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소비의 발견 – 마침내 근면해질 이유 (4) by 迪倫

**미리 밝히는 말: 이제부터 진행되는 얘기는 일단 서북유럽의 특정지역에서 17세기 중반부터 19세기 초반까지 18세기를 전후로 진행된 특정의 경제적 현상에 대한 설명입니다. 따라서 전체 지구적인 규모에 적용할 수 있는지는 아직 논란 중에 있습니다. 특히 동시대 에도 일본이나 조선, 명청대 중국에 어느 정도 적용 가능할지는 제가 판단하기 어려운 미지의 영역입니다. 블로그 글의 속성상 쓰다 보면 이런 저런 표현, 특히 '유럽'이라든지 '당시'라든지 하는 용어를 일반화해서 적더라도 이점 잊지 말아 주시기 바랍니다.

17세기 후반부터 잉글랜드 런던에 특이한 유행이 불었다. 한참 앵글로-더치 라이벌전이 동인도와 대서양, 북미에서 그야말로 전 지구적으로 벌어지고 있던 와중에, 런던에는 당시의 '포털사이트'들이랄 수 있는 수많은 팜플렛이 출판되어 읽혀졌다. 특히 바다 건너 네덜란드 연합공화국의 아스라한 동인도 소식과 경이로운 상업실적과 경제구조와 문화와 기술과 정치와 각종 더치 어쩌고 저쩌고가 몽조리 번역되고 소개되고 있었다. 그야말로 진정한 란가쿠(蘭學)가 꽃피고 있었다고 할까.

18세기로 넘어가면서 빌렘3세를 따라 수많은 네덜란드인들이 잉글랜드로 건너가서 자리를 잡고 이번에는 카더라 소문을 넘어 더치인들의 입으로 자랑스런 공화국이 성취한 업적을 잉글랜드에 소개하기 시작한다. (이후 잉글랜드의 약진에 끼친 더치 영향에 대해 요즘은 상당히 긍정적인 평가를 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이 중에 정치 경제 평론가 버나드 맨드빌(Bernard Mandeville)씨가 있었는데, 씨의 팜플렛 중 일부는 공화국의 경험을 기반으로 그야말로 폭탄 같은 시각을 런던 지성계에 던졌다. (이전 포스팅에 언급한 맨드빌관련 내용은 여기, 그냥 맨더빌에 대해서는 여기를 클릭)


그 중 가장 대표적인 저서 '꿀벌의 우화; 또는, 개인적 탐욕, 공공의 이익(The fable of the bees; or, Private vices, public benefits, 1714)'을 살펴보자.

팜플렛의 표지

내용 중의 일부이다:
The Root of Evil, Avarice, 악의 근원, 탐욕
That damn’d ill-natur’d baneful vice, 그 저주받은 성악의 해로운 타락
Was Slave to Prodigality, 방탕에 노예가 되어버려서,
That Noble Sin; whilst Luxury 그 고귀한 죄악; 그러나 사치가
Employ’d a Million of the Poor, 백만의 빈자에게 일자리를 주고,
And odious Pride a Million more: 그리고 백만에게 다시 거들떠보기도 싫은 자부심을 주고;
Envy it self, and Vanity, 부러움 그자체, 그리고 허영이
Were Ministers of Industry 산업의 주관자들이었다네 (Mandeville I, 25).

Man never exerts himself but when he is rous’d by his Desires: While
인간은 그의 욕망이 그를 일으키지않으면 절대 그 자신을 발휘하지않는다;
they lie dormant, and there is nothing to raise them, his Excellence
가만이 드러누워서 지내면서, 그를 일으켜불러낼 게 없으면, 위대함이랄지
and Abilities will be forever undiscover’d, and the lumpish Machine,
능력따위는 결코 발견되지않을테다, 그리고 그 멍청한 기계는 아마,
without the Influence of his Passions, may justly be compar’d to a
욕망의 박차가 가해지지않으면, 바람불지않는 곳의 거대한 풍차에나
huge Wind-mill without a breath of Air 비교할 수 있으려나 (Mandeville I, 184).

