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세기 좋아하는 시조 한수 by 迪倫

西學, 北學, 그리고 倭學 (4)

老歌齋 김수장(1690~1770)이 영조 38년 1762년 편찬한 《해동가요》(海東歌謠)에 내가 좋아하는 시조 한 수가 있습니다.

폰트가 지원이 안되는 관계로 현대 표기로 옮겨 씁니다.


書房(서방)님 病(병) 들여 두고 쓸 것 업셔

鐘樓(종루) 져좨 달뢔 파라 봬 솨고 감 솨고 榴子(유자) 솨고 石榴(석류) 솻다

아촤촤촤 이저고 五花糖(오화당)을 니저발여고놘

水朴(수박)에 술 꼬좌 노코 한숨계워 화노라
.

**무리인줄 알지만 일단 아래아를 'ㅘ'로 옮겼고, 'ㅅㄷ'은 'ㄸ'으로 옮겼습니다. 양해바랍니다.




대신 인터넷에서 찾은 이미지 파일로 원문의 모양을 보시기 바랍니다.


제가 기존의 해석을 약간 표현만 바꿔 대충 한 해석은 다음과 같습니다:

서방님 병에 들어 뭐 드릴게 없어
종로 시장에 머리카락 팔아 배사고, 감사고, 유자 사고, 석류도 샀는데,
아차차차 잊었네 오화당(오색사탕)을 잊어버렸구나.
수박에 숟가락 꽂아두고 한숨만 푹푹 쉬고있다네...

도학적 조선따위는 나는 잘 몰라요 하는 느낌입니다...해동가요가 1762년 편찬되었으니 적어도 18세기 전반부에 한양에서 불리던 사설시조 노래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인간의 향이 물씬 나서 참 좋아하는 노래입니다. 특히 "아차차차" 부분이 너무 좋습니다, 직접 시조창으로 이부분을 들어보면 정말 좋을텐데요...

게다가...흠...18세기 종로 시장에 나가면 배, 감, 유자, 석류에 오화당도 살 수가 있었다는 거죠.
오화당은 시조 해설들을 보면 대부분 오색 사탕이라고 설명을 하고 있는데, 제가 이전에 왜관에서 제공한 음식 상차림에서 한번 언급한 적이 있는 아이템입니다. (18세기 동아시아 크로스보더 파티장 上)

다시로 가즈이(田代和生)의 글 왜관에서도 언급을 하고 있는데, 조선에는 사탕(지금의 설탕)은 남방산이라 귀중품이고, 맛을 본 조선인들은 "誠に風味がろしい(정말로 맛있다)"라던지, "氷砂糖・五花糖(こんぺいとう)は別品(빙사탕, 오화당은 별품이네)"라고 한다며, 아사이 요자에몬(浅井與左衛門)의 재판기록(裁判記録)에 알려진 과자류의 기록 중에서 오화당, 즉 곤베토가 가장 베스트 아이템으로 전하고 있습니다.

김수장은 병조의 서리였습니다. 요즘의 평은 당시 병조의 아전이라면 '유불렴분경지폐(有不廉紛競之弊)'라고 꽤 오명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김수장의 시조에서 가난이나 청빈을 노래하는 것은 레토릭에 불과하다는 평도 있습니다. 이 시조도 가난한 아내가 병든 서방님을 위한 슬픈 노래가 아니라 라는 것이죠.

솔직히 18세기 에도 조닌문화인가 하고 착각이 들 정도입니다. 사대부니 도학이니 다버리고 들여다보면 문득 무릎을 탁 치며 재미있습니다.


**며칠 전 신문을 읽다 욱하고 쓴 글은 하루만에 내렸습니다. 제 글 자체에도 내눈의 들보는 안보였달지 오류가 많고 역시 누군가의 오류를 공개적으로 지적하는 글은 조중동이라도 마음이 편치않네요. 덧글로 지적말씀 남겨주셨던 분들께 양해 부탁드립니다.

**안영길 선생의 "조선 위항인의 문학과 풍류"(북코리아, 2008), 그리고, 강명관 선생의 "조선후기 여항문학 연구"(창작과비평사, 1997) 추천합니다. 오화당 애기는 물론 없습니다만...

**한참 소강상태에 있습니다. 두프 이야기도 점점 뒤로 미뤄지고. 양해 바랍니다.



덧글

  • 에로거북이 2011/04/11 10:49 # 답글

    정말 재미있습니다. ^^ 잘 읽고 갑니다.

    병(病) 이란 게 예나 지금이나 무서운 것 입니다. 저렇게 총명하고 애교 넘치는 안해를 두고 젊은 서방은 어떻게 되었을련지 ... 그러나 이것은 일개인의 비극이지만 수백년 세월이 흐르니 비극 자체도 한 편의 문화가 되는 것 같습니다.
  • 迪倫 2011/04/11 10:59 #

    초특급 덧글 감사합니다.^^

    그런데, 전문가가 보시기에 서방님 큰병 아닌것 같지않나요? 병들었다고 프루츠 칵테일을 해다줘야징 하는게 아무래도 ^^. 애교에 더 가까워서 상당히 유쾌한 노래입니다. 하하.
  • 에로거북이 2011/04/11 13:20 #

    흠.. 제 느낌을 말씀드리자면, 가벼운 병은 아닌 것 같습니다.
    노체(癆瘵) , 요즘 병원에 가면 폐결핵 이라고 진단 받을 병, 허약하게 태어난 주제에 젊은 나이에 주색이 과 해서 생긴 병, 제 죽을 길인 지 모르고 밤마다 욕심이 동해서 부인을 건드리는 병 그병인 것 같다는 느낌입니다.
    부인의 시조가 재미있기도 하지만 한 편 으론 색욕에 물든 광기 같은 것도 느껴진다고 할까요. 부부간에 주고 받는 것입니다.

    뭐 만고 제 느낌입니다. ㅎㅎ
  • 迪倫 2011/04/12 08:53 #

    호오,부부간의 일은 어찌 알 수 있겠냐마는.... 역시 전문가의 일람인지라 달리 반론을 펼 수가 없습니다^^ ㅋㅋㅋ

  • 네비아찌 2011/04/11 18:08 # 답글

    일단 저자에 가서 각종 과일을 사들이고, 일본 수입품까지 알고 있는걸 보니 절대 빈곤층이 부를 노랜 아니죠^^
  • 迪倫 2011/04/12 08:58 #

    그래서, 이 당시 특히 여항인들 - 역관, 의관, 하급관리의 중인-이 남긴 시나 시조에 청빈이나 가난함을 노래한 것은 대부분 레토릭이라고 하더군요. 실은 계급사회에서 양반이 될 수 없으니 부를 축재하고 대신 노는데 끝까지 가보자랄지 그런 양상을 보인다더군요.

    게다가 왜과자가 중인들도 버젓이 저자에 나가 살 수 있는 정도의 물류도 활발해지고, 이때가 바로 한양에서 다들 모여서 승기약탕 즉 스기야키를 끓여먹던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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