 위에 중국 의상과 일본 의상 사이에 등장할 것입니다. 한복이 편리함보다는 보기에 좋은 옷이라서, 그곳이 그러기에 좋은 곳입니다" 라고 이날 보았던 공연에 아름다운 한복을 등장시키고 싶다는 의견을 피력하기도 했습니다.

자, 이제 본격적으로 迪倫의 해설을 시작합니다. 그럼 이날 갔던 니블로스 가든은 어떤 곳이고 이곳에서 무슨 공연을 본 것일까요?
Theatres -- U.S. -- N.Y. -- Ni... Digital ID: th-56970. New York Public Library
뉴욕 공공 도서관 소장의 1887년의 니블로스 가든의 입구 모습입니다.

이 니블로스 가든은 1823년 문을 연 극장으로 이후 이런 저런 연극과 유흥을 공연하다, 1866년 "블랙 크룩(Black Crook)"이라는 "최초의 뮤지컬" 작품을 공연하면서부터 전문 "뮤지컬 극장"으로 자리를 잡습니다. 아니, 전문 뮤지컬 극장정도가 아니라 "이런 종류의 공연의 탄생지'라는 설명이 뒤따르던 곳입니다.
그래서, 이후 미드타운이 개발되면서 점차 브로드웨이를 따라 흥행업소가 북상을 하여 1880년대에는 지금의 유니언 스퀘어 인근 즉 16가 근처가 연예계 중심지가 되었는데도 여전히 아래 쪽에서 일단 대표적 극장으로서의 지위를 굳건히 지키던 그런 장소입니다.(지금의 보통 뮤지컬하면 연상되는 브로드웨이 극장가는 브로드웨이와 42번가의 교차지점입니다. 이곳의 부상은 이전의 포스팅 "李箱을 기억하며 - 그가 꿈꿨던 뉴욕과 모더니티에 대한 斷想"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당연히 보빙사절같은 VIP 손님을 모시고 가는 곳이라면 니블로스 가든이었던 셈입니다.

1700여석 규모의 니블로스 가든 내부입니다. 아마 1층 옆의 박스석에 자리를 잡았던 것 같습니다.

이날 보빙사 일행이 관람한 작품은 "엑셀시오(Excelsior)"라는 작품입니다.
이 작품은 앞선 언급한 최초의 뮤지컬 블랙 크룩을 제작한 "키랄피 브로더스"의 작품입니다. 키랄피 형제들은 뭐랄까 19세기 초반의 천재적인 제작자들이었습니다. 1883년 8월부터 공연을 시작한 "엑셀시오" 역시 그런 그랜드 씬과 발레의 향연은 만들어진 적이 없다는 비평을 받았던 작품입니다. 이미 프랑스 파리의 에덴 극장에서 먼저 1년 가까이 공연을 하면서 인증을 받은 후 그 공연을 그대로 도입해서 공연을 시작했는데, 처음부터 끝까지 대사없이 L. 만조티씨의 음악곡으로 이루어진 작품입니다.

극의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막이 오르면 폐허가 된 도시, 어두운 전장터의 뒤로 검은 성벽이 보입니다. 패배한 전장터의 가운데로 여자 주인공 "광명(Light)"이 손이 사슬에 묶어 앉아있습니다. 그녀의 머리 위로 겅은 옷의 몬스터 "암흑(Darkness)"가 우뚝 쏫아있고 그녀의 가슴은 금색 독사가 칭칭 감고 있습니다. 의기양양한 다크니스가 라이트의 신세를 조롱하면서 우쭐대고 라이트의 그녀의 처지를 비관하는 판토마임 연기가 펼쳐집니다. 이때 갑자기 불빛이 내려오면서 저멀리 비추자, 이를 본 라이트는 벌떡 일어나 두손을 번쩍 들고, 사슬이 깨어져 바닥에 떨어집니다.

다크니스는 어두움 속으로 숨어들어가고 이때 갑자기 폐허의 도시가 순식간에 마술과도 같이 무대 및으로 가라앉습니다. 2장에서는 광명의 신전과 진보가 등장하는데, 신전은 밝은 색상의 구름 지붕 아래 다채로운 기둥의 배경으로 발고 호화로운 의상의 발레 걸들이 군무를 추며 무대위의 계단을 채웁니다. 계단의 꼭대기에는 아름다운 작은 소녀들이 춤을 춥니다. 이 때 검은 의상의 지니와 어둠의 작은 괴물들이 대조를 이루며 무대에 등장합니다. 그러자 "문명(Civilization)"양이 앞으로 등장합니다.

