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세기 소빙기(little ice age)에 대해서... by 迪倫

지난번에 오리지널 일본의 근면혁명에 대해 이론을 처음 제안한 하야미 선생의 책 내용을 소개했었다. 원래는 슬쩍 예고편처럼 수리남을 거쳐 암스테르담과 런던으로 무대를 옮겨 서구의 근면혁명(industrious revolution) 이론에 대해 써야 하는데, 아직 생각을 완전히 정리를 못해서 잠시 한 박자 쉬면서 대신 자주 사용되는 다른 용어에 대해 한번 정리하고 넘어가려고 한다. 물론 이후의 포스팅 전개에도 관련이 전혀 없지 않아서 알아두면 당연히 도움이 될 것으로 믿고 있다.

그동안 읽어주신 분들은 잘 아시겠지만 기본적으로 내가 주로 관심을 갖고 독서를 하고있는 대상은 17세기를 전후한 전지구적 연관관계이다. 그러다 보니 때로 16세기로 또는 18세기 멀리 19세기로 확장이 되기는 하지만 17세기를 전후로 한 '근세' 즉 'early modern' 시기를 주로 포스팅의 대상으로 삼고 있다. 그런데, 이 시기를 들여다보면 간혹 어떤 현상들이 전 지구적으로 싱크로 되는 경우를 재미있는 현상을 본다. 단순히 누가 누구에게 영향을 미친 것 이상으로 같은 구조나 형상의 사건들이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하거나 지구 반대쪽의 인간들이 상당히 유사한 행동양식을 보이는 것을 볼 수 있다.

최근 대표적인 '대한제국주의자'(라고 하면 실례가 될지 모르겠지만) 이태진 선생이 집중적으로 관심을 보이고 소개하고 있는 "외계충격설"이란게 있다. 인터넷에서 반 조롱조로 외계인을 연상하는 우스개로 만드는 것도 봤다만, 기본적으로 자연과학적 데이터의 인문학적 해석에 더 가깝다고 보인다. 내가 본 글은 너무 운석충돌설에 올인한 듯한 경향을 보이기는 했지만, 결국 인류와 역사라는 게 외부 자연환경와 차단된 실험실 속의 시뮬레이션이 아니니, '지구'라는 자연과학적 요인을 고려하지 않으면 역시 반쪽 해석이 되고 만다고 는 점에는 충분히 동의한다.

그래서 잠시 한번 확인하고 넘어가려는 것은 17세기 소빙기 즉 리틀 아이스 에이지와 17세기 위기론이다. 솔직히 자연현상으로서의 17세기 소빙기는 이론이라기 보다 거의 확립된 옵저베이션이다. 대신 이와 연계된 17세기 위기론은 물론 그에 대한 인문학적 해석이라고 하는 것이 정확하다고 생각된다.

몇가지 혼동이 가능한 포인트를 지적하고 넘어간다. 17세기 소빙기는 17세기 동안만 갑자기 지구가 추웠다는 것이 아니다. 그보다 지구가 여러가지 이유로 장기적인 기후 파동을 반복하고 이 와중에 중세시기에 장기 평균 기온이 계속 상승하다 13세기경에 고점을 치고는 이후로는 지속적으로 장기 평균 기온이 하락해서 17세기에 바닥을 쳤다는 것을 의미한다. 잠시 아래 그래프를 보시기 바란다. 물론 개별 연도에는 더운 해도 있고 더 추운해도 있었지만 여기서 살펴보는 것은 장기적 추세를 의미한다.

이미지 출전: http://en.wikipedia.org/wiki/File:2000_Year_Temperature_Comparison.png
각 장기 기후 추세 연구를 재구성한 차트이다. 추세(trend)라는 것은 단선적인게 아니라 오실레이팅을 하면서 일정 방향으로 진행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17세기를 전후한 최저온 시기뿐 아니라 기온이 떨어지기 시작하면서 기본적으로 기존의 기후의 균형(이퀄리브리움) 상태가 깨어져 특히 이상 기온현상이 주기적으로 심하게 나타나게 된다. (종종 이 장기 등락파동추세를 해석해서 현대의 알 고어류의 기후전도사들은 사기꾼이라고 하는 주장도 있다. 물론 CO2가 아무리 더 늘어난다고 지구 자체가 반으로 쪼개지거나 폭발하지는 않는다. 다만 그 위에 사는 사람들이 씨가 마르게 되는게 문제인거지…지구 전체적으로 보면 그게 차라리 나을지도 모른다, 해수면이 높아진 후에 인간대신 음….돌고래가 지구를 넘겨받는게.)

