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93년 데지마에서 보고한 규슈 시마바라의 지진과 쓰나미... by 迪倫

**한참만입니다. 뭐 개인적으로 이런 저런 일들도 있고, 잠시 이런 저런 온라인 소셜 네트워크의 실험에 기웃거려보고 있는 중입니다.
그새 지구 상에는 여러가지 일들이 일어나고 특히 일본의 동북대지진의 여파는 아직 마무리되지않고 현재진행형입니다. 게다가 기름을 부은 교과서 파동이랄지....그런가하면 외부에서 한국사회를 보는 입장에서는 한국 사회가 오히려 상당히 성숙하게 일본 시스템의 본질을 잘 파악하고 대인배가 되어가는 느낌마져 듭니다. 부디 한국 사회의 질적 업그레이드가 20세기를 뛰어넘어 가주길 바라는 마음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잠시 그동안 난학과 VOC에 집중해서 살펴보다가 발견한 18세기 일본의 대지진 및 쓰나미에 대한 나가사키 데지마의 상관장의 보고서를 한번 살펴보는 것도 흥미있는 일이 아닐까 해서 대충 정리해서 올립니다. 그럭저럭 난학 잡담도 10편째 접어드네요. 그동안 흥미있는 내용들이 전해졌었기를 바랍니다. 아무튼 이글루의 블로깅은 현재 여러가지 방향으로 고려 중에 있습니다. 소식이 뜸한 것 양해바랍니다.

蘭学雜談 (10)
島原大変、肥後迷惑


헨드릭 두프가 상관장으로 나가사키 데지마에 오기 대략 20년 전 1779년 11월 이삭 티칭(Isaac Titsingh, 1745-1812)이 상관장으로 데지마에 처음 부임을 하였습니다. 이때는 이전에 설명한 것처럼 상관장의 임기가 1-2년으로 제한되어있어서 티칭은 1년 하고 교대하고 다시 바타비아로 갔다가 1년 뒤 다시 오고 하는 방식으로 1779년부터 1784년까지 3번의 상관장을 역임하였습니다. 당시로는 일본통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1784년에는 인디아 캘커타 인근의 VOC 기지였던 친수라로, 다시 바타비아로, 그리고, 1794년에는 중국 청조에 건륭제 생일 축하 공식 대사직을 수행했습니다. 영국의 매카트니경이 바로 전해 중국을 다녀가면서 상당히 부정적 인상을 남긴데 비해, 역시 동아시아통답게 상당히 칭송을 받았다는 후문이 있습니다.


동인도에서의 복무를 모두 마치고 본국으로 돌아간 후 일련의 일본에 관한 책을 저술하였던 티칭은 1820년 " Mémoires et anecdotes sur la dynastie régnante des djogouns, souverains du Japon"(일본의 군주, 쇼군의 통치왕조에 대한 회고와 일화) 라는 책을 출판하여 에도 후기 일본의 사정을 당시로서는 믿기어려울 정도로 정확히 서유럽에 알려줍니다. 이 책은 이후 한참동안 일본에 대한 정통한 안내서로 영어, 네덜란드어로 이후 번역소개되었습니다.

이 책의 내용 중에 그런데 1793년 나가사키 인근의 시마바라-히고(島原 - 肥後)지역의 화산, 지진, 쓰나미가 상세히 기록되어있습니다. 혹자는 유럽에 알려진 일본의 자연재해에 대한 가장 초기의 기록이라고도 합니다. 이 지진사태는 실은 티칭이 일본에서 직접 겪은 내용은 아닙니다. 1793년 당시 티칭은 이미 바타비아에 주재하고 있었을 때이고, 그가 같은 책에 기록한 1783년 일본 혼슈의 아사마 야마의 화산과 화재 사건과는 달리 데지마에서 보내온 리포트를 전한 것으로 보입니다.

