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토리안 모럴, 근면혁명 그리고 비밀 by 迪倫

온디멘드 블로깅 시리즈의 두번째 그리고 프로바블리 마지막 편

지난 연말 선물시즌에 아내를 따라 가게들을 전전하다 빅토리아즈 시크릿 가게에 그만 따라 들어가게 되었다.
물론 평소에는 관심은 지대하지만 내 생활 동선에 전혀 들어있지 않은 미지의 세계인 곳이지만, 연말의 분위기에 휩쓸려 얼떨결에 발을 들여놓게 되었다고 밖에는 달리…
의외로 아저씨들이 골똘히 여성용 인티메이트들을 분석하는 자세로 몰입해서 상품들을 고르고 있었다. (이런 의류는 언더웨어underwear 라고 하지않고 인티메이트intimate (clothing)라고 부른다) 따라들어간 나만 멋적어하지 누구도 실제로는 관심을 갖지 않아 곧 나도 그럭저럭 분위기에 익숙해지게 되었다고 할까, 하지만 시즌이 시즌인지라 사실 가게 안은 반쯤은 돗대기 시장 분위기가 되어가고 있었다만, 그래도, 대체로 건실한 사회인 남성에게는 상당히 자주 없는 흐뭇한 경험이었다라고 하기엔 아무래도...-_-;;

그 후 아내가 놀림성의 레벨에서, 그럼 한번 迪倫의 진면목을 드러내는 빅토리아즈 시크릿에 대해서도 글을 써봐라는 요청을 하였었다. 물론 나의 블로그에는 맞지않는다능 하고 저항을 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보곤족* 행정용어처럼 '레지스탄스 이즈 유슬리스'라고나 할까…*Hitchhiker's Guide to Galaxy 중에서 은하계 행정관료 종족 Vogon족의 행정처리용어"Resistance is useless"
게다가 이 '빅토리아즈 시크릿'말고는 더 이상의 뉴욕관련 포스팅 리퀘스트도 없고 아마 이 시리즈로 온디멘드 블로깅은 수명을 다하려나 보다. 아무튼 내게는 뭐든지 재미없는 심각한 얘기로 둔갑시키는 재주는 있는 것 같으니, 그런 의미에서 "빅시"로부터 흘러흘러 가는 말도 안되는 세계를 탐험해보자, 그럼.

스팀과 석탄 스모크가 자욱한 19세기 영국으로 돌아간다. 19세기 후반의 대영제국 시기를 당시의 여왕 및 여황 빅토리아의 이름을 따라 빅토리안 시대로 부른다. 이 시기 영국 사회가 성취한 사회적 표준이 20세기 중반까지 때로는 문명개화의 지고한 롤 모델로, 때로 가장 폭력적 제국주의–식민주의의 롤 모델로 전 지구적 부러움과 재앙으로 주도권을 쥐고 무차별로 적용이 되었다.
그 전 시기의 조지왕들의 유쾌한 방종과 쾌락(그리고 광기도)은 사라지고, 속도와 진화와 성장 같은 시대정신과 도덕적 엄숙주의가 지배를 하게 되었다. 이른바 빅토리안 모럴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이 빅토리안 모럴의 근저에는 경제적 구조의 변화가 있었다.
잠시 90년대 이후 서구에서 대두된 인더스트리어스 레벌루션(industrious revolution 근면혁명으로 주로 번역한다)의 설명을 빌리자면, 모든 가계 구성원이 경제 활동에 그야말로 '근면하게' 경제 생산활동에 참여하였던, 산업혁명 전의 1차 근면혁명의 전근대 유럽사회는, 산업혁명기에 접어들면서 브레드위너(breadwinner) 사회로 탈바꿈한다. 즉, 이 산업혁명과 맞물린 새로운 구조의 특징은 가계 내의 남성 단일 주수입원(breadwinner = 밥벌어오는 사람)에 대한 의존도가 확대되고, 가계가 생산단위로 기능하기보다 소비단위로 전환된다는 것이다.

이제 강도높은 산업 노동자위주로 재편되었던 시기를 잘 보여주는 윌리엄 벨 스코트의 1861년 "Iron and Coal"

다시 말해 이전에 가정에서 생산하여 소비하거나 잉여분을 시장에 내어 팔던 부분은 점차 공장제 상품으로 대체되고, 가정 내에서는 가계 주수입인 임금 노동자로서의 가장을 정점으로 한 히얼아키가 형성되고, 가장이 전체 경제적 수입을 전담하는 대신, 여성은 가사 및 육아를 전담하면서(homemaker가 되면서) 생산현장에서 빠지는 것이다. 아동기는 점차 더 많은 시간을 교육에 투입됨으로써 역시 생산력으로서의 기능이 없어지는 대신, 미래 경제적 수입을 보다 많이 최대화할 수 있는 사회적 인큐베이터 기간이 된다. 단적으로 바로 "바른생활"의 모범 가족이 형성된다. 아빠가 열심히 돈을 벌어오고, 엄마는 알뜰하게 살림을 하고, 어린이들은 열심히 공부를 한다. 빅토리아 시기에 이런 가정의 전형을 모델로 "중산층"이 형성된다.
이런 사회-경제적 변화가 도덕적 관념에도 그대로 투영되어 있다. 처음 말한 빅토리안 모럴은 그야말로 아름답고 훈훈한 바른 생활 가정을 기초로 한다. 도덕적 엄숙주의와 절제, 국가와 가정, 사회적 관심과 구휼정신, 종교적 금욕주의, 이성의 신봉과 질서있는 사회…가정이 바로서야 나라가 번성하고, 열심히 공부하고 열심히 일하면 경제가 성장하고 전체 사회가 윤택해지며, 가족 구성원은 각자의 자리에 맞는 맡은 소임에 최선을 다하고…

아아, 그러나 인생은 항상 교과서처럼 굴러가지 않는다. 이 중산층에 올라타지 못한 인생들에게는 그야말로 일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 그야말로 '근면하게' 온 가족이 경제활동을 해도 이 따위 중산층이 결코 될 수 없다. 공장의 하급 노동자, 일용직 노동자도 되지못하는, 기능교육을 받은 기회가 없어 아무런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 가장들은 숱하게 알코올 중독자가 되거나 범죄자가 되고, 여성은 이미 여성을 배제하는 모습으로 형성되기 시작한 산업구조 아래에서 더욱 열악하고 차별적 조건의 공장 저임노동자가 되거나 아니면 거리의 여자가 되고, 아이들은 거리에서 올리버 트위스트의 삶을 살아야 하는 계급구조에 갇히게 된다.