소빙기라는 용어에서 추워졌다는 얘기는 단순히 겨울이 춥고 눈이 많이 오고 길어졌다는 것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그보다 기본적으로 북극의 빙하 면적이 확대되어 남하하고 이로 인해 대기순환의 교란이 생겨 길고 추운 겨울과 극도로 마른 여름이나 반대로 극도로 습한 여름, 우박, 냉해, 가뭄, 홍수 등이 빈번하게 발생하는 것을 다 포함한다. 지금의 이상기온정도는 비교도 안될 만큼 기후 변동이 불규칙해졌는데, 예를 들어 스페인의 경우 한해 내내 비가 한방울도 오지않은 적이 있다고 한다.

당연히 당시 주 산업인 농업에 미치는 영향이 컸을 뿐 아니라 근본적인 경제구조에 영향을 미치기까지 했다고 봐진다.
아래의 다이어그램을 한번 보시기 바란다. 기본적으로 기온하락이 미치는 연쇄적 상황들에 대한 플로차트이다.


쉽게 말해 춥고 긴 겨울과 여름철의 지속적인 홍수는 바로 대기근으로 연결된다. 그리고, 이렇게 급작스레 요동하는 기후라는 요인에 대처하는 개별적 집단들의 반응의 형태가 17세기를 어떻게 넘기고 다시 기후가 상승하면서 안정되기 시작하는 18세기 19세기를 어떻게 맞이할 수 있었는지 그 결과를 결정하는데 중요한 요인으로 작동하기도 했다고 보여진다. (다만 기후가 중요한 요인이었기는 해도 모든 것을 설명한다고는 아직 할 수가 없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보자. 위에서 언급한 스페인의 울트라 가뭄은 다음과 같은 해석을 가능하게 한다. 심한 가뭄과 흉년은 카스티유 합스부르크 왕가의 세금 수입을 거의 절단낸다. 세금을 아무리 가혹하게 올려도 근본적인 세입의 확충이 안되자, 이전에는 간섭하지 않던 그나마 경제상태가 나은 부르고뉴의 저지대 지역에서 직접 통치를 강화하여 세금을 확충하려는 시도를 한다. 그 다음은 이미 우리가 앞에서 살펴본 로우컨트리 연합공화국의 탄생으로 이어진다. 재정적자에 시달린 스페인은 마침 발견된 신대륙 포토시와 멕시코의 은광으로 숨통이 트여지자 대신 네덜란드 연합공화국과는 1차 정전조약을 맺고 숨을 돌린다. 허어? 그럴싸 한가요?

여기서 한발 더 나가면 이전에 설명한 적 있는 가격혁명에 대한 다른 설명도 여기 가능하다. 가격혁명의 이유로 은의 유입으로 인한 화폐량 또는 화폐유통속도의 증가뿐 아니라, 실제 장기물가추세의 기준이 곡물인데 대해 냉해와 이상기온으로 인한 곡물의 생산감소가 실제 더 큰 요인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이전에 쓴 가격혁명에 대한 글은 여기 클릭)

다음의 그래프를 하나만 더 보자. 1201년부터 1960년까지를 대상으로 한 서유럽의 곡물가격 그래프이다.


좀더 차트를 자세히 설명하면 16세기의 중반 대략 1530년대부터 1560년대에 거쳐 약하게나마 기온이 온난해지자 농업 산출이 증가하고 인구가 잠시 증가한다. 그러자 1560년경 전체적인 가격레벨이 13세기와 비슷하게 낮게 형성되었다. 그다음 다시 기온이 하강하기 시작하자 가격이 무지하게 뛰어오른다. 그리고 이것은 그저 가격혁명이 아니라 17세기 (정치-경제적) 위기로 치닿는다.

동인도와 서인도로 기세좋게 진출한 17세기 대항해시대의 유럽의 안마당에서는 그러자 전적으로 다른 경제 상황이 전개된다. 식량 즉 빵의 원료가 되는 곡식의 소유주와 토지소유주, 중개상이 이 폭증한 가격으로부터 이익과 권력을 취하기 시작한다. 엘베강 동쪽과 중서부 유럽의 영주들이 이들 위너들이다. 대신 반대편에서는 특히 마치 '제2의 농노제'가 도입되듯이 동유럽과 스페인 식민지들에 루저들이 형성된다. 또한 곡식가의 상승에 대해 상대적으로 가치가 하락하는 화폐적 임금에 의존하는 대부분 유럽 도시지역의 중류층들은 인플레로 인한 기본적 보건의 위협에까지 시달려야 했다. 하지만 유럽 내륙운하의 운송을 주도하거나 해외 시장으로부터의 부를 유입할 수 있었던 일부 서북 유럽지역 즉, 네덜란드와 잉글랜드의 상인계층은 부르주아 계급을 형성하고 마침내 연합공화국과 브리티시 엠파이어에 그 지분을 차지하고 새로운 세계의 시스템을 만들기까지 한다...는 설명이다. 어떻습니까?

