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륜(目輪)? 눈바퀴? by 迪倫

제왕의 자격 - 칠정산를 올리고 시간이 좀 지나 맥락이 끊어진 듯한 기분이 들지만 그래도 조금 남은 길을 끝까지 열심히 하겠습니다. ㅠㅠ

중국의 과학과 무명 시리즈로 유명한 조지프 니덤은 1950년대에 중국의 천문의기 중 시계에 대한 연구를 진행하다가 조선의 혼천시계에 대해 알게되고 60년대 초반 다시 세종대에 만들어진 천문의기들에 대한 추가 연구를 진행합니다. 이 연구는 70년대 중반까지 이어져서 세종대 천문의기들에 대한 연구와 조선 후기 송이영의 혼천시계, 그리고, 조선시대의 천문학 발전에 대한 일련의 연구들을 엮어 1986년 "The Hall of Heavenly Records: Korean Astronomical Instruments and Clocks, 1380-1780"라는 책을 출간합니다. 다행히 이 책은 한국어 번역판이 "조선의 서운관: 조선의 천문의기와 시계에 관한 기록" (살림, 2010)이란 제목으로 출간되어 있습니다. (물론 32년이 걸리긴 했지만 말입니다) *아래부터는 이 책을 한국어 제목 '조선의 서운관'으로 지칭하겠습니다.

한국에서도 90년대 이후 즈음부터 과학사 학계에서 사료들의 번역과 연구들이 이어져서 조선시대 천문학에 대해서는 그래도 꽤나 많이 밝혀지게 되었습니다. 니덤이 위의 '조선의 서운관' 책 서문에서 힘주어 "중국 문화권 주변의 모든 민족 중에서 한국인은 과학, 기계기술 및 의학에 가장 관심이 컸을 것이다" 라고 강조하면서, 조선 왕조가 "무미건조한 신유교주의와 관료적 파벌주의가 초래한 정체상태에 빠져있었다"는 것은 완전히 오류라고 강조할 수 있었던 것은 실은 세종실록과 증보문헌비고의 번역에서부터 이후 천문 역법에 대한 여러가지 사료들이 번역되고 재조명되면서 실증적으로 조선의 과학 기술이 단순한 중국으로부터 하사받은 것이나 모방한 것이 아니라 역동적으로 수용하고 변형을 통해 정착화 시키는 대단히 중요한 성취라고 이제는 얘기를 할 수 있게 되었기 떄문입니다.

제가 꽤 오랜 기간동안 여러번 자명종부터 천문학과 광학 시리즈로 소개드린 과학사 부분의 이야기들은 물론 이렇게 조금씩 오랜 고정관념을 깨면서 밝혀온 과학사 학계의 노력을 정리해서 알려드린 것 뿐입니다. (제가 무슨 연구를 하지는 않습니다. 그점 오해마세요)

니덤의 책에는 세종대에 만들어지고 운용된 여러 천문관측 기구들이 나오는데, 이 세종대의 천문장치들은 대부분 원나라대 곽수경의 천문대에 만들어졌던 의기들을 조선에서 다시 만들어 낸 것들입니다. 이게 그냥 단순한 복사가 아닙니다. 반도체를 그냥 삼디프린터로 복사하면 작동하는 반도체가 되는게 아니지 않습니까! 원리를 정확히 알아야 만들 수 있고 또 조선 한양의 관측지점의 경위도를 정확히 보정해야 활용할 수 있는 것들이었습니다.....만 이번 시리즈에서는 이것들은 그냥 넘어가겠습니다. 다만 실제 이 세종대의 천문의기들에 반영된 이슬람 천문학에 대해서는 실제 연구가 진행되어 있습니다.

이 책에서 "그 밖의 의기들"에 몇가지 마이너한 관측 장치들이 나오는데 여기에 오호! 아스트로라브가 등장합니다.

실은 니덤이 이 책을 쓴 시기보다 80년 전에 조선에 온 W. C. 루퍼스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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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근황 by 迪倫

이번 주말에는 이어지는 포스팅을 올리려 했는데 이글루스가 왠일인지 계속 에러가 나네요.  글을 다시 정리해서 쓰다가 일단 내일 다시 시도해보겠습니다.

그럭저럭 오프라인이 무척 바빴습니다. 주로 먹고 사는 일들이지만 아무튼 차분히 앉아서 블로그를 할 여유가 좀 없었습니다.

그 사이 2017 대표 블로거 발표가 났던데 저와도 얘기를 나누고 계신 이윳분들이 여러분 이름이 올라와 무척이나 반갑고, 또 축하드립니다! 제가 일일이 찾아가 축하인사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이글루스가 사실 예전보다 활발치는 않아도 여전히 좋은 블로그들이 남아있습니다. 저도 이글루스에서 딱히 떠날 생각도 없고 (여기 서비스가 중단되면 블로그도 마칠려고 합니다만) 아무튼 좋은 글들 계속 읽기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아스트로라브 시리즈는 대략 4편 정도 더 이어가고 마무리 지으려고 합니다. 아무튼 부지런히 마무리 지어보도록 하겠습니다.