1874년 사뮤엘 루크 필디스의 그림 "applicants for admission to a casual ward" (부랑인 수용소 입소 신청자들)

경제시스템에서 밀려나서 생산에 참가하지 못하는 이런 하류층의 삶은 그 절망의 깊이만큼 도덕적으로 더욱 엄격하게 단죄당하고 사회적 터부가 된다.
그리고, 당연하다는 듯이 남성 위주의 생산 구조가 남성에 대해서만 너그러운 사회를 만들어낸다. 생산에서 소외된 여성은 엄격한 금욕적 절제를 요구받으면서 '모성'으로서 기능하는 중산층 이상과 '노리개'로 전락하는 하층의 건널 수 없는 간격으로 분리되는 현상이 생겨난다. 중산층 남성의 이중적 모럴이 본격 발휘하게 되는 것이다. 이 이중성은 제국-식민지로 백인-유색인종으로 얼마든지 양상을 다르게 하면서 적용되고 고착되었다. (근면혁명이론의 전개는 상당히 그럴싸한데가 있다)

1960년대에 이르러서야 다시 2차 근면혁명이 서구사회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자세한 원인이나 팩터들은 다음에 언제 기회가 되면 얘기하기로 하고, 일단 현상적으로는 가장 현저한 것은 가정 내 소득 출처(income source)가 분산되기 시작한다는 점이다. 즉 더 이상 '이상(理想)의 아내'는 존재하지 않게 된다. 여성이 직장에 진출하게 되고 소위 페미니즘운동이 뒤따른다. 십대 노동력이 다시 또다른 형태로 사회 노동력으로 몫을 차지하게 된다. 그리고, 잘 알려진 대로 시위현장에서 브래지어가 불타오른다.

(물론 실제로는 초창기부터 불태우지는 않았다고 한다. 사진은 뉴스위크의 2007년 11월 17일판의 관련 기사에 실린 1968년도 미스 아메리카 대회장 밖에서 처음 항의시위를 시작한 여성운동가들의 장면이다. 이날 소식이 브라를 불태운 것으로 와전되어서 전설이 되어버렸다. 솔직히 '브라를 태운다'는 보다 '과격한 여성운동'이라는 관용적 표현에 가깝다.)

그러나, 60년대 이후의 2차 근면혁명이 산업혁명 전의 1차 근면혁명과 근본적으로 다른 것은, 가정은 절대 다시 생산단위가 되지 못하고 보다 고도화된 소비단위가 되어버렸다는 점이다. 모럴도 이제는 소비하고 소비하고 또 소비하는 시스템에 맞춰지게 된다.

자, 이제 빅토리아의 비밀로 마침내 눈을 돌려보자. 빅토리아의 비밀은 아이러니하게도 브래지어가 불타고 난 후 여성이 본격적으로 생산에 등장한 2차 근면혁명이 이미 시작되고 난 후인 1977년 탄생했다. 그리고, 그 시작은 여성의 관점이 아니라 남성의 시점에서 시작되었다. 빅토리아즈 시크릿을 처음 설립한 로이 레이먼드에 대한 여러 정보들에 의하면 여성 내의류를 사기 민망했던 남성 고객에 착안하여 "빅토리아시대풍으로 인테리어한 가게"에서 시대의 흐름에 역행적인 비밀스런 환상을 팔기 시작한 것이라고 한다. 바로 빅토리아 시대의 이중적 모럴, 즉 도덕으로 감출 수 없는 이면의 욕망의 이미지를 최적화 하여, 비즈니스는 성공을 거두었다. 90년대에 들어와서 대형 의류업체 리미티드 브렌드이라는 회사가 이를 매입하여 지금은 "빅시" 부문만 단독으로 이 회사의 매출 중 60%에 해당하는 10억 달러에 육박하는 거대 욕망의 비즈니스가 되었다.
그리고, "빅시"의 대표적인 이미지는 편안함을 강조한 현대 여성의 언더웨어가 아니라, 당연히 코르셋과 가터벨터 같은 빅토리아 시대풍의 언더가먼트이다.

기본적인 "구조와 목적"은 이 19세기 언더가먼트와 다르지않다.
그 마케팅의 하이라이트는 이 환상을 극대화한 빅시 엔젤들과 그 화려한 빅시 쇼이다. 작년 티비 중계를 보면서 그야말로 엔젤들이 날개를 달고 하늘에서 내려오는 대형 쇼에 넋을 잃다시피 한 적이 있다. 이 쇼와 모델들은 실제 내 일상에서 마주칠 일도 없는 아스트랄한 경지의 심지어 야릇한 생각조차 들지 않게 만드는 환상의 이미지들이다. 냉정히 현실 속의 내게 허용된 것은 단지 이미지의 소비일 뿐이다.

직접 보세요. 어느 정도 아스트랄한 지는 여기를 클릭하세요.
엠베드하기 좀 난처해서...-_-;; 9분 정도라도 잠시 현실세계에서 벗어나보시길...아무튼 4분 30초일 때를 꼭 보시기 바랍니다.

