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10년 네덜란드의 소멸, 그리고, 파란눈의 하이쿠 by 迪倫

蘭學雜典(3)

지난번 주 참고자료로 소개했던 책 "江戸洋学事情"(1990, 八坂書房)에서 저자인 스기모토 쓰토무(杉本つとむ) 선생이 시코쿠지방의 우와지마(宇和島)에 있는 미세 모로부치(三瀬 諸淵)의 구택을 방문해서 살펴본 자료 중에 미세 모로부치가 보관하고 있었던 "ばってんことば”(밧텐코토바라고 읽습니다. 밧텐은 ~에서부터라는 의미의 나가사키 방언이라고 하고 고토바는 말이라는 의미입니다만, 실은 이름과 전혀 다른 네덜란드어로 된 원고입니다)라는 일종의 난일(蘭-日) 사전의 원고가 있었는데, 이 원고는 헨드릭 두프(Hendrik Doeff)라는 나가사키 데지마의 상관장商館長 즉 오페르호프트Opperhoofd의 미려한 깃털 펜 서명이 남아있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헨드릭 도프두프라는 사람은 앞서 얘기한 지볼트만큼이나 난학의 지평에 상당히 두드러진 인물입니다. (**헨드릭 두프가 더 정확한 표기인 것 같습니다. 아래 모두 수정합니다. 저때문에 덧글에 도프로 쓰신 분들께 죄송하다는 말씀 전합니다. 지적해주신 ghistory님께는 감사!)

데지마가 존재한 219년동안 비오시의 상관장은 총 154명이었습니다.(중복되는 사람도 각각 별개로 계수합니다) 대체로 평균 1.4년의 간격인가 싶은데, 실은 한명을 제외하고는 공식적으로 초기에는 최대 2년의 체류만 허용되었습니다. 무려 14년을 상관장으로 데지마에서 머문 이 예외적인 한명이 바로 헨드릭 두프입니다. (상관장은 중임은 할 수 있지만 연임은 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여러 차례에 걸쳐 바타비아-데지마를 왔다갔다하며 부임을 반복한 경우도 많습니다. 그리고, 실은 1792년 이전에는 대부분 한번에 1년간 부임을 하다가 도프 이후에는 평균 4~5년씩 체류하게 됩니다. 이 이유는 나중에 다시 설명드리겠습니다)

잠시 시간과 장소를 거슬러 18세기가 끝나는 서북유럽으로 갑니다.

18세기 초반의 잠시간의 영-란 화해무드는 어느덧 사라지고 대서양과 동인도 상에서 잉글랜드와 네덜란드의 라이벌 갈등은 점점 골이 깊어갑니다. 하지만 전세는 영국의 편으로 점차 기울어가고, 네덜란드는 게다가 남쪽의 거국 프랑스의 지속적인 야욕에 점차 구석으로 몰리게 됩니다. VOC는 이 와중에 한때는 잉글랜드를 인도로 몰아내고 스파이스와 일본은의 황금알 동인도를 차지하였던 영광을 뒤로하고 전세가 역전되어 수익성의 악화를 반복하면서 나중에는 더 이상 자랑스런 공화국의 자금시장의 서포트를 받지못하게 됩니다. 실은 윌리엄 3세의 영국 금융혁명의 결과 런던이 자금시장으로 부상하고 네덜란드는 프랑스의 침공으로 자본이 대거 런던으로 이동하면서 전반적으로 돈줄이 영국쪽으로 건너가 버린게 장기적으로 해외 시장에서의 부실로 연결됩니다. 그리하여 1796년 VOC는 이제 역사 속으로 역할을 다하고 네덜란드 정부에 귀속됩니다. 지금의 인도네시아의 자카르타인 바타비아를 중심으로 한 VOC의 동인도회사 영역은 이와 함께 청산작업이 마무리되고 차터 연장이 중지된 1800년 최종적으로 네덜란드령 동인도로 전환되면서 본격 19세기 제국주의풍의 식민지가 됩니다.