마지막에 문명양이 라이트의 손을 잡고 계단을 올라가 그녀를 왕좌에 앉힙니다.

2막에서는 수에즈 운하가 등장하고 인도 무희의 발레, 실물 크기에 비견할 마운트 시니스 터널들이 군무와 더불어 보여지다가,


클라이막스는 평화와 단합의 궁전에 라이트가 신으로 등극하는 장면으로 이어집니다. 이 궁전은 밝은 색상의 탑들 위로 만국의 상징들이 걸려있고, 천정에는 500개의 전구가 장치되어 있는 데, 그 아래로 각 나라의 의상을 입은 발레 무용수들이 행진하며 무대 위를 가득 메우면서 절정으로 치닿는데, 이때 갑자기 궁전의 뒤편이 서서히 가라앉으면서 거대한 지구를 드러냅니다. 이 지구의 북극의 왕좌에 아리따운 아가씨 "엑셀시오"가 있습니다. 그러자 갑자기 모든 조명이 빛을 발하면서 엄청난 전기조명이 무대를 가득 채웁니다.


어떻습니까? 이 극의 설명은 1883년 8월 22일 뉴욕 타임즈 비평란에 실린 내용을 제가 번역한 것입니다. 이미지들은 당시의 엑셀시오의 포스터들입니다.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기본적인 플롯은 문명의 힘으로 전 지구에 광명을 비춰 최고의 상태로 이끈다 입니다. (엑셀시오는 최상의 상태를 의미하는 단어입니다. 한편 뉴욕주를 스테이트 오브 엑셀시오라고 부르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이 뮤지컬의 중요한 포인트가 하나 더 있습니다. 바로 전기 조명입니다. 이 뮤지컬에는 기술 담당 합작이 한명 더 있었습니다. 바로 그 유명한 발명왕 토마스 알바 에디슨씨입니다. 에디슨 조명회사에서 이 전기장치를 제작하였을 뿐 아니라 에디슨씨가 직접 카랄피 형제와 합작으로 중요한 등장인물과도 같은 조명을 제공하였습니다. 엄청난 PPL입니다만 ^^

실은 뉴욕시에 거리 가로등이 가스에서 전기 가로등으로 처음 설치된 것이 불과 3년전 1880년입니다. 거리가 밝아지자, 실은 야간 통행이 좀더 자유로워지고 뮤지컬 같은 공연을 상연하는 극장들이 늦게까지 영업을 할 수 있게 되고 이를 바탕으로 새로 개발되던 미드타운으로 점점 올라가서 오늘날의 뉴욕 뮤지컬을 완성하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바로 이 태동기의 뉴욕 뮤지컬의 현장에 우리 보빙사 일행들이 눈으로 보고 우리 한복이 저 무대위에 곧 등장하게 될 것을 바라고 있습니다.

문득 리서치를 하다가 이 장면을 보면서 훗날 조선으로 돌아간 그 다음날 아침 함께 동행한 포크 소위에게 인사차 민영익이 찾아와서 "나는 암흑에서 태어나 광명의 세계로 나갔다가 다시 암흑으로 돌아온 것 같다"라는 말을 남겼는데, 이 말이 왜 나온 것인지 어렴풋이 짐작이 됩니다. 왜 전기에 그토록 다들 알고 싶어하고 갈망했는지 어쩌면 이해할 수 있을 것도 같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리하여 1883년 9월 25일 화요일 긴 긴 하루를 마치고 보빙사 일행은 다시 호텔로 돌아가 마감을 합니다.

다음 편에는 9월 26일 수요일로 이어집니다.

