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점 공고 by 迪倫

당분간 休店 합니다.
그동안 대화 나눠주셨던 분들 진심으로 감사했습니다.

연락이 필요하신 분은 dylanzhai_eglu@yahoo.com 를 이용해주십시오.

포스팅은 일단 계속 공개해두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라랑데역서, 그리고, 시리즈 마무리입니다. by 迪倫

데우스, 천신(天神)의 시계, 목성.에서 18세기 후반 청나라에 와서 큰 영향을 미쳤던 프랑스 왕립 과학 아카데미와 파리 천문대의 이야기를 들려드렸습니다. 그리고, 18세기가 기울던 1789년. (콰광!)

1789년 프랑스 혁명이 시작되었습니다! 혁명의 광풍에 몰려나온 군중들에게 파리 천문대는 앙시앙레짐 바로 그 자체의 상징처럼 보였습니다. 파괴의 직전까지 몰린 파리 천문대는 다행히 혁명을 주도한 국민공회가 보호하여 장비가 일부 파괴되기는 했지만 고스란히 공화국으로 승계되었습니다.

하지만 당시 파리 천문대를 이끌고 있던 카시니4세는 바뀐 세상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4년 뒤에 대장직을 자의반 타의반 사임하게 됩니다. 그동안 국민공회는 파리 천문대를 활용하여 세상을 완전히 바꾸어버리겠다는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었습니다. 우리가 지금 잘 인식은 못하고 있지만 지금도 매일 매일의 생활에 기준으로 삼는 바로 프랑스 혁명의 산물 바로 "미터법"입니다! 수천년간 이어진 구체제의 왕과 교회와 귀족들의 세계로부터 완전히 단절하여 전 우주에 보편적인 단위를 정하고 누구에게나 보편적인 기준으로 세상을 살아간다! (물론 아직도 미국은 그레이트 어게인하게 혼자 야드법을 씁니다만) 1미터는 자오선의 4천만분의 1. 자오선을 정확히 측정하여 1미터를 구하라!

또한 10진법의 미터법을 확장하여 더이상 신과 왕들이 끼어들 틈 없는 혁명 달력을 제정합니다. 한해의 시작은 황도와 적도가 교차하는 추분을 기점으로 포도의 달, 안개의 달, 꽃의 달, 그 유명한 혁명의 열기가 훨훨 타올랐던 공포의 떼르미도르, 열(熱)의 달같은 자연을 따르는 이름과 그 보다더 근본적으로 시간을 한주는 10일, 하루는 10시간, 한 시간은 100분, 1초는 100초.... 오오오! 이거 원래 동아시아 100각법 비스므리한가요?

이런 새로운 시간과 달력과 미터 기준의 자오선 측정등의 일들을 위해 파리 천문대 출신의 10인 학자들로 위원회가 구성되고 이후 경도국(Bureau des Longitudes)이 상설 설치된 다음 이 경도국 산하에 파리 천문대가 소속됩니다. 그리고 혁명 후 첫 천문대장은 위원회 10명 중 한명이었던 천문학자 조셉 제롬 르프랑스와 드 라랑드(Joseph Jérôme Lefrançois de Lalande, 1732-1807)가 임명됩니다.

이 라랑드라는 사람의 평을 보면 대단히 천재적인 혁신적인 과학자라기보다 대단히 성실한 학자 타입이었다고 합니다. 파리 천문대 대장직을 제1 공화국이 성립되고 나폴레옹이 등장할 때까지 맡아 여러가지 천문학적 활동을 무난히 이끌어냅니다.

그런데 성실한 타입이라는 게 확실하다 싶은게 32살이던 1764년 18세기 중반까지의 급속도로 업데이트된 천문학 지식들을 잘 종합하여 2권짜리 "아스트로노미(Astronomie)" 즉 천문학 개론서를 펴냅니다. 게다가 이 책을 거의 10년마다 증보판을 내어 1771년 제2판 3권, 1781년에 4권으로 증보, 심지어 혁명 기간 중인 1791년에도 제3판 증보판처럼 그야말로 "성실함"을 보였습니다.

