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타오르네, 고래의 눈물. by 迪倫

Euskaldun eta baleen arrantzale, esanahi berdineko hitzak ziren.에서 17세기에 새로운 블루오션이 생겨났고 그 블루오션의 미친갱이는 더이상 카톨릭 바스크가 아니었다며 마무리를 했었습니다.

실은 환상의 부자나라 "키타이"에 가기위한 서유럽의 후발주자들이 포르투갈과 스페인이 장악한 대서양 항로를 우회하기 위해서, 터진게 길이라고 북쪽의 차가운 바다에서 방황하기 시작하면서 이 이야기들이 시작됩니다. 21세기보다 훨씬 추웠던 소빙기의 17세기에 북극 항로로 아시아 태평양으로 간다느건 달리 설명안해도 안되는건 안되는일이지요.
첫시도는 얼토당토 않게도 모스크바 대공국의 이반뇌제를 만나게되어 무스코비 컴퍼니가 태어나게 됩니다.
무스코비 컴파니의 시말서는 아주 예전에 쓴 이 글을 읽어주십시오. "글로버 시어터의 셰익스피어와 헨리 허드슨"
훗날 제가 살고있는 섬을 발견한 사람인 헨리허드슨이 아직 잉글랜드 리그에 속해있던 시절인 1607년 북동쪽으로 가다보니, 호오! 키타이 가는 길은 몰라도 바다사자와 고래가 득시글거리더라는 것입니다요.

3년 뒤 1610년에 회사에서 역시 조나스 폴(Jonas Pole)을 시장조사차 스피츠베르겐으로 보냅니다. 스피츠베르겐에서 머무르면서 일단 바다사자를 잡고있었는데 해변에 떠내려온 고래를 하나 확보하게 됩니다. 그리고 본격적으로 포경업에 진출하자는 결론이 내려집니다.

그렇지만 무스코비 컴퍼니는 아니 잉글랜드에는 고래를 잡을 수 있는 인원도 기술도 장비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일단 가능한 방법을 찾아 제임스1세에게 청원을 넣습니다. 독점권을 주시면 고래를 잡아오겠으니 윤허하여 주시옵소서!
그리고 150톤급 메리나가렛호와 50톤급 엘리자베스호를 건조하여 "바스크인"을 고용합니다!
네, 바스크인요.?? 당시 현실적으로 먼바다에서 고래잡을 수 있는 인원도 방법도 고래잡는 장비도 바스크인들이 아니면 흉내도 못내는것이었습니다. 그것조차도 제임스1세가 그래서 외교적으로 나서서 요청을 했을 정도였습니다.

잉글랜드뿐 아니라 바로 뒤따라 게임에 등업한 네덜란드도 포경선에 바스크 포경꾼들을 고용해서 태우고 북극해 바다로 나갔습니다. 고용된 바스크인들은 물론 핵심 기술에 대한 비밀을 지킬려고 노력했지만, 아시다시피 역사 속에 그런다고 흘러나가지 않는 비밀 기술과 노하우란건 애시당초 존재한적이 없습니다. (예를 들어 한국도 그나마 쌓은 반도체 기술과 인력을 중국에 유출되지않게 하려는 노력은 원래 장기적으로는 소용없습니다. 애국심으로 비난하거나 호소할 일이 아니라 대신 더 다른 기술로 계속 나가는 수밖에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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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uskaldun eta baleen arrantzale, esanahi berdineko hitzak ziren. by 迪倫

북국의 바다 괴수에서 이야기를 이어가기 전에 우선 迪倫齋를 변함없이 찾아와주신 모든 분들께 조금 늦었지만 새해 복많이 받으세요! 인사를 전합니다. 아무쪼록 올해도 함께 재미있게 놀아주시기 부탁드립니다.

각설하고 지난 포스팅의 마지막에 소개한 400년만에 철폐된 아이슬란드의 바스크인 살인허가법부터 이야기를 다시 이어가겠습니다.

실은 그 바스크 살인법이 아이슬란드 섬의 북서쪽에 뿔처럼 툭 튀어나온 베스트표르드(Westfjords/Vestfirðir)라는 곳에 1615년 풍랑으로 표착한 바스크인 포경선원 80여명이 절박한 상황에서 인근 마을을 약탈하기 시작했고 그에 분노한 아이슬란드인들이 이들을 학살해버리면서 아예 이 땅에 바스크인이 보이기만 해도 죽여버려라 하고 법을 만들어 버린 것이 2015년까지 400년간 이어져 내려왔던 것입니다.