**"전기"는 실은 뉴욕 체류 동안 계속 화두가 되어 있습니다. 나중에 "전기"에 대해 종합 정리 편을 따로 올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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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까날 2012/05/21 10:46 # 답글

    전기에 대해 큰 감명을 받은 것에 이공연이 몫이 컸겠군요. 짐작이 갑니다. 경복궁에 처음 에디슨 전기회사의 전등을 설치한 것이 1887년이라고 하니, 전기 도입을 누가 추진했는지는 따로 자료를 찾아볼 필요도 없겠네요.
    원래 1884년에 도입을 결정했는데 갑신정변으로 도입이 늦어져 1887년에야 불을 켤수 있었다고 하니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경복궁에 전구가 들어온 이야기는 GE코리아 블로그에 잘 소개되어 있는데, 나름 공식 자료라고 할 수 있겠죠? http://geblog.kr/14

    그런데 딱히 노리고 만든 것은 아니겠지만, 엑셀리오라는 작품은 동쪽에서 온 사신들을 홀리기에 딱 좋은 내용를 갖고 있었군요.
  • 迪倫 2012/05/21 11:25 #

    군함보다도 전기에 더 몰입한 이유가 전기로 상징되는 문명에 도달하면 모든 것이 풀려나가리라 생각했던 것이겠지요.
    전기도입은 예, 바로 여기서 시작된 것입니다. 게다가 이전에 설명한 프레이저가 바로 에디슨 전기회사, 즉 지금의 GE와 협상을 한 에이전트입니다. 그러다 그 다음해 갑신정변으로 모든 발주를 중단한다는 통보를 받았으니 당시 조선에 있던 포크 소위를 동동거리며 괴롭혀서 포트소위가 이런 염치 제로 인간이 있나 하는 코멘트를 남겼다고 보는게 지금까지 제가 파악한 자초지종입니다. 물론 나중에 연결해주신 블로그처럼 전기가 순조롭게 도입되자 고종이 가선대부로 치하해주죠. 알고보면 결국 사람들이 하는일입니다. ^^

    엑셀시오는 아마 당시 보빙사절단에 적잖이 인상적인 이벤트였을 겁니다. 게다가 발레리나들의 댄스도 아마 여러가지 의미로 "쇼크"였지않을까 합니다만...^^
  • 빛의제일 2012/05/21 21:06 # 답글

    보빙사님들은 여배우들 옷에 좀 놀라셨을 것 같습니다. ^^a
    암흑-광명-암흑이 실감납니다. 그 당시 조선을 밝히고 싶었을 보빙사님들 마음이 느껴지다가도, 이후 어둠에 에휴 싶습니다.
    조선에 전기가 들어올 때 이야기라고는, '건달불' 이야기만 알았는데, 이렇게 그 이야기의 시작을 알게 되어, 배우는 즐거움을 느낍니다.
    언제나 그렇듯이 고맙습니다.
  • 迪倫 2012/05/22 11:24 #

    여배우 옷들에 좀 많이 놀랐겠죠 ㅋㅋㅋ
    이 엑셀시오에 대한 비평 중의 하나가 "무희 들의 다리"라고까지 되어있는 것을 봤거든요. 실제 '모던'의 중요한 요소가 바로 이 '여인의 다리'를 보여주는 것이었습니다. 레뷰쇼나 여성해방이나 모두 신체의 노출을 허용하도록 사회를 변화시키는 과정, 그게 모더니즘의 한 축인 것 아닌가 생각이 들정도입니다.

    전기는 실제 뉴욕에서 조차도 신기한 새로운 것이었다는게 반전인가죠 ^^

    재미있게 읽어주시는게 더 고맙습니다!!
  • 행인1 2012/05/21 22:56 # 답글

    그냥 뮤지컬이 아니라 당대 최첨단 기술이 접목된 나름 '블록버스터'였군요.(시사하는 바도 꽤 되고)
  • 迪倫 2012/05/22 11:25 #

    그렇죠. 그것도 토마스 에디슨이 직접 참여한 블록버스터였죠. 요즘으로 치면 뮤지컬 쇼에 빌게이츠가 직접 컴퓨터 시스템을 깔아주는 셈이랄까요^^
  • 리리안 2012/05/21 23:14 # 답글

    저도 보빙사 분들의 여배우 옷에 대한 평이 있다면 들어보고 싶네요. 과연 당시 조선 사람들은 그걸 보고 무슨 생각을 했을까요...
  • 迪倫 2012/05/22 11:26 #