상당히 쿨하다못해 위악적이기까지 해보이는 인간 본성에 대한 묘사들이다.
그런데, 여기서 상당히 재미있는 근대적 경제 센티멘트를 볼 수 있다. 키워드는 바로 배니티, 허영과 근면성이다. 씨는 사람들이 배니티를 추구하기 때문에 그 배니티의 노예가 되어 열심히 일을 하고 그리하여 경제가 성장하였다고 설명하고 있다. 그동안 아니 지금도 개인 레벨에서의 최악의 평가를 받는 품성 중의 하나인 탐욕과 허영이 결국 사람을 "벌"처럼 열심히 일하게 하고 결과적으로 사회를 성장시키고 사회 전체적으로 혜택을 받도록 해준다는 것이다.

그야말로 코페르니쿠스적인 전환이다.

이제 열심히 일해서 자신의 탐욕을 채우는 것이 그저 허용되는 것 정도가 아니라 그게 바람직하다는 논리인 것이다. 이 선언명제에 대해 반드시 '소비'라고 허영과 탐욕 때문만은 아니야 라는 반발이 그래도 아직 수줍은 잉글랜드 내에서 당연히 격렬하게 터져 나왔지만, 이 '소비'라는 새로운 발견에 대해 18세기 현재 이미 전적으로 부인할 수만은 없었다. 그래서 흄이나 아당스미스는 맨더빌의 주장을 반박은 했지만 지금 보면 기본적으로 같은 뿌리의 새로운 사고방식의 사회-경제시스템을 궁리하게 된다. (학교에서 무조건 외운 흄의 공리주의도 따지고 보면 더많은 이에게 이익이 돌아간다면 善이라는 한마디로 정리할 수 있다...)

그런데, 잠깐! 맨더빌씨의 논리는 기겁한 잉글랜드인들이 아니야 아니야 그럴리 없어 했듯이 무조건적인 소비와 허영과 탐욕을 찬양하는 것이 아니다. 그의 주장은 실상 17세기부터 자랑스런 공화국의 시민들이 이룩한 새로운 형태의 "소비"를 반영한 것이었다.

17세기~18세기 네덜란드의 골든에이지를 들여다 보자. 물론 당시 네덜란드 연합공화국은 엄격한 칼빈주의를 근간으로 한다고 대내외적으로 선언한 금욕주의적 국가였다고는 할 수 있다. 그런데, 이 당대 최고율의 세금과 초절정 근검절약으로 다른 유럽지역의 '신민'들을 굴욕시킨 공화국에는 아이러니하게도 당대 최고의 뉴 컨섬션 즉 신소비사회가 형성되고 있었다.

아직 한국에 번역 소개되지 않은 교과서적인 책 중에 유명한 사이먼 샤마의 '부자들의 당혹감(The Embarrassment of Riches: An Interpretation of Dutch Culture in the Golden Age, 1987)'이라는 책이 있다. 이미 앞에서 이 책의 내용 중 여러 부분을 많이 소개했는데, 당대 더치 패러독스라고 해야할지 누구보다 근면하면서 누구보다 사치스러웠던 네덜란드의 이중적 모습을 그야말로 유려한(이라지만 실은 굉장히 난해한) 문장으로 잘 전해주고 있다.

가장 대표적인 더치 패러독스라고 할만한 한 예를 들어보자. 이시대 다른 유럽인들의 눈에 비친 네덜란드인의 패션은 검정색 일색의 검소하고 단순한 브루주아 신사의 옷차림이었다. (마치 지금 대부분의 뉴요커들은 모두 검정 옷만 입고 다니는 것처럼…) 프랑스의 플람보얀트한 패션도 바로크도 로코코도 없이 그야말로 단정, 검소 질박한 검정색 의상들이 더치 공화국의 유니폼처럼 인식이 되었다.

