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난학: 이덕무의 사례 by 迪倫

蘭學雜談(5):

蜻蛉國志阿蘭陀傳註解


1805년부터 본격화되는 카피탄 두프(Hendrik Doeff)의 고군분투기는 잠시 뒤로 미뤄두고 잠시 쉬어가는 의미에서 18세기 조선 지식인들의 네덜란드 이해는 어느 정도였는지 한번 살펴보고 넘어가겠습니다.(라고 그럴싸하게 얘기하지만 실은 요즘 연말 일복이 터져 연일 무리하면서 야근 중이라 대충 때우려는 포스팅입니다.)

청장관 이덕무(靑莊館 李德懋 ; 1741~1793)는 영정조시대의 박람강기의 대표적인 인물로 알려져있습니다. 그의 사후 편집된 청장관전서의 경우 18세기 전세계에 싱크로되었던 '백과사전파'의 조선 대표주자 중의 하나입니다.

이 청장관전서의 65권에 보면 청령국지(蜻蛉國志)라는 글이 있습니다. 대체로 신숙주의 "해동제국기" 이후 근 300년만의 일본전문 소개서로 알려져 있습니다. 청령국지는 청정국지(蜻蜓國志)로도 알려져있습니다. 청정 또는 청령은 잠자리 종류인데, 일본에서 당시 일본열도의 모양이 잠자리같다고 하여 부르던 별칭이었다고 합니다. (이병도의 1978년 민족문화추진회간 국역 청장관전서의 해제에서 인용합니다. 78년 당시에는 청령국지는 결본이어서 국역서에 누락되었다가 80년대 이후 일본의 소장본을 확인하여 국역하였습니다.) 청정국지보다 청령국지가 더 공식적인 원제목인 것으로 간주됩니다.. 이 청령국지의 마지막 부분에 이국(異國)이라는 부분에 일본을 통해 알게된 이국들에 대한 설명이 실려있습니다.

잘알려있다시피 이 '이국' 부분은 일본의 "화한삼재도회(和漢三才図会)"를 거의 참고하여 옮기고 있습니다. 아무튼 당시 기준으로는 중국이 아닌 일본의 정보를 진지하게 확인하고 소개하였다는 점에서 소위 "북학파"가 실은 좀더 포괄적인 "동서남북학파"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 하고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이 '이국' 전에는 "아란타(阿蘭陀)" 즉 여기 迪倫齋에서 주목하고 있는 18세기 전후의 네덜란드가 소개되고 있습니다. 이 글을 읽고 언제 한번 조선 지식인들의 이해를 한번 살펴보고싶다고 생각하였는데, 최근 화한삼재도회를 입수하여(복받을지어다, '국을' 電子冊服務여!) 비교해보고 기존 고전번역원에서 제공하는 데이터베이스의 번역에 迪倫의 주해를 한번 달아보려고 합니다.

**원문과 고전번역원의 번역은 파란색으로, 대신 迪倫의 註는 검정색으로 씁니다.
靑莊館全書卷之六十五
[蜻蛉國志] 異國

阿蘭陀。西北之極界。最寒國也。亦曰紅毛。
아란타(阿蘭陀) 서북 끝에 있는 가장 추운 나라이며, 홍모국(紅毛國)이라고도 한다.

기본적으로 전체 내용은 화한삼재도회의 Cntr+C/V라고 할 수 있다. 이전에 이유원의 이역죽지사(異域竹枝詞)를 소개할 때 보였듯이(여기 클릭) 19세기로 들어와 영길리(英吉利, 당시 표기는 英자와 吉자 앞에 각각 입구변이 붙어있다) 즉 영국이 홍모번(紅毛番)으로 혼동이 생기면서 지금의 두산백과사전에 홍모번을 영국으로 설명하여 인터넷에서 퍼간 글들에 모두 홍모번을 영국으로 표기하고 있다. 아마 영길리가 홍모번이 된 것은 정조때의 경우 동래부에 정박한 이국선을 홍모번 배로 인식하고 이들이 왜국이 말하는 길리시단(吉利是段)으로 인식하였는데, 다만 다산 정약용도 나중에 혼동하듯이 영길리는 와란(즉 아란타)이 아니지만 길리시단의 길리가 영길리와 상통하는 것으로 오해하면서 19세기에 영길리를 홍모번으로 부르게 된 것 같다.