그 다음에 뭐할지는 슬슬 생각해봐야 할텐데요. 실은 뇌의 캐퍼시티가 요새 꽉 찬 느낌입니다. ㅠㅠ

그리하여 어쨌든 다들 건강한 봄 지내가시기 바랍니다. 이번주 내로 포스팅 돌려보겠습니다. 아자!

제왕의 자격 - 칠정산 by 迪倫

제왕의 책임 - 교식추보에서 이야기를 이어갑니다.
지난 포스팅에서 언급한 "사여전도통궤"(四餘纏度通軌)라는 천문학 책의 발문에 세종대의 역법 프로젝트에 대한 타임라인이 기록되어있습니다. 그 내용 중에서 인용합니다:

"전하(세종)께서 즉위하신 이듬해인 을해년(1419)에 영서운관사(領書雲觀事)【신(臣)】 유정현(柳廷顯)이 유신(儒臣)을 시켜 역법(曆法)을 정리하여 바로잡게 하자는 의론(議論)을 올리니, 전하께서는 그의 주청을 가납(嘉納)하여 제왕의 정치에 그보다 중요한 것은 없다고 여기시어 각별히 마음에 담아두시고, 이에 예문관 직제학 【신】정흠지(鄭欽之) 등에게 분부하여 수시력의 법을 상세히 연구하고 그 술(術 산법(算法)과 상수(常數))을 조금씩 익히라고 하셨다."

고려에서 조선으로 넘어가는 격동기에는 천문역법을 정비할 상황이 아니었고, 그런 다음 왕조가 일단 정착이 되자 세종이 즉위한 이듬해 '전하, 이제 조선의 제왕으로서 자격을 갖추어야 합니다'라는 시대적 요구가 제기되었습니다. 그리하여 이때부터 대략 25년간의 프로젝트가 진행이 됩니다.

발문의 이어지는 부분입니다: (머릿숫자는 제가 임의로 붙였습니다)
1. 또 예문관 대제학 【신】정초(鄭招) 등에게 분부하여 한층 궁리하여 그 산법(算法)을 두루 익히게 하시고 또 의상(儀象)과 구루(晷漏 해시계와 물시계)를 제작하여 서로 참조하게 하시니, 역을 계산하고 입증하는 체계가 잘 갖추어지게 되었다.
2. 또 근년에 얻은 중국의 《통궤(通軌)》에서 사용한 방법은 수시력에 근본을 두고 가끔 더하거나 줄여서, 서역(西域)의 《회회력(回回曆)》과는 다른 체계를 갖추었지만 절목(節目)은 아직 온전히 갖추어지지 못하였다.
2. 임술년(壬戌年 세종 24년, 1442년)에 다시 봉상시 윤(奉常寺尹) 【신】이순지(李純之)와 봉상시 주부(奉常寺主簿) 【신】김담(金淡)에게 분부하여 《수시력》과 《통궤》의 체계에 근거하여, 같은 점과 차이점을 가려서 정밀한 것을 가려 뽑고 거기에 몇 가지 항목을 더하여 한 권의 책으로 만들게 하고, 《칠정산내편(七政算內篇)》이라고 이름을 붙였다.
4. 또 《회회력경(回回曆經)》, 《통경(通經)》, 《가령(假令)》 등의 책을 이용하여 그 계산법을 연구하여, 일부는 빼거나 더하고 또 누락되거나 생략한 것은 보완하여 마침내 온전한 책을 완성하여 《칠정산외편(七政算外篇)》이라고 이름을 붙였다.
5. 그러나 《수시력》ㆍ《통궤》ㆍ《회회력》은 일출입(日出入)과 주야각(晝夜刻)이 각각의 소재(所在 관측 위치)에 따라 계산하여 정한 것이어서 본국(本國 조선)과는 다르다. 이제 본국 한도(漢都 한양)의 매일(每日) 일출입과 주야각으로 바꾸어 내편과 외편에 기록하여 길이 정식(定式)으로 삼는다.
6. 《수시력경》의 역일(曆日), 《통궤》의 〈태양통궤(太陽通軌)〉, 〈태음통궤(太陰通軌)〉, 〈교식통궤(交食通軌)〉, 〈오성통궤(五星通軌)〉, 〈사여통궤(四餘通軌)〉를 비롯하여 《회회력경(回回曆經)》, 《서역역서(西域曆書)》, 《일월식가령(日月食假令)》, 《월오성능범(月五星凌犯)》, 《태양통경(太陽通經)》과 《대명력(大明曆)》, 《경오원력(庚午元曆)》, 《수시력의(授時曆議)》 등의 책을 모두 교정(校正)하고, 또 여러 문헌에 수록된 역대 천문, 역법, 의상, 구루에 관한 글을 모아서 합치고, 아울러 주자소(鑄字所)에서 간행하여 널리 전파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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