迪倫齋雜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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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자드팩토리] 블루씨



2012/12/31 23:59

2012년 迪倫齋를 방문해주시는 분들께... 迪倫齋 冊床情談



안녕하세요. 迪倫입니다. 2012년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위의 이미지는 지난 2011년 11월부터 시작한 뉴욕 메트로폴리탄 뮤지엄의 "Storytelling in Japanese Art"에 소개된 에혼(繪本) 중 "十二類合戰"에 등장한 약사여래의 호위군 중 용의 모습을 찍은 것입니다. 뭐 용의 해를 맞이하여 그럭저럭 선물입니다만...
("十二類合戰(주니류갓센)"은 1620 ~ 40년경 제작으로 소개되어 있으며 뉴욕 공공 도서관 스펜서 컬렉션 소장 에혼입니다. 이번 메트의 전시회는 올해 2월까지 예정인데, 가마쿠라 시대부터 에도 후기까지 다양한 그림책들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올해 초 뉴욕을 방문하시는 분들에게는 추천 전시회입니다.)

원래 큰 기대 없이 소극적으로 개인적 잡담을 늘어놓으려고 시작한 블로깅이 생각보다 여러분들께서 찾아주시고 같이 대화 나누고 의견들을 주셔서 좀더 다채롭게 성장을 했습니다. 그런데, 작년 2011년부터는 이런 저런 오프라인의 상황으로 인해 점점 지리멸렬해가고 있는 중이긴 합니다.

그래도, 글들도 좀 여러개 쌓였다고 이래 저래 검색에서 걸려서인지 최근에 새로운 이웃분들도 늘어나고 해서, 아무래도 안내를 드리면 좋겠다고 생각이 들어, 첫머리에 올려두었던 인사말을 새로 업데이트를 합니다. 대신 작년 대문에 걸어두었던 안내 인사말은 비공개로 돌립니다. 역시 작년과 같이 일종의 방명록 겸 네비게이터 및 공지사항 정도쯤으로 하고 이번 2012년간 첫 페이지에 올려두겠습니다. 올리는 글과 좀 무관하거나 어정쩡한 내용을 개인적으로 전하실게 있으시면 이곳에 덧글 남겨주시면 합니다.

대략의 제 포스팅의 내용들을 알려드립니다. 두서없음이 특기이긴 하지만, 그래도 쓰다 보니 몇가지 카테고리에 대체로 집중이 됩니다:

기본적으로 키워드랄까 싶은 것은 뉴욕의 풍경, 좋아하는 영화, 그리고, 역사입니다.

예전에 올린 글 중에 제일 많은 내용은 키워드 역사중에 주로 경제사에 관련된 글들입니다. 심지어 상당히 경제사 전문 블로그로 알려지기까지 하고 있어서 민망할 정도입니다. 하지만 실은 제대로 들여다보면 잡담에 가까운 독후감이라고 해야 더 정확한 글들입니다.

그나마 본격적인 경제사 중에서 2009년에 16세기부터 18세기까지의 글로벌 트레이딩 특히 은(銀)의 교역과 이와 함께 진행된 금융의 발달을 따라가 본 시리즈를 1부와 2부로 나눠서 쓴적이 있습니다. 관련된 글들의 덧글은 지금도 계속 열어두고 있습니다. 언제든지 질문이나 지적, 의견 남겨주시면 답변드리겠습니다. 주로 16세기 스페인-포르투갈-일본의 1부는 여기, 그리고 17세기 이후 네덜란드-일본-영국의 2부는 여기입니다.

17-18세기의 근세사에 흥미를 가지다 보니, 네덜란드와 일본의 특이한 인터액션에 별도로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 편입니다.
이에 대해서는 "홍모국 아란타전"과 "出島物語 - Decima verhaar"이라는 카테고리로 연재를 하였습니다.

그리고, 난일(蘭日) 관계와 어쩌면 비교 가능하지 않을까 싶은 "조일(朝日) 관계" 태그 글들이 있습니다: : 주로 부산의 왜관을 중심으로 진행되었던 조일관계에 대한 이런 저런 글들입니다. [여기 클릭]

17-18세기 경제사 시리즈와 또다른 키워드인 뉴욕에 관한 이야기의 접점에서 "니우 암스테르담" 즉 오늘날 뉴욕의 네덜란드 서인도 회사 소속의 초창기 모습에 대한 글들을 묶었습니다. "17세기 니우 암스테르담"은 여기를 클릭해주세요.

