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07월 22일
GO – 타자로 살아가기 그리고 희망
간혹 여기 한인 커뮤니티의 온라인 벼룩시장을 통해 좀 가벼운 한국 책들을 산다.
얼마전 그렇게 산 책들 중에 좀 뒤늦은 감이 있지만 가네시로 가즈키의 "GO"를 읽었다.
이전에 이 책과 영화에 대해 소략하게 얘기를 들었던 적이 있어서 가벼운 마음으로뒤적이기 시작했는데, 의외로 읽으면서 상당히 놀랬다. 뭐랄까 파워가 불끈 불끈한다고나 할까… 아니 좀더 부언하자면 뭐랄까 한반도 출신의 집단들 중에서 20세기에 가장 뒤늦게까지 발목 잡혀있는 집단 중의 하나인 자이니치들이 마침내 21세기 현재 한반도에 남은 인간들의 머리위로 뛰어넘으려고 도약해버린 것 같다고 하면 내 느낌이 좀 그나마 표현이 될까 싶다…
전체 자이니치 커뮤니티의 정서는 소설 한권으로 일반화하기 어렵게 복잡한 줄은 알고 있지만, 우선 남한도 북조선도 타자로 볼 수 있는 목소리가 심지어 일본어를 입고 들렸다는데 문득 '희망'을 보았다.
육체적인 몸이 속해있는 사회에서 '타자'로 살고 있다고 인식하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 엄청난 압축적인 힘을 소진하면서 사는 것이다. 이는 스스로 주인의식을 갖든 또는 주변부 인간이라는 인식을 하든 그런 이원론적 인식과는 좀 다른 것이라고 생각한다.물론 모국어가 주위 환경의 언어와 다르면 좀더 가중되기는 하겠지만, 그보다 '타자'라는 인식 자체의 무게가 크다. 대체로 이 인식의 무게는 보다 현실적인 장애와 차별과 부정적 에너지로 응집되는 경향이 지속되어왔다. 역사적 맥락이틀리다고는 해도 미국에서 '비잉 에이 코리언'(being a Korean)인 것도 그런 부정적 측면을 불쑥 불쑥 드러낸다는 점에 있어서는 자이니치와 다르지 않다. 아니 곤고씨의 인식에서도 그다지 멀지 않다. 하지만 문득 물끄러미 들여다보면 단지 차별이나 편견,사회구조 그 너머에 가서 닿는 인식의 무게가 있는 것 같다.
'이게 무슨 말인가? 역시 외국에서는 차별받는구나' 라고 혹시 잘못 오해하실 분들을 위해서 다시 설명을 하자면……만약 '타자'로 인식을 하지 않는다는 것은, 그건 '그냥사는 것'이다. 차별을 안받는다는 것을 넘어, 주인의식을 굳이 가져야할 필요도 없다. 힘내서 '열심히' 살아야 할 필요도 순전히 개인적인 차원으로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 즉 꼭 '열심히' 살아야 하는 것만도 아니라는 것이다. 한국에 계신 여러분은 동네에서 '주인의식'을 갖고 사당동에서 살고 계십니까? 달성구에서 살기 위해 '열심히' 살아야 합니까? 쉽게 말해서 만약 보통의 한 인간으로서의 생활을 하기 위해 의식적으로 무의식적으로 노력을 해야한다면, 어느 곳에 있어도 여러분도 어느 정도 '타자'로 살고있는 것일 것이다. 그게 외국에서는 좀더 현실적으로 일상 생활에도 지극히 영향을 미치며 살기 때문에 더욱 무게가 엄청나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한국계 교육감이 워싱턴 디시의 교육문제를 해결하고, 한국계 누구가 국무부 법무차관보가 되고…참으로 존경스럽다. 그들이 내 아들 딸에게 훌륭한 롤 모델이 되어 줄 것이라고 정말 믿어 의심치않는다. 한국계 누군가의 탈세와 총기난사와 때로는 치사함 같은 것을 보면 낯이 뜨겁고 누군가 나를 그 필터로 보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 든다. 대한민국이 그럭저럭 좀 잘 살게된 후 이곳으로 옮겨온 나는 큰 차별을 받지 않고 산다. 아니솔직히 때로 다이버시티 포트폴리오에 상당히 유용한 스펙이어서 심지어 어드밴티지를 받기까지 한다.
좋든 나쁘든 바로 그렇게,나도 현실에서는 민족과 국적과 인종과 언어에 규정당하는 한명의 타자일뿐이다. GO의 아버지도 아들도 그렇게 규정당하는 - 물론 소설이니까 보다 극단적으로 규정당하는 –타자의 삶을 보인다.
