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울볼 인생 by 迪倫

그는 정말 그걸 믿었던 것일까? - 만주국의 민족협화에서 말씀드렸듯이 이번 시리즈의 마지막 편입니다. 고교야구 영화에서 시작한 이 이야기가 아무튼 배타고 산으로 가버린지 오래라서 도대체 어떻게 마무리를 지어야 할지 고민을 좀 했습니다. 실은 아직 그 과정에서 자료가 아직 불충분해서 혹은 이야기 연결에 이어지지않아서 언급하지 못하고 넘어가는 내용들이 적지않습니다만, 이 블로그야 원래 그냥 재미있자고 얘기나 나누는 거니까 언젠가 기회가 되면 다시 얘기하든지 아니면 나중에 전문가들이 연구를 해서 보다 상세하고 확실하게 공개할 때를 기다려봅시다. 아무튼, 그래서, 이번 마지막편은 다시 잘 알려지지않은 독립운동가 한명을 소개하면서 시작하겠습니다.

2008년 4월 민족문제연구소에서 친일인물명단 4776명을 선정 발표하고 이의신청을 받기 시작하였습니다. 이때부터 결과적으로 한국 사회에 적지않은 파장을 불러온 사건이라고 저는 보고 있습니다만, 다른 논란의 이유는 여기서 언급하지 않겠습니다. 당연히 박석윤은 이름이 올랐지만 의외로 민생단 사건이나 제네바의 밀정이 아니라, 총독부 기관지 매일신보 부사장의 경력으로 인해 '언론, 출판' 부문에서와 만주국 고위관료 경력으로 인해 '중국_만주' 부문에서 중복 기명되었습니다.

그리고, 첫 발표 후 1년간 이의신청과 검증을 거쳐 원래 명단에서 단 3명을 완전 철회하고 최종 4389명의 친일인명사전을 2009년 11월에 공개했었습니다. 이 완전히 제외된 3명은 후손등의 이의신청은 없었지만 일본 육사 27기 소위 출신으로 거명되었다가 3.1 운동때 체포되었다가 상해 망명을 준비하던 중 사망한 것이 확인된 이동훈과 후손들의 이의신청에 의해 고등문관 시험에 합격하여 거명되었다가 무단으로 부임지에 가지않고 숨어있었음이 확인된 신현확, 그리고 만주 협화회 간부 경력으로 인해 '중국_만주' 부문에 이름이 올랐던 최근우(1897-1961)입니다.

최근우는 실은 잘 알려지지 않은 독립운동가입니다. 제가 실은 이번 시리즈에 두번이나 이 사람 이름을 슬그머니 언급을 하였는데, 이제 마지막 편에 다시 빵 터트리려고...했던 것은 아니구요. 처음 최근우가 이번 시리즈에 등장한 것은 초창기의 '제국에 던지는 질문 - 주의자'편의 앞부분에서 "1919년 11월 14일 여운형은 임정의 최근우, 신상완과 함께 상하이를 떠나 나가사키를 경유하여 18일 도쿄에 도착합니다."라는 문장에서였습니다. 최근우는 개성 출신인데 일찍 일본 유학을 떠나 도쿄 고등상업학교를 졸업하였고, 2.8 독립선언서 의거의 주동 핵심인물이었고 독립선언서 동경유학생 대표로 체포되어 복역을 하였었습니다. 이후 상해로 건너가 임정에 가담하여 의정원 의원으로 활동하다가 여운형의 일본 방문에 일종의 상해 임정측에서 다분히 여운형이 혹시라도 우려처럼 일본측에 회유되는지 감시자의 역할을 담당한 수행원으로 동행했었다고 합니다.

이후 독일 베를린대학과 프랑스 등에서 유학을 한 이후에는 1928년 귀국하여 국내에서 각종 사회운동 등에 가담했습니다.

1922년 독일 유학생들의 기념 사진 중에 동그라미친 사람이 최근우입니다. 현재 확인되는 유일한 사진입니다.