그런데, 실은 1795년부터 1815년까지 프렌치 바타비안(French Batavian) 시대라고 부르는 20년 동안 나라 자체가 풍전등화에 휩쓸립니다. 18세기 내내 네덜란드 공화국의 정정을 양분화한 공화파인 스타츠헤진던 Staatsgezinden (Republicans)와 왕당파 즉 프린스헤진던 Prinsgezinden (Royalist 또는 Orangist 라고도 합니다)의 갈등의 수위가 점점 높아지다가, 결국 1795년 프랑스혁명군의 백업에 힘입은 공화주의자들이 바타비아 혁명을 일으켜 1795년 바타비아 공화국을 수립합니다.....만 곧, 프랑스의 영향에 들어가버리고 맙니다. 앙시앙레짐이든 레볼루시옹이든 프랑스는 프랑스인거죠.

18세기로 넘어가는 10년동안 바타비아 공화국은 보다 급진적으로 1796년 3월1일 VOC를 국유화하고 컴파니의 동인도를 국유 식민지화 합니다. 비슷한 EIC가 영국 정부에 인도를 넘기는 것이 무려 반세기 뒤의 19세기 중반인 것을 보면 네덜란드의 조치가 어느 정도로 급진적이고 앞으로 전개될 시대를 앞서 나간 것인 지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물론 앞서나가는게 바람직하다는 것은 당연히 아닙니다.)

VOC의 레졸루션은 실은 좀더 복잡하게 전개됩니다만, 다음 기회로 미루도록 하겠습니다. 다만 한마디로 근세에서 근대사회로 접어들면서 본격 국민국가 즉 네이션이 확립되자 천하의 VOC 같은 다국적 수프라내셔널 기업도 네이션의 뒷받침이 없이는 더 이상 존재할 수 없게되었다는 점에서, 이후 피를 부르면서 전개된 19-20세기의 내셔널리즘을 이해할 수 있는 한 단초가 된다고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무튼, 그 다음 10년은 네덜란드로서는 불과 얼마전의 골든 에이지를 무색하도록 아예 국가가 소멸되기까지 하는 난리를 겪습니다. 유럽 역사의 괴수 나폴레옹이 등장하자 그나마 우산 속에 있던 바타비아 공화국을 아예 동생 루이를 왕으로 세운 괴뢰정권 홀란트 왕국을 만들더니 1810년에는 그마저도 아예 프랑스제국에 완전 흡수해버립니다.

소위 나폴레옹 전쟁기간이라고 하는 이 시기에 전쟁이 유럽에만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이때 영국은, 없어진 네덜란드도 유럽에서 좌충우돌하고 있는 나폴레옹의 프랑스도 더이상 손을 쓸 수 없게된 네덜란드령 동인도의 주요 거점을 대부분 점령하고 맙니다.

시간이 지나 나폴레옹이 몰락하고 유럽이 다시 재편되면서 1813년 연합 네덜란드가 마침내 되살아나고, 이듬해인 1814년과 1824년의 영-란 조약으로 다시 나폴레옹 이전의 영토를 돌려받으면서, 네덜란드령 동인도는 1949년까지 이제 20세기 제국주의 식민지로 다시 지속이 됩니다.

그런데 이 기간 특히 1810년부터 1813년 네덜란드라는 국가가 소멸한 4년간 전 지구상에 네덜란드의 삼색기가 계양되었던 유일한 곳이 한 군데 있었는데, 이곳이 15,395 평방미터(대략 4,700평) 남짓한 바로 데지마였습니다. 그리고, 이번 얘기는 이 때 데지마에 머무른 사나이의 얘기입니다.

근대 이전까지는 실은 일본의 문화라는 게 요즘처럼 전지구적 오타쿠를 양산한 적이 없습니다. 어쩌면 가장 접촉이 많았던 조선조차도 그 문화의 이해는 왜국에서 온 진기한 물품 레벨을 넘어본 적이 없는 것 같습니다. 그쪽에서는 속방으로 간주했는지는 몰라도 통신사들은 일방적인 글써주기 바빴다는 얘기만 하고 있고 일본의 문예에 눈을 돌리지는 않았습니다.