1662년의 호흐(Hooch) 가족의 패밀리 픽처

그런데, 1미터 안으로 가까이 가서 보면 이 단순 질박한 캘빈 클라인주의 스타일 블랙수트들이 오우, 다른 유럽지역의 부르주아들은 꿈도 꾸지 못할 고급 융단천과 플란넬과 레이스로 윤기가 자르르 흐르는 고급 소재의 검정 미니멀리스틱한 디자인의 옷인 것이다. 10미터 거리와 1미터 거리의 평가가 정반대가 된다. 그리고, 이것이야말로 더치 골든에이지의 모순적 이중성을 그대로 드러내는 예이다. 당시 암스테르담을 방문한 유럽인들은 궁전도 대저택도 없는 단순 질박한 시가지의 모습에 놀라다가 정작 더치 시민들의 집을 방문하면 부자이거나 중산층이거나, 심지어 가난하다고 할 사람들조차 각종 그림과 가구와 이국적 물품으로 집안을 장식해둔 데 또 한번 놀라곤 했다.

그런데, 서유럽의 특정 지역에 특이하게 형성되었던 공화국과 그 사회에 등장한 이 사치와 향략이 왜 '새로운 소비'란 말인가? 그 새로운 형태의 소비가 근면혁명과 무슨 상관이 있는 걸까? 17세기 처음으로 전지구적으로 형성된 상업 항로를 타고 몰려든 기묘한 외국 물건들과 사치품들의 홍수 속에서 "인간"은 어떤 '행동'을 선책하고 무슨 '가치'를 추구하게 되었을까? 당대 최고의 생활 수준을 자랑하던 암스테르담의 물질적 번영은 왜 그리고 어떤 영향을 미쳤을까?

우선 이 질문들 중 '새로운 소비'란 뭔가부터 보자. 잠시 여기서 소비라는 개념을 다시 한번 되돌아보자.
근대적 경제교육을 받은 우리들은 소비와 생산이 수요와 공급의 법칙에 의해 결정되고 이로 인해 경제시스템이 굴러간다는 것이 너무나도 당연한 사실처럼 느껴지지만, 사실 전체 역사에서 소비와 생산의 시장 메커니즘이란 것은 길어봐야 400년밖에 안된 상대적으로 너무나도 새로운 시스템이다.

소비의 목적은 기본적으로 컴포트(comfort)와 플레저(pleasure)이다. 오랜 기간 대부분의 인간들에게 소비란 컴포트를 채우기 위한 것으로 더 이상의 플레저로서의 소비는 여러가지 제도적으로 제한되어 있었다. 그런데 컴포터의 소비는 일단 채워지고 나면 보링해진다. 그 다음은 플레저를 위한 소비가 된다. 동아시아나 다른 지역은 좀 다를 수도 있겠지만, 우선 유럽에서의 플레저로서의 소비의 이상형은 고대 그리스의 '향연'을 연상하시기 바란다. 생산에 들어가는 노동의 시간을 줄이고 대신 그야말로 고귀한 정신과 육체의 정련에 시간을 사용하는 것이 고대 그리스식의 이상적 인간의 플레저 추구의 소비였다. 다만 이 고상한 시민들의 플레저를 위해 노예와 여성의 노동력이 희생을 당해야만 한다는 게 그다지 이상적이라고만 하기 어려운 점이다…

자, 여기서 근대 이전 컴퍼트를 위한 소비에서 플레저를 위한 소비로 그 성격이 전이되는 것을 소비혁명이라고 부른다. 그 이전의 단계에서 근본적으로 다른 성격의 소비가 발생한다는 것이다. 소비혁명의 보다 세밀한 정의와 시기에 대해서는 여러가지 학설이 있다. 르네상스를 그 시발로 보기도 하고 20세기 들어온 다음을 그 시작으로 보기도 한다. 서유럽의 근면혁명 이론의 경우는 이중에서 17세기 중반부터 19세기 초반까지 즉 18세기를 전후로 서유럽의 일부 지역에서 일어난 "공화국적 소비양태"를 소비혁명으로 보고 얘기를 전개한다.

이 시기 네덜란드에서는 유럽 역사상 처음으로 특이한 형태의 소비가 일어나기 시작한다. 즉 "취향"이라는 소비의 기준이 등장한다. 취향은 특정 계급의 독점물이 아니라 부자에서 거지까지 모두 나름대로 가질 수 있는 것이다. 이전의 유럽 사회에서 왕실의 취미가 귀족계급에 퍼지는 경우, 계급적 경계를 더 이상 월경할 수 없도록 제재가 가해졌다. 대부분 이런 배타적 소비는 경제적 희소성이 관련된 경우가 많다.

