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08년 길고 긴 3일, 그리고 나가사키의 패닉... by 迪倫

蘭學雜談(4)


1808년 10월 4일 (文化5년 8월15일)
아침 나절 나가사키항이 한눈에 들어오는 첫 지점인 파펜베르크(다카보코지마 高鉾島) 앞바다에 네덜란드 깃발을 건 배 한척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아침 나절 초소에서 나가사키 부교(長崎奉行) 마쓰다이라 야스히데(松平 康英)에게 이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나가사키 부교는 즉시 상관장(Opperhoofd) 카피탄 두프(カピタン ドゥーフ)에게 가서 배를 확인하고 예인하라는 요청을 합니다. 안그래도 7월하순 ~ 8월 초순에는 들어왔어야 할 배가 소식이 없어, 오란다 무역과 관련된 이런 저런 이해관계가 얽힌 사람들이 대부분이던 나가사키는 배가 온다는 소식에 들뜨는 분위기가 됩니다.

17세기 데지마가 생기고 난반(南蛮) 포르투갈이 퇴출된 이후 지금까지 200년 가까지 해오던 대로 파펜베르크로 두명의 네덜란드인, 통사(通詞), 나가사키 부교쇼의 관리(奉行所の役人)인 "chief banyo"가 가서 모든 무기와 기리시탄 관련 서적 및 물품을 봉인하고 화약은 넘겨받아 나가사키의 정부 화약고에 봉인 보관하고, 키를 넘겨받아 항구로 들어오는 의식을 진행하러 출발했습니다.

3년 전 1805년 러시아배가 통상을 요구하면서 등장한 사건때문에 혼쭐이 난 나가사키 부교는 이후 네덜란드령 동인도가 이런 저런 이유로 미국이나 덴마크 배를 용선하여 쓰기 시작하자 엄격하게 모든 입항하는 배는 VOC 소속의 네덜란드인이 2명 이상 승선하고 모든 화물이 전적으로 VOC 소유인지를 확인하는 과정을 반드시 거치도록 하고 있었습니다.

데지마 안의 공관에서 소식을 듣고 일어난 두프는 안그래도 최근 잉글랜드배들의 공격과 나빠진 재무사정으로 인해 데지마에 들어오는 배가 한해에 한대 정도로 줄어들어 있었는데 이번 배도 잉글랜드의 공격을 받고 예년보다 늦게 이제야 들어오나 보다 하고 자리에서 일어나서 상관 앞으로 나가 멀리 있는 배가 러시아 깃발이 아니라 네덜란드 기가 걸려있는 것을 확인하고 직원를 보냅니다.


**나가사키 항의 지도입니다. 왼쪽 아래 작은 섬 高鉾島가 바로 외국인들에게 파펜베르크(Papenberg, 또는 Papenburg)로 알려져있던 섬입니다. 데지마는 오른쪽 위의 Ohato (大波止)라고 적힌 곳의 인근입니다. 파펜베르크로 접근하면 비로소 물살이 약해지고 바람을 피할 수 있게 됩니다. 그래서,VOC 선박의 입항 검사는 이곳에서 진행을 했습니다.

오후 2시 즈음 명령을 받고 출발한 서기 디르크 호제만(Dirk Gozeman)와 헤릿 스히멀(Gerrit Schimmel)가 먼저 작은 배를 타고 항구를 가로질러 파펜베르크 바깥에 정박한 배로 가고 있었습니다. 검사(検使)로 나선 나가사키의 반요 2명(藤谷保次郎과 上川伝右衛門)과 통사는 저만치서 뒤따르고 있는 중이었습니다. 그러자 들어온 배에서 슬루프(sloep = sloop)를 내려서 이쪽의 데지마 직원들에게로 서서히 다가왔습니다.

그런데, 데지마 직원들이 슬로프로 옮겨타려는 때, 돌연 슬루프의 선원들이 모두 숨겨둔 칼을 빼어들고 이들 데지마 직원 2명을 사로잡았습니다. 뒤따르던 나가사키 관리와 통사는 순식간에 벌어진 사건에 당황해서 황급히 배를 돌려 나가사키 부교소로 돌아왔습니다. 소식이 급히 부교에게 전달되고 당황한 부교는 두프를 급히 소환합니다.

