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세기 동아시아 크로스보더 파티장 - 왜관 그리고 데지마 (上) by 迪倫

18세기 동아시아는 보통 쇄국의 시대로 간주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실은 들여다보면 나름대로 이래 저래 교류도 지속적으로 일어나고 있었다고 할까요...

그중에 각 국에는 다른 나라의 사람들이 장기적으로 거주하는 곳들이 제한적이나마 형성되어있었습니다. 유명하기로는 물론 일본 나가사키의 VOC 상관 데지마(出島)이겠지만, 쓰시마번 소속의 일본인들의 부산 왜관도, 포르투갈인들의 마카오도 모두 이런 동아시아 내의 크로스보더(cross-border) 거주지역들입니다. 조금 더 나아가면 약간 형태들이 다르기는 하지만 마닐라의 스페인인들이나 시암 아유타야의 일본인 마을이나 남북 베트남 지역들, 바타비아 등도 대동소이한 문화가 퓨전되던 곳들이 아닌가 합니다.

자, 그런데 외부 사람들이라도 당연히 오래 일정한 자리를 차지하면 먹고 자고 인간사의 교류가 진행이 됩니다.
그래서 오늘은 이런 저런 책을 보다 나온 18세기 동아시아의 파티장으로 초대합니다!!! ....라고 할 것까지는 없고 이들 외부인들이 현지인들에게 접대한 만찬의 기록들을 한번 살펴보겠습니다.

어쩌면 현대 한국을 포함한 동아시아 음식의 기원이나 원형들을 찾는다던지 하는데 유용한 시사점을 줄지도 모릅니다. (뭐 혹시나요^^)

먼저 상편으로 국제영화제가 열리고 있는 부산의 지금 중구 용두산 공원 근처의 왜관부터 살펴보겠습니다.
일본이 원래 조선에 연회를 제공하는 기회는 우선 공식적으로는 통신사들에게 제공하는 연회가 먼저 생각납니다. 대체로 통신사의 삼사 (정사, 부사, 종사관)에게는 무가(武家) 최고의 의식 요리 중에서 최상의 "칠오삼 요리(나나고산노젠이라고도 함), 히키가에젠(引替膳), 쓰이젠(追膳)", 그리고 그 하위의 사행원들에게는 칠오삼요리(七五三の膳), 오오삼요리(五五三の膳), 3즙15채(三汁十五菜), 2즙10채, 2즙7채 식으로 제공되었다고 합니다.

3즙15채의 복원상입니다.
(출전: http://www.pref.hiroshima.lg.jp/www/contents/1174029852494/html/common/45fdfaaf019.html)

그런데, 여기에 추가하여 통신사가 갈때는 쓰시마번에 특별히 조선식 음식을 대접하기 위한 어드바이스를 받았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당시 일본과는 달리 조선은 육식을 상당히 헤비하게 하고 있었고, 일본측으로서는 상당히 난감한 음식에 해당하였기 때문입니다. 실은 통신사 사절 일행에는 도척(刀尺)이라고 백정들이 함께 동행해서 일본측에서 제공해주는 소, 돼지, 개, 사슴들을 머무르는 숙소에서 조리를 하였다고 합니다. 그러다, 점차 노하우가 쌓이자 직접 조선식 음식을 장만하기 시작했는데, 통신사의 루트인 산요도(山陽道)나 이와쿠니(岩國)에는 통신사 테마의 요리책이 전해 내려오고 있다고 합니다. 쇼토쿠 (正德 1711~1715) 기간에 쓰여진 "信使桶筋覺書 朝鮮人好物附之寫"에는 각종 육류 소재와 요리, 특히 불고기 만드는법, 내장 먹는 법 (이것은 바로 ホルモン焼き?), 갈비 만드는법, 그리고 김치만드는 법도 전해져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내용상 직접 조선인들과 접촉해온 쓰시마번이 아니라면 알기 어려운 정도의 자세한 가이드가 포함되어있다고 합니다.

