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의 휴간 사태에 대해서 by 迪倫

그새 그만 지난번 포스팅을 올리고는 한달이 지나버렸습니다. 아아, 이젠 거의 월간 적륜재가 되어가는군요.

실은 이번 주말에 글을 쓰려고 앉았다가 마무리를 못했습니다. 원고는 그동안 거의 다 써뒀는데...

여러가지 오프라인의 일들이 조금 많이 바빴습니다. 이번 주에는 아무쪼록 마무리해서 올리도록 해보겠습니다.

그새 무덥던 여름은 지나가버리고 가을입니다. 제 블로그를 찾아주시는 여러분 모두 다들 가을 여여하시기들 바랍니다.

며칠내로 다시 블로그에 자리잡고 앉아보겠습니다. 잠시만 기다려주십시오.

Drachen tätowierter Mann by 迪倫

Je enger der Käfig, je schöner die Freiheit을 올리고 한참 시간이 지났습니다. 그동안 개인적으로 휴가도 다녀오고 아무튼 무더운 여름을 이래저래 넘가고 있는 중입니다. 너무 늦게 글이 이어져서 앞의 글들의 기억이 가물해질 정도라 미리 사과의 말씀을 드립니다. 자, 일단 다시 이야기를 이어갑니다. 지난편의 말씀대로 일본의 독일군 포로수용소에서 탈출을 시도한 일행에 대한 얘기에 이어 그들보다 대략 1년 전 칭다오 전투가 끝나기 직전 세기의 탈출을 한 젊은 불꽃의 이야기입니다. 오늘의 제목 Drachen tätowierter Mann(드라헨 태토비어르터 만이라고 읽습니다)는 용 문신을 한 사나이라는 뜻입니다.

1914년 여름 제1차 세계 대전이 발발한 이후 미국은 1917년 4월에 참전을 할 때까지 거의 3년간 줄곳 중립을 지켰었습니다.

그런데 전쟁이 시작된지 반년 정도 지난 1915년 1월 16일 뉴욕타임즈의 기사에 전쟁에 관련되었다고 해야할지 약간 애매하지만 독자들의 눈길을 사로잡는 흥미있는 소식이 하나 올라왔습니다.

(해당 기사의 첫 부분입니다. 제가 아래에 제목 부분만 번역을 하였습니다)
포위된 칭다오에서 비행기로 날아오르다
독일 해군 중위 플뤼쇼프, 긴박한 탈출 후 여기 도착
스코틀랜드 사람으로 위장해서 무사통과
장교는 중국에 포로가 되었다가 도망쳐서 상선에서 일본의 눈을 피하였다


Lieut. Gunther Pluschow, the German naval aviator who did most of the aerial scouting for the garrison in Tsing-tao before the capture of that place by the Japanese, and who made a sensational escape from the beleaguered city the day before it fell, was in New York yesterday, Lieut. Pluschow is said to be the only living officer who was on duty at Tsing-tao who is now not a prisoner of the Japanese.
그러니까 칭다오가 일본에 함락한 1914년 11월에서 불과 2개월 정도 지난 시기에 독일군 해군 파일럿이 칭다오에서 비행기로 탈출하여 중국과 일본을 피해 뉴욕에 와서 인터뷰를 하였다는 것인데요. 게다가 비행기라니?

위의 이미지는 그런데 뉴욕의 인터뷰 소개 기사로부터 6 개월 후 런던의 7월 5일 오후 데일리 크로니클 신문 호외 전쟁 기사입니다. 이번에는 잉글랜드 중부지방인 레스터셔에서 도망친 독일군 포로를 수색하고 있다는 기사입니다. 기사에는 탈출한 독일군 포로 2명 한명의 인상착의가 나오고 있습니다. 키는 166cm, 체중 61kg, 안색은 밝고 금발에 푸른눈, 그리고 중국 용문신이 왼팔에 있다고 나와있습니다. 이 탈주자의 이름은 군터 플리쇼프(Gunther Plüschow), 바로 6개월 전 뉴욕타임스에 인터뷰했던 사람입니다. 뭐야, 동에 번쩍 서에 번쩍 독일 홍길동인가?


이어지는 내용

Je enger der Käfig, je schöner die Freiheit by 迪倫

1914년 카이저의 병사들에서 이야기 이어갑니다.
독일어로 쓴 제목에 대한 설명은 이야기를 아래까지 읽어주시면 나옵니다.

