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기 한양에서 읽어보는 아담과 이브 by 迪倫

西學, 北學, 그리고 倭學 (2)

지난번 19세기 한양에서 접하는 알파벳에 이어서, 오주 이규경 (五洲 李圭景, 1788-1856)의 오주연문장전산고(五洲衍文長箋散稿)가 전해주는 기기도설(寄器圖說)을 좀더 읽어봅시다.

먼저 기기도설의 원제목은 《遠西奇器圖說錄最》로 1627년 처음 발간되었습니다.
지은이는 등옥함(鄧玉函, 1576-1630)과 왕징(王徵, 1571-1644)으로 알려져있습니다. 원래의 출판은 1627년 명나라 천계7년 (인조5년) 때이지만 1830년 청 도광10년 (순조30년)에 다시 판각되어 재출판되었습니다. 당연히 한양의 정조와 정약용, 북학파들이 보았던 판본은 1830년 판본 이전의 명대 판본일 것입니다.

참, 아시는 분들은 다 아시겠지만 이규경은 규장각 검서관이었던 청장관 이덕무의 손자입니다. 그럭저럭 환재 박규수보다 대략 19살 정도 연배로 북학파와 개화파를 이어주는 고리에 해당하는 인물들 중의 하나라고 할까요. 아무튼 북학계에서 바라보는 서학계라고 이름붙여 볼만한가 싶기도 합니다.

**첫부분 고전번역원의 한글번역, 한문 원문, 고전번역원의 한글본 및 원문의 해당되는 주석, 그런 다음 제가 그 내용들에 대해 다시 주를 달아서 읽어보겠습니다. [주D-001]과 같이 표시된 것은 고전번역원의 한글본 주석이고 [편-001]과 같이 표시된 것은 고전번역원의 한문본 주석입니다. 제가 덧붙이는 것은 [迪倫校勘] 또는 [迪倫註]로 표시를 붙입니다.

출전:
분류 오주연문장전산고 經史篇 3 - 釋典類 3
斥邪敎辨證說(사교 (邪敎)의 배척에 관한 변증설, 고전간행회본 권 53)


《기기도설 (奇器圖說)》. 서양 사람 등옥함 (鄧玉函[주D-030])이 저술한 것이다. 열이마니아(熱而瑪尼亞[주D-031]) 사람으로 만력 (萬曆) 연간에 중국에 도착하여 《기기도설》을 지었다.이 책에 이르기를 “인류의 시조는 아당 (亞當)이다. 조물주 (造物主)가 천지를 만들고는 즉시 최초의 인류를 만들어 아당이란 이름을 붙이고 액말 (厄襪)이라 이름한 그의 아내와 함께 땅위의 살기 좋은 곳에 두었다.그 초기에 사람은 질병도 없고 늙거나 죽는 일도 없었다. 사람이 힘을 들이지 않아도 오곡과 과목(果木)들이 모두 땅위에 저절로 나고 자랐으며 그 가운데 일체의 새와 짐승들도 사람의 부림을 받았고 해독은 없었다.그러던 것이 아당 (亞堂)과 액말 (厄襪)이 천주의 명령을 따르지 않고 계율을 어겨 죄를 얻은 이후로 오곡은 잘 나지 않고 새와 짐승들도 독이 있게 되었다. 굶주림과 추위가 있고 병과 죽음이 있게 되었으며 남자는 농사 짓는 고통을 받게 되고, 여자는 아이를 낳고 기르는 고통을 벌로 받게 되었다.이에 아당은 처음으로 농구 (農具) 등의 기구를 만들어 스스로 의식을 구하게 되었다. 그러므로 기구의 이용은 모두 인류의 시조인 아당이 만든 것으로서 대개 아당이 하늘의 뜻을 받들어 법도를 세웠는데, 반은 사람의 힘으로 반은 하늘의 힘으로 만들어 낸 것들이다.” 하였다.。)