다시 쓰시마번을 거쳐 왜관으로 갑니다.

왜관에서 조선인들과 일본인들이 함께 나누게 된 접대음식은 우선 조선식과 왜식이 각각 다릅니다. 조선식은 일본측에서는 젠부(膳部)라고 부르는데, 대구나 상어, 말린 문어나 전복도 있지만, 돼지고기 편육이나 곱창이라던지 쇠고기 산적, 소 곱창으로 상당히 일본쪽에는 부담스런 음식이 많았다고 합니다. 하지만 왜관에 오래 체제한 이들은 육식에 맛을 붙인 이들이 꽤 많았다고 하는군요.

반대로 왜관에서 조선인들이 자주 접하던 대표적인 음식으로 조선측에서 좋아한 것으로는 지난번 소개한 적이 있었던 "스기야키"가 최고 인기이고, 그다음으로 안코(鮟鱇: 아귀 종류), 하마야키(濱燒: 도미 활어의 시오야키 즉 소금구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소멘(소면)이라고 합니다. (스기야키 얘기는 여기 클릭)

하지만 얘기가 길어졌지만 오늘의 주제는 이런 스기야키 정도가 아니라 왜관에서 본격 작심하고 주최한 향연요리입니다.

1736년 (영조 12년, 교호 21년) 2월 2일 조선과의 공목미 조정을 위해 왔던 공작미연한재판(公作米年限裁判) 아사이 요자에몽(浅井與左衛門)이 교섭을 마치고 돌아가기전 베푼 일종의 공식 만찬인 봉진연(封進宴)의 경우 기록이 자세하게 남아있습니다. 보통은 왜관 밖의 연대청에서 이루어지는데 이날은 특별히 왜관 안의 재판옥에서 행해졌다고 합니다.

먼저 그간의 교섭이 타결된 서계(외교문서)와 별폭(목록)이 전달되는 공식 식순이 끝난 후 조선측에서 먼저 15종의 요리상을 베풉니다. (조선 요리는 요번에는 간략히 넘어갑니다)

그런 다음 일본측에서 일본 요리를 냅니다.(정확히 뭔지 확인이 안되는 괴식들이 좀 있습니다. 가능한 찾아서 주를 달아보기는 합니다만...)

1. 혼젠(本膳): 메인 디시
도미회와 싱싱한 와사비
조림(이리자케 煎酒): 작은 다다미(だだみ: 대구의 이리), 바다 소칸(?), 꽈리,
된장국: 메우토, 세이, 작은 조개류, 작은 굴, 표고버석, 쑥부쟁이
고이모노(香物 일본식 김치) 여러가지
조림(坪煮物 쓰보니모노): 얇게 저민 칡, 잘게 썬 해삼, 은행


2. 니노젠(二の膳): 추가로 내는 곁상
작은 접시: 미소된장을 풀고 닭고기 채를 놓고, 군밤, 참마, 연뿌리, 이누가라시(いぬ‐がらし)라는 약초, 쓰쿠시(つくし 뱀밥, 토필이라고 하는 식용풀)
소금 또는 간장의 맑은 국: 흰살 생선, 마늘
덴모쿠(天目 보시기 모양의 그릇 ): 쑥갓, 석이버석, 호두

3. 히키데(引て 또는 히키데모노引て物, 히키자카나 引肴): 주인이 내놓고 권하는 선물
큰 접시: 작은 도미, 끼얹은 국물
넓은 그릇: 중간 새우보리(車鰕 구루마에비), 송이버섯, 쓰토가마보코(짚으로 싼 어묵蒲鉾), 2색 달걀(네조각), 우엉, 파란 채소
나무그릇: 구운 꿩고기
맑은 장국: 상어 지느러미, 생선 토막
술안주(도리자카나 取肴) 2종
다과자: 구스마키(葛卷 칡 잎으로 싸서 찐 과자), 시키사토(敷き砂糖) (오차가 따라나왔을 것으로 추정)