    흐음....어려운 주문이시군요.... 여배우의 의상에 대한 평이라.... 여배우까지는 아니라도 이와 관련된 내용을 대신 정리해서 올리겠습니다. 조금 ㄱ다려봐 주시기 바랍니다..
  • 보현 2012/05/22 22:55 # 답글

    공연예술을 통해 국내외에 최첨단 문명기술인 전기를 과시하고 싶은 의기양양함이 느껴집니다. 당연히 자랑할 만하구요.
    거기다 여배우들의 현란한 의상과 발레까지... 민영익의 토로에서 보듯 보빙사 일행의 문화쇼크는 우리가 짐작하는 그 이상이지 싶습니다.

    오늘도 잘 읽고 갑니다.^^
  • 迪倫 2012/05/23 13:01 #

    뉴욕이 당시 후발주자인 대신에 런던이나 파리보다 신도시였으니 상대적으로 새로운 기술을 빨리 도입하고 있던 중이었습니다. 뭐 하긴 미국인의 속성 중의 하나가 구대륙으로부터 받는 조롱조차 칭찬으로 우걱 우걱 소화시켜버리는 점이기도 하니..^^
    "의기양양" 정말 적합한 표현입니다.

    그래서, 오늘 현란한 의상과 패션에 대해 글 올렸습니다. ^^
  • 밥과술 2012/05/29 01:48 # 답글

    오랫만에 덧글답니다. 저는 오늘 조금 다른 각도에서 이야기를 해보고자 합니다. 포스터를 보고 생각난 건데요. 자본주의가 가장 발달한 나라 미국에서 광고포스터에 대한 관심과 집착이 얼마나 대단했을까 짐작이 가지요.

    이럴때 프랑스에 체코에서온 한명의 천재화가가 깜짝 놀랄 재주를 선보입니다. 그의 이름은 알폰소 뮈샤(불어식)입니다. 체코어로는 무하, 영어로는 뮤샤라고 하지요. 그는 1985년 프랑스 파리의 프리마돈나 사라 베르나르의 등신대 포스터를 그리며 늦깍이로 그러나 화려하게 중원에 이름을 알립니다.

    아르데코의 대가로 그가 입신하는 날이 1985년 크리스마스라고 기억하고 있습니다. 역시 그의 그림은 미국사람들의 입맛에 딱맞아, 국으로 초청을 받아 극진한 대접과 좋은 보수를 받다가 돌아갑니다.

    그가 다녀간 이후 브로드웨이 뮤지컬의 포스터는 그의 영향을 적잖이 받았으리라 추측해 봅니다.

    좀 촌스러운 당시의 스터를 보며, 뮈샤 생각이 나서 몇자 적고 갑니다.
  • 迪倫 2012/05/29 10:49 #

    올려주신 말씀 보고 시어터 포스터에 대해 찾아보니 예술적 콜렉션의 시작이 투르주 로트렉과 말씀하신 알폰소 무샤로부터 시작되었다고 하고 있군요.

    시기적으로 보빙사 일행들이 관람한 1880년대는 유럽, 특히 프랑스의 공연극으로부터 조금 달라지기 시작한 독자적인 스타일인 미국의 브로드웨이 뮤지컬이 막 생겨나던 시기이고, 1890년대부터 1900년을 넘어 본격적으로 발달하면서 포스터 자체가 아트 콜렉션의 대상이 되었다고 하는 것 같습니다. 알폰소 무샤도 말씀해주신 1895년 전후에 각광을 받기 시작했다고 하니 아마 그의 영향이 크게 미쳤을 것 같습니다.

    포스팅에 사용한 포스터들은 아무래도 공연 내용을 프리뷰처럼 보여주고 (아직 칼라 사진이 덜 발달한 시기이니) 공연 관람을 호객행위에 더 중점을 둔 것이니 아무래도 예술적이진 않은 것 같습니다. 마치 우리 옛날 극장 간판그림 같다고 생각됩니다.

    덕분에 다른 포인트로 다시 한번 글을 읽었습니다. 이번 보빙사 시리즈는 단순히 보빙사들의 행적뿐 아니라 같이 그런 근대적 문물의 등장을 살펴보는 기회도 되는 것같아, 저 스스로도 다시 공부를 하고 있는 중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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