그러던 1936년 삼천리 잡지의 기사 "滿洲와 北中國의 白衣風雲兒群"이라는 만주의 조선인 모모하는 인사들을 소개하는 글에 보면 "崔勤愚-이 분은 일즉이 獨逸伯林大學을 졸업한 才士로써 오랫동안 安東縣 社會에서 조선인 층을 위하야 만흔 활동을 하고 잇든 이로 최근에 와서는 安東城 民政廳 事務官格으로 들어가서 관료적 생활 속에서 지낸다고 한다."라고 하면서 그가 만주국 민정청에서 관료로 지내고 있다는 소식을 전하고 있습니다. 실제 최근우는 40년대 초반 협화회 안둥성(安東省) 본부 사무장직을 해방 때까지 맡아서 하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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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정말 그걸 믿었던 것일까? - 만주국의 민족협화 by 迪倫

바르샤바의 미스터리, 1939년.에서는 실은 국제적 맥락에서의 만주국이라는 점을 강조해보려 하였지만 박석윤이 바르샤바 주재 총영사로 한 일에 대한 자료가 너무 없어서 실은 어느 정도 대단히 부실한 포스팅이었습니다. 언젠가 만주국 외교부의 자료들이 찾아져서 뭔가 공개가 되면 좋겠지만 현재로서는 어느 누구도 제대로 연구를 하고 있지 않는 상황이라 먼 훗날로 기약해야 할 것 같습니다.

박석윤이 1940년 만주국으로 다시 복귀한 다음에는 만주국 외교부를 거쳐 협화회 중앙본부 위원으로 해방되던 해까지 만주에 있었습니다. 지난번 포스팅의 마지막에 인용한 1940년 도쿄의 환영회장에서 언급한 "わが満洲国が建国の理想として民族協和の理念をうちたてたことは、実に全世界に対して、新しい指標をあたへるもの(우리 만주국이 건국의 이상으로 민족협화의 이념을 세운 것은 실로 전세계에 내세울 새로운 지표)"라는 말이 대단히 의미심장합니다. 스스로 "우리 만주국"이라는 표현처럼 만주국을 뭔가 스스로의 정체성의 일부분으로 내세우고 있습니다.

만주국은 현재까지 알려진 바로는 관동군이 일본 재국정부 내부의 공식적 입장을 무시하고서까지 무리하게 진행하여 설립한 괴뢰국가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리고, 관동군 내 파벌 간에 만주국의 경영에 대해 입장차가 심하게 존재하였다는 것도 알려져 있습니다.

당시 만주에는 대단히 이상한 사람들이 많이 모여있었습니다. 예를 들어 유명한 남만주철도에는 초창기부터 조사부(調査部)라는 기관이 있었는데 이곳은 일종의 싱크탱크 혹은 정보수집기관의 역할을 하던 곳입니다. 흥미있는 것은 다이쇼 데모크라시가 끝나고 사상통제를 강화하기 시작한 쇼와 시대 일본 내지에서 자리잡기 어렵게된 엘리트 자유주의자라든가 마르크스 주의자들이 상대적으로 자유롭고 대우가 좋은 만주, 그 중에 브레인이 필요했던 만철로 상당히 모여들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만철 조사부에서는 본토에서는 불가능한 사회주의적 연구방법과 해석을 시도하는 경우도 많아서, 심지어 40년대 전반 관동군 헌병대에서 두차례나 만철 조사부 내의 사회주의자들을 검거 체포하는 사건들이 계속 연이어 터질 정도였습니다.

이들 만철 내 '주의자'들은 흥미롭게도 예를 들어 빈농을 대상으로 협동농장 형식의 농업 조직을 구상하여 실행하거나 노동운동등에 연루된 것으로 보이기도 하고 혹은 헌병대에서 조작하여 얽어매기도 하였는데, 당시 만주국 내에 상당한 반향을 불러일으키던 "동아연맹 운동"에 가담하거나 동조하는 이들이 많았다는 점입니다.