4. 고단(後段): 연회의 식사 후 추가 제공되는 음식물
맑은 장국: 쑤기미(오코제 鰧, 虎魚라고도 하는 생선), 챠센네(?)
찬합(주비키 重引): 가쓰오 큰것, 밀개떡
접시: 된장을 물에 풀고 포뜬 생선, 우엉, 미나리, 물들인 한천
뚜껑달린 덴모쿠: 돼지고기, 파 (이것은 다분히 조선의 영향을 받은 왜관 특유 음식이라고 한다)
작은 사기잔: 모즈쿠(海蘊 큰실말이라고 하는데 김과 비슷한 해조류)
맑은 장국(스이모노 吸い物): 바지락
찬합(주비키 重引): 말린 은어
작은 접시: 도코보시쓰케(?), 하나가쓰오(?)
맑은 장국: 볼락, 산초나무 순
나무쟁반에 담은 과자: 양갱, 다식(大落雁), 오베리야스(지난번에 설명한 벨기에 원산의 와플)
술안주(도리자카나 取肴) 3종
모듬과자: 비자열매, 오화당(五花糖)

대략 확인되는데까지 확인해서 다시 설명해보았습니다. 이 잔치상이 지금 부산 중구가 있는 자리에서 274년 전에 차려졌던 상입니다. 이 상을 조선 사람들과 일본 사람들이 함께 일을 하고 함께 나누었습니다. (심지어 별실의 조선 하인들에게도 1즙 3채가 따로 제공되었다고 하는군요)

다음은 원래 나가사키의 데지마에서 벌어진 네덜란드 연회장을 소개하려고 하였는데, 글이 너무 길어져서 여기서 일단 자르겠습니다. 나가사키의 네덜란드 뉴이어 파티는 실은 여기서 한발 더 나가 에도 후기 난학(蘭學)의 중요한 모티브 아이템이 됩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국땅에서 먹는 것을 현지인들과 나누는 것만큼 중요한 임무도 달리 없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자, 네덜란드 파티 얘기는 다음 하편으로 넘깁니다.

**출전: 다시로 가즈이, "왜관 - 조선은 왜 일본사람들을 가두었을까?" (원제: 倭館―鎖国時代の日本人町 (文春新書): 田代 和生), 논형 2005 입니다. 이 시기에 관심있으신 분에게는 정말 추천합니다. 한국쪽에서도 카운터파티였던 동래부, 역관, 래상에 대한 더 많은 연구가 나와서 서로 온전한 모습을 재구할 수 있게 되면 좋겠습니다.

**다시 한번 음식밸리에 올리기로 했습니다. 대화를 걸어주시기 기다리고 있습니다...라고 할까요 ^^

핑백

  • 迪倫齋雜想 : 18세기 좋아하는 시조 한수 2011-04-11 10:45:10 #

    ... 설들을 보면 대부분 오색 사탕이라고 설명을 하고 있는데, 제가 이전에 왜관에서 제공한 음식 상차림에서 한번 언급한 적이 있는 아이템입니다. (18세기 동아시아 크로스보더 파티장 上) 다시로 가즈이(田代和生)의 글 왜관에서도 언급을 하고 있는데, 조선에는 사탕(지금의 설탕)은 남방산이라 귀중품이고, 맛을 본 조선인 ... more

덧글

  • 밥과술 2010/10/12 15:05 # 답글

    히키데모노는 현장에서 먹는게 아니라 싸가지고 가서 먹으라는 일종의 선물보따리가 아닌가 싶습니다. 기회되시면 번역하신 메뉴 원문이 어디있는지 가르쳐주시면 한번 보고 덧붙일 이야기 있으면 덧붙이도록 하겠습니다.
  • 迪倫 2010/10/13 02:29 #