빅토리아즈 시크릿의 공식 주 타겟 고객은 미국의 서브어브 미들클래스 즉 도시근교 주택단지의 중산층이다. 2차 근면혁명이 슬슬 지나가는게 아닌가, 아니면 적어도 모두가 경제활동에 내몰려서 심정적으로 지치고 있는게 아닌가 싶은 시대, 여성이 사회적 진출보다 가정으로 돌아가는 것이 더 가치있는 선택으로 여겨지기 시작하는 사회, 그리고, 이웃이 대부분 비슷한 소득과 학력과 무엇보다 인종구성의 균일함 속에서 가꾸어진 잔디밭처럼 잘 짜여진 세계 속에서 블라우스 속으로 살짝 드러내는 정도로써의, 중산층 데스프리트 와이프들의 '통제된 일탈' 또는 '길들여진 욕망'으로서의 역할을 하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면 너무 멀리간 것일까.

한국에 마침내 빅토리아즈 시크릿이 이달 2월부터 정식 수입 진출한다고 보도되었다. 아마 프리미엄급의 매장에 프리미엄급 가격으로 비밀을 속삭거리며 접근할 거다. 지금 한국 사회는 어느 단계에 있을까? 한국 사회의 중산층은 무엇을 꿈꾸는 단계에 있는가? 19세기 빅토리안 런던과 20세기 후반 포스트-근면혁명의 미국 사회와 21세기 서울의 욕망은 어떻게 서로 연결될 수 있을까? 스스로 한번 찾아보시기 바랍니다.


**글을 쓰고 난 후 올리기 좀 주저되네요. 주제가 문제가 아니라 내가 쓴 글이 너무 방향도 무게도 잘 못 잡고 즐거움을 모두 잃어버린 좀 현학적이랄까 바로 글에서 말한 위선적인 글이 아닌가 하는 뜨끔함이 좀 있습니다. 그냥 이런 생각도 있군하고 웃고 넘어가 주시기 바랍니다. 달리 밸리에는 아무데도 올리지 않습니다...
**근면혁명에 혹시 관심이 있으신 분은 여기 좀 적은 얘기는 일단 예고편정도로 간주해주십시오. 영어 논문을 접하실 수 있으신 분은 Jan De Vries, "The Industrial Revolution and the Industrious Revolution", The Journal of Economic History, Vol. 54 No.2, 1994 를 읽어보시면 이 포스팅보다는 당연 도움이 되실 것입니다. 아, 일본의 '근면혁명'이론과는 내용이 좀 다릅니다.
**그래도 온디멘드 블로깅에 대한 미련이 아직 완전히 가시지는 않았습니다. 아직은 주제를 받고 있습니다. 뉴욕에 대해서라니까요...

핑백

  • 迪倫齋雜想 : 근면혁명 또는 인더스트리어스 레벌루션(industrious revolution) (3) 2010-04-18 03:15:15 #

    ... 고) 가족 단위의 효용을 극대화하는 형태의 소비에 초점을 맞추게 된다. 이에 대해서는 이전 '빅토리아 시대의 모럴과 시크릿'에서 간단히 설명한 적이 있다.(여기 클릭) 이러한 한 가정 내에서 소득 원천의 일원화/집중화는 1960년대가 되자 미국과 서유럽에서 다시 제2차 인더스트리어스 레벌루션의 단계로 접어든다고 ... more

덧글

  • 바비 2010/02/07 15:49 # 답글

    MET 얘기만 써도 일년은 갈것 같은데요.

    (정말 MET가고 싶어요 ㅜ.ㅜ)
  • 迪倫 2010/02/07 23:04 #

    예, 메트는 10년 넘게 시시때때로 가는데 아직 다 못봤으니, 얘기를 적으려면 아예 별도 카테고리가 필요할 걸요...흠..한번 고려해보겠습니다...
  • 밥과술 2010/02/07 20:48 # 답글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소 여물먹듯 읽었는데 내일이나 맑은 정신에 천천히 반추하듯 다시 읽겠습니다. 술에 젖어 들어와 읽는데도 재밌게 읽혔으니, 내일이 기대됩니다^^
  • 迪倫 2010/02/08 07:20 #

    출장에 술에 어휴 아무튼 건강 조심하시기 바랍니다. 천천히 읽으시고 덧글 남겨주셔도 됩니다. 감사합니다!
  • 들꽃향기 2010/02/08 03:23 # 답글

    저는 빅토리아즈 시크릿이 란제리 업체가 아니라, 뉴욕에 빅토리아 시기 영국 금융가들이 숨겨놓은 금괴라도 있는 걸로 알았..(도주)

    말씀하신대로 전근대사회에서의 가정은 소비의 주체이면서 생산의 주체였음에도, 근대에 들어와 가정이 생산과 분리되면서, 여성과 아이라는 주체들은 가정이라는 '사적영역'에 갇힌 객체로 전화되는 과정을 '근면혁명'의 개념과 함께 쉽게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더욱이 19860년대의 제 2차 근면혁명은 생산과 생활의 주체로서의 가정의 복구가 아니라, 소비의 극대화로 귀결되었다는 말씀은, 저 자신도 미처 생각치 못했네요. ㄷㄷ (다만 개인적인 생각을 부연하자면, 오히려 남녀가 생계와 소비를 위해 다 같이 생활을 희생하고 근대자본주의 생산구조속에서 생산객체로 전화된게 아닐까 싶습니다.)