그래서 사람들은 반대로 내가 속할 수 있는 집단에 귀의하나보다. 민단에, 소렌에, 한인회에 아니면 하다못해 관념적인 '무슨무슨 사람'에 의탁해서 때로 차별이나 몰이해를 견뎌내고, 때로 집단의 방패 아래 잘난 척도 하고, 마치 이 소설에서 어떤 이들은 조선학교에 발을 스스로 묶는 것처럼. 내가 일상에서 느끼는 '타자로 존재하는 것'의 무게를 이 속에서 잠시 내려 놓는다고 착각하면서.
No soy coreano, ni soy japones, yo desarraigado. (나는 한국 사람도, 일본 사람도 아닌 떠다니는 일개 부초다.)
-책 속에서 아버지가 아들에게, 그리고 아들이 스스로에게 하는 말이다-
GO에서 아버지는 그 타자의 표식을, 무게를 버리기 위해 전 인생을 걸쳐 형성한 '관계'를 버린다. 아들은 그리고, 그냥 사랑하는 여자와 '사랑'을 한다. 역설적이게도 타자의 무게를 진정으로 벗는 것은 내가 그를 이겨내기 위해 스스로 묶은 '자기'를 모두 '타자'로 만드는 것이 아닌가 싶다. 주인공들이 그의 삶을 규정하던 일본도 북조선도 모두 타자로 규정하고 이제 대등한 복수의 타자들로 마주서니 마침내 그 무게가 떠다니는 부초의 무게가 된게 아닐까? 그래서 멋있다. 그리고, 희망이 읽혀진다.
이리도 지긋지긋한 20세기를 넘어서 각자 대등한 타자로 마주설 수 있는 스타트를 자이니치 사회는 이제 이 소설처럼 '집단'이 아니라 "개인"의 힘으로 끊어가나 보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그 앞날이 힘들겠지만 어떻게든 스스로의 문화를 일궈내어서 넘어서는 모습을 보고싶고 박수를 쳐주고 싶다.
(문득 투표권을 준다는 떡밥에 낚여 도로 20세기로 회귀하고 있는 미국 한인사회 일부의 한 조각은 참...달리 표현할 말이 없다.)
좋은 책이었다.
**곤고구미는 쇼토쿠태자때 건너간 백제인의 후손으로 대대로 사천왕사의 개수 중건을 맡은 건축회사였습니다.
**한국사회에도 이제 노동자로 또는 시골 농부의 아내로 '열심히' 살아야 하는 '타자'들이 늘고 있다. 그들이 그냥 '보통'의 인간으로 살 수 있는 사회가 되길 진심으로 바란다.
# by | 2009/07/22 14:25 | 책에 관한 얘기들... | 트랙백(1) | 덧글(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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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외국에서 산다는 것은
GO – 타자로 살아가기 그리고 희망'타자'로 인식을 하지 않는다는 것은, 그건 '그냥사는 것'이다. 차별을 안받는다는 것을 넘어, 주인의식을 굳이 가져야할 필요도 없다. 힘내서 '열심히' 살아야 할 필요도 순전히 개인적인 차원으로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 즉 꼭 '열심히' 살아야 하는 것만도 아니라는 것이다. 한국에 계신 여러분은 동네에서 '주인의식'을 갖고 사당동에서 살고 계십니까? 달성구에서 살기 위해 '열심히' 살아야 합니까?&......more
(개인적으로 옆나라 책은 선호하지 않습니다..)
몇권 읽어본 최근 유행하는 일본 소설과는 솔찍히 좀 상당히 다릅니다. 상당히 직설적으로 쭉 밀고 가는 힘이 훌륭합니다. 게다가 일본 소설이기도 하지만 재외동포 문학이라고도 분류할 수 있습니다. (제가 위에 한 얘기가 사실은 그런 구분을 다 떨쳐버렸다는 것이긴 하지만)
그리고, 타자는 역시 추신수와 이대호라고...덧붙입니다. ^-^
에스파니아어로 중얼거렸다는 부분이 인상적입니다.
포스트를 잘 읽었습니다^^
보고나서 괜찮았으면 좀더 덛붙여 볼까 생각 중입니다. 등장하는 담포포의 야마자키 쓰토무도 나오고 시바사키 코도 좀 좋아하는 배우들이라서 (거꾸로 주인공만 잘 모르는 배우인데..)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