소식을 들은 두프는 본능적으로 이건, 뭔가 잘못됐어. 잉글랜드 놈들이야 하지만 왜 잉글랜드 놈들이 네덜란드 기를 걸고 몰래 들어와서 이런 짓을 벌이는지 이해를 할 수가 없었습니다. 다만 금고에서 무역 면허증 (朱印状)과 공금으로 보관 중인 은을 챙겨서 급히 부교에게로 달려갑니다. 급히 나가사키 부교쇼로 간 두프는 흥분한 일본 관리들을 대합니다. 부교는 배를 돌려 온 반요들에게 화를 내면서 다시 바다로 나가서 인질을 구해올때까지 돌아오지마라고 역정을 내다가 두프가 오자 도대체 뭔놈들인가 하고 물어봅니다. 두프는 우선 아마 잉글랜드 배인 것 같다고 대답을 합니다. 그리고 선장에게 편지를 보내 사로잡은 두명은 군인이 아니라 민간인이니 즉시 풀어달라고 요청하겠다고 대답합니다. 그러는 와중에 배가 접근한다고 바깥에서 큰 소리가 납니다. 괴선박으로부터 소형 보트에 수십의 인원이 대포로 무장하고 내항으로 들어왔다가 다시 돌아갔었고, 부교는 데지마가 공격을 받을까봐 즉시 모든 데지마의 인원을 부교쇼로 이동시키라는 명령을 내립니다.

시내의 부교쇼로 직원들을 데리고 오는데 시내는 이때문에 이들이 상륙해서 나가사키를 공격한다는 소문이 쫙 퍼져서 그야말로 패닉 상태에 빠집니다. 부교는 두프에게 내가 국법을 어기더라고 이들을 구해낼 테니 걱정마라면서 이 괴선박에 대해 노발대발하고, 특히 파펜베르크에서 나가사키 내항까지 (지도에서 길게 항구입구로 들어오는 길) 방어초소에 규정대로 1,000명이 아니라 고작 60~70명밖에 없다는 것을 알게되자 분노와 걱정이 결합하여 그야말로 공포의 밤을 보냅니다.

1808년 10월 5일 (文化5년 8월16일)
아침 11시경 서기 보조 스히멀의 필적으로 보이는 글이 적힌 판자가 전해집니다. 적혀있는 글은 "이 배는 벵갈에서 왔다. 선장의 이름은 펠류, 그리고 물과 보급품을 달라"고만 적혀있습니다. 부교는 다시 두프의 자문을 구합니다. 두프는 이제 확실히 이 배는 잉글랜드 배라고 대답을 해줍니다. 그리고, 잉글랜드는 지금 네덜란드의 적국이니 물과 보급을 주지마시라고 조언을 합니다. 우왕좌왕하던 부교는 실은 어찌할지 결론을 내리지 못합니다. 부교의 제1비서는 자기가 괴선박에 가서 선장과 담판을 짓고 두 직원을 돌려달라고 한 후 만약 얘기를 듣지 않으면 그 자리에서 선장을 찌르고 자기도 그 자리에서 자결하겠다고 자리를 나서려고 합니다.
두프는 순간 아, 이러면 다 죽어…하고 혹시라도 선장을 찔러버리면 그 순간 인질로 잡힌 직원들은 교수형으로 죽음이라고 안된다고 만류하기 시작합니다.

부교의 다음 계획은 일단 인근 번에서 병력을 보낼 때까지 배를 잠시 붙잡아두자는 것이었습니다. 누군지 왜인지는 몰라도 일단 국기를 속이고 들어왔으니 이쪽에서도 괘의치말고 요구를 들어주는 척하면서 돌려치자는 것이죠. 그리고, 지원 병력이 도착하면 사로잡자는 것입니다.