《奇器圖》。西洋鄧玉函。熱而瑪尼亞人。萬曆間至。著《奇器圖說》。其說曰。人之始祖亞當。而造物主造有天地[편016]。卽造有人之始祖。名亞當者。與其妻名厄襪者。置之地堂良和之處。其初。人無疾病。亦無老死。五穀果木等類。皆大地自然生成。不勞人力。其中一切鳥獸。聽命於人。無有毒害。自亞當與厄襪不遵主命。犯誡得罪以後。遂爾五穀難生。鳥獸毒害。有饑有寒。有病有死。男子則罰其耕田勞苦。女子則罰其生育艱辛。於是。亞當始作耕田等器。自求衣食。故器用皆以始祖創制。蓋以繼天而立極。半從人力。半從天巧而得之者也。
[주D-030]등옥함 (鄧玉函) : 명 (明) 나라 때 중국에 들어온 서양인 테렌츠 (J. Terrenz)의 한자 사음 (寫音). 천문과 역산에 밝았다. 저서에 《신법산서 (新法算書)》ㆍ《기기도설 (奇器圖說)》 등이 있다.
[주D-031]열이마니아 (熱而瑪尼亞) : 국명. 로우마니아 (Roumania)의 한자 사음. 현재의 루마니아 (Rumania)를 이른다. 나마니아 (羅馬尼亞).
[편-016]造物主造有天地 : 『造物主造有天地』부터 『半從天巧而得之者也』까지는 鄧玉函 撰 《遠西奇器圖說 卷1•力藝》에 보인다.

[迪倫註]
파란색으로 처리한 부분이 이규경이 오주연문장전산고에 Ctrl + C/V한 기기도설의 내용입니다.

등옥함은 일반적으로 검색을 하면 스위스 출신의 중국 예수회 선교사 J. 테렌츠라고 알려져있습니다. 출신지에 대한 논란이 실은 오래되었는데, 최근의 연구결과에 의하면 스위스와는 무관한 남부 독일 바덴-뷔어템부르크주의 지크마링엔(Sigmaringen) 출신으로 프라이부르크 대학을 다닌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게다가 갈릴레오와도 친분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리고, 한국 자료들에 J. 테렌츠라고 되어있는 것은 실은 부정확한 이름입니다. 원래 본명은 Johannes Schreck이고 이후 라틴어식 이름 Terrenz 또는 Terrentius Constantiensis 라고 불린 것입니다. 정식으로 하자면 Johannes "Terenntius Constantiensis" Schreck 입니다. 그러고 보니, 성이 슈렉이군요 ^^ 한편 세례명이 필리페였던 왕징은 내용의 저자라기보다 도판과 편집을 맡은 보조역이라고 보는 것이 더 정확합니다. (등옥함에 대한 독일어로 된 자세한 정보는 여기 클릭)

열이마니아(熱而瑪尼亞)가 고전번역원의 주석으로는 여기도 루마니아로 되어있군요. 루마니아라는 국호는 19세기 후반에 처음 정식 국명이 되었습니다. 게다가 종교도 루마니아 정교회입니다. 이는 마치 새로운 것을 옛것에 끼워맞춘 것이라고 해야할 정도입니다.
차라리 열이마니아를 로마로 보고 이를 신성로마제국으로 해석한 게 오히려 합리적입니다. 물론 신성로마제국의 라틴어명은 Sacrum Romanum Imperium인 것을 보면 로마눔을 로마니아라고 하는 것도 문법적으로 가능하지않은 추정이긴 합니다만. 저는 이를 라틴어 alamanni에서 파생된 라틴어계의 독일을 의미하는 allemagne, alemanha, alemania로 보는 것이 더 정확하다고 생각합니다. 이에 대해서는 이전의 글"合勒未祭亞省考 - 19세기 시사상식에 도전해보자!"를 참고하세요.
중국어 발음은 /re er ma ni ya/ (러얼마니야)로 음이 구성되는데 종종 L이나 M앞에서 글자 초성인 모음 a가 탈락하는 현상으로 보는 것이 더 타당하지 않을가 합니다. (america -> 美利堅/mei li jian/)

아담을 음사한 아당(亞當)은 그리 어렵지 않지만 "액말(厄襪)"은 이브로 보이기는 합니다만, 약간 어색합니다. 하지만 이브를 나타낸다는 액말은 조금 더 설명을 덧붙이자면 라틴어 EVA의 음사입니다. 액말의 중국어음은 /ewa/입니다. 오주연장문장산고에는 다른 자료인 제경경물략에 등장하는 아담과 이브 얘기가 또 나오는데, 여기에서는 아말 (阿襪)로 표기하고 있습니다만, 아말 역시 발음은 /ewa/입니다. /v/발음이 중국어에서 대부분 /w/로 전이되는 것을 감안하면 두 표기가 실은 같은 발음의 음사로 볼 수 있습니다. 다만 액말이 왠지 좀더 부정적인 뉘앙스가 들어가 있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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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주연문장전산고를 읽지않았으면 기기도설에 아담과 이브의 얘기가 실려있을 줄을 몰랐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책을 정약용에게 내렸던 정조도 아담과 이브의 얘기를 알고 있었겠군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전통적 복희와 여와 전설이 창세의 초기설정으로 되어있던 동아시아인들에게 어떻게 받아들여졌을지 상당히 궁금합니다.