과문해서인지 조선이나 중국이나 그 어느 지역에서도 근세 일본 문예에 대한 기술을 본적이 없습니다. 철저하게 일본은 그들만의 차시쓰(茶室) 안에서 노래하고 글을 쓰고 서로 감탄하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19세기 초반 어느 파란눈의 사나이가 읊었다고 하는 두 편의 하이쿠가 알파벳으로 남아서 전해집니다.

harukaze ya amakoma hashiru hokakebune

inazuma no kaina wo karan kusamakura

**이 두편의 하이쿠의 의미와 상세한 정보에 대해서는 아래에 별도로 씁니다.

이 하이쿠를 쓴 것으로 전해지는 헨드릭 두프(Hendrik Doeff II, 1764-1837)는 1799년부터 1817년까지 무려 18년이나 데지마에 머무릅니다. 1798년부터 1803년까지는 서기로 일본에 왔던 그는 1803년부터는 정식 상관장이 되어서 1817년까지 머무릅니다. 바로 위에서 설명한 격동의 20년 동안입니다.

시바 고칸(司馬江漢)이 그린 헨드릭 두프와 그의 자바인 시종입니다.

상관장이 되고 난 직후 공화국이 프랑스의 괴뢰정부가 되어버리자 영국은 본격 동인도를 점령하고 이제는 적국 프랑스=네덜란드배를 무차별로 공격을 하기 시작합니다. 해군력도 이제 약해져버린 동인도 바타비아에서 더 이상 네덜란드배를 보낼 수 없게 되어버립니다. 상업용 물자는 중립국인 미국과 덴마크 상선을 용선하여 바타비아와 데지마를 왔다갔다 하였지만 행정체계가 소멸되어 후임 상관장을 보내줄 수가 없으니 어쩔 수 없이 데지마에 덩그러니 남았는데, 게다가 이후 네덜란드가 아예 없어져 버리자 지구 상에 유일하게 네덜란드 국기를 걸고 존재하며 버티고 있었습니다.

흐음…그동안 상관장이었던 두프는 그야말로 "일생현명" 살아남기 위해 몸부림을 칩니다. 물론 배가 더 이상 들어오지 않으니 돈도 다 떨어졌지요. 뭐 항상 오란다가 나가사키에 서양 선진국으로 있었던 게 아니라고나 할까요.

그런데 전화위복이랄지 아니면 역사의 아이러니라고 해야할지, 덕분에 그의 사정을 감안하여 두프는 나가사키 인근에 상당히 자유롭게 운신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마치 200년의 봉인이 풀렸다고 할까요. 그리고, 거의 200년만에 일본인들과 상행위나 바쿠후의 공식적인 접촉 외의 본격적인 접촉을 하게 됩니다. 실은 어떤 의미에서 이전의 난학이라면 통역을 통해 오란다의 외과술을 배워 시전하거나 책을 번역하는 것이었다면, 일반적인 통념으로서의 본격적인 국제정세에 눈을 돌리는 난학은 두프가 나가사키에 하염없이 체류하고 있던 이 시기가 결정적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19세기 이전의 데지마는 상당히 엄격하게 접촉을 통제하던 지역이었습니다. 과감하게 단적으로 말해 실제 17세기부터 2세기 동안은 네덜란드인의 일본사회에 대한 영향이라는 것은 실질적으로 없다고 해도 무방합니다. 일본은 서양문화를 지속적으로 받아들여왔다고 하는 주장들에는 안됐지만 솔직히 돈되는 동안 눈에 벗어나지 않도록 업드려있겠다가 VOC의 입장처럼 보입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다음 기회로 미루겠습니다.

하여튼 두프는 에도참부를 세번이나 다녀오고, 하이쿠를 지을 정도로 일본어를 배워 난일사전을 정리하게 됩니다. 이 난일 사전은 두프 하루마(라고 부릅니다. 이 하루마에 대해서는 나중의 기회로 미루겠습니다.)