凡有七大州。阿蘭陀。其一州。而今爲総名。
모두 7대주(大州)가 있고, 아란타는 그 중의 한 주이었는데, 지금은 총명(總名)이 되었다.

이 부분은 상당히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다. 원래 홀란트(Holland)는 네데를란트들 중에서 1개 프로빈시엔였지만 이후 최대 경제중심지 암스테르담을 끼고 대표주자로 나서면서 지금도 홀랜드가 네덜란드를 대표하는 단어가 되어버렸다.

曰世伊羅牟止。曰具留宇禰解。曰宇伊多良木。曰計留止宇牟止。曰乎宇布留伊世流。曰布利伊須良牟止。曰乎良牟太。
7대주의 이름은 세이라모지(世伊羅牟止)ㆍ구류우녜해(具留宇禰解)ㆍ우이다량목(宇伊多良木)ㆍ계류지우모지(計留止宇牟止)ㆍ호우포류이세류(乎宇布留伊世流)ㆍ포리이수량모지(布利伊須良牟止)ㆍ호량모태(乎良牟太)이다.

이 7개 지방은 처음 스페인 제국에서 독립하였을때의 7 연합 프로빈시엔(Zeven Verenigde Provinciën)들이다. 즉 연합 네덜란드 공화국을 구성한 스타트(Staad)들을 지칭한다. 한국어 한자음으로는 추정하기 힘들지만 화한삼재도회에는 가타카나가 옆에 붙어있다. 가타카나 발음 역시 실은 현대 일본어 표기도 아니고 탁음표시가 없거나 누락도 있어 정확하지가 않지만 기본적으로 7개 지방의 이름을 알고 있으니 그에 기준하여 다음과 같이 원 이름을 재구한다:
세이라모지(世伊羅牟止) セイラント = Zeeland 자일란트
구류우녜해(具留宇禰解) クルウネケ = Groningen 흐로닝엔
우이다량목(宇伊多良木) ウイタラキ = Utrecht 위트레흐트
계류지우모지(計留止宇牟止) ケルトウント = Gelre 헬러 공작령
호우포류이세류(乎宇布留伊世流) 가타카나 표기 누락 Overrijssel 오페리설
포리이수량모지(布利伊須良牟止) フリイスラント = Friesland 프리슬란트
호량모태(乎良牟太) フランタ= Holland 홀란트

距日本一萬二千九百里。
일본에서 1만 2천 9백 리 떨어져 있다.

12,900리라면 5,070 km에 불과하다. 다산은 다시 유득공이 筆記에서 인용한 동일 내용에 대한 평을 하면서 원래 일본의 거리 서술이 숨겨둔게 많은데다가 아란타는 구라파(유럽)과 리미아(리비아 즉 당시의 아프리카를 지칭) 사이에 있는데 어찌 12,900리일까 하며 129,000리일거라고 주를 달고 있다. 나가사키에서 암스테르담까지 직선 거리가 9,000km 가량 되니 아프리카를 돌아 인도양을 지나 동인도를 지나 타이완 거쳐 나가사키까지 해도라면 2배로 잡아서 18,000km라도 거의 5만리는 된다. 다만 에스파니아나 포르투갈처럼 아예 남지나해에 있는 것으로 알고 있었던 것은 아니니 바타비아(오늘날 자카르타)에서 나가사키간 거리를 의미하는 것 같지는 않다.

其國主。號古牟波爾亞。
그 나라의 임금은 고모파이아(古牟波爾亞)라 부른다.