특히 기기도설이라는 책 자체가 단순히 서양기술의 소개가 아니라 이 단락이 설명하듯이 인간이 왜 기구를 만들면서 살게 되었는지 그 연원을 이렇게 유대기독교적 사유체계 내에서 펼쳐나가는 것이라는 점을 유심히 볼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다시 이 글을 살펴보면 원죄를 저지름으로써 인간이 자연으로부터 분리되고 생존해나가기 위해서 도구 즉 문명을 만들어야 하는 상황이 전개되었다는 것입니다.
특히 마지막의 半從人力。半從天巧而得之者也는 인간이 성취한 것이 반은 된다는 인문주의적인 생각 혹시 근대적 의식이라고까지 확장할 수 있는 명제에 유의해주십시오. 실은 이 부분이 18세기 19세기의 로마카톨릭의 공식적인 입장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정반대로 프로테스탄트의 이신칭의론(以信稱義論 )에 대비한 카톨릭적 성화화 즉 sanctification으로 까지 확대해석이 가능한 부분이기도 합니다. 그렇게보면 이 마지막 명제는 근대적 자각이라고 해야할지 오히려 교회의 권한을 더 확장해주는 카운터 레포메이션이라고 해야할지 정반대의 결론을 내릴 수도 있습니다.

문외한인 신학적 해석은 여기에서 중지하고 대신 동도서기나 중체서용이 왜 한계에 부닥칠 수 밖에 없는지를 잘 이해시켜 주는 부분이라는 생각은 듭니다. 즉 서구문명의 물질적 요소라는 것이 서구 사유체계의 산물이고, 도와 기를 잘라서 구분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게보면 한때나마 서학에 경도되었던 정약용은 거중기라는 구체적 기구를 만들 수 있었지만 북학파에서는 한발 나가기 어려웠던 한계를 보이는 근본적인 이유가 어쩌면 이런 측면에 있을지도 모릅니다. 우리가 단지 동아시아 근세에 서구문명의 선별적으로 기술적인 부분만을 받아들이려는 움직임으로만 알고 있던 기기도설조차도 실은 서구 문명의 사유체계 연속선 상에서 나온 것이란 사실을 직시하고 근세사를 보면 새삼스런 장면들이 눈에 보입니다. 동아시아에서 근대화 즉 서구화가 가장 빨리 적극적으로 진행된 일본의 경우 정작 서구적 사유체계의 핵심인 기리시탄은 중국 조선과 비교도 안될만큼 엄격하게 통제 압살하였습니다. 문득 그러고 보면 일본의 근대화가 근대성의 달성이라는 측면에서 미흡함을 계속 지적당하는 것은 단순히 2차대전의 주축국이라던지 침략의 괴수여서가 아니라, 실은 근대화를 위해 그 외부에서 수용한 문명의 사유체계를 정작 누락한데서가 아닌가 하고 생각해봅니다. 그런데 이렇게 얘기가 돌아가다보니 어쩐지 마루야마 선생의 손안에서 그리 멀리 가지못한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것은 왜일까요…

**지난글들에 읽고 덧글 달아주셨던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생활이 바빠 아예 답도 못해드렸는데, 우선 이 글부터 올려봅니다. 대신 주말 경에 다시 시간 내서 답글을 달겠습니다. 양해 바랍니다.

**실은 오주연문장전산고에서 서학관련된 부분들이 의외로 상당히 재미있는 내용들이 있습니다. 몇몇 서양 고유명사들의 해석이 정확하지않거나 누락된 것들도 있고 한번 시간 내서 19세기 조선인들이 알고있었던 성경 얘기를 한번 해볼까 합니다만...