    그런데, 빅토리아즈 시크릿의 주 타겟인 미국 동부의 중산층들의 욕망이 빅토리안 시대와 유사하다면, 한국에서도 매장진출을 노린다니 왠지 묘한 기대(?)도 있네요. 19세기 부르주아 문화와 그 이면에 숨겨진 폭력성을 경계하면서도, 묘한 매력을 느끼는 저 자신이다 보니 -_-;;

    오늘 올리신 포스팅은 일본식 개념으로 알고 있던 근면혁명의 개념을 재고할 수 있었고, 여러모로 다른 생각을 전개해 볼 수 있었습니다. 잘 읽고 갑니다. ^^
  • 迪倫 2010/02/08 07:33 #

    아니 그렇게 모르는 척하시는 거야말로 빅토리아적이군요...ㅎㅎㅎ

    예, 60년대 일본에서 나온 소농중심의 생산측면의 근면혁명과는 개념이 좀 다릅니다. 제 감상으로는 산업혁명의 '인더스트리얼'에 대한 개념을 염두에 두고 전단계로 '인더스트리어스'라는 용어를 선택했는데, 마침 일본의 근면혁명과 번역이 비슷하게 가는 바람에 혼동을 좀 가져온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소개해드린 논문말고 이후에 나온 드브리스의 책 "The Industrious Revolution: Consumer Behavior and the Household Economy, 1650 to the Present "에도 일본의 근면혁명과 비슷한 현상을 보이기는 하지만 기본적으로 다르다고 선을 긋고 있습니다. (아직 이 책을 충분히 다 읽지를 못해서 자세히 쓰기에는 좀 무리가 있습니다. 양해바랍니다.)

    빅토리아즈 시크릿의 한국진출은 어떻게 봐야할까요? 우려하시는 '보수화'의 경향이라면 참 여러가지로 답답해지기는 하는데, 그보다 저는 바라기는 '섹시한 외국 유명 브렌드의 진출'정도로 보고 지나가졌으면 좋겟다고 생각합니다. 어쩌면 제가 글을 쓴답시고 너무 멀리 생각을 진행시킨 것인지도 모르지요 -_-;;

    차라리 하강하는 날개단 천사에 촛점을 맞출 거를......
  • 밥과술 2010/02/09 14:23 # 답글

    다시 와서 읽고 덧글 올립니다. 역시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덧글들도 다 재미있고, 내공이 보통 분들이 아니시군요^^;; 저는 그냥 가볍게 제 의견을 생각나는 대로 몇자 적어볼까 합니다.

    옛날 미대륙의 '인디언'추장이 하는 일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의 하나가 사냥해서 잡은 버펄로를 사이좋게 나누어 먹고, 남은 것을 땅에다 묻는 일이었다고 합니다. 배고파지면 또 나가서 사냥하게. 잉여분을 남겨놓는 것이 분쟁과 갈등의 원인이 되니까요. 이 이야기를 참 감명깊게 읽었(들었는지)습니다.

    개미들의 군락을 보면 다들 바쁘게 이리저리 움직이는데 자세히 살펴보니 정작 쓸모있게 일하는 개미는 전체의 30%에 지나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열심히 일하는 개미만 모아서 군락을 만들어보니 또 30:70으로 일을 하고 안하고 하더랍니다. 안하는 70%를 모아보니 거기서 또 30:70의 비율이 생기더랍니다. 동양철학의 不用之用, 無爲之爲 가 바로 그런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인류는 지금 생산성의 제고로 유사이래로 엄청난 '잉여'를 즐기고(고통받고) 있습니다. 그것을 흡수하여 모든 사람들이 여전히 허덕거리게 하는 기능을 하는게 Vanity 라고 생각합니다. 똑 같은 기능과 품질을 가진 가방이 브랜드에 따라 수백배의 가격차이가 나고, 옷은 수천배까지 차이가 나니까요.

    패션브랜드의 히어르알키를 들여다보면 정말 재밌습니다. 자본주의라는 게임에 참가한 모두가 '알아서 주제파악'을 합니다. 갭에서 바나나 리퍼블릭으로, 돌체앤 가바나에서 휴고보스로 그리고 정점에 베르사치와 조르지오 아르마니가 있어 모두가 월반하지 않고 바로 자기 위의 브랜드로 업그레이드를 위해 허덕거립니다. 자동차의 경우 1600cc타던 사람이 2천으로 3천으로 스스로 승진을 하구요. 그래서 셰비, 뷰익, 올즈모빌, 캐딜락 순으로 타다가 은퇴하고 휠체어로 가는 인생을 사는 겁니다. 일본에서도 그럴 본따 토요타는 카롤라, 코로나, 마크2, 크라운 순으로, 닛산은 써니부터 혼다는 시빅부터 출발하는 라인업을 만들어 낸 겁니다. 그런데 그 파라다임이 깨지면서 내부혼돈이 온것도 오늘의 리콜사태를 야기한 원인의 일부일 거라고 믿습니다.

    Laura Ashley가 오드리헵번의 로마의 휴일에서 뒤집어 쓴 스카프한장으로 세계브랜드가 되었듯이, 완벽한 여인상을 그려내는, 즉 허상과 배니티를 잘 활용하는 사람(entrepreneur)이 오늘날 성공을 하는 세상입니다(이렇게 이론을 잘알면, 왜 당신은 억만장자가 아니냐고 묻지마세요. 거부한겁니다~^^;;;)

    빅토리아 시크릿의 가장 큰 성공요인은 '입기위한 underwear' 에서 '벗기위한 underwear'로 발상을 전환한 거라고 생각합니다. 이건 제 가설이지만, 그렇게 보면 많은게 보이더라구요. 미국도 'sex in the dark'시대에서 벗어난지 얼마 안되는 나라입니다. 넘쳐나는 잉여를 흡수하여 stability를 유지하는 regulator가 인간의 vanity에 바탕을 둔 '브랜드'라는데 생각이 미치면 우울해집니다...물적 발전과 병행하여 진화하지 못하는 인간의 영성이여...

    횡설수설이 된 것 같군요. 사실 저 아직 출장중인데 저녁 반주 한잔 걸치고 들어와 쓰는 거랍니다. 설날 차례에 맞추어 아슬아슬하게 귀국할 예정입니다...
  • 迪倫 2010/02/09 14:38 #

    안그래도 이미 써뒀던 글을 그냥 올리고 자려는데 덧글이 막 올라와서 읽었습니다.
    어줍짢은 글에 이렇게 길게 말씀 남겨주셔서 감사합니다. (원래 이 빅토리아 시크릿이 장난처럼 시작한 글이었거든요)

    말씀하신 포인트들 정말 중요한 것들이라고 생각합니다.
    실제 제가 위에 소개한 서구의 근면혁명 이론은 바로 그 vanity가 산업혁명 전단계의 가장 중요한 팩터로 잡고 있는 것을 볼때 정말 말씀하신 내용들에 공감합니다.