이번 포스팅의 하이라이트입니다. 고모파이아는 실은 박명수의 퐈이아입니다….는 농담입니다. 실은 고모파이아의 화한삼재도에 붙은 가타카나 표기는 コンハンヤ(곤한야)입니다. 즉, Compagnie입니다. 네, 바로 VOC = de Verenigde Oost-Indische Compagnie입니다. 당시 전지구 어디에서도 주인이 없는 나라의 형태를 이해할 수 있는 곳은 거의 없었다고 생각된다. 아마 나가사키를 통해 너희는 누구의 다스림을 받느냐 하니 저희는 콤파니아를 따릅니다라고 대답했을테고 당연히 이 콤파니아가 왕을 지칭하는 것으로 받아들였던 것 같다. 비바 레푸블릭!

화한삼재도회에 실려있는 오란다인의 모습

其國人。色晳髮紅。鼻高眼圓。常擧一脚尿之如犬。衣多毛織。美餙。
그 나라 사람들은 살갗이 희고 머리털이 붉고 코가 높고 눈이 둥글며, 늘 개처럼 한 다리를 들고 오줌누며, 아름답게 꾸민 모직(毛織) 옷을 많이 입는다.

이전의 남만인 포르투갈인들이나 스페인인들은 서양인이긴 하지만 머리 색이 검은 경우가 많아 일본이나 중국에서도 그렇게 이질감을 느끼지는 않았다고 한다. 하지만 이들과 달리 네덜란드인들은 머리털이 붉어 별칭으로 홍모인(紅毛人)이라고 불리게 되었다. 한편 개처럼 한쪽 다리를 들고 오줌눈다는 것은 상당히 오래된 전설인데, 실제로 17세기 18세기 유럽인들이 그랬는지는 확인할 수 없다.

好交易于遠國。置官於咬吧。通市舶於日本。及諸國。每十歲一度。爲総計勘定。
먼 나라와 무역하기를 좋아하여, 교류파(咬 口+留 吧)에 관(官)을 두고 일본과 그 밖의 여러 나라에 상선을 보내는데, 10년마다 한 번 회계(會計)한다.

교류파는 지금의 자카르타이다. 원래 지역명은 바타비아로 VOC에서 이름 붙이기 이전에는 Suma Calapa였고 여기서 교류파라는 이름이 전해졌다. 10년마다 한번씩 회계를 한다는 것은 실은 정확히 알지 못하겠다. 두가지 가능성은 하나는 VOC 자체의 결산이 10년마다 각 지역을 교차연결한 무역거래의 손익으로 처리하는 것이었을 수도 있고, 두번째 가능성은 10년에 한번 정도씩 나가사키의 상인들과 은을 선대 차입하여 거래하는 것을 정산하는 것을 가리킬 수 있다. (VOC 이전의 포르투갈인들과의 이러한 신용 차입거래 제도에 관해서는 여기 클릭)

其次官。每年六七月來長崎。翌年春。參于江戶勤年始及交代禮。復與六七月來者交代去。其人稱加比丹。
그 차관(次官)은 해마다 6~7월에 장기(長崎 나가사끼)에 와서 이듬해 봄에 강호(江戶 에도)에 나아가 연시(年始)와 교대(交代)의 예(禮)를 올리고, 다시 6~7월에 오는 사람과 교대하여 가는데, 그 사람을 가비단(加比丹)이라 한다. [주D-020]가비단(加比丹) : ‘가삐딴’이라 읽는다. 포르투갈어 capitāo의 음역(音譯)이며, 선장(船長)의 뜻이다.

