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을 사고 파는 시장 - 17세기 네덜란드 번영의 뒷면 by 迪倫

엊그제(82) 중앙일보에 케네디교수가 이런저런 한국에 대한 견해를 인터뷰한 기사가 있었다.

요지인즉슨 한국이 상당히 유니크한 성장을 이뤘고강대국이 아니라"탁월하게 성공적인 중견국(eminently(successful) middle-range power)이다"라는 것이었다. 대체로 그다지 내용없는 평이라고 생각이 들었다마는, 바로 이어지는 내용에 하고 의아한 기분이 들었다. (기사 전문은 여기 클릭)


해당 부분을 인용한다: "~~. 역사적으로 가장 유사한 사례를 들자면 18세기 네덜란드 같은 위상을 차지할 있다한국이 지극히 창조적인 기술력을 보유하고 있으며 막강한 무역국가이기 때문이다. 한국과 마찬가지로 18세기 네덜란드도 3대 강대국인 프랑스프러시아영국으로 둘러싸였다. 그러나 한국의 인구 규모와 지정학적인 위치 때문에 미국중국인도 등이 포함될 강대국 리스트에 들기는 힘들다."라고 하는데… 

 

하필이면 18세기의 네덜란드라고 했을까? 17세기도 16세기도 아니고 케네디는 이미 한국이 최고 번성기를 지나서 이제 꺾어지기 시작했다고 보는 것인가?그렇다면 사실 한국의 미래를 상당히 부정적으로 보고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17세기나 18세기가 무슨 차이가 있나? 17세기부터 번성해서 18세기에도 여전히 네덜란드가 잘나갔던 아니야가 미안하지만 아니다.


18세기의 네덜란드는 내가 요즘 포스팅하고 있는 내용들에 해당하는 17세기 골든에이지를 넘어선 잉글랜드와의 해상경쟁에 마침내 뒤져서 경쟁력을 상실하고 1730년을 기점으로 국부의 원천이던 VOC부터 적자가 나더니 심하게 정치 경제적으로 정체하다가, 결국 나폴레옹의 유럽전쟁에 휘말려 한참동안 회복하지 못하고 결국 유럽의 중소국으로 자리잡고 만다. 케네디교수가 이를 모르고 얘기는 아닐텐데

 

하기는 최근의 한국발 뉴스들을 보면 결국 실은 18세기 네덜란드가 정확한 진단인가 싶기도 하다


게다가 혹시 케네디가 한국을 17세기의 골든에이지의 네덜란드와 같다고 했다한들 네덜란드도 그다지 바람직한가 하면 글쎄올시다그래서, 오늘은 네덜란드의 골든 에이지라던 17세기 지구 위의 추종을 불허하는 (대외적으로는 칼빈주의 국가라고 주장하던) 울트라 효율적,실용주의 국가의 어두운 뒷면을 한번 들춰다 본다. (오옷, 21세기 어딘가와 이미지가 좀 겹친다. 설마 우연이겠지만...)

 

지난번 매나하타편에서 언급한 헨리 허드슨은 VOC 고용된 잉글랜드인이었다. 일본에 처음 VOC 접촉할 가서 도쿠카와 바쿠후의 외국인 관료가 윌리엄 아담스도 VOC소속의 잉글랜드인이었다.한국에 제일 유명한 하멜의 동료 돌아가지 않고 남은 중에 알렉산더 보스케트라는 이 원래 스코틀랜드인이었다.

 

당시에 대한 책들을 보다 보면 VOC 출신이라고 하는 서양인들이 의외로 네덜란드인이 아닌 경우가 많아서 의아했다. 그래서 찾아보았다.

 

1600 현재 네덜란드의 인구는 대략 150만명 가량 되었다고 한다. 1650년경에 가서 190만명 정도로 인구가 늘었다고 한다. 합스부르크 스페인이 점령한 스페니시 네덜란드(오늘날 벨기에)1600년경 대략150, 1650년경 대략 190만명 정도였다고 한다. 당시 비교를 하자면 잉글랜드가 1600년경 420만명에1650년까지는 550만명으로 증가하였고, 스코틀랜드와 아일랜드가 각각 동기간에100만명에서 120~200만명까지 증가하였다.