한가지 문제는 이 티칭의 기록과 또 일본 아지아 협회(Asiatic Society of Japan)의 1878년 기록 "Notes on some of Some of Volcanic mountains in Japan"에 실린 기록에는 이 시마바라의 대재난이 1793년 간세이(寛政) 5년으로 되어있습니다만, 대부분의 일본측 정보에는 한 해 앞의 1792년 간세이 4년으로 동일한 사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1792년과 1793년 동일한 규모의 대재난이 연달아 일어난 것은 아닌것 같은데, 어느쪽이 정확한지를 솔직히 잘모르겠습니다. 제가 1793년으로 찾은 것은 모두 19세기 기록들이니 아마 현대의 학자들이 말하는 연대가 더 정확하지 싶습니다. 이점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이 대 재난은 일반적으로 일본에서 「島原大変、肥後迷惑」(시마바라 다이헨, 히고메이와쿠) 라고 부르는 역사상의 대 재난 중의 하나입니다. 티칭의 기록을 잠시 살펴봅니다. 1793년 1월 운젠타케(雲仙岳)가 가라앉습니다. 2월 연달아 비보노쿠비(Bivo-no-koubi라고 적혀있는데 정확히 현재 어디를 말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이 글을 올린 후 이웃의 耿君님의 추가정보로 아마 인근의 "비와노쿠비[琵琶の首]"를 의미하는 것 같습니다. 감사!)가 화산폭발을 합니다. 3월에는 대지진이 시마바라일대 아니 규슈 전역을 뒤흔듭니다. 그리고, 다시 4월 1일 정오 점심을 먹으려는 동안 땅이 심하게 흔들리며 미이야마가 다시 화산 분출을 합니다. 이때를 "les cris des hommes et des animaux ajoutaient a l'horreur de la catastrophe"(사람들과 짐승들의 울부짖음이 대재난의 무서움에 더해졌다)라고 기록을 전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화산의 용암이 바다로 흘러들어가며 뒤이어 발생한 쓰나미가 시마바라에서 출발 만을 건너 히고(肥後) 해안을 강타한고, 다시 이 히고를 강타한 쓰나미가 뒤돌아와서 사마바라를 다시 재강타합니다. 시마바라의 성은 간신히 견뎌냈지만, 인근의 마을은 이중 쓰나미에 완전히 사라져버리고 맙니다. 인명피해는 무려 53,000명을 넘었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이 대재난이 야기한 참사는 차마 묘사를 할 수 없다고 기록을 마무리하고 있습니다.

책 속에 수록된 그림"시마바라 지방의 지진, 화산폭발 및 범람"입니다. 제가 가진 책의 영인본의 이미지 상태가 좋지않아 텍사스대학 지도 아카이브에서 퍼왔습니다. 클릭하면 자세히 볼 수 있는데, 가운데 흰색 1번으로 표시된 것이 시마바라 성입니다.

A로 표시된 부분이 처음 폭발한 운젠타케입니다. 쓰나미는 빨간 화살표처럼 건너편의 히고지방으로 몰려갔다 다시 되돌아오면서 시마바라를 초토화 시켰습니다. 바로 왼쪽의 나가사키의 데지마 요원들도 이 동안 역시 크게 이 지진과 재난을 경험했다고 합니다.

일본의 자연재해에 대한 기록은 이렇게 외부세계로 처음 전해졌습니다. 세계가 감탄한 일본인들의 침착함은 오랜 기간 이런 역경을 이겨내면서 끊임없이 훈련과 준비를 한 것으로 봐야겠지요. 이런 경험은 솔직히 그냥 배워서 실감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일본인들이 이 자연재해의 참사를 어서 잘 이겨냈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그리고, 저는 개인적으로 이 와중에 의연하고 인도적인 한국인의 모습을 볼 수 있어서 참 좋았습니다. 물론 바로 이어지는 교과서 문제만 보더라도 일본과의 관계란 발목잡고 잡히는 오랜 애증이 이리 쉽게 극복되지않습니다. 실제 바로 전의 대지진이랄 관동대지진만 해도 한국사람들에게는 참으로 착찹한 심정을 불러일으키는 사건이었습니다. 아니 실은 가장 우호적이었던 18세기조차도 상호 눈가리고 아웅과 외교적 수사와 이면의 뒷통수 때리기로 아슬아슬하게 유지되었던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나 불과 관동대지진으로부터 100년도 되지않아 한국과 일본의 관계가 요만큼은 진전했습니다. 이번 포스팅은 말그대로 VOC에 관련된 잡담입니다. 일본이 어서 상처를 회복하고 한일관계 역시 아직도 20세기에 사로잡힌 세력들을 넘어서 조금이나마 진정성이 전해지게 되기를 바랍니다.