오페르호프트(Opperhoofd) 즉 상관장은 18세기 후반이 되어서야 한번에 최대 5년 거주할 수 있게 되었고, 그 이전에는 최대 2년 이상 주재할 수 없도록 되어있었다. 이 글의 6-7월은 음력이고 현대 양력으로는 7-9월 늦여름 기간이다. 이때 부는 바람을 타고 바타비아에서 와서 신년 봄에 에도참부(de Hofreis, 江戶參府 또는 参勤交代)를 갔다. 이전 포스팅에서 설명하였듯이 상관장은 에도참부를 허락받은 다이묘(大名)로 간주되어서 칼을 찰 수 있는(帯刀) 권리를 유일하게 부여받았고, 호칭은 포르투갈인들의 카피탕 모르(Capitão Mor)를 그대로 적용하여 카피탄 즉 캡틴으로 불렸다.

用橫文字。凡食時。卑官。鼓舞于前以進之。
글을 가로 쓰며, 음식을 먹을 때에는 낮은 관원이 앞에서 고무(鼓舞)하여 권한다.

정조 21년 동래 용당포에 다다른 네덜란드 상선에 대한 장계에 의하면 ‘글을 쓰게 하니 구름과 산같이 그립니다’하였다. 음식을 먹을때 앞에서 낮은 관원이 북치고 춤춘다는 것은 상사들만 즐거운 회식 2차의 탬버린이 등장하는 광경을 연상시킨다…

人不長壽。六十歲甚稀。
장수하지 못하여 60세 된 사람이 매우 드물며,

VOC 선원들이란 암스테르담에서 원래 미래가 없는 젊은 인생들이 '그래 결심했어' 하고 타는 배인지라 원래 평균 연령이 낮았다. 게다가 동인도로 가서 살아돌아오는 비율이 현저히 적어서 상대적으로 건강한 젊은 이들이 많았다. 헨드릭 두프만 해도 동인도로 처음 올때 21살이었다. (관련 포스팅은 여기 클릭)그래서 일본에서는 오란다인들은 오래 살지못한다고 알려져왔다. 게다가 섭생이 일본인들이 타부시하던 육식을 주로 하기에 더욱 건강하지 않다고 (실은 맞는 얘기인가 싶다만…) 알려져있었다. 하지만, 네덜란드인들에 대한 이해가 조금 더 깊어진 18세기말 19세기 초반에 가서야 사토주료(佐藤中陵, 1762-1848)같은 난학자들이 “아란타인의 수명은 일본과 같다. 백살까지 사는 경우도 있다. 다만 일본에 선주(船主) 무리들은 단명한다. 이를 전해듣고 그 사람들이 단명한다고 한다. 그 선주들은 바다를 건너 여러나라의 풍토를 겪기 때문이다(中陵漫錄)”라고 이해하기 시작한다. 화한삼재도회가 쓰여진 18세기 초반에는 아직 이정도의 이해단계가 아닌것으로 보인다.

性情巧。天文地理算數。及外治醫藥甚良。
성정(性情)이 정교한데 천문(天文)ㆍ지리(地理)ㆍ산수(算敎)와 외치 의약(外治醫藥)이 가장 좋다.

19세기 일본열도에 본격적으로 러시아와 영국의 서양세력이 물려오기 전까지의 난학은 기본적으로 외과의학과 본초학이었다. 본초학은 도쿠가와 요시무네(徳川吉宗 재위 1716-1745) 당대의 예외적 발흥이고, 기본적으로 난방의(蘭方醫)라고 불린 외과와 오란다약장수가 실은 주요 컨텐츠였다....만 실은 그리 큰 영향을 미치지는 못했다고 한다. 반면 조선의 경우 18세기 북경을 통해 유럽 천문학과 역법, 산술을 상당한 수준으로 받아들이고 역서제작에 활용하고 있었다. 이에 대해서는 강재언 선생의 『조선의 서학사』(대우학술술총서 인문사회과학 47, 민음사)를 추천한다.

