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소비의 발견 - 보충편: 공화국적 소비 4-3 by 迪倫

새로운 소비의 발견 – 마침내 근면해질 이유 (4) 에서 트랙백하였습니다.

지난번 "새로운 소비의 발견"이라는 포스팅에서 인더스트리어스 레벌루션(indusrtious revolution)이론에서 설명하는 17세기 중반 이후 서북 유럽에 등장한 새로운 패턴의 소비에 대해 소개를 하고 핵심인 "노동의 강화"로 넘어가려고 했는데, 워낙 제 설명이 소략하여 덧글에서 여러가지 코멘트를 많이 들었습니다. 그 중 덧글로 대답하기 좀 길어지는 것을 보충 설명으로 새로 포스팅을 달았습니다. 우선 맥주 생산 - 소비의 변천을 예로 들어 상품의 시장화와 취향의 발전에 대해 설명을 해보았습니다. 그런데, 상당히 여러분들이 평등한 입장에서의 취향의 발생이 공화국 네덜란드와 달리 왕정 계급사회인 잉글랜드에서는 어떻게 진행되었는지, 이것이 실은 계급간 전파의 다른 형태가 아닌지에 대해 코멘트들을 많이 남기셨습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잉글랜드에서 이 새로운 소비개념이 받아들여지는 과정과 이 취향의 형성에서 일반적 계급간 차별화/모방화 과정과 어떻게 다르게 보고있는지를 한번 살펴보려고 합니다.
우선 18세기 상업화가 진행되던 서유럽의 사회 졍제적 변동의 근본적인 동인으로 손꼽는 것이 여러분들이 많이 언급하신 '모방 경쟁' 즉 경제학적 용어로 "emulation"이라고 하는 개념이 있습니다. 쉽게 설명하면 귀족계급의 소비와 생활방식에 대한 모방과 추종이 '소비지향의 사회'를 형성하는 강력한 동인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에뮬레이션은 단순히 상인과 같은 중간계급뿐 아니라 숙련 공장노동자 계급이나 하인계급에까지 광범위하게 퍼져서 마침내 대중 소비재 상품의 보급과 시장경제화를 푸시했다는 것입니다.

뭐, 익히 다들 알고 계실만한 얘기기도 해서 특징적인 면만 하나 들고 넘어갑니다. 잉글랜드처럼 계층간 접촉이 상대적으로 가깝고 대규모의 수도 도시가 형성되어있었으며, 특히 "하인 계층"이라는 에뮬레이션이 확산되는데 결정적인 조건이 갖춰져있었다는 것이죠. 특히 이 하인/하녀 계층은 대다수 여성 노동자들로 구성되어서 모시는 귀족계급의 최신 스타일과 신상품들을 알리고 전파하는 강력한 매개체로 역할을 했다고 보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설명은 그야말로 명쾌합니다. 그리고, 중부 유럽의 궁정문화의 하층확산, 프랑스의 politesse, 잉글랜드이 사회적 모빌리티처럼 여러가지 경우에 적합한 모델입니다만, 무엇보다 근본적인 질문에 취약한 점이 있습니다. 왜 사람들은 자기보다 상위의 계층을 모방하고 따라하려고 하는 것인가요?

네덜란드의 경우 극단적으로 다른 모습을 보여주었던 것은 이미 언급을 했습니다. 네덜란드의 딜렘마는 근면 검소하게 캘빈주의적으로 노력하는, 경제적 번영을 추구한다는 오로지 한개의 덕목만을 가진 사회가 아이러니 하게도 얄짤없이 사치품에 대한 탐욕으로 몰려가버리더라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이 사치는 그들이 "공화국적 사치(republican luxury)"라고 불렀듯이 귀족의 흉내를 내는 게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오히려 자신들의 사치를 자랑스러워했습니다. 그리고, 당시 유럽 어느 도시보다도 빈민구휼 제도를 잘 갖추어두고 있었습니다.

공화국적 사치품의 아주 재미있는 예가 하나 있습니다.
"긴― 여름해 황망히 나래를 접고
늘어선 고층(高層) 창백한 묘석(墓石)같이 황혼에 젖어
찬란한 야경 무성한 잡초인 양 헝클어진 채
사념(思念) 벙어리 되어 입을 다물다" 이 시는 김광균의 1939년작 "와사등"의 일부입니다. 모더니티에 치인 식민지 시인의 어느 여름 저녁날 "와사등" 즉 가스등에 비친 도시의 모습과 심정을 그린 시입니다. 도시의 풍경은 찬란한 야경, 일루미네이션이 필수입니다. 그리고 이 일루미네이션이야말로 모더니티의 핵심입니다.