하지만 공화국에서는 이런 배타적 소비가 아니라 취향을 매개체로 한 연대적 소비가 발생한 것이다. 더 이상 모방경쟁(에뮬레이션)으로서의 상위 계급을 따르는 게 아니라, 같은 취향의 평등한 시민들간의 취향의 세분화로 발전하였다는 것이다. 이전의 튤립투기에 관련한 포스팅에서 왜 튤립이었는가에 대해 언급하면서 한참 투기광풍의 한가운데에서도 보통 평범한 단색의 튤립은 몇 스타위브(페니)로도 살 수 있었다고 적은 적이 있다. 즉, 누구나 자신의 취향에 따라 (물론 소유자본에 따른 제한은 있지만 이것은 신분 계급적 독점은 아니다) 향유할 수 있는 소비의 시장이 발생했다는 것이다. 심지어 이 새로운 소비는 공화국의 프라이드와 결합하여 그들 스스로도 자신들의 소비를 프랑스나 독일 지역의 계급적 소비와 다르다고 구별된 인식을 하고 있었다.

이러한 소비는 조금 다른 과정을 거치기는 해도 곧 잉글랜드에서도 번져나간다. 그와 함께 새로운 소비재의 공급시장인 "아메리카"가 등장하면서 지난번 '수리남과 새로운 소비의 등장'편에서 언급한 것처럼 새로운 형태의 "식민지산 소비재 상품 클러스터"가 형성되어 소비의 패턴과 생활 패턴과 그리고 나아가 가족 내 의사결정의 구조를 바꾸기 시작한다.

이 소비의 촉발은 또한 이 지역에 이미 15세기부터 특이하게 등장한 "핵가족"과 맞물려서 이들의 '욕망과 허영'을 충족시키기 위한 전 가족 구성원의 그야말로 임금노동 의존도를 높이고, 자체 소비용 잉여가 아니라 처음부터 시장에 내다 팔기위한 분업적 생산활동의 증가, 그리고, 무엇보다 소위 '근면함'(이라고 쓰지만 실제 무지막지한 노동시간과 노동강도의 증가를 의미하는 것)이 증가하기 시작한다.

**얘기가 좀 너무 길어졌습니다. 간만에 쓰다보니 의욕이 좀 앞서고 있는 중입니다....다음에는 핵가족과 노동시간의 증가에 대해 좀더 자세히 써보겠습니다. 잉글랜드가 워낙 잘 나가다보니 네덜란드는 일반적으로 좀 가려진 편입니다만, 최근에는 잉글랜드에 끼친 네덜란드 영향에 대해 이런 저런 연구들이 많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아직도 네덜란드에 대해서는 소개가 많이 부족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위에 언급한 사이먼 샤마의 책 '부자들의 당혹감'도 17~18세기 네덜란드를 공부하려면 반드시 필독서라고 생각되는데, 나라도 번역해볼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언젠가 한국에도 꼭 번역되어서 나오면 좋을 텐데 하는 생각입니다. 현재 확인하기로는 일본에서도 번역본이 아직 나오지 않았습니다만. 다음편은 또 언제 쓸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잊지는 말아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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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고율 2010/04/17 13:50 # 답글

    오 무지무지 재밌게 읽었어요!!!
  • 迪倫 2010/04/17 13:56 #

    아, 이렇게 금방 덧글을 달아주시다니요...^-^
    오랫만이네요. 재미있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주말 잘 보내시기!!
  • 고율 2010/04/17 13:54 # 답글

    이오공감에 추천하고 싶은데요;;; 괜찮을까요?
  • 迪倫 2010/04/17 14:00 #

    감사합니다. 그런데 아마 제 설정이 이오공감 추천을 허용안함으로 해둔것으로 기억하는데, 게다가 어휴 이오공감에 가면 별로 감당할 자신이 없어서 그냥 사양해도 괜찮을까요...(이번 글은 예민한 내용은 없지만 그래도...) 그래도 그렇게 얘기해주시니 어, 생각보다 무지 기분 좋습니다 ^-^
  • 고율 2010/04/17 14:03 #