商舶往來三十五六箇國。故珍品異物。不可勝計。蘓門答剌琶牛榜葛剌波斯浡泥等國。惟阿蘭陀能往來。
상선이 35~36개국에 왕래하므로 진기한 물건이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다. 소문답랄(蘇門答剌)ㆍ파우(琶牛)ㆍ방갈랄(傍葛剌)ㆍ파사(波斯)ㆍ발니(渤泥) 등의 나라에는 아란타만이 왕래할 수 있는데,

소문달랄 = 수마트라, 파우= 현재 미얀마의 페구(Pegu) 또는 바고(Bago), 방갈랄 = 고전번역원의 번역에는 '수마트라의 벤쿨렌?' 이라고 추정하고 있지만 그보다 방글라데시 벵갈리로 최근의 중국사학계는 비정하고 있다. 파사는 페르시아, 발니는 발리가 아니라 부르나이로 발니라는 표현은 태평환우기 (太平環宇記, 978)에 이미 등장한다.

葢其舶。皆八帆。不擇逆順風故也。
대개 그 배들은 다 8개의 돛이 있으므로 순풍ㆍ역풍을 가리지 않기 때문이다.

유럽의 당시 돛단배의 경우 바람이 불어오는 15도 이내만 제외하고는 바람방향을 거슬러 진행할 수 있는 기술이 고안되었다. 맞바람의 경우는 지그재그로 진행할 수 있다. 역시 정조 21년 용당포에 도착한 VOC 선박의 내부를 살펴본 동래부사의 묘사에 따르면 ‘ 선제(船制)가 개판(蓋板)이 있어 우리나라의 구선(龜船)과 같았고, 개판 위로 창문을 내어 출입하도록 되었는데, 나사 모양의 사다리를 만들어 빙빙 돌아서 승강하였다…세개의 돛대를 세웠는데 끊을 수도 있고 이을 수도 있어서 그 장단을 마음대로 조절하게 하였다’라고 전하면서 '순풍을 만나 돛을 휘날리며 가는데 빠르기가 나는 것 같습니다’하고 장계에서 보고하고 있다.

其土産。曰猩猩皮。珊瑚珠。瑪瑙。琥珀木乃伊眼鏡羅經土圭星尺。
이곳의 토산물로는 성성피(猩猩皮)ㆍ 산호주(珊瑚珠)ㆍ마노(瑪瑙)ㆍ호박(琥珀)ㆍ목내이(木乃伊)ㆍ안경(眼鏡)ㆍ나경(羅經 나침판)ㆍ토규(土圭 시계)ㆍ성척(星尺 별의 도수를 측정하는 기계)이 있다.
[주D-021]목내이(木乃伊) : ‘미이라’라 읽는다. 아라비아 등지에서 나는 나무에서 채취한 즙(汁)으로 만든 방부제(防腐劑).

VOC의 교역품 중에서 가장 당대 아시아인들을 혼미하게 만든 것은 바로 목내이(木乃伊)였다. 목내이는 화한삼재도회에 ミイラ(미이라)라고 가타카나가 붙어있다. 바로 그 공포영화나 이집트에 나오는 '미이라'를 말한다. 미이라는 난방의(蘭方醫)의 약재료로 사용되었는데, 이 미이라에 대해서 오주연문장전산고의 인사류 신형에서 장황하게 목내이에 대한 변증설을 펼치고 있다. 실은 이 미이라라는 말은 몰약(영 myrrh)의 포르투갈어 단어 mirra 를 의미하는 것이었는데, 이후 이 미이라를 만들때 사용되는 방부제인 몰약과 머미mummy = mumia(포) 즉 미이라와 혼동이 되면서, 쓰기는 머미의 중국어 가차인 목내이 (무나이)라고 쓰고 읽기는 몰약의 포르투갈어가 변형된 미이라라고 읽는다고 한다. 한편, 별의 도수를 측정하는 기계라고 설명이 붙은 성척(星尺)은 항해에 사용되는 육분의와 같은 것이다. 그리고, 시계라고 설명이 붙은 토규(土圭)는 도케이(とけい)이다.