아침 일찍부터 괴선박에서 뭔가를 적재하기 시작하는 것이 눈에 띕니다. 바로 대포 탄환들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괴선박은 이제 마침내 어느덧 네덜란드 국기를 내리고 기를 바꿉니다. 바로 영국 기였습니다. 이날 오후에 결국 밝혀진 괴선박의 정체는 1782년 취역한 후 지중해와 태평양을 누빈 이름하여 로얄 네이비의 HMS 파에턴(Paeton)호였습니다. 미네르바급 대포 38문의 5등 호위함(frigate)으로 1808년 현재 함장은 플리트우드 펠류(Fleetwood Pellew)로 실은 약관 19세였습니다....-_-;;

일본의 파에턴호 그림입니다. 지난번 포스팅의 그림도 역시 같은 파에턴호으로 영국 바스의 애드미럴 하우스에 소장된 그림입니다.

이제 본격 나가사키와 정체를 드러낸 로얄네이비 HMS 파에턴호가 대치하기 시작합니다.

오전 11시경 다시 파에턴호에서 4명이 탄 슬루프가 내려와 나가사키 내항으로 진입을 하려 합니다. 나중에 알려지기로는 함장 펠로우가 일본측과 교섭 시도를 하려던 것이었다고 합니다만, 일본배들이 접근하지 보트를 돌려 다시 배로 돌아갑니다. 두프는 이들이 일본인 손에 잡히면 현재 상황으로는 바로 죽음이고 그러면 인질의 목숨도 끝장이다 싶어 이들이 다시 돌아갔다고 하자 안도의 한숨을 쉽니다.

오후 4시경 인질 중 한명인 서기 호제만이 잠시 나와서 파에턴 호의 전갈을 전합니다. 그렇게 밝혀진 파에턴 호의 목적은 바타비아를 출발했다고 마카오 포르투갈인들이 비밀리에 정보를 전해줬던 두척의 네덜란드 배를 사로잡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실은 이만저만한 사정으로 올해 배가 오지않았다고 말을 하자 파에턴호측에선 반신 반의합니다. 그래서 그것을 확인하기 위해 밤에 항구로 들어와 그 소란이 났었던 것이었습니다. 심지어 두프는 바타비아의 총독이 바뀐 소식도 이들을 통해서 알게 됩니다.

일단 직접 입항한 네덜란드 배가 없다는 것을 확인하자, 다른 한명을 인질로 잡아두고 파에턴호는 물과 보급품을 요구하기 위해 호제만을 밤이 되기 전까지 돌아오라는 조건으로 잠시 풀어준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나가사키 항으로 진입해서 일본배와 중국배, 아무튼 뭐든지 다 박살 내버리겠다고 협박의 소식을 전합니다.
두프는 보급품을 주지 말라고 하지만 나가사키측에서는 보급품을 주기로 합니다. 대신 물을 조금만 보내서 바로 출항하지 못하게 붙잡아두겠다고 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인질 한명이 돌아왔으니 이제 한명만 더 구하면 된다는일본식 논리를 들이댑니다. 기겁을 한 두프는 유럽식으로 돌려보내지 않으면 그 다른 인질 한명은 바로 교수형이라고 온 힘을 다해서 설득하고, 호제만도 식수와 보급품과 함께 다시 파에턴호로 돌아갑니다.

저녁 9시경 선장은 보급을 받고 이 두 명의 인질을 풀어줍니다. 사로잡을 네덜란드 배가 없으니 영국측에선 상황종료였던 셈이지요…

부교는 어떡하던 파에턴호를 에도의 바쿠후에서 지침이 내려올 때까지 붙잡아 두기 위해 고심을 합니다. 한 밤 중에 부교는 두프에게 다시 묻습니다. 어찌하면 바쿠후에서 방침이 내려올 때까지 이 배를 붙잡아둘 수 있을지를 말입니다. 문제는 그동안의 평화 분위기로 나가사키 방위가 거의 유명무실하게 되어 있었다는 점입니다. 두프는 솔직하게 영국 호위함은 무장이 잘되어있고, 일본측이 절대 붙잡기 어렵다, 대신 작은 배들에 돌을 잔뜩 실고 파펜베르크에서 카발로스(Cavallos 이오지마 伊王島)로 나가는 좁은 물길에서 공격을 하면 이들을 상대하느라 시간을 끌 수는 있을 것 같다고 대답을 합니다. 하지만 이렇게 하려면 밤은 지나야 배를 모을 수 있을텐데, 이미 그 전날부터 불던 동풍에 영국배가 바로 출항도 할 수 있을 거라고 부정적인 대답을 합니다.