    일단 다시로 가즈이의 책에서는 "처음부터 잔칫상 위에다 펼쳐 놓은 것이 아니라, 테이블 같은 곳에 올려놓고 음식을 나르는 사람이 손님에게 권하면서 돌리는 요리이다<일본요리비전집성>."라고 설명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원래 일본에서 같았다면 이렇게 많은 요리를 준비했으면 니노젠으로 끝나지 않고 산노젠, 요노젠으로 계속 나갔을텐데 바로 고단에서 혼젠규모의 음식을 다시 내놓은 것은 일본과 조선의 상차림의 차이 즉 조선에서는 상다리가 부러지게 한상 차려내야 하는 스타일이라서 조선쪽을 고려해서 볼륨잇는 상을 준비한게 아닌가 하고 추정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일본요리의 룰을 따르면서 후반부는 조선풍을 의식한 배선법을 채택한 왜관 특유의 하이브리드라고 하는 것으로 봐서 아마 히키데도 원래 말씀하신 선물용 음식이 보다 그자리에서 제공하는 스타일로 바뀐게 아닌가 싶습니다.

    대신 특히 스기야키를 좋아하는 조선측 고관들을 위해서는 따로 스기야키 된장을 선물로 증정하는 경우는 많이 있었다고 하니 아마 조선측에서 좋아하는 맛있는 음식이나 과자는 별도로 챙겨보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원문은 실은 저도 찾기가 어렵습니다. 요리 내용의 원 출처는 아사이 요자에몽(浅井與左衛門)이 남긴 기록인 "裁判記錄"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이를 인용해서 다시로 가즈이 선생이 쓴책을 다시 한글로 번역한 책을 제가 사용했습니다. 그런데 한글 번역이 설명을 많이 달아두긴 했지만 한자나 일어를 모두 표기해두지 않아서 제가 위에 언급한 대로 찾는 데까지 찾아서 재구성해보았습니다. 일본어 원서에는 아마 좀더 정확한 표현이 있지않을까 생각이 됩니다. 원래의 '재판기록'은 찾아본 바로 웹상에서는 일본측에서 화과자에 대한 조선의 취향쪽으로만 주로 인용되는게 다고 전체 코스요리에 대한 내용은 아직 못찾아보았습니다. 혹시 보시고 제가 잘못 파악한 게 있으면 언제든지 알려주십시오.
  • Esperos 2010/10/12 16:14 # 답글

    참 역사란 당시에는 사소한 것도 이렇게 되돌아볼 거리가 되는군요.
  • 迪倫 2010/10/13 02:31 #

    의외로 사소한 것이 많은 내용들을 시사해주는 경우가 많이 있는 것 같습니다. 원래 대단하지는 않아도 쓰려고 했던 본론은 다음편 네덜란드 파티를 쓰면서 다시 언급하겠습니다.
  • 앨런비 2010/10/12 20:37 # 답글

    다시로 가즈이의 책을 보면 일본 고어를 읽을 줄 알고 한자는 당연히 해독 가능한 일본의 한국사 연구자들이 얼마나 무서울 수 있나 알 수 있죠;;
  • 迪倫 2010/10/13 02:33 #

    동의합니다. 종종 말씀대로 "무섭기"까지 합니다. 하지만 그래도 이제 한국도 점점 만만치않아져 가고 있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어서 좀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중입니다.^^
  • 함부르거 2010/10/12 23:57 # 답글

    역시나 본문과는 상관 없지만 미국의 한국계 어머니들이 집으로 놀러오는 아이들을 원체 잘 대접해서 (한국=맛있는 음식)이라는 인식이 일부 미국 아이들에게 있더군요. 이것도 중요한 민간 외교 아닌가 모르겠습니다. ^^
  • 迪倫 2010/10/13 02:35 #

    아, 본문과 상관이 없는게 아니라 말씀하신 내용이 포인트입니다. 원래 좀더 쓰려던 내용이 말씀하신 이런 에피소드와 관련이 있습니다....만 너무 길어져서 다음으로 미뤄뒀습니다^^

    우리집 애들 백인 친구애들도 덩달아 한국음식, 일본음식 종종 같이 맛있게 먹는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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