당시 조선은17세기 후반까지 대략 500 정도를 유지하다가 후반 대기근으로 400 정도로 줄었다고 하고, 일본은 17세기 초 1200만에서 거의 배가 증가하여 28백만에서 3천만까지 인구가 증가하였다고 한다. 인구로 봐서 네덜란드는 스페니시 네덜란드를 합쳐도 당시 조선보다도 인구가 적은 소국에 불과했다.

 

그런데, 17세기 가장 원양 해상활동이 활발했던 나라는 네덜란드였고 해상활동의 사망률이라는게 무지하게 높아서네덜란드가 자체 인구만으로 이런 활동을 수 없다는 것은 당연히 확신할 있을 정도이다. 언젠가도 언급한 것처럼 VOC에서 백만명을 밖으로 내보냈는데, 이중 3분의 2가 돌아오지 못했다고 한다. 당연히 인구 2백만이 안되는 네덜란드에서 이들을 모두 커버할 수는 없고, 대신 전 유럽의 지지리 궁상 청춘들이 똑같이 일해도 좀 더 벌 수 있고, 휘황찬란한 도시가 부르는, 그리고, 언젠가 한방의 일확천금으로 금의환향할 기회가 있는 암스테르담으로 마구 몰려들었다.


당시 네덜란드, 더 정확히는 홀란드는 유럽 내 최고 임금 수준과 경제수준을 자랑하는 곳이었다. 

단적으로 1인당 GDP가 요즘 달러로 환산해서 1600년 현재 잉글랜드가 1440달러로 추정되는데 비해, 네덜란드는 무려 2175달러에 해당했다고 한다.


게다가 무한정의 일자리가 VOC를 통해 제공되고 있었다. 예를 들어 1570년부터 1680년 사이에만  VOC에서 45000명을 리크루트했었다. 대략 매년 3번씩 1000명정도 지속적으로 고용을 하였다. 18세기에는 매년 무려 7~8000명까지도 고용을 했었고, 1753년에는 동인도 지역에 무려 25000명이  VOC 직원으로 활동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참으로 바람직한(?) 국가가 아닐 수 없다...고 하지만 산이 높으면 골도 깊어진다는게 우주의 법칙.


암스테르담에 이제 막 도착해서  VOC를 뚫고 들어가보려는 시골 청년들, 독일, 보헤미아, 남쪽의 스페니시 네덜란드에서 온 민망한 청춘들이 거리를 배회하면 이들에게  VOC로 가는 길을 알려주는 여인네들이 있었다. 이름하여 "zielverkoper (zielverkooer / volkhouder / borgen))"라고 불리는  VOC 리크루트 담당 독립 에이전트 (또는 인신매매 바람잡이?)들이 이 여인네들이었는데, 이들은 고용을 알선해주고, 배가 떠나기 전까지 잠잘곳도 제공해주고, 또 이런 청춘들이 꼭 배떠나기전에 하고 싶어하는 일들도 제공해주고, 그리고, 회사와 이들간의 계약서를 체결하게 해주었다. 대신 이들은 제공하는 숙식, 의복, 개인용품, 그리고, 앞서말한 청춘들이 바라는 그 뭐뭐대금을 별도로 약 150 플로린(길더)까지 달아두고, 계약서의 금액에서 일부 포션을 챙기는데 주로 회사에서 새 직원에게 주는 대략 20길더정도 되는 2달치 월급 선수금을 받아서 챙겼다. (배타고 나가는 청춘들은 선수금 구경도 못하고 외상부터 발생한다) 물론 숙식은 기록에 의하면 100명 이상이 좁은 방에 바글대고 음식도 의복도 그리고 그 뭐뭐도 엄청나게 비싸게 정산하고...

싱크로율에 아직 놀라지마시라.