1808년 10월 6일 (文化5년 8월17일)
새벽녘 동이 틀 즈음에 반요 중의 하나가 영국배에 가서 마치 협상을 하는 것처럼 속이면서 시간을 벌어보겠다고 출발합니다. 이때 마침 인근의 오무라번(大村藩)의 번주가 병력을 이끌고 도착합니다. 오무라번주는 소형 선박 300대로 화공법을 벌이자고 제안합니다. 3백대 정도의 배를 동원하면 영국 함포에 200대정도 깨지고 그러는 사이에 나머지 100대가 마른 지푸라기에 불을 붙여 공략하면 승산이 있다는 이런…안습황당한 전법을 두고 왈가왈부 하고 있는 동안…

이런 더 황당한. 파에턴호는 볼 일 다보고 아침 일찍 유유히 닻을 올리고 떠나가 버립니다. 원래 나가사키의 방비를 맡은 히젠국 사가번(佐賀藩)의 사무라이들은 아직 오지도 않았지요. 두프는 상황이 종료되었다는 것을 알고 다시 데지마 상관으로 돌아옵니다.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이라고 생각한 두프와 달리, 부교는 이 모든 사태에 대한 책임을 지고 특히 방비가 전혀 되어있지 않았던 것에 대한 책임으로 두프가 돌아간지 불과 반시간 뒤 할복을 합니다. 마침 에도에 있었던 사가번의 번주는 이에 대한 책임으로 바쿠후로부터 100일간 가택 연금 처분을 받고 초병인원의 감소와 사건에 대처하지 못한 책임으로 사가번의 가로 수명이 역시 할복을 하였습니다. (두프가 나중에 1810년 에도 참부를 갔을 때 이때의 부교의 아들에게 히젠 번주가 자신의 책임을 뒤집어쓴 부교를 대신해서 2천 고반(小判 금화)를 대신 지급해줬다는 뒷담화를 전하고 있습니다.)

파에턴 사건이 돌발적이고 극적이긴 하지만 실은 3년 전 1805년 어쩌면 지금의 북방4도와도 멀리 근원을 따져 올라갈 다른 사건이 먼저 있었습니다. 19세기 러시아의 등장입니다. 이 러시아의 얘기는 다시 18세기 후반 네덜란드 정월을 시뮬레이션한 시란도(芝蘭堂)회식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다음 편에는 이 얘기를 먼저 해야할지 싶습니다만...)

그리고, 무엇보다 잉글랜드로 인한 카피탄 두프의 고군분투기는 이제 본격 시작입니다.

**迪倫註
1. 당시 일본은 아직 VOC가 청산되고 네덜란드 정부가 동인도를 인수한 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두프처럼 원래 VOC 출신인 사람들은 여전히 회고록에서도 콤파냐로 부르고 있습니다.
2. 카피탄은 원래 포르투갈의 선장 겸 대장 카피탕-모르(Capitão Mor = captain general)에서 유래된 표현인데, 포르투갈이 퇴출된 후에도 일본측에서는 네덜란드인 상관장도 카피탄으로 불렀습니다. 원칙적으로 카피탄은 다이묘로 대우해서 유일하게 칼을 차는 것을 허용받았습니다.
3. 반요 또는 banyo로 표기한 직위는 두프의 표기에는 banjoosen (복수형)인데, 영어 번역자의 주에는 일본어 banyoshu라고 하고 있습니다. 상응하는 일본어 표기를 아직 못찾았습니다. 藩与(力の)首가 아닐까 하고 상상은 해봤지만 모르겠습니다...가르침을 구합니다.
4. 파펜베르크에서 나가사키 항구까지는 대략 6km 정도입니다. 이 해안선을 따라 원래 사가번과 후쿠오카번이 교대로 인원 1,000명을 주재시키도록 되어있었습니다마, 오래된 평화 분위기에 재정적 어려움으로 사건 당시 장교 없이 초병만 60~70명 있었다고 합니다. 원래 오무라번은 방비를 맡은 곳은 아닙니다.
5. 이 사건의 3년전 1805년부터 러시아때문에 에도 바쿠후는 심려가 커집니다. 결과는 아이러니하게도 쇄국의 강화였습니다.
6. 이 사건 이후 나가사키 인근에는 이기리스 즉 영국에 절치부심 이를 가는 사무라이가 늘어납니다. 기회만 생기면 복수를 하겠다는....규슈지역의 양이攘夷 정신은 어쩌면 이때부터였는지...싶기도 합니다.
7. 제가 파에톤호의 선장 이름 Pellew을 펠로우로 잘못 읽었습니다. 시쉐도우님께서 펠류라고 지적해주셔서 여기 수정하였습니다. 감사합니다. 펠류의 아버지는 혼블로우 시리즈에도 등장한다고 합니다. 펠류선장은 이후 영일수호조약이 체결된 후 다시 일본을 정식으로 방문하고 싶어하였지만 일본측의 블랙리스트에 올라 결국 일본에 다시 갈 수 없었다는 얘기가 전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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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행인1 2010/12/12 17:30 # 답글