자, 이제 본격 두프의 생존의 몸부림입니다. 바로 1805년부터 에도 바쿠후를 경악시켜 난학의 방향을 바꾸고, 두프를 이후 일약 네덜란드의 영웅으로 만드는 사건들이 발생됩니다. 그 이야기는 다음으로 넘기겠습니다.

**두프가 쓴 것으로 전해지는 두 편의 하이쿠에 대해서 우선 이 두 편은 네덜란드 학자 프리츠 포스(Frits Vos)에 의해 네덜란드어로 소개되고, 다시 막스 페르하르트(Max Verhart)에 의해 영역되어서 알려지게 됩니다. 원래 일본 문헌에 이 두편의 하이쿠가 알파벳으로 적혀있었다고 합니다.

각각의 일본 문헌 출전은 서로 다릅니다.
먼저 첫번째 하이쿠 harukaze ya amakoma hashiru hokakebune 는 1818년 오야 시유(大谷士由)가 편집한 하이쿠집 '미사고즈지(宅鮓)"에 알파벳으로 실려있었다고 합니다.
현재 일어로 다시 써진 것은 일반적으로 "春風やアマコマ走る帆かけ船" 입니다.

포스와 페르하르트의 난역과 영역은 다음과 같습니다.
Een lentebriesje-her en der reppen ze zich: de zeilscheepjes.
a spring breeze hither and tither(sic.) they hurry the sailing dinghies
(현재 인터넷에서 볼 수 있는 도프관련 내용에 인용된 영어 번역문의 tither는 thither의 오타입니다.)
'아마코마'는 정확히 뭔지 모르겠습니다. 이말에 해당되는 포스의 번역 ‘her en der’는 여기 저기 흩어진 모습을 나타내는 말입니다. 제 수준으로는 더 이상 자세히 확인할 수 없습니다.
迪倫의 한국어 일-난-영 중역은 “봄바람이여, 흩어져 달리는 돛단배”입니다.

두번째 하이쿠 inazuma no kaina wo karan kusamakura 는 일본어로 소개를 한 마쓰다 기요시 松田清 선생의 설명에 의하면, 1963년 발간된 데라모토 가이유(寺本界雄)의 책에 등장한다고 하는데, 1810년 에도 참부길에 교토의 기온에 있는 니켄차야(二軒茶屋)에 묵으면서 본 두부 써는 아가씨의 빠른 손놀림에 혹해서 쓴 것이라고는 합니다만, 아직 이 책까지 확인해보지는 못했습니다.

인터넷에 소개된 일본어 번역은 稲妻のその手借りたし草枕입니다만, 원래 두프가 적은 데로라면 稲妻の腕をからん 草枕가 아닐까 하는데, からん을 借りたし의 나가사키 방언일지 솔직히 잘모르겠습니다만, 같이 근무하는 일본인 동료는 보더니 借りる와 같은 것으로 생각된다고 합니다.
역시 포스와 베르하르트의 네덜란드와 영어의 번역은 다음과 같습니다.
Laat mij je armen snel als bliksemschicten, lenen als hoofdkussen op mijn reis.
lend me your arms fast as thunderbolts, for a pillow on my journey
역시 迪倫의 일-난-영 중역은 “번개같은 (빠른) 팔을 빌려서 (여로의) 풀베개”입니다.
(아무쪼록 迪倫의 한국어 중역은 웃어 넘기시기를…-_-;;)

**글을 쓰느라 조사를 하다 보니 프리츠 포스 선생은 상당히 유명한 동양언어학자였군요.
이세모노가타리나 삼국유사를 번역 소개한 사람이기도 하고, 60년대 한글이 가장 우수한 알파벳 시스템이라고 언급한 첫번째 서양언어학자이기도 합니다. 흐음 이분이 바로 원단 떡밥투척자였군요.

두프가 일본 체류를 기록한 "리콜렉션스 오브 재팬(Recollections of Japan)"은 얼마전 전체 분량이 번역되어서 발간되었습니다. 이 책에 대한 내용도 재미있습니다만, 다음 기회로 미뤄두겠습니다. 아무튼 당분간 저의 두프 얘기의 주 소스는 이 책입니다.
1833년 출간된 원전의 이미지를 보시려면 Herinneringen uit Japan 을 클릭하세요.