이 계약서는 "Transportbrief"라고 부르는데, 이 계약의 잔금은 선원들이 돌아오면  VOC에서 지불을 해줬다. 이 아줌마들은 당연히 그때 되어서야 해당 선원을 리크루트한데 대한 배당금을 받을 수가 있었다. (돌아오지 못하면 아무것도 받을 수 없게 된다) 이 문서를 원래는 한편으로 "celen" (즉 영어로 계약을 봉한다는 의미로 seal)이라고 했는데, 영혼을 의미하는 더치어 "zielen"과 발음도 비슷하고 해서 '영혼을 파는자'라는 의미의 "ziel-verkoper"라고 불리게 되었다.  그런데, 이 아줌마들이 배들어 올때까지 기다리기는 너무 길고 현금은 융통해야겠고 그래서, 이 계약문서를 디스카운트을 받아서 팔아버리고 먼저 현금화를 하기 시작했다. 당연히 사는 사람이 있어야 흥정이 되는 법. 이 문서를 사는 이들을 '영혼을 사는자'라는 의미의 "zielkoper"라고 불렀는데, 이들은 대략의 사망률을 베이시스로 해당 선원의 나이, 경험도, 조건, 스킬 등을 감안해서 할인율을 적용해서 문서를 사들인 후, 다시 이 계약문서들을 여러개의 계약문서 집합 풀(pool)로 만들어 증권화하여 거래를 하는 시장을 형성하였다.  (기본적으로 모기지담보부 증권과 같은 구조이다) 그러면, 일부가 돌아오지않아서 받을 수 없게 되어도 풀 안에서 전체적으로 버퍼링을 해서 기본 수익을 올리게 된다는 것이다.


위의 이미지는 좀 한참 뒤인 1780년  VOC의 마지막 무렵의 닐스 입센 살톤이라는 선원의 transportbrief 즉 계약서이다. 원래 월급 14길더에 선수금 2달치인데, 출발하기 전에 벌써 옷값, 와인 등등해서 189 길더(플로린) 9스타위브(페니)의 채무를 지고 시작했다. 그나마 안스러운 닐스는 1780년 타고갔던 배 Hoogkarspel이 희망봉에 도달했던 2월경 항해 중에 파도에 휩쓸리기라도 했는지 "행불"처리되었다. ( VOC 기록번호 14819) VOC는 그러면 더이상 지불의 의무가 없어진다.  


17세기 중반 이후 18세기에 접어들면서 급격히  VOC 리크루트 선원들의 퀄리티가 떨어져서 배가 난파, 조난도 많아지고, 선원 행방불명, 사망률도 높아진다. 증권화한 계약서풀의 디폴트율이 높아지면서 이에 투자한 많은 투자자 zielkoper들이 파산을 했다고 한다. 영혼 시장의 서브프라임화라고 할 수 있을라나...


얘기를 대충 마무리하자. 문득 벨테브레이 혹은 박연의 선택을 이해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내 얘기는 그냥 나이브하게 '반자본주의' '반성장주의'를 말하려는 것은 아니다. 그래도, 당시 닐스 입센 살톤같은 이 청춘들에게  VOC같은 인생의 기회는 다시 오지않을지 모르는 꿈이었을지도 모른다. 배가 크게 성공해서 돌아오면 밀린 월급에 때로는 보너스성의 배당에 개인적으로 휴대해온 품목의 차익에 그래 인생 이렇게 살 수 없어 세상끝까지 가보는거야 라고 하는 엄청난 꿈이었을거다. 다른 어떤 유럽사회도 제공해주지 못하던 "희망"을 제공해주는 유일한 사회였을지도 모른다. 나는 언젠가 이런 "희망"을 본적이 있다. 그리고, 그 "희망"이 결국 "원망"과 "실망"으로 변질되는 것도 본적 있다.


툴립이든, 사람의 생명을 담보로 한 증권이든, 아파트이든, 주식이든, 번성하는 밝은 면의 뒤면에는 "희망"을 담보로 목숨을 걸고 던지는 이들이 숨을 죽이고 있는 그림자가 있다.


혹시라도 17세기 네덜란드의 (또는 21세기의 어디에서라도) 영광의 빛에만 눈이 부셔 그 이면의 그림자를 못보게 된다면 그 "희망"은 18세기 네덜란드의 "실망"으로 금새 돌변하게 된다. (아니, 대한민국은 이미 폴 케네디의 진단처럼 18세기 네덜란드화 하고 있는지...어떻게 생각하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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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organizer™ 2009/08/07 14:00 # 답글

    혹시 현재의 미쿡이 18 세기의 네덜란드화하고 있는지 아닌지 궁금합니다.. (농담입니다.)