    느닷없이 나타난 군함(비록 5등급 프리깃이지만)이다보니 나가사키가 다 뒤집어지는군요.
  • 迪倫 2010/12/17 13:57 #

    답글이 무지하게 늦어졌습니다. -_-;;
    일단 그동안의 다른 배들과 달리 파에톤호는 일본측은 안중에도 없다는 듯이 마구 휘젖고 가버렸으니까요....선장이 막 배를 인수한지 얼마안된 19세였다니까요.....
  • 리리안 2010/12/12 19:09 # 답글

    에도 막부가 너무 평화로웠나보네요. 이 때 영국 해군이 도쿄만에 나타나서 통상을 요구했다면 어떻게 됬을지 망상을 해봅니다...
  • 迪倫 2010/12/17 14:00 #

    영국 해군이 19세기 초반에 여력이 조금만 더 되었으면 동아시아 역사에 상당히 여러가지 변동이 있지않았을까 싶을 정도로 막무가내였다고 할까요...실은 조금 뒤에 거문도 사건을 봐도 알 수 있지요....
    일본으로서는 미국이었던게 그나마 다행이었다고 할지...
  • 함부르거 2010/12/13 09:19 # 답글

    일단 나가사키 부교에게 애도를.
    난데 없는 배 한척이 애먼 공무원 한사람만 죽이는군요. ㅠ.ㅠ 이게 불합리한 것은 아는데, 저렇게 목숨으로 책임지는 문화가 우리 나라에도 조금은 있어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도 요즘은 듭니다.

    그건 그렇고 일본의 19세기는 초반부터 위태위태했군요. 저러고도 흑선도래까지 50년 가까이 버텼다는 게 오히려 더 신기해 보입니다.
  • 迪倫 2010/12/17 14:05 #

    우리도 원래는 저렇게 목숨으로 책임을 지는 선비들이 있었죠...민영익같은 경우에도 나라가 망하는데따라 죽는 이 하나쯤은 있어야 한다고 했던것 같은데...

    아, 하지만 19세기 초반의 일본 자체는 내부적으로 상당히 생산성도 증가하고 그리 나쁘지않았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다만 서양의 도전에는 말씀대로 아슬아슬했습니다. 어찌보면 지금 우리는 결과를 알아서이긴 하지만, 당대 일본인들은 제국주의자가 되지않으면 살아남을 수 었다는 위기감을 조야가 모두 심각하게 느낀 것같습니다. 그 결과 정한론도 대만정벌도 청일전쟁도 러일전쟁도 조선의 합병에, 중국 침략, 남양침공, 진주만 침공....쿠쾅....인간은 간혹 정말 바보같죠...
  • 迪倫 2010/12/18 17:35 #

    에구, 민영익이 아니라 민영환입니다.....OTL
  • 들꽃향기 2010/12/14 01:03 # 답글

    간략하면서도 명료하게 두프의 난감한 심정이 드러나면서도 서구식 방식과 일본식 방식의 교차(?)가 일어나고 있는 것이 흥미롭네요. ㅎ

    정작 지원의 업을 맡은 사가번의 번주가 출동하지 못하고, 명색이 막부 직할의 대외 창구인 나가사키의 방어력이 저 정도라니 대략 할말이 없습니다. ㄷㄷ 그래도 신유한의 『해유록』에서는 바다에 대한 방비가 엄중하여 우리도 보고 배워야 할 것이라던 그 모습이 저렇게 되다니. 뭔가 안습하긴 하군요....ㄷㄷ