    저 사실 개인 경제에는 굉장히 어둡습니다. 재테크로는 거의 제로에 가깝습니다. 그렇지만 사회를 보는데 있는 그대로 보려면 경제적인 측면 바로 사람들의 적나나한 모습에서 시작해야 하는게 아닌가 그런측면에 흥미가 생겨서요...그러다 보니 이제는 마치 경제사 전문 블로그처럼 되어버렸습니다만...-_-;;

    일단 간단하게 감사하다는 답글달고, 저도 다시 내일 좀더 궁리해보고 말씀 더 드리겠습니다. (내일 사무실에서 안졸려면 지금 자야한답니다) 아무튼 외지에서 건강 조심하시기 바랍니다.
  • 迪倫 2010/02/11 11:24 #

    오늘 결국 회사에 가지못하고 집에서 근무를 했습니다. 그동안 눈이 좀 안오더니만 오늘 작심하고 내리네요. 뭐 피해같은 것은 헚고 대신 혼자 집에서 묵묵히 시간을 채워내려니 좀 심심하였습니다. 아무튼 대충 시간을 다 채우고 친구집 놀러간 애들 데려오고 (학교도 모두 쉬었거든요) 이제는 놀려고 다시 자리에 앉았습니다.

    적어주신 글 곰곰히 생각해보았습니다.
    '잉여'와 'vanity' 그리고 '경제적 성장'같은 주제들이 말씀하신대로 그야말로 인간의 본모습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안그래도 아무리 뭐로 수식하던지 실제 'vanity' 야말로 사람들에게 경제적 성장을 추구하게 하는 기본적인 동인이라는 설명과 결론이 자주 나옵니다. 그동안 읽어온 역사에서도, 직장에서 마주치는 각종 시장과 시황과 지수들도 모두 여기에서 시작한다고 얘기들을 해주고 있는 것만 같습니다.

    이런 저런 주제들을 가지고 글을 쓰다보면 항상 부딪히는 마지막 모습은 사람들의 '희망'과 그 반대쪽 사이드의 다른 이름인 '욕망'인데, 이게 늘 어떻게 해석하고 받아들여야 할지 참 어렵습니다. 대안으로 제시된 시도도 조금만 지나면 모두 거대 산업이 되어버리니, 예를 들어 대량생산 식품의 대안으로 제시된 오가닉 식품이 이제는 그 자체가 다시 산업으로 성장해버려서 사람들의 일종의 'vanity'를 다시 자극하는 길을 걷고 있는 것을 보면 참 아이러니이구나 싶습니다.

    제 성향이 원래 좀 마이너리티 센티멘트가 다분히 있어서 그런지 자꾸 오래되고 손때가 묻고 2등만 하고 그래도 열심히 노력했던 흔적이 남아있는 그런 물건과 생각들과 사회에 더 애착도 눈길도 가고 그렇습니다.

    아무튼 원래 제 블로그에서 너무 심각한 얘기만 늘어놓는 것 같아 '피로감'을 사람들에게 나눠주는 게 아닐까 해서 좀 가볍게도 가보려하는데, 잘 안되고 있습니다 -_-;; 오히려 들러주셔서 생각 나눠주시는 분들 덕분에 제 혼자 외골수에 빠지지않고 있는 중입니다.
    그러니 언제든지 들러주시고 생각 나눠주시면 좋겠습니다.(어떻게든 밥과술님을 더 오래 붙잡기 위해 이벤트(?)라도 해야할 것 같은 기분이 뭉게뭉게 피어난다고 해야할지 ㅎㅎㅎ ^-^ )
    그리고, 몸조심하시고 출장 잘 마치시기 바랍니다.
    언제나 읽고 속깊은 생각을 남겨주셔서 감사합니다.
  • 엽기당주 2010/02/09 15:06 # 답글

    학교다닐때 근대 여성 노동사에 대해 공부할때 들은 주제들이 많이 나오네요. ^^

    건전한 가족을 만들기 위해 부르주아의 종교인 기독교가 엄숙주의나 권위주의화 하면서 남성위주의 가부장 사회를 옹호하는 입장으로 변질되는 모습을 주로 관심있게 보고 있는데 적륜님의 쓰신 글도 매우 재미있군요.

    역시 잘 보았습니다. ^^
  • 迪倫 2010/02/11 08:00 #

    재미있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나저나 근대여성 노동사 좀 재미있었을 것 같이 들리네요. 어떤 책이나 교재를 사용하였었는지 혹시 알려주실 수 있으세요?
  • 엽기당주 2010/02/11 09:30 #

    하도 예전이라 잘 기억은 안나는데 여성 노동사라고 해서 5~6권짜리 책으로 기억합니다.

    이거랑 선생님이 프랑스서 노동사학을 전공하신걸로 기억합니다만 그분이 공부했던 노트에서 발췌한 강의내용들을 중심으로 토론수업을 했었죠..

    미국의 자유주의 여성운동과는 다른 면에서 접근하는 사회주의적 여성운동에 대해 알게 된 좋은 수업이었는데... 졸업한지 10년이 넘어서 노트도 못찾겠군요. 이거 참.. 공부를 했으면 뭔가 남겨야하는데 말이죠. -_-;
  • 엽기당주 2010/02/11 09:50 #

    아 인터넷을 대충 보니 여성의 역사라는 책인거 같군요.