한편 니우암스테르담 얘기는 원래 살고있는 동네인 뉴욕의 풍경과 역사에 대한 사소한 잡담에 가까운 글들을 올리던 것이 발전한 것입니다. 이 뉴욕에 관련된 글들은 "紐約市 風景과 小史" 카테고리로 묶어서 올리고 있습니다. 현대 뉴욕보다는 대체로 17~19세기 얘기가 좀더 많은 경향이 있어서, 관광용 가이드로는 아무래도 역시 무리일듯 싶습니다. 紐約市 風景과 小史는 여기 클릭

좀더 근대의 19세기나 20세기 초반의 경제사에 관련된 글들도 올렸거나 올리고 있는 중입니다. 주제나 소재 자체가 종종 조금 민감한 내용을 건드리게 될 경우도 있어서 아슬아슬한 감도 있지만, 학문적으로 중립적인 입장을 기본으로 취하고 있습니다. 현실 정치적 해석이나 오프라인의 자연인으로서의 제 개인적인 정치적 사회적 입장은 가능한 배제하고 있습니다: "경제사라고 할지..."는 여기 클릭 그런데, 이 카테고리에서 현재 19세기 후반부터 20세기 초반까지의 면방직업에 대한 글들을 연재처럼 올리다 현재 자료상의 문제로 잠시 중단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면방직업의 한쌍이라고 할지 모더니티라는 문화적 측면도 같이 고려해서, 2010년 후반에 1850년부터 1930년대 후반까지 진행되었던 국제적 실크 무역의 성장과 근대화를 다룬 글 시리즈를 올렸었습니다: "1850-1930s: 근대화와 실크산업"은 여기 클릭

"모더니티"라고 해서 경제사와는 조금 다른 측면에서 (순전히 개인적인 감상 취미로) 20세기 초반 주로 1920-30년대의 동아시아와 뉴욕, 유럽에 대한 주로 문화적 측면의 글들을 태그를 붙여두기도 했습니다. [여기 클릭]

그외의 각종 역사와 관련된 이야기들은 별도로 묶었습니다. 내용은 중구난방 잡다합니다만...아무튼, 역사관련이라고 일단 우겨봅니다: "기타 역사 잡담"는 여기 클릭

한편, 역사와 그리 무관하지않은 다른 개인적 카테고리들이 있습니다.

특히 이 블로그에 역사만큼 중요한 다른 키워드는 "영화"입니다.

그래서,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마이너한 영화들에 대한 심히 개인적인 얘기를 올리고 있습니다. 대부분 제가 봤거나 소장하고 있는 '중구난방' 취향의 영화들에 대한 잡다한 얘기들입니다. 최근에는 아시아의 고전영화들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 중입니다...  마이너하고 마이너한 영화

뭐 그러고도 개인적으로 이런 저런 얘기들을 올리는 "迪倫齋 冊床情談"이라는 카테고리가 있습니다. 그야말로 개인적인 소회들과 근황들입니다. 뭐 迪倫齋에 올려진 글 중에서 가장 "문학적"인 (이라고 쓰고 실은 감상적이라고 읽습니다만) 글들입니다. 그저 제 글을 읽어주시는 분들과 대화를 하는 기분으로 쓰는 글들입니다. 감정이란 쉽게 변하는 것이니만치, 나중에 보면 좀 챙피하기도 해서, 예전 글들은 비공개로 돌렸고 최근 글만 남아있습니다: "迪倫齋 冊床情談"


그리고 책에 관한 얘기들이 있습니다만, 마찬가지로 상당히 개인적인 이야기들입니다. 본격 도서 소개나 비평이 아니라서 어떤 글들은 역사 카테고리 글들의 보충 설명에 해당하는 것도 있고, 어떤 글들은 그냥 개인적 도서감상문도 있습니다. 책에 관한 얘기들


카테고리는 중간 중간 만들기도 하고 없애기도 합니다. "金融街 觀戰記"나 "광복군 印緬戰區工作隊"에 관한 글들이 있었습니다만, 현재 이런 저런 사정을 고려해서 모두 비공개로 돌렸습니다.