**간신히 월말 월초의 분주함을 보내고 컴퓨터에 앉았습니다. 글은 쓰고 보니 그래서 뭐 싶은데도 있지만, 그냥 본론은 아직 시작 못한 정도로 간주해 주시기 바랍니다. 하이쿠가 있으니 인문사회 밸리에 한번 올려봅니다. 아무튼 주말 따뜻하게 잘들 보내시기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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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시쉐도우 2010/12/04 15:59 # 답글

    18세기 말 네덜란드가 붕괴하던 시절의 이야기는 (아마도 정파를 불문하고)강소국의 꿈을 꾸는 우리에게 좋은 교훈이 될 터인데,

    어느 때건 적륜님께서 세세한 이야기를 해주실 날이 있을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아니합니...( ")a

    (^___^);
  • 迪倫 2010/12/06 07:21 #

    떄로 "강소국"이란 용어가 참 딜레마에 빠지는 용어가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듭니다.
    네덜란드는 특히 18-19세기 강소국이라는 용어가 얼마나 허황한 용어인지를 보여주는 케이스가 아닌가 싶기도 한데, 제 공부가 좀 더 쌓이면 언제 한번 정리해보겠습니다. 그때까지는 재미위주의 글로 대충 떄우려고 합니다 ^^
  • 시쉐도우 2010/12/04 16:03 # 답글

    나폴레옹 전쟁시기는 여러전쟁소설들(혼블로어, 마스터앤커맨더, 샤프 등등)로도 유명합니다만, 전장의 포성이 들리는 곳에서 아주 먼 너머에서 있었던 일들에 대한 미시사적인 접근도 참으로 재미있습니다.

    상관장이면서 돈줄이 말라서 고생했을 것을 생각하니, 눈물이 앞을...(공부한답시고 돈을 안벌고-아니 못벌고?-있는 저와 동병상련이...흑흑흑)
  • 迪倫 2010/12/06 07:23 #

    나폴레옹 전쟁은 영국 또는 프랑스 시선으로만 보기 쉽지요. (하지만 혼블로어는 저도 정말 좋아합니다)
    아무튼 재미있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도프에게 이렇게 감정이입을 하시다니....-_-;; 하지만 후반기의 도프는 상당히 잘 풀렸으니 너무 걱정마시기를 ^^
  • ghistory 2010/12/04 17:46 # 답글

    1.

    Orangist: 오라녀 가문 지지파.

    2.

    헨드릭 도프→헨드리크 두프?

    3.

    베르하르트→페르하르트.

    4.

    왕당파/Royalist: 엄밀하게는 오라녀가가 프랑스혁명 이전에 군주는 아니었으므로, 적합도가 떨어지는 표현들임.
  • 迪倫 2010/12/06 08:09 #

    1. & 4.: 이 두가지는 얘기가 좀 길어집니다. 기본적으로 지적하신 부분이 다 맞습니다.다만 제가 이 두분에 대해서는 나름의 이유가 있어서 '왕당파'라는 표현을 사용했습니다. 덧글말고 다음 편을 쓸 때 이에 대해서 짧게라도 설명을 첨부하도록 하겠습니다.

    2. 외래어 표기법을 다시 확인해보았더니 "헨드릭 두프"가 맞군요. k가 어말에 사용되면 받침 'ㄱ'이 된다고 합니다. 드리고 oe는 지적하신대로 'ㅜ'가 맞군요. 제가 아무래도 영어권에서 일상생활을 하다보니 무의식적으로 영어 발음이 입에 붙은데다가, 일본어의 표기도 ドゥーフ(도프)라서 그만 확인을 정밀하게 안했습니다. 이것 별도로 다시 알리고 전체적으로 수정을 하겠습니다.

    3. 페르하르트는 제가 오타를 냈습니다. 바로 위에는 페르하르트라고 쓰고 그만 입에 붙은 대로 영어 발음을 무의식 중에 오타를 냈군요....제가 하루 생활의 대부분을 10년 넘게 영어로 보내고 있다는 점 고려해서 양해해주시기를 봄 바랍니다.