    아앗 실시간 답글;; 워낙 재밌게 잘쓰신 글이라 많은 사람들이 읽었으면 해서요. 아쉽네요. ㅡㅜ
  • 迪倫 2010/04/17 14:55 #

    너무 직접적으로 거절을 해서...혹시라도 무안하게 한게 아니면 좋겠습니다. -_-;;
    그래도 칭찬으로 내맘대로 해석하고는 '우쭐해' 하고 있는 중입니다 ^-^ (농담입니다 ㅎㅎ)
    감사합니다!!
  • 들꽃향기 2010/04/17 14:18 # 답글

    개인적으로 흥미있게 읽은 포인트는, "컴포트(comfort)와 플레저(pleasure)의 구분과, 플레저의 향유를 위한 소비의 시작과, 그것을 촉진하기도 하고 영향받기도 하는 '취향'의 탄생"인 것 같습니다.

    사실 저 역시 '소비의 근대경제로의 편입'이라는 점을 주목하면서도 소비의 질적 변화는 거의 의식하지 못했는데, 이번 글로 그 변화의 양상이 더욱 개략적으로 잡히면서도, 소비가 어떻게 한층 더 힘을 받고 근대경제 속에 편입되었는지 개연성을 얻은 것 같네요. ㄷㄷ

    다만 플레져를 위한 소비가 단순한 '플레져의 향유'에서 그치지 않고, 자본주의 사회에서 하나의 '지향(?)' 혹은 '우세한 가치'로 자리잡게 되는 것은, 오히려 사회적 계층분열이 분명한 사회에서 강화되는 면도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즉 '소비문화'의 향유자이자 주체인 부르주아 계급이 분명한 사회 주도세력으로 '인식'되고, 그들의 소비문화와 가치관이 일종의 '우세한 가치'로 자리잡음으로서,
    하층계급은 그런 소비문화를 '지향'하고 따르기 위해 자신의 노동을 더욱 시장에 내놓고, '대중소비'를 탄생시키는 메커니즘이 있다고 보고 싶습니다.

    때문에, '플래져로서의 소비'와 그것을 촉진하는 '취향'의 형성은, 지배계층이 불분명하고 구성원이 비교적 균질한 네덜란드 공화국에서 탄생했지만,
    그러한 '소비'가 우세한 지향으로 자리잡고 다수 대중들로 하여금 따르게 하는 '사회적 담론문화' 혹은 '메카니즘'의 형성은 영국이라는 공동체에서 가능했던 것이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공부가 부족하다보니 저 스스로도 무엇을 말하는 것인가 조포한 면이 있습니다만, 올리신 글을 보고 여러 생각이 들어 감히 남깁니다. 언제나 감사히 잘 읽고 갑니다. ^^
  • 迪倫 2010/04/17 15:15 #

    자러가려고 하다가 그만 지나치지 못하고 다시 눈을 비빕니다. (그냥 레토릭입니다. ㅎㅎ)

    흥미있게 읽어주신 그 부분이 이번 편의 포인트라고 생각하고 쓴 글입니다. 일단 서구의 근면혁명 이론이 산업혁명 전과 그 와중의 낮은 경제성장률과 낮은 임금 상승률에도 불구하고 산업화가 진행되고 시장이 고도화 되는 모순을 설명하기 위해 찾은 포인트가 소비가 오히려 산업을 견인해냈다는 포인트이고, 그 특이한 새로운 형태의 소비를 지탱하기 위해 노동시간이 늘어났다(즉 근면해졌다는) 것으로 요약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너무 심하게 요약을 좀 했군요)

    따라서 이 소비의 성격이 뭔지, 그 전개를 살펴 보는게 상당히 중요한 의미를 띄더라구요. 원래 이러한 플래저로서의 소비에 대해서 좀더 글을 쓰려고 햇는데, 음...나중에 다시 별도 포스팅으로 조금 구체적으로 써보도록 하겠습니다. 잠시 이번 답글에는 그냥 줄이겠습니다.