    이 책으로 공부했습니다. 중세말 -> 근대 말을 중점적으로 보고 2차대전때 여성노동자 증가로 인한 여성운동의 변화를 미국의 여성노동자와 유럽 여성노동자를 비교하며 공부했던 기억이 나네요..
  • 迪倫 2010/02/11 09:52 #

    자세히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 다복솔군 2010/02/09 18:05 # 답글

    커피 하나에도, 돌맹이 하나에도 역사는 숨쉬고 있다는 말이 있는데 딱 그 느낌입니다. 좋은 글 정말 잘 읽었습니다. ^^
  • 迪倫 2010/02/11 08:00 #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인형사 2010/08/01 05:05 # 답글

    근면혁명에서 노동강도를 강화한 계급과 소비를 한 계급이 같은 계급이었을까요?

    착취라는 변수를 완전히 사상한 개념 같습니다.

    저 시기는 마르크스가 이야기한 자본의 본원적 축적기로서 생산자와 생산수단의 분리가 일어난 시기이며, 또한 근대국가의 형성기로서 국가에 의한 수취도 엄청나게 강화된 시기였습니다. 이로 인한 착취의 강화가 노동강도 강화의 원인이며 소비는 그런 착취물을 확보한 지배계층이 한 것으로도 설명할 수 있지 않을까요?

    뭐라고 할까요? 후기자본주의의 소비자의 모습을 전자본주의 시대로 투사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는군요.

    그리고 후기자본주의의 소비자는 과연 더 많은 소비욕구때문에 여성까지 노동시장에 참여했는지도 따져볼 문제입니다.


    Elizabeth Warren은 'THE TWO-INCOME TRAP'이라는 책에서 미국의 경우 여성의 노동시장참여에 의해 미디안 소득 가정의 소득은 30년전에 비해 75% 증가했지만 가처분 소득은 오히려 20% 감소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의류 지출은 21%가 줄었고, 식비는 22%, 가전제품에 대한 지출은 44%가 줄었습니다.

    늘어난 지출은 주택비, 건강보험, 두대의 승용차 유지비, 탁아비용(뒤의 두 개는 부부가 다 일하기 위한 필수 이지요)이며 이 것이 늘어난 소득을 상쇄하고도 남았다는 것입니다. 특히 주택의 경우 30년 전에 비해 69% 지출이 늘었으며, 이것은 미국의 공교육시스템 붕괴의 직접적인 결과로 파악하고 있습니다.

    그 결과 미국 중산층 가정의 재정상태는 상당히 불안하며 약간의 충격(갑작스러운 병, 이혼, 일시적 실업)으로도 바로 파산으로 연결된다고 진단하고 있습니다. 이 책은 2003년에 나온 것인데 그 예측은 최근의 금융위기에 의해 맞아떨어졌지요. 최근 통과된 금융개혁법에 의해 신설되는 Consumer Financial Protection Agency의 장으로 현재 가장 유력시 되는 후보라고 하는군요.

    http://www.pbs.org/now/politics/middleclassmyths.html

    http://www.pbs.org/cgi-registry/mediaplayer/videoplayer.cgi?playeraddress=videoplayer.cgi;media=%2Fmedia4%2Fnow%2F020604%2Fwarren-lo.rm%2C%2Fmedia4%2Fnow%2F020604%2Fwarren-hi.rm;playertemplate=%2Fnow%2Fmedia_player%2Fvideo.html


    그러므로 빅토리아즈 시크리트는 30년 전에 비해 21% 줄어든 돈으로 사야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근면혁명의 개념은 후기자본주의 소비자의 현실이 아닌 신화를 전자본주의적 과거로 투사하는 것은 아닐까요?
  • 迪倫 2010/08/01 12:32 #

    아, 우선 긴 덧글 감사합니다. 이전 그도 자세히 읽고 덧글 남겨주셔서 무척 기분이 좋습니다!

    우선 이 글에 언급된 근면혁명에 관련해서 일종의 변명을 먼저 해야할 것 같습니다. 이글은 원래 근면혁명을 본격적으로 다룬 글은 아닙니다. 위에 밝힌 것처럼 빅토리아즈 시크렛이라는 개별 상점에 대해서 생각이 흘러 흘러 적은 글입니다. 그리고, 이 글을 쓸 당시 정작 근면혁명의 원본 텍스트인 "The Industrious Revolution: Consumer Behavior and the Household Economy, 1650 to the Present "를 다 읽지 못했고 그래서, 대신 이 책이 나오기 전 초록에 가까운 논문을 기초로 쓴 글입니다. 그래서 근면혁명에 대해 충분히 설명이 상세하지 못한 점이 있었던 것 양해 바랍니다.

    다만 이 개념은 어떤 의미로는 20세기의 현상을 설명하기 위한 개념이 아니라 산업혁명의 이전 단계 주로 18세기를 설명하기 위한 개념으로 도입된 것입니다. 따라서 지적하셨듯이 후기 자본주의 소비자의 신화를 전자본주의에 투사한 거라고 보기는 약간 포인트가 다른 것 같습니다. 실은 이 책과 설명에서 다루는 계급은 18세기 이전의 앙시앙 레짐적 왕,귀족계급과 대립하여서 새로운 소비를 획득하는 부르주아 계급을 염두에 두고 전개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노동강도가 강화된 부르주아 계급이 탈계급적 소비의 결과를 획득한다고 해야할지 그런 맥락에서의 노동의 강화라고 저는 이해를 했습니다. 그리고, 산업혁명기로 접어든 다음의 브레드위너 시스템은 부르주아뿐 아니라 적어도 체제 내의 노동계급에게까지 적용되는 현상으로 보고 있습니다. 이 이론을 주창한 드브리스 선생은 말씀하신 '구조적 착취'나 '계급적 제반 문제'에 대해서는 기본적으로 그다지 언급을 하지않고 있습니다.
    다만 제 글이 좀 엉성해서인지 충분히 설명이 안된 것같은데, 이 이론에서의 노동의 강화는 계급적 착취의 문제라기 보다 그 이전 근본적인 북서 유럽 지역의 경제환경의 변화가 초래한 산업 패턴의 변화를 분석하는 것으로 해석해야 할 것 같습니다.