**기기도설에 관심이 있으신 분들께 서비스입니다. ECHO(European Cultural Heritage Online)에서 제공하는 전체 내용의 영인본과 텍스트를 볼 수 있는 온라인 아카이브 정보입니다: (http://echo.mpiwg-berlin.mpg.de/ECHOdocuView?url=/mpiwg/online/permanent/archimedes/schre_qiqit_X03_zh_1627 여기 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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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Jes 2011/02/25 14:24 # 답글

    으하, 이거 재밌네요, 아당과 액말이라... 사실 저런 건 중국어 발음으로 읽어봐야 하지 않을까요?
  • 迪倫 2011/02/26 12:25 #

    재미있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조선시대의 이런 대외인식에 관한 글들에 보면 중국이나 일본에서 자기들의 한자발음으로 적어둔 것을 다시 조선식 한자음으로 읽으니 점점 원래 뭐였는지 어려워지는 것들이 좀 자주 보입니다. 아당 정도는 그나마 쉽지만 액말은 좀 알기 어렵죠. 일단 그래서 위의 제가 찾아 추정한 내용들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
  • 행인1 2011/02/25 18:24 # 답글

    아담이 기구를 만들어 농사를 지은 시조라는 하는 대목은 왠지 중국 전설의 신농씨를 연상케 한느군요.
  • 迪倫 2011/02/26 12:27 #

    뒷부분은 그러고보니 신농씨의 전설이 더 비교하기 좋겠군요. 그런 의미에서 도구의 시작이라는 동서양의 서로 다른 컨텍스트가 더 명확해지는 것도 같습니다. ^^
  • 강희대제 2011/02/25 21:33 # 답글

    헐..
  • 迪倫 2011/02/26 12:27 #

    ??(정확히 어떤 의미의 표현을 하신 것인지를 잘 몰라서 -_-;;)
  • 불곰™ 2011/02/26 04:22 # 답글

    액말의 발음은 보통화독음은 '어와'입니다.
  • 迪倫 2011/02/26 12:42 #

    안녕하세요, 불곰™ 님
    예, 말씀하신대로 현대 보통화의 발음은 우리말의 '어와'에 가깝습니다.

    그래서, 제가 위의 설명에도 병음발음기호로 /ewa/로 표기를 하여두었습니다. 그리고, 이 음은 영어의 Eve를 음사한 것이 아니라 라틴어계의 Eva를 음사한 것입니다. /va/가 /wa/로 전이되는 것은 흔한 현상이고, 다만 서구어의 /e/와 중국어 /e/는 '에'와 '어'정도의 차이가 있습니다. 이것은 몇가지 좀더 고려해볼만한 문제들이 있습니다. 우선 이 글을 쓴 등옥함과 왕징이 현재 보통화와 비슷할 것으로 충분히 생각할 수 있는 19세기 사람들이 아니라 17세기 사람들입니다. 게다가 등옥함의 경우 습득한 중국어가 마카오를 시작으로 주로 천주교가 퍼진 광동지역일 것으로 보는 것이 더 합리적입니다. 다만 17세기 예수회 수사들이 배운 중국어가 어느 계통의 음가를 보이는지는 모르겠습니다. 다만 한가지 추정할 만한 근거는 제가 앞에 기기도설에 대해 쓴 다른 포스팅에 서구어의 E에 대응하는 중국어 표기가 '額'으로 되어있는데, 이 글자의 현대음 역시 /e/ (어)입니다. 그래서 일단 지금 /e/ 즉 '어'와 유사하게 발음되는 글자가 서구어, 특히 라틴계 언어들의 E를 표기하는 것에 사용되는데 무리가 없지않았을까 하는 추정을 하였습니다. 읽고 덧글 남겨주셔서 감사합니다.
  • 밥과술 2011/03/05 02:46 # 답글

    잘 읽었습니다. 참고가 될까하여 딜런님이 의견에 동의하며 몇자 적습니다. 熱而瑪尼亞는 내용상 추측하신대로가 맞는 것 같습니다.

    중국어의 외래어표기에서 간과해서는 안될 것이, 처음부터 북경어 그러니까 만다린으로 들어온게 아니라 남방언어로 들어온게 많다는 점이지요. 사실 신해혁명이후에 광동어와 북경어를 놓고 표준어를 정할때 손문의 고향인 광동지방의 언어가 아슬아슬하게 북경어에 졌다고 하지요. 해외문물은 일찌기 광동성, 복건성, 그리고 절강성등의 항구를 통해 들어왔습니다.