    그리고, 이 소비의 계급간 전파에 대해서는 잉글랜드의 경우 말씀하신 대로 계급이 불분명했던 네덜란드와달리 이미 기존의 공고한 계급이 있어서, 제가 위에도 "에뮬레이션"이라는 용어로 언급한 모방경쟁으로 설명하는게 보통 전통적 해석이었다고 하는데, 최근에 좀 다른 방식으로 해석을 하기도 하는 것 같습니다. 그것도 좀 얘기가 길어지고 저도 다시 자료를 찾아봐야 되어서 제가 다시 별도로 포스팅을 하도록 하겟습니다. 신비주의(?) 정책에 양해를 구합니다.

    아무튼 긴 덧글 코멘트 남겨주셔서 감사합니다!
  • 들꽃향기 2010/04/17 15:19 #

    에구. 주무셔야 하는데 이렇게까지 답변해주시니,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ㅠ.ㅠ

    이번에 해주신 답변에도 통설과 다른 여러 포인트를 시사받은 듯 합니다. 안녕히 주무시고 좋은 밤 되십시오. ^^
  • 헤르모드 2010/04/17 14:18 # 답글

    잘 읽었습니다^^
  • 迪倫 2010/04/17 14:56 #

    감사합니다!! 주말 잘 보내시기 바랍니다!
  • ουτις 2010/04/17 15:10 # 답글

    잘 읽었습니다. 저도 들꽃향기님께서 말씀하신 것과 일정한 연관이 있는 생각을 해봅니다.

    취향의 발생에 공화국적인 풍토가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에 비하여 현재 우리가 취향이라는 단어에서 받는 인상은 계층과 어떤 연관성이 있다고 여겨집니다. 고급 와인, 순수 예술 등과 같은 '취향'에 있어서 말이지요.

    다르게 말한다면 취향은 세속신분제에서의 탈피라는 측면과 함께, 자본주의 사회적인 계층과 어떤 연관을 가지고 있지 않은가 하는 생각인 것이지요. 노버트 엘리아스같은 경우에 사회적 고위층이 하위층과 차별화하고 싶어하는 노력을 문명화의 중요 동인으로 보았다는 점이 문득 떠오르는군요. ^^;
  • 迪倫 2010/04/17 15:28 #

    말씀하신 대로 기본적으로 차별화라는 것이 최근 소비의 핵심이라고 생각됩니다. 그리고, 제 의견으로는 아마 이 차별화의 도구로서의 소비의 취향화는 아마 19세기 이후 현재까지가 아닌가 생각됩니다.
    일단 제가 소개하고 있는 인더스트리어스 레벌루션의 이론에서는 거슬러 올라가서 17-18세기에 등장한 취향(taste)는 그 이전의 말씀하신 세습신분적 계급을 오히려 타파하는 역할을 했다는 설명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책에서는 공화국적 소비 (republican consumption)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기 까지 하더군요.

    물론 이게 잉글랜드로 가서는 기존의 계급시스템과 결합하면서 좀더 다른 전파/역할 양상을 보인다고 합니다. 오늘은 사실 글이 좀 길어져서 (맨더빌 얘기에 너무 많이 스페이스를 잡아먹어서 ㅠ.ㅠ) 이 잉글랜드 부분은 뒤로 미루도록 하겠습니다. 양해부탁드립니다.

    아, 그리고 말씀하신 현재 한국 사회에서 '취향'이라고 하면 계층과의 연관성이 있다는 것 미처 생각을 못했었습니다. 원래 taste라고 표현되어있던 것을 제가 번역하다보니 그만 미국 사회의 '테이스트'라는 뉘앙스가 더 크게 작용했나봅니다...이 경우는 제가 쓴 대로 '히얼아키'보다 '디퍼런스'가 좀더 강조되는 뉘앙스라서요...지적해주신 덕분에 발견했습니다. 감사합니다.
  • ουτις 2010/04/17 15:50 #