이때 동아시아는 어떠했을까? 이태진 선생의 외계영향설도 상당히 재미있는 설명을 해주고 있고, 푸른역사에서 나온 김덕진 선생의 "대기근"이라 책은 당시 조선이 헤쳐나간 기록을 자세히 알려주고 있다. 동아시아와 유럽의 기후변동에 대한 대처방법의 차이는 솔직히 동아시아가 보다 국가 차원에서 조직적으로 구휼과 사회재건에 힘썼다고 보는 것이 정당할 것 같다. 바라건대 앞으로 좀더 두 지역의 대처방안과 그 결과적 상황에 대한 연구들을 볼 수 있으면 좋겠다.

때로 역사를 보는 눈이 너무 거대 담론에만 치우쳐 정작 실제 사람들이 살아가면서 겪어나가는 요인들이 무시되는 경우가 있다. 실제 자연계뿐 아니라 지구 상에서 살아가는 우리도 그 생태계의 일부분으로 서로 연결되어서 영향을 서로 미치면서 살아가는 게 아닐까? 게다가 동시대적으로나 17세기 16세기 통시적으로도 지구 상에 족적을 남긴 모든 것들은 어디서나 서로 영향을 미친다. 그러니 결론은 아무쪼록 차카게 살아갑시다.

다음은 정말로 근면혁명에 대해 포스팅을 올리겠다...

** 이번 글을 쓰는데 참고한 글은 우선
1. 이태진 선생의 "인문학의 새로운 활로로서의 외계충격설"
(www.cnu.ac.kr/~hum_res/contents/humanities%20forum/forum_6.hwp)

2. 김덕진, "대기근", 푸른역사 실록을 바탕으로 17세기 조선의 상황을 잘 컴파일한 책이다.

3. 그리고, 무엇보다 위의 두 차트를 스캔한 출처이기도 한 Wolfgang Behringer, "A Cultural History of Climate", 2007 이다. 이 책은 실제 중세부터 현대까지 기후변화가 문화에 미친 영향을 설명한 상당히 충실한 서적이다. 17세기 소빙기뿐 아니라 현대의 환경문제에 대해서도 읽어두면 보다 거시적 그리고 사회적 영향에 대해 도움이 될 것같다.

4. 그리고, 이웃 블로거 ουτις님이 이전에 이와 관련한 재미있는 글을 썼었다. "소빙기와 사상의 세기" (여기 클릭) 소빙기 기후 변동에 대한 사상적 반영을 상당히 흥미롭게 연결해본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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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迪倫齋雜想 : 17세기와 18세기의 조선을 보는 안경... 2013-01-31 13:36:59 #

    ... 다는 것입니다. 실은 여기서 설명하고 있는 17세기의 이 천재지변과 풍수해, 한파 등은 조선만의 상황이 아니라 전지구적 소빙기의 증상입니다. (이전 포스팅 17세기의 소빙기 클릭) 이런 자연 상황에 대한 각 지역 나라의 반응은 실은 제각각 입니다. 어업이나 상업이 중요 산업에 해당되었던 북서 유럽의 일부 국가들은 ... more

덧글

  • 행인1 2010/03/25 12:59 # 답글

    이태진 선생님 같은 분도 계시는게 균형이 맞는게 아닐까 합니다. 중추원 참의 직함이 아깝지 않은 분들도 계시는데...

    그나저나 소빙기랑 사회변동 관련 이야기는 근래들어 갈수록 강화되어가는듯 합니다.
  • 迪倫 2010/03/28 11:25 #

    아, 저는 이태진 선생 덕분에 눈에 띄지않았던 많은 내용들이 빛을 봤다고 생각하는 편에 속합니다.

    말씀하신대로 소빙기뿐 아니라 자연현상의 기록을 역사와 연계해서 해석을 하거나 적어도 팩터로 고려를 하는 경향이 점점 주목을 받고 있는게, 아마 정확한 역사를 바라 볼 수 있는 한 방법인 것 같습니다.
  • 함부르거 2010/03/25 13:44 # 답글

    소빙기의 충격을 가장 격렬하게 받았던 곳은 그린란드였습니다. 900년대에 정착을 시작해서 이미 15세기에 소멸해 버리지요. 그래프를 보면 지속적인 기온 하락의 중간 시점에서 멸망한 것인데요. 환경변화의 충격은 항상 변방에서부터 온다는 점을 여실히 보여주는 사례가 아닌가 합니다.