    일일이 로마자 표기는 하지 않겠습니다만, 맥주인 피지우가 광동어로 읽으면 비어에 가까운 발음이고, 아메리칸도 앞에나온 메이리지앤이라는 만다린 발음이 광동어로 읽으면 메리칸에 가깝습니다. 화성돈이라는 워싱톤도 와셍똔이고, 뉴우위에(紐約)라는 뉴욕의 만다린발음도 광동어로는 거의 뉴욕입니다.

    동네마다 마구 변하는 W, V, J, Y 등의 발음에 모음까지 변하는 유럽의 다양한 언어와, 숱한 방언이 공존했던 중국어가 2,3백년전에 만나 한자로 표기된 단어들을 쫓아갈 때는 딱딱한 법칙의 틀을 벗어나서 좀더 유연한 상상력이 필요하고, 직관에 의존하는 것도 좋다고 봅니다.

    고전번역원에서 수고하신분들께 경의를 표하며, 노고에 위로의 말씀도 드립니다.


  • 迪倫 2011/03/05 15:24 #

    덧글로 지원사격을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말씀하신대로 한자 사음을 고려할 때는 17-19세기의 광동어와 유럽어와의 접촉과 반응을 고려해야 하는게 정말 맞을 것 같습니다. 게다가 또하나 지금의 우리가 습관적으로 영어 발음을 기준으로 생각하는 것이 근세 아시아에서는 전혀 통하지 않더라는 것을 요즘 책을 읽다가 심각하게 재인식 하고 있는 중입니다. 안그래도 그래서, 이번 얘기와 연결된 한자로 표기된 유럽어의 재구성을 다시 한번 글로 올려볼까 하는 중입니다...

    고전번역원은 정말 수고하신다고 밖에 달리 표현할 말을 찾지를 못하겠습니다. 묵묵히 이 고전번역을 하는 사람과 기관이 있다는게 한국사회의 보이지않는 저 바닥을 누르는 발라스트같은 존재가 아닌가 하는 생각입니다. 좀더 많은 지원과 혜택이 있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번역도 더많이 되고 하면 좋을텐데요.

    바쁘실텐데 감사합니다. 건강조심하시고 주말 잘 보내시기 바랍니다.
  • Esperos 2011/03/05 21:48 # 답글

    원래 /v/와 /u/는 극히 가까운 발음입니다. 고전 라틴어에서는 /u/ 소리를 내던 V가 불가타 라틴어에서는 /v/소리를 내게 됐을 정도니... 라틴어 Eva의 번역으로 /ewa/를 채택한다면 상당히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 迪倫 2011/03/06 09:02 #

    글 먼저 올리고 여기 답글을 달려고 했는데 그만 한발 늦었네요.
    예, 말씀하신대로 U와 V는 고전라틴어에서는 혼용되어 사용되던 글자이기도 하고, 실은 한국사람들은 /v/를 우선 /ㅂ/으로 인식을해서 전혀 다른 소리로 간주하지만 상당수의 언어에서는 호환 가능핰 소리이니까요. 실은 위의 밥과술님께서도 설명한 것처럼 도입전래의 경로에 따라 상당히 재구성하기 난해한것도 많아서 상상력을 발휘하다 보면 종종 저같은 경우 안드로메다로도 잘 가는편입니다
  • gmmk11 2013/02/14 22:29 # 삭제 답글

    어릴적 천주교 교리학교에 강제로;; 가서 배웠던 기억에는 이브를 '하와'라고 배웠었습니다.
  • 迪倫 2013/02/16 11:56 #

    실은 이브와 하와가 같은 말입니다. 이브 eve는 라틴어 eva의 영어 표기인데, 라틴어 eva는 히브리어 heva/cheva/hava/hawa의 라틴어식 표기이기 때문입니다. 히브리어는 모음이 없는 자음으로 표기되어(예를 들어 HV) 모음 적용에 변형이 많다고 알고있습니다. 그래서 하와 또는 하봐 등의 발음이었을 것이라고 추정하는데, 이게 라틴어 성경으로 번역될떄 h는 탈락하고 EVA가 된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니 하와라고 하든 이브라고 하든 결국은 같은 이름인것이죠.

    다만 저도 궁금한 것은 지금 한국 기독교에서 사용하는 한국화된 성서 이름들의 계통은 도대체 어떤 경로로 들어온 것인지 그게 찾아보면 좀 재미있을 것 같습니다, 확실히 영어의 영향은 아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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