카테고리를 굳이 나누면 위와 같지만 실은 그래도 몇 년간의 글들이 서로 교차해서 상호 참조를 하고 있어서 처음부터 시간의 흐름을 타고 있는 측면이 있습니다. 그래서 제일 처음부터 보시기를 원하시면 여기를 클릭해주십시오. 나름대로 "블레이드 러너"의 대사를 인용하면서 첫 시작의 Vorwort를 올렸답니다. [여기 클릭]



원칙적으로 가능한 Ctrl +C/V를 하지 않고 대부분의 경우에 출처를 밝히려고 하고는 있습니다. 그래서 제 글을 보시는 분들에게도 "혹시"라도 글 중의 내용을 인용하실 경우 출처를 밝혀주시기를 기대합니다. 실은 우연히 제 글들을 이미지나 링크까지 그대로 옮겨 실어둔 글들을 발견했습니다. 상당히 마음이 편치않더군요. 그러지말아주시기 부탁드립니다.

글에 올리는 이미지는 가능한 출전을 밝히고 있습니다만, 제게 기록이 더 이상없거나 기억이 안나서 출처를 밝히지 못하게 되어버린 이미지들도 있음을 미리 알려둡니다. 위키페디아같은 출전의 저작권은 확인을 해서 올리고 있지만 출전이 없이 그냥 올라간 이미지 중에 문제가 된다고 알려주시면 해당이미지는 철거하도록 하겠습니다.

처음에는 그다지 읽는 사람들도 많지않아 혼잣말에 가깝다보니 이다/하다체를 사용했지만, 점점 대화가 늘어나면서 가능하면 입니다/합니다체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전 글들의 이다/하다체는 그런 사정을 감안해주시기 바랍니다.

글을 쓰다보면 아무래도 오류나 잘못된 기억이 들어갑니다. 오류를 보시면 언제든지 알려주십시오. 가능한 바로 확인해서 수정하도록 하겠습니다. 오타와 띄어쓰기는 상당수 제가 심각히 인식 중입니다만, 자꾸 발생합니다.

외래어의 표기는 기본적으로 외래어 표기법을 따르고 있습니다만, 제가 이미 10년 훌쩍 넘게 일상생활과 직장에서 영어로 생활하는 사람이 되어버려 무의식 중에 영어식 발음으로 그냥 표기하고 모르고 넘어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나마 그 영어식 표기조차 잘못 읽을때도 있습니다 ㅜ.ㅜ) 알려주시면 수정하도록 하겠습니다.

아무튼 대부분 그다지 정리되지 않은 얘기들을 읽어주셔서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무엇보다 링크를 하셨다고 알려주시면 저도 함께 링크를 하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뭐랄까 제 글을 읽으신 분들과 대화를 좀 더 나누고 싶어하는 편입니다. 그동안 제 글을 읽고 대화를 나누고 있는 분들의 덧글을 보시면 혹시 괜히 끼어드는게 아닐까 하고 지레 짐작을 하실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실은 진입장벽이 해수면 이하에 있는 "덧글-프렌들리" 블로그입니다. ^^ 남겨주신 덧글은 제가 혹시 모르고 넘어간 경우만 아니면 항상 "성심성의껏" 대답을 드리고 있습니다.

아무튼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말을 걸어주시기 기다리고 있습니다.

아, 그리고 조금 더 덧붙일 내용이 있습니다.
클릭하면 조금 덧붙인 글이 있습니다....

2012/05/18 10:27

1883년 뉴욕 전설의 레스토랑 "델모니코"에 도전해보자! (덧글 포스팅 대행) 동아시아 개화기

안녕하세요. 迪倫입니다. 오늘은 제 글이 아니라 "밥과술"님의 글을 대신 소개합니다.
저는 주로 역사나 영화에 대해 블로그를 하고 있습니다만, 역사란 것도 결국 사람이 먹고 살던 얘기가 아닌가 해서 종종 먹는얘기를 "진지하게" 다루기도 하고 있습니다. 음식 밸리에도 일년에 한번 정도는 글을 올렸던 것 같습니다.

실은 지난 3월 즈음부터 1883년 가을 뉴욕을 방문했던 최초의 조선사람들에 대한 글을 쓰고 있습니다.
예, 국사책에서 들어보신 적 있을 1883년의 미국 보빙사 사절단의 얘기입니다. 하지만 역사책에는 조선과 미국의 외교관계라든가, 개화파인물들의 정책 및 사상들에 대한 얘기만 있고, 정작 뉴욕에 와서 뭘 했는지 제대로 알려진 것이 없어 뉴욕의 신문 아카이브를 뒤져 거의 밀착 취재 형식으로 하루 하루 따라 다니고 있는 중입니다. 전체 글들은 여기 리스트가 있습니다.