"동아연맹"이란 지난번에 제네바에서 일본 대표 마쓰오카 요스케 수행무관 중에 당시 계급 대좌였던 이시와라 간지(石原 莞爾, 1889 - 1949) 란 사람을 뺄 수가 없습니다. 아니 이 사람이 동아연맹주의를 만들어낸 사람입니다. 게다가 만주국을 만들어낸 사람이기도 합니다. 현재까지는 만주국 수립의 계기가 된 만주사변의 방아쇠였던 류탸오후 사건(柳条湖事件)을 기획 실행한 사람이 바로 이 사람이라고 알려져있습니다. (만화 무지갯빛 트로츠키에 등장한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이 만화 재미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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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르샤바의 미스터리, 1939년. by 迪倫

별편: 1939년 전후의 박석윤에 대한 참고자료에서 박석윤의 1939년 주바르샤바 만주국 총영사 부임의 전후를 주위 사람들의 입을 통해 들어보았습니다.

그런데, 위키백과의 박석윤 항목을 보면 "박석윤은 민생단의 후신인 간도협조회에도 참가하여 밀정 조직을 관리했으며, 관제 조직인 만주국 협화회에 가담하여 선무 공작을 지도했다. 만주국이 수립되자 만주국 외교부의 공무원으로 임명되어 해외에서 외교적인 독립 운동을 벌이는 이승만 등의 동정을 일제에 보고하는 등의 밀정 활동을 계속했다. 이렇게 쌓은 공을 인정받아 만주국의 폴란드 바르샤바 주재 총영사직까지 맡게 되었다."라고 되어있습니다.

먼저 제가 우선 말씀드린대로 간도협조회에 참가해서 밀정 조직을 관리했다는 것은 아직 제가 이에 대한 정확한 근거 사료/자료를 아직 찾아보지 못했습니다. 만주국 협화회에 가담했다는 것은 나중에 다시 설명하겠지만 그냥 선무공작을 지도했다 정도의 레벨이 솔직히 아닙니다. 제네바에서 이뤄졌던 이승만 등의 동정을 보고하는 밀정 활동은 만주국 외교부 공무원으로 임명된 것이 아니라 일본 외무부와 관동군의 촉탁 신분으로 한 것입니다. (그게 그거.... 아닙니다) 그리고, 바르샤바 총영사직이란 이런 정도의 밀정 나부랑이에게 주어지는 포상성 명예직으로 볼 수가 없습니다. 위키백과의 내용은 세세한 부분으로 보면 실은 대단히 부정확하다고 말씀드려야 할 것 같습니다.

마침 이 포스팅을 쓰려는 와중에 스페인에서 카탈루니아가 독립을 선언했습니다. 비슷한 상황의 스코틀랜드는 역시 카탈루니아의 독립을 지지했습니다. 이 두 곳은 지난 수세기 동안 이미 스페인 왕국, 혹은 브리튼 연합왕국의 일부로 존재해온 곳입니다. 우리가 마치 충청도 사람, 강원도 사람 하듯이 외부에서는 인식하던 곳이지요. 하지만 1920년대 조선인들에게도 유혹의 바람이 불었던 제국 내에 붙잡아두는 미끼로서의 자치의회와 자치정부가 오랫동안 존재해온 곳입니다. 이들 독립선언 "국가(state)"이 어엿한 "주권국가(Nation)"가 되는데 가장 중요한 우선 순위는 국제사회의 "승인"입니다.

물론 만주국은 상황이 조금 다릅니다. 일본 관동군의 계획적 장치로 홀연히 만들어진 곳입니다. 하지만 그래서 더더욱 배후의 일본 꼭두각시라는 이름표를 떼어내려면 역시 다른 국제사회 속에서 국가로 인정받는 곳들로부터 동일한 국가로 인정을 받아야 하는 것이지요.

만주국의 첫 승인국은 물론 일본입니다. 만주국이라는 존재 자체를 부정하기로 결론내린 리튼 보고서가 채택되기 몇일전 전격적으로 일본이 만주국을 국가로 승인합니다. 물론 그리고 나서 일본도 국제동맹을 탈퇴해버렸으니 그다지 아무도 심각하게 수용하지 않습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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