    여성과 미성년자 가정구성원의 노동참여도 주로 18세기의 현상으로 이를 새로운 유형의 소비에서 모티베이션을 찾는게 상당히 특이한 포인트입니다.
    이 이론 자체에 대한 반론도 이래 저래 많이 있습니다. 제가 이 근면혁명 이론에 대해서는 이 글 이후 다시 좀 자세하게 쓰고 있던 중이었습니다. 이글은 그저 맛보기 정도로 간주해주시고 다른 포스팅의 내용들을 참고해주시기 바랍니다. 다만 솔직히 글을 쓰다가 이런 저런 생각에 부딪혀 아직 마무리를 짓지못하고 있는 점 양해바랍니다.

    아, 그리고, 말씀해주신 미국 중산층의 재정상태는 뭐 제게는 그리 통계상의 문제가 아니라서...달리 다른 말씀드릴 것없이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근면혁명 이론에서의 2차 근면혁명 설명으로 최근의 미국 중산층의 상황을 대응하는 것은 여러가지 이론이 있습니다.

    다만 전체 근면혁명의 개념이 최근의 미국 소비자 패턴의 신화를 소급 투영한 것은 아닌것 같다고 우선 대답을 드립니다. (대답이 소략한점 양해 바랍니다. 제가 이웃 블로거인 들꽃향기님과 이 논점의 한국 소개문제에 대해서 부탁을 해서 나눈 대화가 http://sldn84.egloos.com/2593243 에 실려있습니다. 같이 참고하시면 도움이 되실 듯 합니다.)

    아무튼 감사합니다! 언제든지 또 덧글 남겨주시기 바랍니다.
  • 迪倫 2010/08/01 12:38 #

    답글을 막 올리고 보니 오타가 너무 많은데 양해 바랍니다ㅠ.ㅠ

    한가지 덧붙였어야 하는 내용이 있어 다시 추가합니다.

    실제 원래 근면혁명 이론에서의 노동 강화는 생활 수준이나 경제사정의 호전을 기초로 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단위 노동 생산성이 떨어지고 경제성장이 지체되는 것 같은 상황에서 소비가 증가하는 파라독스를 해설하기 위해 살펴보니 가구 전체구성원이 각각 노동량을 증가시켜 생산으로부터 분리되기 시작한 소비를 지탱한다에 더 가깝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덧글에서 설명하신 현대의 미국 사회에서 나타나는 경제상황 또는 개별 가계의 경제적 상황과 전체 소비 패턴도 18세기 서북 유럽과 유사한 2차 근면혁명으로 불러야 할 것이 아닌가 하는 설명이었습니다.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 인형사 2010/08/02 06:04 #

    근면혁명에 대한 다른 글들도 읽어 보았습니다. 그런데 댓글을 달려고 했더니 댓글이 차단되어 있기에 이곳에 달았습니다. 무슨 일이 있었던 모양이지요?

    처음듣는 개념이라 좀 찾아보니 근면혁명은 부르조아 계급에만 국한하여 하는 것이 아니라 전 계층에 걸쳐 일어나는 현상으로 설정하는 것 같군요. 전계층에 걸쳐 사치적 소비를 위한 자기착취가 일어났다는 것이 근면혁명의 요지가 아닌가요?

    제가 칼 폴라니를 좋아합니다. 폴라니는 자본주의적 시장을 인간본성에 부응하는 자연적 질서보는 것을 거부하며, 그것을 인간이 만들어낸 하나의 제도적 질서로 봅니다. 그는 특히 자본주의적 시장을 악마의 멧돌로 규정하며. 자본주의적 자기규율적 시장은 그 기율에 따르지 않는 자를 처벌하면서 다른 사회적 관계들을 멧돌처럼 갈아버리고는 시장적 질서로 대체합니다.

    그런데 근면혁명이란 개념은 폴라니가 지적하는 자본주의적 시장이 가지는 강제성을 사상하며 모든 것이 시장의 유혹에 따른 시장 참여자의 자발적인 의지에 의해 이루어졌다는 이야기로 들립니다.

    물론 시장은 폭력과 유혹이라는 두가지 요소를 다 가지고 있으며 후기 자본주의로 올수록 생산의 증대와 대중소비사회의 등장에 의해 유혹의 측면이 더 강해진다고 할 수 있을 것이며, 초기로 갈수록 강제의 측면이 강해진다고 할 수 있을 겁니다.

    그런데 자본주의성립기부터 유혹의 역할을 주역으로 등장시키는 것은 강제의 역할을 은폐하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는 우려가 듭니다. 제가 근면혁명의 개념이 후기자본주의의 소비자의 신화를 투사한 것이 아니냐고 물은 것은 이런 이유때문입니다.

    물론 자본주의 형성기에도 시장의 유혹은 존재했을 것이지만 그것에 접근할 수 있었던 사람은 제한되었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인 추론일 것 같습니다. 이미 백년전에 베르너 좀바르트가 상류층의 사랑, 다른 말로 하면 혼외 연애와 사치가 자본주의의 원인일 수 있다는 가설을 제시했었지요. 그런 소수의 소비를 위해 다수가 착취 당하는 과정에서 새로운 경제와 생산의 질서가 등장한 것이 자본주의의 성립과정이 아닐까요?

    중요한 것은 누구의 누구의 사치이며 소비인가가 되어야할 것 같습니다.

    그리고 전가족의 노동력이 동원되어 시장을 위한 생산을 하는 생산자의 모습은 초기 부르조아의 모습이기보다는 전대제(Putting-out System)에서의 장인의 모습에 더 부합하는 것 같습니다. 이들은 길드적 특권을 가지지 못하는 장인들로서 계약을 맺은 상인으로부터 생산의 원료를 제공받고 완성품을 넘겨주는 일종의 하청업자로, 상인에게 종속된 자기경영을 하지 못하는 존재들입니다. 얼마나 경제적 풍요를 누렸는지 의심스러운 사람들입니다.