오늘은 이상입니다. 조선의 선비들처럼 선인의 글을 읽고 다시 주석달아서 재해석하기를 한번 흉내내어보았습니다. 그러고보니, 18세기의 조선 지식인들은 앞뒤 막힌게 아니라, 새로운 사실이 있으면 비록 왜국의 책일지라도 서로 참고해가면서 배우고 있었습니다. 앞서 얘기한 것처럼 이번 포스팅은 때우기용이니까 더이상 얘기를 확대하지않고 주석을 다는 것으로 마무리 합니다. 이에 대해서는 김문식 선생의 『조선후기 지식인의 대외인식』(새문사, 2009)을 보시면 흥미있는 사실들이 있을 겁니다. 아무튼 두프의 고군분투기는 다시 쓰도록 하겠습니다....만 최근 오프라인의 사정으로 인해 당분간 띄엄띄엄해지리라 짐작이 됩니다. ㅠ.ㅠ

아, 그리고, 고전번역원에는 참으로 훌륭한 번역 데이터베이스가 제공되고 있습니다. 고전을 많이 읽고 활용해서 이런 작업에 대한 수요가 더 많아져서 더 많은 내용이 번역되고 알려지면 좋겠습니다. 그러니, 고전을 '실제로' 읽읍시다.

한편, 화한삼재도회 중의 아란타 즉 오란다 부분은 아래를 클릭하시면 보실 수 있습니다.
화한삼재도회 권 제13 중에서 오란다

고전을 다뤄보았으니 인문사회밸리로 보내볼까요? 아무튼 읽어주셔서 감사하고, 아무쪼록 따뜻한 주말 보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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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Esperos 2010/12/18 17:19 # 답글

    저는 고종이 대한제국이라 새로운 국명을 선포하기 전, 신하들 앞에서 이리저리 상황을 잴 때에 신하들이 신성로마제국을 예로 들어가며 "조선도 황제국이라 선포함이 가합니다"라고 했다는 구절을 읽고 크게 놀랐던 적이 있습니다. 시헌력을 조선에서 받아들일 때에도 상당한 수준으로 서양 지식을 알고 논했더군요....
  • 迪倫 2010/12/18 17:49 #

    덧글 올려주시는 사이에 중간의 일부 제가 수정을 했습니다. 아무튼 이렇게 빨리 덧글 주셔서 감사합니다.

    조선 후기와 말기에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만큼 그리 꽉 막힌 것은 아니었던 것으로 생각합니다.다만 종종 바보같은 해석을 해서 엉뚱한 결론을 내리는 것이 보여서 아이구, 이런 답답한...싶은 데가 좀 많기는 하지만 말입니다...-_-;;

    그보다 Esperos님은 천주교 신자라서 혹시 잘 아실지 모르겠는데, 일본에 난학이 있었다면 조선에는 서학이 있었다고 해야하는게 아닐까 하는 정도로 실은 조선에서도 서양의 핵심 사상이 직수입되고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오히려 기리시탄이라면 기겁을 하던 일본보다 상대적으로 관대하게 처리하는 경향도 보이고, 단순한 교리의 전파와 박해 외에도 잘 찾아보면 상당히 흥미있을만한 점들이 있지않을까 하는 생각도 가지고 있습니다.

    아무튼 주말 따뜻하게 보내시기 바랍니다!
  • 들꽃향기 2010/12/18 18:07 # 답글

    1. 정약용이 정조에게 올린 반성문(?)을 보면 천문, 지리, 산술, 수리 등의 분야에서 아는 척좀 해보려다 보니 서학을 알게 되었슴다.라는 식으로 쓰는 것을 보면, 의외로 광범위한 분야에서 서구과학을 의식하고 받아들였던 것 같습니다. ㄷㄷ


    2. 네덜란드 군주가 콤파니아라고 파악한 이덕무의 서술은 지금의 관점에서 보면 틀린게 아닐지도 모르겠습니다. ㅎㅎ 자본주의 사회에서 사실 회사만한 '주군'이 어디에 있겠습니까....ㅎㄷㄷㄷ