    그나저나 영국의 깽판(?)으로 억울하게 죽어나간 일본측 관계자들에게 애도를 표하고 싶을 정도네요...OYL
  • 迪倫 2010/12/17 14:10 #

    두프는 이때만해도 아직 전체적인 바깥 상황의 변동을 몰라서 그저 영국놈들이 한번 깽판을 쳤다정도였지만 바로 2년 뒤부터는 고난의 행군에 들어갑니다..이 얘기는 다음에 계속....

    신유한의 시기는 무려 100년 전의 이야기이니 뭐 안습이긴 합니다만, 그보다 19세기 초중반 전체적인 동아시아의 상태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그런의미에서 나가사키에게 연민의 정이 느껴집니다...
  • 밥과술 2010/12/18 14:58 # 답글

    이번 회도 명불허전! 재미있게 읽고 갑니다. 얼핏들은 생각이 '카리브의 해적4편' 이 지금 편집중인데 이사람들한테 애기하면 6편, 7편에 일본으로 무대를 넓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워낙 아이디어가 고갈되었는데 눈이 번쩍뜨일 이야기같습니다.

    참, 며칠전 이글루스100 추천하라 그래서 추천했는데 당연히 딜런님 넣었습니다. 꼭 들어가시길 바랍니다. 이건 딜런님 개인을 위해서라기 보다는 '경박블로그', '일상블로그' '오덕블로그' 뿐만 아니라 '진지블로그'도 많은 사람들과 교감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는 거라고 생각하여...물론 애독자로서도요. (위의 분류는 편의상 제가 붙여본 건데, 경박이나 일상도 다 좋다고 생각합니다. 단 자괴블로그, 증오블로그는 좀...) 그런 의미에서 헤르모드님, 들꽃향기님 당근 다 추천했지요.
  • 迪倫 2010/12/18 17:43 #

    재미있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글을 올리고 한참 뒤에 답글을 달고 있는 중이었습니다.
    아무튼 과찬의 말씀을 들어서 좀 부끄럽습니다.

    아직 동아시아가 서양에 일방적으로 밀리지않았던 시간대의 카리브해의 해적같은 영화나 미디어 컨텐츠로 일본이나 한국이나 중국이 대등하게 스토리의 한축으로 제대로 다뤄지면 좋겠다는 생각은 늘 하고 있습니다. 찾아보면 이런 이질적인 충돌과 교류의 이야기들이 재미있는 얘기가 많은데 말입니다...ㅎㅎ

    아, 추천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무래도 마이너한 블로그라서 별로 기대는 안하지만 추천을 해주시는 것은 그래도 기분도 좋고 정말 너무 감사합니다.^^

    출장 다녀오시고 건강 잘 챙기시기 바랍니다! 주말 따뜻하게 보내시기 바랍니다. 저는 내일 뉴저지에 가서 현빈처럼 돼지껍데기라도 녹여먹어볼까 궁리 중입니다 ^^

  • 알파캣 2013/02/19 12:43 # 답글

    정말 즐겁게 읽구가요 ^^

    뭔가 만화에 좋은 영감을 얻어갈지도 모르겠어요 : p
  • 迪倫 2013/02/19 12:54 #

    즐겁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만화에 소재로 사용되면 저야말로 영광이죠^^ 저는 어찌하다보니 네덜란드 팬이 되어버렸는데, 두프 이야기가 알파캣님의 그림으로 그려지면 그야말로 좋겟습니다, "영국에 같이 맞서는" 이랄지 ㅎㅎ
  • lurker 2018/08/23 15:40 # 삭제 답글

    좋은 글 잘 읽고 갑니다.
    주3의 "banyoshu"는 "番方与力"에 집단 내지 직분을 나타내는 접미어 衆シュウ가 붙은 "番(方)与(力)衆"로 보이네요.
  • 迪倫 2018/08/31 13:15 #

    오래전 글인데도 잘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는 守자가 아닐까 하고 이 글을 쓴 후에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衆자일 가능성도 고려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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