    수공업적 생산이 길드의 규제로부터 벋어나 전대제로 재편성되는 것을 선산업혁명(Proto-Industrialization)이라고 하는데 자본의 노동에 대한 지배가 강화되는 과정에서 중요한 단계중에 하나입니다. 그리고 전대제에서의 장인은 산업혁명이 오면서 바로 천민으로 몰락해 버리지요.

    이차 근면혁명을 어떻게 보야할지는 논란거리이겠지만 이 역시 노동운동의 약화와 신자유주의 반격과 무관한 현상은 아닐 것 같은 짐작이 듭니다.
  • 迪倫 2010/08/02 10:59 #

    다른 글들도 읽어주셨다니 감사합니다.
    무슨 일이 있었다기 보다 얘기가 좀 원치않던 방향으로 흘렀다고 할지 아니면 바로 원래의 의도대로 파이팅으로 가려는 짐조가 보였다고 할지 뭐 그래서 개인적으로 더이상 애기를 확대시키지 않으려고 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근면혁명에 대해 ‘사치적 소비를 위한 자기착취가 일어났다’라고 표현하신 것은 당혹스럽다고 할지 신선하다고 할지 그렇군요. 왜냐하면 제가 한 이론의 소개뿐 아니라 일본의 근면혁명 이론이나 미국의 근면혁명 이론 모두 ‘착취’라는 관점이 전혀 등장하지 않았던 담론이었던 까닭에, 상당히 전혀 다른 틀에서의 이 이론에 대한 평이로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 측면에서 인형사님의 글을 다시 읽어보니 말슴하신 후기 자본주의적 소비자 신화를 전기 자본주의에 투영한 이론이 아니냐는 게 무슨 의미였는지 알 것 같습니다. 그에 대한 제 대답이라고 한다며는 예, 그렇게 볼 수 있다는 점에 부분적으로 동의한다고 해야할지 그렇습니다.

    한가지 이 이론이 제가 몇번 포스팅으로 소개한 부분은 실은 전체가 다가 아닙니다. 그리고, 실제 찾아보신 자료가 어떤 것이었는지 모르겠지만 한국 자료를 찾아보신 것이라면 제가 포스팅에서도 여러번 언급한 것처럼 일본의 이론과 미국 이론이 혼동이 되어서 명확하게 소개가 안된 부분이 좀 있습니다. 관심이 있으시면 꼭 드브리스의 책이나 논문을 나중에 찾아보시기 바랍니다. 제가 한 소개가 불충분할 가능성이 커서 그렇습니다.

    한가지 제가 이해한 것으로는 근면혁명은 네덜란드, 잉글랜드, 프랑스의 일부 도시지역에서 선산업혁명 시기에 일어난 현상을 해석하려는 시도입니다. 그리고, 이 시기의 노동의 강화를 소수 부르주아의 자본의 강화라기 보다 전시기 앙시앙 레짐의 소수 독식의 산업-소비 구조를 해체하고 이 시기 부르주아에게까지 확대된 과정으로 보는 것입니다. 물론 말씀하신대로 이 과정이 여전히 전체에 대비해 소수의 사치와 소수의 소비이기는 하지만 이전 시기에 비해 탈계급적 소비가 확산되고 이를 허용한 사회-경제적 변동이란게 결국 부르주아를 포함한 생산계층의 노동강도의 강화라는 현상으로 설명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탈계급적 소비의 대두뿐 아니라 수공업적 길드의 해체는 이 시기에 일어난 주요 변동이기도 하지만 여기에는 아메리카 식민지라는 팩터가 다시 개입되어 있습니다. 만약 착취라는 관점을 대입한다고 하면, 아메리카와 동인도의 착취라는 요인이 유럽 내부적 계급간의 착취-수탈보다 좀더 중요하게 다뤄지는 느낌입니다. 그런 의밍에서 보면 막 형성되던 제국주의가 서북 유럽지역의 산업화 성공에 대한 중요요인으로 다시 주목을 받아야 할 것도 같습니다. 다만 이 이론의 요점은 현상을 해석하는데 더 주목하고 있다고나 할까요…

    2차 근면혁명 부분은 아직 제가 스스로 정리 소개할 단계가 아니어서 양해를 바랍니다. 그래서 진행하던 시리즈 글들도 잠시 중단을 하고 있습니다. 노동운동의 약화나 신자유주의에 대한 언급 자체는 그리 다뤄지지 않고 있지만 그런 측면에의 비평은 충분히 가능하리라고 봅니다.

    한가지 덧붙이고 싶은 것은 이전 다른 글들을 읽으셨다니 보셨겠지만, 원래 이 이론에 대한 소개의 시작이 다른 계량경제사 관련 글들에 등장하는 불분명한 표현에 대한 확인의 차원에서 시작된 것입니다. 게다가 이 이론이 제가 관심이 있는 ‘인터액션’에 관련이 있어서 더욱 자세히 찾아본 경향이 있다고 할까요. 뭐 실은 저는 체제와 같은 거대담론에 약해서 보다 기술적이고 지엽적인 부분에 몰두하는 편입니다만. ^^ 그래서 제 답글이 원래 언급하신 내용들로부터 많이 떨어져서 부족하더라도 그런 점을 감안하고 읽어주시기를 바랍니다.

    아무튼 덕분에 전체적인 의미랄지 여러가지 생각을 다시 해보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덧글 감사합니다!
  • 迪倫 2010/08/02 11:03 #

    그나저나 폴리니는 상당히 유명한가보군요. 아직 그 사람 글을 읽어보지 않고 서평 정도로만 알고 있어서 강진아 선생도 관련된 얘기를 한 것도 같고...덕분에 흥미가 생겼습니다. 한번 찾아보도록 해야 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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