그 중에 1883년 뉴욕에서 무엇을 먹었을지가 궁금해서 찾아본 내용들을 癸未紐約使行錄 特集(1): 보빙사님, 뉴욕에서 무엇을 드셨나요?라고 제목을 붙이고 얼마전 포스팅을 했습니다.

블로그 이웃 중의 음식밸리에서 주로 활동하시는 (달리 더 설명이 필요없으실) "밥과술'님께서 제게 덧글로 너무 길어질 것 같아 "셋방 포스팅"을 요청하시면서 그 글과 관련된 내용을 보내주셨습니다. 실은 이런 셋방 포스팅을 이전에도 한번 한 적이 있습니다: "'승가기(勝歌妓) 혹은 스기야키(す ぎやき)에 관해서'에 대한 덧글 포스팅"이라고 하여, 조선 후기 일본 음식에 대해 쓴 저의 글에 대해 밥과술님께서 귀한 글을 보내주셔서 제가 '셋방'처럼 포스팅을 하였던 적이 있습니다.

아무튼 그래서, 오늘은 바야흐로 "밥과술"님의 글을 올려드립니다:

먼저 이 글의 배경을 먼저 간략히 말씀드립니다.
1883년 9월 민영익, 홍영식, 서광범과 수행원들이 청나라와 일본을 제외하고는 처음으로 외국, 그것도 미국에 외교사절로 방문을 했습니다. 9월 24일부터 뉴욕시에서 1주일간 실업계 인사들의 안내로 각종 산업 시설을 시찰하였는데, 9월 25일 화요일 아침 일찍부터 뉴욕 다운타운 일대에서 에퀴터블 라이프 어슈어런스 라는 대형 보험사를 방문하고 난 후, 당사의 부사장 버로우씨의 초대를 받아 점심 식사를 뉴욕의 다른 동아시아 비즈니스를 하던 실업계 인사들과 함께 나누게 됩니다.

이 점심 식사를 한 곳이 델모니코스(DelMonico's)라고 하는 뉴욕 초창기 다이닝 업계의 표준을 만들어낸 고급 레스토랑이었습니다. 이곳에서 무엇을 먹었을지 궁금하여 찾아보았지만 실은 어떤 메뉴였는지는 찾을 수 없었습니다. 대신 이 점심으로부터 불과 2달 뒤, 이곳에서 뉴욕 실업계의 상공회의소 주최의 만찬이 있었고, 이 만찬의 메뉴를 코넬 대학교 데이터베이스에서 찾았습니다.
원래의 글에도 적어두었지만, 점심 식사이니 당연히 이보다는 가벼웠겠지만, 적어도 당시 이 델모니코라고 하는 식당에서 귀빈을 모시고 제공할 수 있는 요리들은 어떤 것이었는지 약간의 힌트는 얻을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밥과술님께서는 제가 올려둔 메뉴를 다시 정확히 분석하셔서 아래와 같은 글을 보내오셨습니다. 그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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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십니까. 오늘은 밥과술이 迪倫님의 블로그에 글을 하나 올리는, 셋방살이 포스팅입니다. 일전에도 스키야키에 대해서 한번 이런 식으로 올린 적이 있었습니다. 그동안 딜런님(한자를 치기 게을러서 그냥 우리말로 딜런이라 하겠습니다. 아시는 분들도 계시겠지만 迪倫이라는 단어는 밥딜런할때 딜런을 중국어표기한 것입니다. 자세한 내막이 궁금하신 분은 딜러님께 직접 물어보세요^^;)께서 보빙사 뉴욕방문기를 뉴욕쪽 기록을 찾아, 우리쪽 역사기록과 대조해가며 써주셔서 너무 재미있게 읽고 있던 참이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제일 흥미있게 읽었던 보빙사 일행이 먹었음직한 당시의 만찬메뉴를 소개한 포스팅에서 약간 아쉬웠습니다. 저는 프랑스어 메뉴를 그냥 그런대로 읽는 편이라, 그 메뉴사진을 보며 오, 그때도...아, 그랬구나 그러면서 참 재미있게 읽었는데 자세한 설명이 없어서였지요.

이어지는 내용은 여기를 클릭...

2012/05/16 10:57

1883년 9월 25일(3) 신세계의 마천루 미분류

1883년 9월 25일(2) 신세계의 병원과 전신에서 이어서 씁니다.