그럼 바스크인은 아이슬란드인의 철천지 원수인가 싶지만, 원래 충돌이란 가까워야 일어나는 것이죠. 한반도 역사에 카리브해 사람들이 아무런 영향도 역사의 악감정도 쌓이지 않은 것처럼 아무 관련 없으면 헤이트도 생겨나지 않습니다. (요즘은 조금 달라졌죠. 생전에 본 적 없어도 미워하고 무서워하는 마음이 세계 곳곳에 쌓여있으니까요)

실은 그 베스트표르드 지역에 바스크인들이 너무나도 접촉이 많았었습니다. 특히 바로 이 살인법이 만들어졌던 17세기에는 세상의 끝같이 멀어서 아무도 모르는 아이슬란드에 상대적으로 바스크인들이 얼마나 자주 접촉을 했었는지 바스크어-아이슬란드어 혼합 피진어까지 생겨났었습니다. 아래의 문서를 한번 보시죠.

이 문서는 18세기에 들어와서 수집, 정리된 바스크-아이슬란드 혼합어의 단어장 문서의 첫번째 페이지입니다. 관련 논문을 보니 대략 기브미, 퍽유, 뭐하냐, 안산다고 같은 간단한 하이브리드어에서 조금 복잡한 말들까지 피진언어가 생겨났다고 합니다.
예를 들어 보면 좀 복잡한 바스크어 피진어 중에
"Christ Maria presenta for mi balia, for mi, presenta for ju bust ana" (II, 224) 같은 말이 있는데,
이 말의 같은 의미의 아이슬란드어는 이렇다고 합니다.
gefe Christur og Maria mier hval, skal jeg gefa pier spordenn
영어로 번역한 의미는 이렇습니다,
'If Christ and Mary give me a whale, I will give you the tail'
크리스트와 메리가 내게 고래를 주면 너에게 꼬리를 주겠다. (註: 크리스트와 메리는 사람 이름이 아니라 신이라는 의미입니다)
얼핏 보기에도 바스크어와 인도유럽어족 중 게르만어계통의 아이슬란드어는 문법적 순서가 많이 달라 보입니다.

바스크어는 인도유럽어족이 아닙니다. 실제 바스크족의 기원에 대해 네안데르탈인의 후손이라는 학설이 등장할 정도로 대부분의 유럽인들과 다른 계통에 속한다고 합니다. 가장 최근의 학설은 유럽의 신석기 시대에 가장 먼저 정착한 농경민 그룹의 후손으로 본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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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국의 바다 괴수 by 迪倫

니콜라이와 게오르기, 俄國伯爵케셸닁 에서 케이젤링 백작이 포경업을 하기위해 왜 노르웨이로 갔는지 그 이유를 한번 찾아가 보겠습니다.

보통 우리가 책을 읽을 때 유럽사라고 하는 경우는 좀 과감하게 단순화시켜 말하면 앞부분은 지중해 연안의 이탈리아이고, 뒷부분은 영국, 프랑스, 독일에 대한 이야기라고 해도 무리가 아닙니다. 문제는 그래서 책을 따라 읽는 우리도 시점이 이들 서유럽 국가의 시점으로 세계사를 바라보게 됩니다. 그래서 고래잡이의 경우 바스크인이 먼저 나오고 한참 뒤인 17세기에 네덜란드, 영국, 프랑스 포경선들이 북쪽 바다에서 고래를 "발견"하여 산업이 되는 것으로 진행되었다고 쉽게 생각해버리게 됩니다. 실은 일단 "17세기 후반, 고래를 잡던 어느 노수부의 꿈"이라는 포스팅을 먼저 읽어봐주시면 조금 좋겠습니다.

게다가 17세기의 그 "고래 발견"의 계기가 된 바렌츠의 탐험도 전인미답의 영역으로 들어선 모험가의 아우라가 휘황하게 비치는 것 같은데.... 실은 조난당했던 바렌츠호의 선원들을 구해준 것도 거기 원래 살던 어부들이었고, 그 차가운 바다에도 이미 사람들이 여러가지 생존의 활동들을 해오고 있었습니다.

제가 청어시리즈 "1555년 헤링, 그리고, 북국(北國)에서 온 어느 망명객."에서 소개한 적이 있는 스웨덴의 망명 카톨릭 학자, 사제, 외교관이었던 올라우스 마그누스(Olaus Magnus, 1490 – 1557. 원래 스웨덴 이름은 올로프 만손 Olof Månsson)이 1555년 출간한 책 "Historiae de Gentibus Septentrionalibus, 북국인(北國人)의 역사"에서 청어 이야기가 실린 제20권 'De piscibus (물고기에 대해서)' 다음 권인 제21권의 제목은 "De piscibus monstrosis" (괴수 물고기에 대해서)입니다.

이 책에는 청어시리즈 때 말씀드렸듯이 재미있는 목판 일러스트들이 각 장마다 들어있습니다. 이 괴수 물고기 권에도 마찬가지로 각 장마다 그림이 실려있습니다.
먼저 그 그림 몇개를 감상해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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