    오늘 글 역시 잘 보았습니다만, 유머스러운 표현이 종종 눈에 띄네요..ㅎㅎ 잘 읽고 갑니다. ^^

  • 迪倫 2011/01/02 10:02 #

    무지하게 답글이 늦었습니다....양해를...
    말씀하신 대로 적어도 경화사족의 범위 내에서는 그리 꽉 막혀있지만은 않았던 것으로 보입니다만, 어찌해서 그렇게 19세기 후반 패닉 모드였는지...

    17~18세기 네덜란드가 정말 선도적 존재였던 증거라고나 할까요... 회사가 왕인 나라..ㅋㅋㅋ

    연말 때우기용이라고 밝혔듯이 좀 가볍게 썼습니다 ^^
  • 행인1 2010/12/18 19:13 # 답글

    네덜란드와 직접 접촉하지 않았다는 점을 감안하면 상당히 많이 알고 있는편이었군요.
  • 迪倫 2011/01/02 10:04 #

    답글이 늦은 것 양해를 다시 바랍니다.

    위의 답글에도 썼지만 18세기 후반으로 넘어가면 실제 국제 정세에 대한 관심이 경화사족 사이에서 상당히 증폭한 것은 사실이었던 것 같습니다. 실제 18세기 전 지구적 변동에 싱크로된 움직임도 보이구요^^
  • 마무리불패신화 2010/12/19 02:11 # 답글

    이덕무 ㄷㄷㄷㄷㄷ
  • 迪倫 2011/01/02 10:05 #

    안녕하세요, 마무리불패신화님...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런데, "ㄷㄷㄷㄷㄷ"를 어찌 해석하는지 잘 몰라서 -_-;;
  • 남중생 2018/01/13 01:19 #

    적륜님, ㄷㄷㄷ는 "덜덜덜"입니다.
    대단하다~ 는 뜻으로 쓰입니다.
    지금 쯤 알아채셨을지도 모르겠지만 혹시나 해서 말씀드립니다.^^

    비슷하게 ㅎㄷㄷ는 "후덜덜"으로 쓰입니다.
  • 월광토끼 2010/12/19 08:40 # 답글

    정말 잘 보았습니다. 저리 보면 선교사도 없는데 '책만 읽고도 세워진 한국 카톨릭'의 사연이 이해될 것 같군요..
  • 迪倫 2011/01/02 10:08 #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서학이 단순히 종교의 전파나 정치적 측면 외에 외부 정보의 유입이라는 측면에서 상당히 흥미로운 데가 있는 것 같습니다. 언제 좀 자세히 들여다 보면 좋겠다는 생각입니다.
  • 시쉐도우 2010/12/20 21:23 # 답글

    오늘도 양질의 포스팅을 잘 읽었습니다.

    제 짧은 생각에선, '1만2천9백리'는 전통적인 '리' 가 아니라,
    혹여 화란인들이 '그 정도 해리 nautical mile 를 항해해서 옵니다'라는 의미로 한 표현을 설명없이 적다보니 (또는 쓰는 사람이 양자를 혼동해서) 그렇게 쓴 것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습니다.
  • 迪倫 2011/01/02 10:11 #

    답글 늦었습니다. 아무튼 언제나 흥미있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옛날 글에서 나오는 "거리"는 종종 아예 단순히 문학적 표현처럼 보일때가 많습니다만, 위의 글에 인용한 다산의 글을 보면 상당히 진지하게 거리에 대한 얘기를 하고 있어서 현대인과 단순히 정보의 감각이 다를 뿐이지 심각하게 받아들이긴 한게 아닌가 싶기는 합니다...
  • 한단인 2010/12/20 22:23 # 답글

    요즘 몇달간 연재하신 걸 볼 여지가 없었는데 날잡아서 기합넣고 봐야겠군요(응?)

