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4년 카이저의 병사들 by 迪倫

유겐트포이어, 데칸쇼의 시대의 마지막에 언급한 일본군 청도수비군 사령부(青島守備軍司令部) 기증 독일서적들에서부터 다시 조금 늦어진 얘기를 시작합니다.

1922년 일본군이 점령한 산둥반도 칭다오를 장악하고 있던 칭다오수비군사령부는 일본 전국 제국대학들과 구제 고등학교들에게 36군데에 면밀하게 분류한 독일어 원서 25,000 권을 나눠서 기증합니다.

이 책들은 원래 대부분 칭다오에 설립되어 운영되던 키아우초우 바블리오텍(Kiautschou Bibliothek)에 있던 독일 서적들이었습니다.

일본군이 점령후 "노획서적"으로 분류되어 보관하고 있던 도중, '구라파 문명' 습득에 그야말로 '일심현명'이었던 일본사회, 특히 제국대학과 구제 고등학교들이 요청을 하여 수비대사령부가 각 고등교육기관에 기증을 하였던 것입니다. 마쓰야마 고등학교도 그 중의 하나였고, 이후 마쓰야마 구제 고등학교를 이은 에히메 국립대학이 이를 아직도 보유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유라시아 대륙의 이쪽 끝에 조그마하게 있던 독일과 유럽의 문명을 흡수하려던 일본제국의 갈증은 점령지 도서관에서 그치지 않았습니다. 무려 5천명의 각종 레벨의 "혼바" 독일문명을 잠시 손에 쥐고 있었던 것이죠.

실은 인류의 역사에 대단히 예외적으로 근대 전쟁 이후에 등장한 개념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포로에 대한 인도적 처우'라는 개념입니다. 뭐 용맹한 장수나 귀족계급이었던 장교들에 대한 대우는 그 이전에도 있었다고 할 수 있지만, 신분이 그냥 보통인 병사들이 포로가 되었을때 이들에게 "인도적 대우"를 한다는 것은 지금은 당연한가 싶지만 실은 인류가 그 이전에는 실제 필요도 당위성도 일도 생각해본 적이 었었던 이상한 개념이었다고 할까요. 보통은 1929년 제네바협약으로 전쟁포로에 대한 인도적 대우가 국제적으로 합의되었다고 하지만, 그 이전인 1899년 제1차 헤이그 만국평화회의에서 전쟁포로에 대한 합의가 먼저 부분적으로 있었습니다. 회담의 결과로 나온 조약합의문 중의 육상전쟁에 대한 합의문 제2장 4절은 "전쟁포로란 전쟁 상대국의 정부 하에 있는 것이지, 그들을 사로잡은 개인이나 군대에 속한 것이 아니다. 전쟁포로는 인도적으로 대우받아야만 한다..." 라고 시작하고 있습니다.
1899년 7월의 이 첫번째 조약합의문에 서명한 국가 32개국 중 아시아의 4개 국가 중의 하나였던 일본제국은 이후 러일전쟁때만해도 그 정도는 아니었지만 이제 본격적으로 세계대전에조차 참가하는 소위 "문명국"의 일원으로서 이 헤이그 협약의 인도적 포로 정책을 적극 시행에 나섭니다. (물론 그 대상이 구라파 문명국가였기 때문인 것은 뭐 딱히 강조할 필요는 없겠지요)

** 이준 열사가 떠오르는 헤이그 만국평화회담은 1907년의 제2차 회담이었습니다. 그리고, 1899년 제1차 회담 서명국 중 아시아 4개국은 일본, 샴(태국), 피르시아(이란), 그리고 대한제국(!)이었습니다)

아무튼 칭다오에서 항복한 독일 포로 5000 명은 일본 각지에 분산 수용되었습니다. 그리고, 초창기의 이런 저런 문제를 겪은 후 전반적으로 "인도적인 포로 수용"을 1920년 1월 마침내 1차 대전이 독일의 패망으로 종전된 후 베르사이유 조약으로 마무리될 때까지 대략 5년 조금 넘게 유지되었습니다.
뭐 결론적으로 봐라! 일본제국은 이제 문명국이다라고 강변하듯이 독일군 포로들은 상당히 인도적인 대우를 받았다고 합니다.

**일본 각지의 수용소 표시 지도입니다.

그리고, 또한 이 수용소들을 둘러싸고 독일 문화의 전파가 여러방면으로 이루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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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겐트 포이어 두번째 포스팅의 지연사태 by 迪倫

적어도 한주에 한번은 글을 쓰려고 하는데 지난 주말까지 회사의 프로젝트가 맞물려서 제대로 시간을 내지 못했습니다.

이번주 주말에 대신 원래 쓰려던 내용을 증보하여 포스팅 2개를 올려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럼 잠시만 기다려주십시오.
지난 포스팅의 덧글에 역시 주말에 같이 답글을 드리겠습니다.

유겐트포이어, 데칸쇼의 시대 by 迪倫

가장 인기가 있었던 청어시리즈와는 조금 다르지만 아무튼 일단 예고를 드린대로 새로 이야기를 본격 시작하겠습니다. 
이번 시리즈의 제목은 유겐트포이어(Jugendfeuer)라고 이름을 붙였습니다. 대략 20세기 초반 1910년대 전세계가 1차 대전을 통과하던 시절, 그때에도 불꽃같은 사람들이 살았고, 그렇게 확 피어올랐다 순식간에 사그라져버린 사람들 혹은 그 불꽃을 오래 이어서 바라던 꿈을 결국 이룬 사람들. 그런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먼저 영화 한편을 소개하면서 이야기를 시작하겠습니다. 예고편 영상을 한번 보시기 바랍니다.

이 영화는 1988년 공개된 "다운타운 히어로즈ダウンタウンヒーローズ)"라는 영화입니다.

동아시아에서 서양근대 문물을 먼저 수용하기 시작한 것은 청나라였다고 하는게 더 정당할 것 같지만 근대적 시스템으로 전환하는 것은 상당히 시간이 오래 걸렸던(혹은 아직도 걸리고 있는 중인) 반면 20세기의 동아시아 여러지역에 영향을 강력하게 미친 것은 아무래도 일본의 서양 근대화라고 해야 할 것입니다. 일본의 서양 근대화는 무리하게 단순화해서 말하자면 유럽문명을 이식해서 전력으로 따라잡기를 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 밑바닥에는 "군대"와 "제국대학"같은 "기관(institution)"들이 있었습니다.

이 예고편의 영화 다운타운 히어로즈는 흐음.... 실은 전혀 유명하거나 걸작이 아닙니다. 엥? 요즘은 조금 다르게 평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이 영화의 감독 야마다 요지(山田洋次) 감독은 당시 한참 '남자는 괴로워' 시리즈로 흥행에는 성공적이지만 80년대 폭발적인 에너지의 재팬 뉴웨이브 감독으로 소개된 적도 없고, 이 영화도 따히 수상경력이 있다거나 한국에서 약간 영화오덕계 키노같은 잡지에서 소개되지도 않은 약간 일본 내수로 소비된 '방화(方畵)'였다고 할까요. 하지만 약간 통속적이면서도 전형적인 연출과 내용인데도 기조가 따뜻하고 약간 반발짝 뒤에서 그래서 뭐 괜찮아 하는 센치멘트가 있어서 저는 대체로 야마다 요지 감독의 영화를 좋아합니다. 게다가 이 영화에는 제가 어릴적 좋아하던 야쿠시마루 히로코씨가 아스라한 첫사랑의 주인공으로 등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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