이 와사등의 프로토타입은 기름을 연료로 사용하는 가로등으로 1663년 얀 판 데르 헤이던 (Jan van der Heijden)이 처음 발명하여 암스테르담에 처음 설치되었습니다. 이 거리 가로등은 급속도로 북서 유럽에 확산되어 파리에는 4년뒤인 1667년, 런던에는 1684년 컨벡스 라이팅 컴퍼니가 들어서서 가로등을 설치하였습니다. 런던은 이후 1736년과 1738년 조명법(lightng act)과 1760년대의 일련의 도로포장법을 통해 근대도시를 만들어 나갑니다. (이 가로등의 설치는 식물성 유지나 고래기름의 대량 소비를 촉진시켰고, 1800년 경 석탄가스등으로, 1850년 이후 등유, 1882년 후에는 전기등으로 계속 전개되어 나갔습니다. 아시아는 그럼 언제 일루미네이션의 모던에 진입했을까요? 1872년 메이지 일본의 긴자에 가스등이 켜졌고, 조선에는 1887년 경복궁에 첫 전등이 켜진 후 1900년에 비로소 종로에 전기 가로등이 켜졌다고 합니다.)

이 가로등은 귀족계급의 소비를 모방하는 것이라고 보기 어렵지않습니까? 한 예에 불과하지만, 18세기 중에 네덜란드와 잉글랜드, 그리고, 프랑스의 파리에서 진행된 '사치'와 '소비'는 기존의 에뮬레이션 모델로 설명되기 보다는, 오히려 "근대성" 즉 "모더니티"로 설명하면 더 적합한 특성을 많이 지니고 있습니다.

그래서, 맨드빌이 청천벽력같은 럭셔리에 대한 탐욕이 사람들에게 일할 동기를 부여하고 그래서 사고싶은 상품을 만들도록 산업을 일으키고 그래서 일자리를 제공하고 사회를 발전시킨다고 잉글랜드 사회에 일갈을 하자, 잉글랜드 사회는 심하게 저항의 모드로 접어들었다는 것은 이미 언급을 했습니다. 그러나 점차 키배의 양상은 뭐 꼭 받아들일 수는 없지만 이론화 과정을 거쳐, 즉 말을 좀 순화해서 받아들여도 그리 거부감없게 만들자 하는 방향으로 흘러갑니다. 맨더빌에 먼저 서포트를 친것은 다니엘 디포입니다. 디포는 그의 Compleat English Tradesman (1726-7)에서 "as I may call them, I mean the sumptuary trades, the ribbons, the perfumes, the silks, the cambricks, the muslins, and all the numberless gayeties of dress; as also by the gluttony, the drunkenness, and other exhorbitances of life, it might remain a question, whether the neccessary or the unnecessary were the greatest blessing to trade; and whether reforming our vice wou'd not ruin the nation"(대충 번역하면 수많은 사치품목, 또는 탐식, 술취하고, 과잉의 생활들로, 필수품이나 비필수품이 무역의 축복인지, 우리 욕심을 고치는게 나라를 망치지 않는 것인지 여전히 의문이 남는다.) 뭐 대충 꼭 나쁜 거슨 아인거 아이야 라는 말입니다. 그러자 데이빗 흄 선생이 왈 "Everything in the world is purchased by labour; and our passions (that is desired consumer goods) are the only causes of labour(세상 모든게 노동을 해서 구매하는 것인데, 노동을 하는 원인은 오로지 우리의 (사고싶은 소비재 상품에 대한)열정이다."라고 화답하면서 한발 더나아갔구요. 제임스 스튜어트경께서는 한술 더떠 "men were forced to labour because they were slaves to others; men are now forced to labour because they are slaves to their own wants.(사람들은 옛날에는 다른 사람의 노예가 되어서 강제로 일했디만, 이제 스스로 갖고싶은 것들의 노예가 되어서 열심히 일합니다)"라고 하면서, 점차 잉글랜드 사회에 "스스로의 필요에 대한 소비와 사치의 추구"가 이론적으로 뒷받침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불후의 좌장 아담 스미스 선생께서 결론을 이렇게 내렸습니다: "consumption is the sole end and purpose of all production" 소비는 모든 생산의 유일한 끝이요 목적이다 (국부론)

잉글랜드 사회가 이 새로운 "소비"를 온전히 받아들이는데 근 100년이 소요되었습니다. 그리고, 문득 생각이 조선에 미쳤습니다. 박제가 선생은 상업의 촉진을 언급하셨는데, 조선에 도대체 사고 싶은 물건이 있었을까요? 사고 싶은 물건이 없는데 열심히 일을 해서 구매력을 가져야 할 이유가 생겨날 수 있었을까요? 초정선생에게 정말로 대답을 들어보고 싶습니다. 소비에 휘둘려서 노동을 하지않으면 안되는 이 세상에 이미 살고있는 우리의 입장에서 소비에 아직 노예가 되지않은 조선인들이 게을렀다고 해서는 안되지않을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오늘은 이 질문을 더이상 진행시키지 않겠습니다. 그보다, 여러분들께 답글로 말씀드렸던 잉글랜드에서 전개된 새로운 소비의 전개를 보충편으로 올립니다.