웨스턴 유니언 텔레그래프를 나와서 보빙사 일행은 다음 에퀴터블 빌딩을 방문합니다.
이 에퀴터블 빌딩은 정식으로는 에퀴터블 라이프 어슈어런스 소사이어티(the Equitable life assurance society)사의 빌딩입니다. 즉 보험사 빌딩입니다. 지난번 소개한 이날 접대를 맡은 실업가들 중에 필리스 포그...가 아니라 윌리엄 H. 포그씨가 이 회사의 이사회 임원이기도 했습니다. (포그씨는 뉴욕 호스피탈의 이사회 이사이기도 했습니다) 뭐, 당연히 접대는 훌륭했을 것으로 짐작이 됩니다.

지금도 뉴욕에는 에퀴터블 빌딩이 있습니다만, 실은 현재 건물은 1915년에 새로 지어진 것이고, 원래 그 자리인 주소지 '120 브로드웨이'에는 1870년 세워진 에퀴터블 빌딩이 있었습니다. 위치 상으로 대략 월스트리트 인근의 트리니티 처치 맞은 편입니다.

이어지는 내용

2012/05/12 03:39

1883년 9월 25일(2) 신세계의 병원과 전신 동아시아 개화기

다시 1883년 9월 25일(1) 비즈니스의 세계 - 뉴욕 실업계의 환영에서 이어 씁니다.

1883년 9월 25일 아침 10시경 지난번 포스팅에서 언급한 뉴욕의 실업가들의 안내로 뉴욕 시내 시찰에 나선 보빙사 일행들의 일정을 밀착 취재해보겠습니다.
먼저 방문지는 뉴욕 호스피탈 - 지긍은 이 병원은 뉴욕 프레즈비테리언 호스피탈로 계승되어있는데, 역사가 미국 독립이전인 1771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미국 전역에서 두번쨰로 오래된 종합병원입니다.
1900년 2월 11일자 뉴욕타임즈에서 당시 이미 "올드" 뉴욕 호스피탈에 대해 쓴 기사에서 이 병원은 강을 내려다보며 둥근 돔형 지붕과 현관에 대리석 기둥으로 장식된 건물로 존스 게이트라고 불리던 현관의 대문까지 길게 보도가 깔려있었으며, 담장에는 아이비 덩쿨이 자라있고 정원 나무 아래 사슴들이 방목되어 있었다고 합니다. 기사는 도매상으로 북적대는 블드웨이를 따라 내려가다 한블럭 떨어진 곳에 '우리 시대의 립반윙클(대략 무릉도원의 의미입니다)'중의 하나라고 묘사하고 있습니다.

19세기 그려진 뉴욕 호스피탈의 전경입니다. 지금의 워스(Worth) 스트리트와 듀에인(Duane) 스트리트 사이와 브로드웨이 서쪽에 있었습니다.

보빙사 일행은 이곳에서 전 시설을 꼼꼼히 살펴보고 운영 시스템에 대해 설명을 들었다고 합니다. 특히 어린이 병동에 대단히 관심을 보였다고 하는데, 어린이 병동에서 보빙사 일행들은 계속 애들 머리를 쓰다듬어 주고 악수를 하느라 꼬마들이 귀찮아할 정도였다고 하는 군요. 그중 특히 보빙사 일행들 중에서 의료 및 위생을 맡은 최경석 (기사에는 Chen Keung Sok으로 표기되어 있습니단)이 한 꼬마의 붕대감은 팔을 붙잡고 살펴보자 꼬마가 엄청 겁을 집어먹었다는 장면이 기사에 전해집니다. 최경석은 사진에도 보면 기골이 장대한 전형적인 무관 스타일입니다. 그런 사람이 진지한 표정으로 꼬마의 깁스한 팔을 붙잡고 살펴보면 나라도 울어버릴 것 같습니다. (뭐랄까 옥탑방의 우용술 캐릭터랄지...)

동그라미 안이 최경석입니다. 딱보기에도 옆 사람들에 비해 키가 10센치는 더 커보입니다.ㅎㅎ

병원에서 나온 다음 방문지는 뉴욕 타임즈와 이브닝 텔레그램이 서로 다르게 보도를 하고 있어 저도 정확히 모르겠습니다. 뉴욕타임즈는 웨스턴 유니언 텔레그래프라고 하고 있고, 이브닝 텔레그램은 포스트 오피스를 먼저 갔다고 하고 있습니다. 동선 상으로도 둘다 말이 됩니다만, 시간 상으로 오전 일정에 너무 많은 일정이 몰린 것도 조금 어색하고 저는 뉴욕타임즈의 순서를 그래서 따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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