    제레드 다이아몬드의 "문명의 붕괴(Collapse)"에서 이 과정을 다룬 챕터는 몇 번을 읽어도 비감에 젖게 됩니다...
  • 迪倫 2010/03/28 11:28 #

    그린란드 얘기는 안그래도 위의 책에 내용이 나옵니다. 그린란드는 좀 극단적인 케이스이지만 스칸디나비아 반도의국가들은 대부분 예외없이 주거지의 소멸이라는 현상을 겪더라구요. 거의 멸망같은 모습으로...

    인간이 그리 대단하지 않은 자연의 일부분이라는 것을 새삼 상기하게 됩니다...
  • 들꽃향기 2010/03/25 14:19 # 답글

    잘 읽고 갑니다. ^^ 개인적으로는 소빙기설 자체는 받아들일 수는 있지만, 그것으로 조선사회 시기구분을 지으려는 시도는 반대하는 편이다 보니 (낄낄) 그럼에도 불구하고 迪倫님께서 올려주신 자료를 보고 소빙기에 대해서 너무 과대하지도 않고 과소하지도 않은 적절한 시각을 얻은 것 같습니다.

    브로델도 지적한 바가 있지만 17세기란 시기는 외연적으로는 역동적이고 번영하는 모습을 보여주면서도, 내부운영에서는 빈곤이 상존하는 모습을 보이는데, 이것을 맑시즘적 사학에서는 빈부격차와 농민층 분화의 틀로 대체로 설명해오던 측면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런 단선화된 논리 외에도 여러 요인이 있을 것이고, 이에 迪倫님의 문제제기와 논지에 공감합니다.

    이 전세계적으로 암울한 시기에도 중국 강남(이곳은 정말 먼치킨;;;)은 별 충격을 받지 않은 것 같지만. 그래도 중국도 나름 여러지역에서 문제가 생겼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재밌는 것은 중국 역시도 조선처럼 국가차원에서의 구휼과 재건에 힘썼지만, 정부의 재정만으로는 대응하기가 힘들어 이를 지역의 유지와 상인들에게 상당부분 분담시켰고, 이것이 송대에는 거양원(居養院)과 같이 국가에서 전담하던 빈민구호가, 명-청대에는 국가와 지역유지의 지분참여 형태로 변화하는 결과를 만들어, 국가가 이들 유지들이 향신(鄕伸)으로서 위상을 보장해주는 틀이 마련된 것 같습니다.

    그나저나 글 중간에서 "인간 다음에 돌고래'를 보고 뿜었습니다....ㅋㅋㅋ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 센스가 여기서 언급되었군요. ㅎ
  • 迪倫 2010/03/28 11:37 #

    덧글 중의 중국의 이 시기 구휼에 민간인들을 참여시켰다는 사례를 읽고 저는 두가지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한가지는 기근 등의 농업에 대한 소빙기적 피해가 실제 중앙/지방 정부의 세입에 분명히 부정적 영향을 준 증거가 아닐까 하는 것과 그와 반대로 농산물 특히 곡물류의 생산, 소유, 유통에 개입된 지역유지들이 이를 통해 자본의 축적이 부분적으로 가능해져서 국가적 시스템에 참여하기까지 된 것이 아닌가 하는 것입니다. 제가 워낙 중국사에 문외한이라서 더 자세히 생각을 진행시키지는 못하겠지만, 상당히 재미있는 해석도 가능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아, 안그래도 얼마전에 돌고래의 뇌 발달 단계가 인간과 큰 차이가 없고 오히려 유인원류보다는 더 발달되어있더라는 연구결과를 기사에서 보았습니다. '개성'이랄지 개별적 성격의 형성도 거의 인간과 유사하다고 하니 그동안 돌고래를 잡아먹고 있는 모모국의 경우 상당히 국격이 떨어져야 하는 게 아닌가...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 명랑이 2010/03/25 14:46 # 답글

    저는 뜬금없게도 19세기가 의외로 따뜻했다는데서 충격을 받았습니다.
  • 迪倫 2010/03/28 11:38 #

    안녕하세요. 덧글 남겨주시고 트랙백해서 글도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19세기는 상당히 기온이 상승하고 농업 생산 및 인구가 말더스적 덫에서 벗어날 정도로 성장했다고 보고 있더군요...

    자주 들러주시고 의견 남겨주시기 바랍니다!