    외국의 글들은 '숨겨진' 내용이 워낙 많아서 그냥 스윽 읽고는 그 내용을 제대로 파악하는게 곤란하다는 생각을 자주 하곤 했었는데, 그런 생각을 뒷받침해 주는 또 다른 글을 읽을 수 있어서... 좋은 기회였습니다.
  • 迪倫 2009/08/08 13:12 #

    감사합니다. 현재의 미쿡은 그보다 17세기 스페인제국의 몰락을 보는 것 같다고 차라리 하는게, 적어도 천문학적 재정 적자를 본다면 거의 데자뷰입니다...
  • 월광토끼 2009/08/07 14:17 # 답글

    아.... 잘 읽었습니다. 헌데.. 대한민국이 17세기 네덜란드와 비교가 가능할까, 그것도 잘 납득은 안가는군요. 단순히 '경제성장'의 면모만 보면 그럴지도 모르겠지만, 그 폐쇄성과 국제 위상을 보아서는 그다지....

    그런데, 18세기에 비교한건 [매우] 안좋은거 아닌가요? 영불독오 4국에 갈갈이 찢길 18세기의 모습을 생각하면... 게다가, 1780년대에는 제 4차 영-화 전쟁으로, 브로델의 표현을 빌리자면 "네덜란드의 위상에 조종이 울렸"으니. 그렇게 끝장나란 건가.
  • 迪倫 2009/08/08 13:16 #

    예, 폐쇄성/개방성을 봐서는 확실히 비교할 수 없지요. 다만 자본이 '맘몬'이 되는 현상은 좀 비슷하다고나 해야할까 싶기도 합니다...

    그리고, 말씀하신대로 18세기 네덜란드에 비교한 것은 실제 진심이었다면 [매우]가 아니라 "대단히" 안좋죠...백년 사이에 완전히 다른 나라같은 모습을 보였는데...

    덧글 감사합니다. 통계학 성적 잘 받으시기 바랍니다 ^-*
  • 갑그젊 2009/08/07 16:00 # 답글

    잘 봤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대한민국의 앞날은 어둡다...라는 생각뿐이 안 드는군요. 개인적으로 현재 상황을 굉장히 안 좋게 생각을 하거든요...(...)
  • 迪倫 2009/08/08 13:19 #

    그러게요. 한국에서 전해오는 뉴스는 별로 밝은게 요즘 없어서...그래도 한국 사람들은 대체로 다 헤쳐나가더라구요. 그동안 경험한 걸로 봐서는요. 저는 그래서 대체로 '낙관적'인 입장을 택하는 편입니다.
    갑그젊님도 힘내시기 바랍니다! 감사!
  • thespis 2009/08/07 16:01 # 답글

    18세기 네덜란드라... 처음에 적절히 유한 표현을 써주고 뒷통수를 후려치는 듯한 느낌...이네요 'ㅁ';
  • 迪倫 2009/08/08 13:20 #

    안녕하세요. 예, 저도 의아해서 왜 폴 케네디가 그런 비유를 들었는지 정말 궁금합니다.
    덧글 감사합니다.
  • 행인1 2009/08/07 16:23 # 답글

    "인명"도 서브프라임 모기지의 대상이 될 수 있었다니 어떤 분(복모 작가, 공모씨 등)께는 "낙원"일지도 모르겠군요.-_-;;
  • 迪倫 2009/08/08 13:24 #

    "효율"을 극단적으로 밀어나가는 사회가 보여주는 단면이라고 생각합니다. 솔직히 사회적으로는 그렇게서로 서로 이익을 서로 유동화시켜서 효과적으로 재분배하는 시스템이라고 분석할 수도 있지만, 그런 거시적 분석은 정작 흐르는 눈물을 닦아 줄 수는 없으니까요...

    그래서 번영하던 17세기 네덜란드같은 나라라고 한다해도 그게 반드시 좋은 것이라고 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듭니다.

    덧글 감사합니다!
  • 른밸 2009/08/07 16:53 # 답글

    잘 봤습니다. 폴 케네디는 18세기를 언급하면서 은연중에 한국의 미래를 이야기한 것...이라고 보기는 너무 오바스럽지만;; 의미심장하군요. 링크신고하겠습니다!
  • 迪倫 2009/08/08 13:26 #

    폴 케네디가 아무 생각 없이 한 레토릭에 가까운 얘기였던지, 아니면 인터뷰를 한 사람이 그게 무슨 얘기이지 전혀 몰랐던지...아무튼 저도 너무 의아해서 이게 한국을 보고 아무래도 힘들겠어라고 하는 건지 정말 그 진의가 궁금합니다.