    지적 감사합니다!!
  • 리리안 2010/12/04 20:21 # 답글

    너무 적절한 곳에서 자르셨습니다^^;

    다음 편 기대할께요
  • 迪倫 2010/12/06 07:24 #

    감사합니다!! 다음편 조만간 정리해서 올리겠습니다!
  • 헤르모드 2010/12/05 00:24 # 답글

    잘 읽었습니다. 저도 다음 편 기대합니다!

    그리고, 아시리라 생각합니다만 참고삼아 적자면, 통신사 중 한 명이 한글로 적은 와카가 전합니다. 그 자료의 사진이 연구소에 있어서 정확한 구절은 확인을 해봐야겠습니다. 한편, 명청대의 일본 관련 문헌에도 와카가 몇 수 적혀있지만, 이건 창작이 아니라 기존의 와카를 옮기고 한역한 것이어서, 오늘 소개하신 네덜란드인의 하이카이나 조선인의 와카와는 다른 문제겠습니다.

    평안한 주말 되시길^^
  • 迪倫 2010/12/06 07:25 #

    적어놓은데로 몰랐던 사실입니다. 통신사가 한글로 적었다면 아무래도 조선 국내에서 공식적으로 "왜 노래"를 지었다는 사실이 알려지기를 꺼렸던 것일까요? 한국쪽 자료는 들은 적이 없어서...OTL
    가르침을 구합니다 _(--)_
  • 질럿 2010/12/05 07:58 # 답글

    안녕하세요 지금 서울에 놀러와서 공항에서 인터넷하고 있습니다. 좋은글 잘 보았네요. 혹시 네덜란드와 영국 동인도회사에 대한 설명이 잘 되어있는 책 추찬해 주실 수 있을까요? 점점 궁금해지네요.
  • 迪倫 2010/12/06 07:51 #

    아, 한국에 가셨군요! 연말 보내고 오시는 겁니까? 즐겁게 보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잉글랜드 동인도 회사에 대해서는 상당히 많은 책들이 있습니다. 어느 책을 추천하기 곤란할 정도군요. 저도 주 관심이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라서 EIC에 대해서는 어느 책이좋다고 추천하기 어렵습니다. 실제 east india company로 책을 검색하면 대부분 EIC에 대한 책만 검색이 됩니다.
    다만 전체적으로 보시려면 Visible Cities: Canton, Nagasaki, and Batavia and the Coming of the Americans 같은 책이 있는데 아무래도 인디아쪽 보다 중국쪽을 더 포커스를 맞추고 대신 19세기 미국의 등장을 다루고 있어서 좀더 흥미로울지도 모르겠습니다.

    이전의 실버무역 시리즈에서 소개한 책들이나 앞으로 글을 쓰다가 참고도서로 소개하는 책들을 보셔도 괜찮을 것 같다고 과감하게 그냥 알려드립니다. ^^
  • 迪倫 2010/12/06 07:52 #

    아, 한국에서 출판된 책이라면 주경철 선생의 책들, 대항해시대를 저는 가지고 있습니다만, 괜찮을 것 같습니다. 그외는 한국어 책은 그다지 머리에 떠오르는 게 없습니다. -_-;;
  • ghistory 2010/12/06 16:17 #

    질럿/

    1.

    조사중인데, 필요하시면 의사를 표명해 주십시오.

    2.

    단행본 서적들 이외에 논문들도 안내 가능합니다.
  • 밥과술 2010/12/05 09:11 # 답글

    본격 도프의 생존의 몸부림, 1805년부터 에도 바쿠후를 경악시켜 난학의 방향을 바꾸고, 도프를 이후 일약 네덜란드의 영웅으로 만드는 사건들이 무얼까 정말 흥미진진합니다. 막 위키같은데 들어가 미리 보고싶은 충동을 누르고(스포일러가 두려워서) 기다리겠습니다. 다 재미있지만 특히 이번 이야기는 간결하면서도 전개가 드라마틱하여 영화로 비교하면 별 다섯개!