1936년 2월 어느날 도쿄의 로마이어 레스토랑. 지난번에 설명한 독일군 포로 출신의 셰프/사장이 운영하던 이 식당은 대단히 귀한 손님들을 맞이하였습니다. 독일에서 유명한 감독 아르놀트 팡크( Arnold Fanck)과 함께 일본에서 처음 시도한 독-일 합작영화의 스태프들이 정통 독일 식당인 로마이어 레스토랑을 찾은 것입니다. 이날의 독일 영화제작진들은 이듬해 1937년 개봉한 "Die Tochter des Samurai" (사무라이의 딸)이라는 영화를 찍기 위해서 방일하였던 것입니다. 이 영화는 일본에서는 "新しき土" (새로운 땅)이라는 제목으로 개봉되었고 조선과 만주에서까지 대대적으로 선전하며 개봉되었는데, 일본 쇼와시대의 영화의 탑여배우인 하라 세쓰코, 당시 16세,의 데뷰작이기도 합니다.

영화의 내용은 대략 이렇습니다:
독일의 농대에 6년간 유학갔던 야마토 데루오는 원래 오래된 무가 집안의 양자로 그 집안의 장년 미쓰코와 정혼하도록 되어있었습니다. 그러나 데루오는 유럽에 체류하는 동안 개인주의에 물들어 정혼을 거부하려고 합니다. 실은 그는 독일에서 오는 길에 기자인 게르다 슈토름이라는 여인에게 사랑에 빠져 일본으로 돌아와 그녀와 결혼을 하겠다고 선언합니다. 하지만 게르다는 아리안 여인으로 이민족과 결혼을 할 수 없었을 뿐 아니라 미쓰코를 통해 일본에 대해 배우게 된 게르다는 데루오에게 전통을 지켜라고 오히려 조언합니다. 한편 데루오에게 버림받은 미쓰코는 아사마산의 분화구에 몸을 던지려 시도합니다. 마지막 순간 마쓰코를 구해낸 데루오는 자신을 반성하고 미쓰코와 함께 새로운 땅 만주국으로 가서 드넓은 대지에서 독일에서 배워온 농업 기술로 일본군인들이 볼세비키로부터 지켜주고 있는 농장을 운영하게 됩니다.

뭐, 내용이 전형적인 프로파간다죠. 그런데 실은 이때까지 독일에서 일본에 대한 감정은 대단히 안좋았습니다. 나치 독일 제3제국이 아리안족이 아닌데 높이 평가한 나라와 민족이란게 지구 상에 딱히 있었을리도 없겠지만, (아마 그나마 앵글로 색슨정도?) 원래 황화론 즉 아시아인종이 유럽문명을 위협할 것이란 주장이 독일의 빌헬름 2세 황제때 독일에서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을 정도입니다.

게다가 나치 독일에게는 아시아가 다 그냥 아시아이기도 한데 그나마 일본뿐 아니라 일본의 적인 중국 국민당 정부에도 군사적으로나 산업적으로 관계가 돈독하여서 굳이 일본을 두둔하거나 좋아할 이유도 별로 없었습니다. (초기 국민당 군대는 거의 독일군 군복과 장비로 도배를 하였습니다)

하지만 양국의 정부에서는 결국 여러가지 정치 군사적 이유로 1936년 10월 독일-일본 방공협정(防共協定)으로 처음 동맹을 맺게되는 것을 계기로 독일 국내의 반일 혹은 혐일 정서를 친일 정서로 순화시킬 필요가 생겼고, 아무튼 일본을 아리아인이 아니지만 그래도 동맹을 맺을 정도로 나쁘지는 않다는 여론을 만들기 위해 이 합작영화를 만들게 된 것입니다. (독일에 대한 일본의 감정은 지난편에 말씀드린대로 메이지 시대부터 늘 동경의 대상이었는데 안타까운 짝사랑이었던 거랄까요)

그리하여 로마이어 레스토랑을 찾은 독일 영화진들은 도쿄에서 정통 독일 요리를 먹으며 회포를 풀었는데, 이 일행에는 직접적인 영화 스태프는 아니지만 이 영화가 만들어지도록 뒤에서 힘을 쓴 사람이 같이 동행하고 있었습니다.

이 사람의 이름은 프리드리히 빌헬름 하크( Friedrich Wilhelm Hack, 1887-1949)입니다. 하크는 실은 로마이어 레스토랑의 사장 아우구스트 로마이어와 같은 칭다오의 독일포로였었습니다. 하크는 원래 군인이 아니라 프라이부르크 대학에서 경제학을 전공하고 교수의 추천으로 1912년 25살에 일본에 와서 남만주철도주식회사의 소속 연구소였던 동아경제조사국(東亜経済調査局)에서 근무를 하였습니다. 기록에는 이때 남만주철도 주식회사의 총재 고토 신페이(後藤新平)의 비서로도 근무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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