    암튼 회사가 왕이네요? ㅋ
  • 迪倫 2011/01/02 10:12 #

    감사합니다!!

    그나저나 단적으로 말해 "회사"가 왕인것이 바로 "근대화=모더니즘"이라고 생각됩니다만 ㅋㅋㅋ
  • 2010/12/25 15:50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迪倫 2011/01/02 10:14 #

    익명님의 지적과 정보 감사합니다. 해당 부분의 표기 수정하도록 하겠습니다.

    아, 그리고, 나중에 일본과 영국이 국교를 수교한 후에 파에톤호의 함장 펠류는 다시 일본을 방문하고 싶어했는데, 일본측에서 극렬히 반대해서 결국 일본에 다시는 가지 못했다고 합니다. 아마 젊은날의 실적을 올리고 싶었던 공명심이 일본을 패닉으로 몰아가는 사건의 계기가 아니었을까 합니다...
  • 궤도운 2010/12/26 04:17 # 답글

    대단한 글 늦게 나마 잘 보았습니다. 깜파니아라니 ㅎㅎㅎ
  • 迪倫 2011/01/02 10:15 #

    안녕하세요. 궤도운님, 재미있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자주 들러주시기 바라겠습니다!!
  • 迪倫 2010/12/26 13:50 # 답글

    덧글 남겨주신 분들 모두 너무 감사합니다. 조만간 다시 답글을 개별적으로 드리겠습니다.
    새해 복많이 받으시기 바랍니다.
  • 헤르모드 2010/12/28 03:26 # 답글

    이 책에도 미이라가 등장하는군요. 일전에 일본의 미이라 이야기를 간단히 번역한 적이 있습니다(http://hermod.egloos.com/486329). 이집트에서 얼마나 많은 수의 미이라가 한약재로 반출되었을지 상상도 안되는군요...
  • 迪倫 2011/01/02 10:18 #

    아, 이전에 쓰신 미이라 얘기를 제가 놓쳤었나 봅니다.
    목내이 관련해서 좀더 자세한 얘기를 나중에 따로 포스팅을 해볼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18세기 네덜란드의 산업과 좀 관련이 되어있어서 상당수 미이라가 실제 네덜란드에서 당대에 제작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좀 듭니다..좀 더 자세히 찾아보고 별도로 다시 글을 올려보겠습니다.
  • 헤르모드 2011/01/02 15:05 #

    오! 흥미롭습니다. 관심이 큽니다. 얼른 올려주세요ㅎㅎ
  • 迪倫 2011/01/02 16:30 #

    그래도 연초부터 미이라 얘기부터 하기에는 아무래도 -_-;; 좀 엽기적인 것 같아서....
    조금 자료를 더 찾아보고 써보도록 하겟습니다 ㅎㅎ
  • 미니맘 2014/10/26 16:54 # 삭제 답글

    궁금하던 사항인데 정말 시원한 해석 감사합니다. 죄송하지만 제가 번역하는 부분에 좀 인용하겠습니다.
  • 迪倫 2014/10/27 05:29 #

    안녕하세요, 미니맘님.
    도움이 되셨다니 기분이 좋습니다. 인용하시는 것은 괜찮습니다. 다만 상당부분 제 의견들이 들어있어서 가급적 출전을 밝혀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런데 번역을 하신다는게 어떤 것인지 알려주시면 저도 흥미있을 것 같습니다. 글을 쓰시는 것인지 아니면 블로그같은 것인지 살짝 알려주시면 좋겠네요^^
  • 남중생 2018/01/18 23:45 # 답글

    이번에 네덜란드 풍설서 번역 포스팅을 쓰면서 교류파의 "류"자를 썼더니 포스팅 내용이 날아가버리더군요...ㅠㅠ 무서운 글자입니다.
  • 迪倫 2018/01/22 11:14 #

    그래서 저도 링크 글을 쓰면서 특별히 조심했습니다.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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