**일본 아지아협회는 메이지유신 5년 뒤인 1872년 요코하마의 서양인들이 일본을 좀더 이해하기 위해 조직한 단체입니다. 지금도 활발히 유지되고 있으며 초창기부터 발표된 일본관련 자료들이 출판되어 있습니다. 제가 티칭의 사료와 관련해서 참고한 자료는 1888년 편집출판된 Transaction, volume 6 에 포함된 기사입니다. 티칭의 책과 이 책 둘다 구글북에서 무료로 제공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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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헤르모드 2011/04/03 14:19 # 답글

    참으로 시의적절한 포스트를 잘 읽었습니다. 말씀하신 사항은 모두 처음 들었습니다^^;
  • 迪倫 2011/04/04 10:02 #

    시의적절하다고 평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에도 일본에 대한 서구(네덜란드나 포르투갈, 영국)의 기록들이 의외로 흥미있는 내용들이 많이 숨어있는 것 같습니다. 위에 소개한 책 둘다 구글북에서 (무료로) 구매하실 수 있습니다. (한국에서는 어떤지 잘모르겠습니다만...요즘 온라인 아카이브가 온통 시간을 다 뺏어가고 있는 중입니다...)
  • 耿君 2011/04/03 20:59 # 답글

    1792년 무렵 운젠 후겐다케[雲仙普賢岳] 북동부 지역에 있는 비와노쿠비[琵琶の首]라는 지역에 용암류가 흘렀다고 합니다. (http://www.pmiyazaki.com/kyusyu/nagasaki_unzen 참조)

    Bivo-no-koubi는 바로 비와노쿠비를 가리키는 듯 합니다.
  • 迪倫 2011/04/04 10:03 #

    오, 정말 그런것 같습니다. 위의 본문에 다시 업데이트를 했습니다. 알려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하지만 여기서도 연대가 일년 차이가 나는것은 왜인지 궁금합니다. 실은 이전에 다른 VOC 기록도 현대 기록과 1년 차이가 나는 것을 본적이 있어서, 솔직히 왜인지 찾아보고 싶은 생각입니다.
  • 耿君 2011/04/04 10:14 #

    연호가 붙은 음력 연월일을 양력으로 치환하는 과정의 오류일 것으로 추정해봅니다.
  • 迪倫 2011/04/04 10:22 #

    그런데, 티칭은 분명히 la 5e annee Kouan-sei (l'an 1793) 즉 간세이 제5년 1793년이라고 분명히 적고 있으니 상당히 의아합니다. 아마 당시 달력에 대해 좀더 조사해볼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이전의 상관장 두프의 회고록에서도 이런 연대 차이가 나오던데...말씀하신대로 음력 달력과 당시 적용되던 서력 달력에서의 오류일지도 모르겠습니다...
  • 들꽃향기 2011/04/03 23:32 # 답글

    1. "실은 가장 우호적이었던 18세기조차도 상호 눈가리고 아웅과 외교적 수사와 이면의 뒷통수 때리기로 아슬아슬하게 유지되었던 것도 사실입니다."

    -> 아....진실로 공감하는 한마디입니다. (...) 서로는 선린이라 하지만 자국 국민들에게는 조공관계 혹은 우세적인 교린관계라고 선전하는 양상을 보면 (...)


    2. 그 시대에 무려 5만여명이 넘는 사상자가 났다니 상상조차 하기 힘들군요;;;


    3. 지금은 사실 국내에서도 교과서 파동 때문에 이럴거 왜 도와준다고 그랬냐 하는 식의 얘기도 나오긴 하지만, 지적해주신대로 일단 원조의 목소리가 나온 것 자체가 한국사회의 진전이요 발전이라는 점에 진실로 공감합니다.
  • 迪倫 2011/04/04 10:13 #

    공감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렇죠, 그래도 18세기가 조일관계가 아마 백제-야마토 이후 최고로 평화로웠을 때가 아닌가 싶은데, 그때도 지금 다시 들여다보면 지금의 이런 딜레마와 그리 다르지않아 보입니다....

    5만3천명은 일단 티칭의 기록에 실려있는 규모입니다. 아마 데지마에서 나가사키 부교를 통해 수집한 정보일텐데, 피해가 엄청나죠...실은 인근 마을이 모두 없어졌다고 하더군요.. 자연앞의 사람이란 참으로 덧없습니다.
  • 함부르거 2011/04/04 11:02 # 답글

    화산 폭발에다 반사 쓰나미까지... 이건 뭐 지옥이 따로 없군요.

    그건 그렇고 저 시마바라가 시마바라의 난의 그 시마바라 맞나요? 여러가지로 기구한 사연의 땅이군요...
  • 迪倫 2011/04/04 12:24 #

    예, 제가 알기로도 그 시마바라가 맞습니다. 이 지진-화산-쓰나미 재난은 일본 역사상 대재난 리스트에 들어가는 정도로 컸다고 하더군요. 만을 서로 마주보고 쓰나미가 왔다갔다...생각만 해도 끔찍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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