    언제나 답변이 너무 성실하셔서 감탄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 뒷부분을 계속 기대해야겠군요!
  • 슈타인호프 2010/04/17 15:15 # 답글

    매번 잘 읽고 있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 迪倫 2010/04/17 15:19 #

    재미있게 읽어주셔서 제가 감사합니다!!
  • Υυeℓ 2010/04/17 19:42 # 답글

    마침 관심있는 분야를 계속 연재해주셔서 하나씩 천천히 읽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사이먼 샤마의 책은 저도 도서관에서 보곤 영어의 압박으로 손대다 말았었는데 언젠가는 잡아야할까 봅니다.
  • 迪倫 2010/04/18 03:09 #

    안녕하세요. Υυeℓ 님.
    관심있는 분야라고 하시니 반갑습니다.
    어, 학교에 그 책이 있었나 보군요. 한번 트라이 해보시기 바랍니다. ^-^
    지난간 글이라도 질문이나 의견 남겨주시면 언제든지 대답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행인1 2010/04/17 21:18 # 답글

    잘 읽고갑니다. 당대 네덜란드인들의 그 검은 옷들이 알고보면 죄다 최고급 원단이었다니...orz
  • 迪倫 2010/04/18 03:12 #

    감사합니다. 그야 당연 심플한 검은옷이 원래 오로지 소재의 고급성으로 승부를 하는 진정한 패션이죠......라고들 하더라구요...ㅎㅎ
  • 2010/04/18 15:04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迪倫 2010/04/18 23:37 #

    아, 그렇게 생각하지 안으셔도 됩니다. 요즘 한참 바쁘신 데도 항상 읽어주시는 것 알고있습니다. 부담 갖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나저나 일본과의 비교는 흥미롭습니다. 한국인에 비하면 확실히 무채색옷을 즐겨입죠...
    당시 네덜란드의 경우 확실히 공식적 이데올로기는 상당한 캘빈주의라서 십자가까지 포함한 모든 이콘과 제례와 주교적 서열까지 모두 없애버린 단계였었고, 반대로 튀는것을 금기시 하는것이라기 보다 주위를 둘러싼 수직적인 카톨릭적 질서의 사회들로부터, 스스로를 오히려 튀게 만든게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도 듭니다만...저도 아직 그정도로 단정적인 결론을 내리기에는 -_- 무리가 좀 있는 느낌입니다. 하지만 일본과 같은 평등지향적 사회분위기와의 관련은 한번 제대로 생각해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주말 마무리 잘하시고 한주 건승하시기 바랍니다!!!
  • 엽기당주 2010/04/26 17:37 # 답글

    신소비의 발생과 중산층의 발생이 궤를 같이 하는것을 보면 흥미롭더군요.

    경제적인 부가 가져오는 의식주의 충족이 이루어지자 지금까진 보기 힘들던 감성적인 소비형태가 나타나는것이라고 보여지네요.

    현대도 이때 생긴 틀을 벗어나지 못한 것으로 보이는것이 대부분의 현대인들의 소비비율을 보면 의식주의 비율이 절반이하인 경우가 대다수입니다. (우리나라처럼 집값이 미친듯이 높아서 집값에 쓸어박는 경우에도 감성소비에 투자하는 돈이 상당하죠.)

    제가 보기엔 이 패러다임은 아직 깨지긴 이른것 같은데 과연 미래의 소비는 어떤것일지 궁금해지네요.

    교육수준의 향상과 자본의 부가 갖추어져도 인간의 욕망은 끝없이 새로운것을 원하는것 같습니다.
  • 迪倫 2010/04/27 10:47 #

    서구에서는 60-70년대 (아마 한국에서는 90년대 이후가 )부터 제2차 근면혁명 시기에 접어들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보다 고도화된 소비의 발달을 지탱하기 위해 사람들이 더 많이 일해야 하는 (이걸 가지고 '근면'이라고 부릅니다...참) 사회로 접어들었다는 것이죠...

    미래의 소비는 아예 가족의 해체를 통해서 이뤄질지도 모른다고까지 하고 있습니다. ㅎㄷㄷ

    사람의 욕망이 참 끝이 없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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