**역사밸리에 양질의 포스트들이 대부분이던 때가 다시 재현되기를 바랍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늦은 밤이 되어버려 오타 및 문맥 수정을 안하고 일단 자야겠습니다. ㅠ.ㅠ 감안하고 걸러서 읽어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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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라라 2010/04/27 14:25 # 답글

    좋은 글 잘 읽고 있습니다.^^
  • 迪倫 2010/04/28 11:41 #

    언제나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행인1 2010/04/27 14:29 # 답글

    [어린왕자]를 처음 읽었을 때 '가로등 켜는 사람'이 무슨 의미인지를 몰라 한참 고민했던 적이 있었더랬죠.(가스등까지 밖에 몰라서...) 나중에서야 고래기름 가로등 이야기를 읽고 깨달았던 적이 기억나는군요.
  • 迪倫 2010/04/28 11:44 #

    아, 어린왕자에도 그 캐릭터가 나오죠. ㅎㅎ
    저는 국어시간에 김광균의 와사등하고 외웠는데, 정작 와사등이 가스등의 한자 표기란 것을 뒤늦게 알았다는...어린 마음에 와사등이 가로등에 기와로 된 지붕이 있는 것인줄 알았는데...ㅜ.ㅜ
  • 들꽃향기 2010/04/27 15:21 # 답글

    재미있게 읽고 갑니다.^^ 그리고 영국에서의 '소비의 양상'이 emulation으로서 단순한 '모방적 소비'에 국한되는 아니라, 결국 소비 자체가 '모더니티적 감수성'을 이루고 시대를 만들어나간다는 지적을 하신 것으로 감히 이해하고 싶습니다. 덕분에 迪倫님께서 이전 글에서 강조하시고 싶으신 맥락이 어떤 성격의 것에었는지에 대한 이해가 촉진되는 느낌입니다.

    사실 초정을 말씀하셨으니 덧붙이는 엉뚱한 사견입니다만, 만일 조선 후기 당시의 '사고 싶은 물건'이 무엇이었일까, 그리고 만일 '소비'가 활성화되면 어땠을까 생각해보면 머리가 아찔해지기도 합니다. 그것은 바로 중국산 비단과 중국의 모자를 꼽을 수 있을테니깐요.

    (물론 조선 후기에 세모장이 활성화되어, 모자 자체의 수입은 줄여가지만 재료로서 모피의 수입은 계속되기는 하니....)

    다수의 대중이 아닌, 양반층과 중인층, 상층 양인의 모자소비와 비단에 대한 갈망으로도, 동일한 북학파 이데올로그인 박지원은 "이딴거 그만 수입해염. 은이 유출되자나염 ㄳ"이라고 비명을 질러덴 것을 보면...별다른 상품적-기호적 전환이 없이 조선사회에 '소비'가 가져왔을 결과는 어땠을지 상상하기조차도 싫습니다...=_=;;;

    (영국도 초기에는 해외산물의 소비에 대해서 상당한 국부적 우려에서의 저항이 있었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영국은 이를 식민지와 플랜테이션체제로 극복(?)하고 '근대적 소비'가 갖춰질 조건을 만들어나가지만, 조선이 그런 제국주의 테크를 취했을 가능성은 극도로 낮으니 말입니다. ㄷㄷ)
  • 迪倫 2010/04/28 11:57 #

    조금이나마 지난번 포스팅을 보충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면 다행입니다.

    개인적으로 잰드브리스 선생의 경우 모더니티를 어느 정도 앞선 시기까지 뽑아내는지 가늠이 잘 안됩니다..

    개인적으로 들꽃향기님께 부탁 드릴까 하는 것은 혹시 안바쁘시고 기회가 되시면, 강진아 선생의 " 16~19세기 중국경제와 세계체제 - "19세기 분기론"과 "중국중심론"-", 이화사학연구 31권, 2004년을 한번 확인해봐주실 수 있겠는지요? 제가 찾아본 바로는 캘리포니아 학파뿐 아니라 이 잰드브리스 선생의 근면혁명을 소개한 거의 유일한 한국 출전같은데, 어떤 식으로 어느 책이나 논문을 베이스로 소개가 되어있는지 궁금합니다. 간단히 알려주시면 좋겠는데, 급하지 않으니 무리하시지는 말기 바랍니다. 다만 어쩌면 들꽃향기님도 흥미있으실지도 모르겠습니다...아무튼 저는 이 논문을 여기서 보기가 좀 어렵네요...OTL

    그나저나 조선후기의 경우 일반적인 통념 (조선후기는 당파에 부정부패에 무조건 막장이야라든지, 아니면 반대로 조선후기 영정조때는 세계최강 근대화 단계라든지 하는)을 걷어내고 봤을때 아직 어느 정도 사회가 변화하고 있었는지 개인적으로 잘 확신이 안섭니다. 그런 의미에서 올리신 인삼왕국의 포스팅 주목하고 있습니다...
  • 2010/04/29 01:57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迪倫 2010/04/29 10:37 #

    감사합니다. 익명님 블로그에 답글 남기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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