    저도 링크 하겠습니다. 자주 의견 많이 알려주시기 바랍니다.
  • 2009/08/07 18:38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迪倫 2009/08/08 13:58 #

    감사합니다.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다면 좋겠습니다...대신 그러니 내용의 정확성에 더욱 신경을 쓰도록 해야겠습니다.
    혹시 관심있으시면 Simon Schama "The Embarrassment of Riches: An Interpretation of Dutch Culture in the Golden Age (1987)"를 추천해 드립니다. "富めるが故の惑い─黄金時代オランダ文化への一解釈"라고 일본어로 검색이 되기는 하는데 실제 일어 번역본이 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그나저나 도모하시는 일은 아무쪼록 잘 이뤄지시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 시쉐도우 2009/08/07 19:18 # 답글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시는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앞으로도 많은 글 부탁드리며, 링크신고 드립니다.
  • 迪倫 2009/08/08 13:29 #

    좋게 읽어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전 글이라도 호시 보시고 의견있으시면 덧글로 알려주십시오.
    저도 링크 신고합니다.
  • 라라 2009/08/07 22:31 # 답글

    영혼 시장의 서브프라임화-적당한 표현이네요..

    북한도 잇으니 단순히 18세기 네덜란드와 비교는 약간 무리같네요
  • 迪倫 2009/08/08 13:32 #

    감사합니다.
    예, 17세기도 아니고 18세기 네덜란드와 비교된다면 정말 곤란해집니다 -_-;;
    위에 다른 답글에도 썼지만 정말 폴 케네디의 진짜 의중이 궁금합니다...
  • 졸라맨K 2009/08/08 00:34 # 답글

    외국사례가 우리와 무조건 맞지는 않지만 생각해야할 이야기네요. 좋은글들 읽고 링크 신고합니다.
  • 迪倫 2009/08/08 13:37 #

    원래 제가 16세기부터 금융사적으로 훑어 올라가던 중인데, 그러다보니 요즘의 한국에 무조건 적용한다기 보다, 현재 한국이 이미 상당한 비중으로 편입되어있는 자본주의 체제의 원래 꾸미지 않은 초창기 모습 그대로에서 어쩌면 지금의 우리를 돌아볼 만한 실마리가 될만한 게 있지않은가 하는 의도랄까 뭐 대충 그런 식으로 받아주시기 바랍니다. 저도 링크 신고합니다. 감사합니다.
  • 2009/08/08 14:35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밥과술 2010/01/04 18:44 # 답글

    작년에 제일 많이 읽힌 글이라고 해서 와서 읽고 갑니다. 시간나면 천천히 다른 글들 읽어 보겠습니다. 새해 복많이 받으세요.
  • 迪倫 2010/01/06 13:07 #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도 의외로 작년에 이 글이 인기가 좀 많았습니다..뭐 이전 글이라도 읽으시고 소감이나 의견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범범 2014/05/06 20:56 # 삭제 답글

    재밌게 잘 봤습니다. 저도 뉴욕 지내는데, 네델란드 사람이 만든 도시라는게 문득문득 보일 때가 있어서 글이 더 재밌게 읽혔어요. 오래된 도시라 한국과 전혀 다른 곳이라 생각하고 살았는데 이런 닮은 모습이 있다니 기분이 묘합니다.
  • 迪倫 2014/05/07 11:00 #

    범범님, 안녕하세요. 뉴욕 사신다니 반갑습니다. 재미있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네덜란드 흔적이 의외로 눈에 안띄는 기저에 많이 남아있더군요. 실제 지인들 중에 네덜란드계 후손들도 적지않고^^ 자주 찾아서 얘기 남겨주시면 좋겠습니다.
  • 2018/07/09 17:03 # 삭제 답글

    그리 따지면 자본주의 국가들이 다 그렇죠 뭐 우리나라 문제만은 아니라고 봅니다만
  • 잡지식 2020/07/31 16:35 # 삭제 답글

    한국 성매매 산업도 비슷하게 자산담보부채권화가 되었다는 기사를 보고 다시 왔습니다. 다들 방역 성공에 자랑스러워 하고 있지만 이런 싱크로가 높은 모습을 보면 우리도 얼마 안남은게 하는 불안감이 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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