그런데 1773년에 원래 1771년 제2판을 저본으로 하여 네덜란드에서 네덜란드어 번역판 "아스트로노미아 오프 스테르레쿤데'(Astronmia of Sterrekunde 직역하면 천문학 또는 별에 대한 연구)이 출판됩니다.

자, 이 책이 그런데 20 여년이 지나 1800년 조금 전에 VOC의 배를 타고 나가사키로 전해집니다.

이어지는 내용

데우스, 천신(天神)의 시계, 목성. by 迪倫

천문대의 밤: 파리, 베이징, 한양, 그리고, 에도.에서 마지막 부분에 파리 천문대에서 훈련받은 프랑스인 예수회 천문학자들에 대해 얘기하면서 "이들의 첨단 과학 기술이 활용된 것이 바로 건륭제 때의 첫번째 근대적 국경 개념으로 만들어진 전체 중국의 지도 "황여전람도(皇與全覽圖)"의 제작 사업이었습니다."라고 썼었습니다. 그리고, 한편 "이들이 기존의 전통적 동아시아의 관상감/흠천관 천문대에 유럽 방식의 천문학을 얼마나 도입해서 어느 정도로 조선과 같은 인근 국가에 전파되었는지는 저도 아직 파악을 다 못했습니다. 조선에서 18세기에 이미 보신것처럼 관상감에서 지속적으로 베이징을 통해 이들이 확립한 천문의기와 데이터와 수리적 이론서적들을 수입하여 300여명 규모의 관상감 인원을 교육하고 업무에 투입하였던 것 정도로만 짐작할 뿐입니다." 라고도 썼었습니다.

원래 마지막편을 쓰려고 했었는데 그동안 좀 바빠 블로깅도 자꾸 뒤로 미뤄지고 그 와중에 마침내 찾던 자료를 하나 찾아 확인할 수 있어서 한편만 위에 언급한 부분들에 대해 잠깐 얘기하고 넘어가려고 합니다.

이 시리즈가 처음 시작된 것은 실은 작년 추석 달도 밝고 해서 갈릴레오의 달 관측에 대한 소개를 하면서부터 였습니다. 그러면서 1610년 출판된 갈릴레오의 책 Sidereus Nuncius의 달 그림을 소개했었는데요, 그 페이지에서 좀더 뒤로 넘어가면 유명한 갈릴레오의 목성 4 위성에 대한 관측기록과 관측으로 추론한 결론이 나옵니다.

1610년 1월 7일부터 3월 2일까지 거의 매일 밤 관측 기록을 남긴 것 중에서 위의 이미지는 왼쪽 페이지 3개는 2월 26일, 다음 페이지의 첫번째는 2월 27일 , 아래 두개는 28일의 기록입니다. 왼쪽의 Ori는 동쪽, 오른쪽의 Occ은 서쪽. 동그라미는 목성이고 별표가 4개의 위성입니다.

이 관측 기록의 마지막에 결론이 두페이지 가량 이어지는데 이중에 제가 줄을 그어 표시한 부분의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이들은 동일하지 않은 원을 돌고 있는데, 이것은 두개의 행성이 목성으로부터의 거리가 멀때 같이 있는 것을 본적이 없는 반면, 두개 세개 때로는 모두다 서로 가깝게 붙어 있는 것을 발견한 사실에서 이끌어낸 명확한 결론입니다."

즉 목성 주위에 관측되는 4개의 작은 별이 주기가 각각 다른 원을 목성을 중심으로 돌고 있다는 것을 발견해낸 것입니다. 지금 우리는 위성이라는 것도 알고 당연히 목성을 '돈다'는게 별 게 아니지만 1610년에는 움직임을 오래 관찰해서 이걸보니 도는 것 같다!라고 발견해낸 것입니다.

이 목성 위성 4개는 이오, 유로파, 기니메데, 칼리스토라고 이름붙은, 망원경으로만 확인이 되는 5등급, 6등급 밝기의 별들입니다.
이어지는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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