    제잠작에 아마코마는 배 한척이 여기저기,가 아니라 여러척이라고 보여집니다. '봄바람맞아 이곳저곳흘러서 가는돛단배' 5-7-5 로 해보았는데 궁색하긴 마찬가지...(도주)

  • 迪倫 2010/12/06 07:56 #

    별 다섯개라니 영광입니다!! 다음편을 더 드라마틱하게 써야겠다는 부담감이 확 밀려옵니다 ^^

    말씀하신 대로 배가 여러척이 흩어져 내달리는 게 맞는 것 같습니다. 난어 번역의 de zeilscheepjes가 다시 확인해보니 복수입니다. 아무래도 돛단배이니 "흘러가는"이 더 나은 표현인가 싶기도 합니다. ^^

    도프의 다음편은 흠... 좀 기대해주십시오. 알고있기로 여기 등장하는 사건은 백과사전등에 이름이 알려져있기는 해도 자세한 내용은 아마 한국어로 처음 소개하는게 아닌가 하는 자만심이 ^^ 까지는 아니지만 상당히 흥미로운 사건들이 있습니다.
  • 행인1 2010/12/05 16:08 # 답글

    나폴레옹 전쟁은 19세기의 세계대전이나 다름없었군요.
  • 迪倫 2010/12/06 07:58 #

    19세기로 접어들면 이미 일부 서구 국가들의 행동반경이 전 지구적으로 번져가고 있어서 대괴수 나폴레옹의 전쟁은 그야말로 세계대전이라 할만하죠!
  • 들꽃향기 2010/12/05 20:55 # 답글

    말씀대로 아메노모리 호슈를 통해 일본의 학술을 접하고, 오규 소라이의 학론을 알고 있던 원중거, 정약용 등의 사람들이 있었던 것에 비해서, 일본의 문학이 조선에조차도 당시에 잘 알려지지 않은 것은 의외이긴 합니다. ㄷㄷ

    지금 오히려 서구에서는 동양의 문학 하면 하이쿠를 먼저 연상할 정도라는 점을 생각할때 더욱 그렇고 말이죠. ㄷㄷ 어쩌면 본국이 사라져버렸다는 '허탈감(?)'이 도프가 자신이 머무르는 곳의 문화에 한층 더 관심을 가지고 빠져드는 심정적 기반이었을지도 모르겠다는 망상(?)이 들었습니다.

    그나저나 도프의 시기 이후로 일본의 난학수용이 질적으로 바뀌는 양상이 있다는 말씀에. 다음편을 기대하게 되는군요. ㅎㅎ
  • 迪倫 2010/12/06 08:00 #

    그렇죠. 일본 문학은 의외로 동아시아에 안알려져 있더라구요.

    도프는 원래 어학에 소질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일본어 실력과 성취에 대해 상당한 자부심도 있었구요. 그래서인지 회고록에 상당히 재미있는 서술들이 눈에 띕니다.

    다음편 아무튼 빨리 정리해서 올리겟습니다.^^
  • 함부르거 2010/12/05 22:54 # 답글

    다음으로 넘기시는 게 너무 많아서 입이 댓발이나 나왔습니다. ^^;;;
    본국과의 교류도 끊긴 상태에서 도프가 어떻게 살아남았는지 참 궁금합니다.
    이런 종류의 서바이벌(?)을 참 좋아해서요.
  • 迪倫 2010/12/06 08:02 #

    너무 많이 뒤로 넘기고있다는 얘기는 1. 할말이 너무 많아 정리가 안된다. 2. 의외로 할말이 별로 없어 만들어낼 시간이 필요하다....둘 중의 하나입니다.^^

    아무튼 좀 빨리 정리해서 올리겠습니다. 잠시 기다려 주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 2010/12/06 17:52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迪倫 2010/12/11 12:58 #

    이것 꼭 한번 봤으면 좋겠습니다. 기회 되실때 천천히 보여주시기 부탁드려도 괜찮으실런지요?
    설명을 곁들여 주셔야 하지않을까 하고 미리 걱정을 해봅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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