  • 네비아찌 2010/03/25 15:34 # 답글

    17세기 소빙기가 그 뒤의 지구 역사를 가른 분수령의 하나라고 할 수 있겠군요.
    소개해 주신 책을 한번 사서 보고 싶습니다.
  • 迪倫 2010/03/28 11:43 #

    아마존의 책정보는 다음과 같습니다:
    http://www.amazon.com/Cultural-History-Climate-Wolfgang-Behringer/dp/0745645291

    그런데, 저는 경제사관련 부분만 여기 소개하기는 했는데, 이 책은 보다 광범위한 문화적 영향을 다루고 있습니다. 게다가 17세기 소빙기 부분에는 아마 네비아찌님이 특히 흥미를 가지실만한 이 시기의 전반적인 정신신경적 우울증의 만연이나 자살의 증가, 왕실의 정신병적 증상 사례 등에 대해서도 언급한 부분이 있습니다. 그외에도 20세기의 기후와 문화에 대한 얘기도 있으니 상당히 흥밀있으실 것 같습니다. 한국에서 구할 수 있을지 잘 몰라서...(요즘은 아마존으로 주문할 수 있는지???)
  • ουτις 2010/03/25 16:17 # 답글

    이태진 선생의 글은, 조선 후기 이후부터에 대해서 쓴 것에는 손이 좀 안 가더군요.

    쓰고 계신 글은 잘 읽고 있습니다. 부족한 제 내공에 무슨 코멘트를 하기에는 좀 겸연쩍어서 댓글은 잘 안 달던 차에, 부족한 제 글을 언급해 주시니 어찌 감사를 드려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
  • 迪倫 2010/03/28 15:37 #

    이태진 선생의 글이 좀 흥분을 가라앉히 못한듯한 느낌이 좀 들기는 해도 상당히 흥미로운 주제들을 다루시더라구요...

    그나저나 내공이 부족하다시니요...정작 부끄럽게-_-;;
    자주 얘기 남겨주시기 바랍니다!!
  • 迪倫 2010/03/26 11:05 # 답글

    읽어주신 분들과 덧글까지 남겨주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주말경에 다시 답글 올리겠습니다. 양해바랍니다.
  • 엽기당주 2010/03/26 11:27 # 답글

    사실 지금 우리가 사는 문명은 석유의 버프를 받아 식량을 폭발적으로 생산해내기 때문에 유지될 뿐이지 기본적으로 석유 공급에 차질이 생기거나 기후변화가 석유버프를 상쇄할정도가 되면 붕괴하겠죠.

    식량과 에너지의 이동은 문명의 발전성쇄와 연관관계를 파악하는데 있어서는 필수적인 지식이라고 봅니다.

    미국 중부의 대평원에서 3년간 기근이 들어 미국의 대외 식량작물 수출이 3년정도 1/5정도로 격감한다면 과연 세상엔 어떤일이 벌어질까요?

    오싹하군요.
  • 迪倫 2010/03/28 11:45 #

    말씀하신대로 이 화석연료의 대단위 사용이 실제 인류의 역사에 대단히 짧은 부분인데, 이미 너무 의존도가 커져버린 것도 사실입니다.

    미국의 농업, 중국의 농업, 어쩌면 우리는 이 두곳에 인류의 생존을 저당잡히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 밥과술 2010/03/28 14:44 # 답글

    언젠가는 반드시 올 것을 알면서도, 막상 닥치기 전까지는 실감하지 못하는게 인간의 본성이라고 생각합니다. 하기야 우리 모두가 언젠가는 죽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죽음의 공포는 직전까지 잊고 사니까요. 늘 죽음의 공포와 대면하고 살게 된다면 정상생활을 영위할 수가 없는 점도 있겠지요.

    식량위기, 자원위기는 멀지않은 장래에 반드시 일어난다고 봅니다. 저는 한국에서(제가 한국인이니까, 누구라도 어디라도 좋습니다) 제대로 먹고 살기위해 각성하여 그 운동이 지구적으로 확산되어 문제를 해결한다는 희망을 놓지 않고 있습니다.
  • 迪倫 2010/03/28 15:44 #

    정말 잘먹는다는 문제가 단순히 개인의 식도락이 아니라 산업 구조, 아니 더 나아가 근대라는 역사의 흐름 속에서 서로 영향을 주고 받으며 존재하는 인간과 다른 모든 생물들이 연결된 거대한 메트릭스의 문제인 것 같습니다.

    저도 밥과술님의 글을 읽으면서 여러가지 많은 생각과 공부를 하고 있습니다. 그런게 자꾸 모여 세상을 바꾸는 힘이 되지않을까 하는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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